지금 어떻게 표현을 할까?
저 콩나무를 표현을 할까?
콩이 말이야.
콩 씨가 있어서 땅에다 심었더니
콩싹이 났어.
뿌리로 화해가지고 싹이 났다고.
싹이 났는데
그 싹이 그 뿌리에 의지를 해야
뿌리에 의지를 해야 싹이 잘 되지?
그러고 또 콩씨가 열리지?
콩꽃이 피고.
그럼으로써 또 내년을
자기가 콩나무가, 내가 내년을 또 기약한다는 생각도 없이
영원히 지속해서 이어가는 거야.
그 생각도 없는데
자연스럽게 그냥 자연적으로 그렇게 이어가게 돼 있단 얘기야.
그러면 자기 뿌리는 자기 싹을 위하고
자기 싹은 자기 뿌리를 연상하고…
즉 붙들고 믿고 나가야지.
그런데 그 콩이 말이야
화해서 뿌리로 화했는데
그게 무슨 콩이냐고 그럴 거냐 이거야.
그래서 무슨 콩이냐고 한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찾으려고 아무리 뿌리를 헤쳐 봐도
콩이 없더란 얘기지.
여러분이 아무리 과거로 돌아가서 콩씨를 찾으려고 그래도
콩씨는 없고
자기 몸에, 즉 콩나무 안에 씨가 있다 이런 거죠.
그러니까 콩씨가 아직 안 열린 콩나무는
콩씨가 잘 되게 꽃이 피고
콩씨가 열리게끔 뿌리에게 거름을 줘라.
이런 거는 뭐냐 하면
모든 거를 믿고 거기에 의지하면
콩나무는 거름이 된다, 그 마음이.
거름이 돼서 콩나무를 푸르르게 만들고
꽃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고, 그 나무에서 무르익게 하고
그래서 모든 만민을 또 먹이게 하고
먹이게 하고 되 남게 하고
되 남아서 또 심어서 또 먹이게 하고
그러니까 일체 만물만생이
다 그러하다 이거야.
새들도 뭐 자기가 꼭 그렇게 해야만 된다 이런 것도 없이,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려고 애를 쓰고
주워다 먹이느라고 애를 쓰고
그러다가도 누구한테 알을 뺏기면은
속수무책으로 그냥 쳐다보고 울고 섰게 되는 거.
우리도 자식을 기르다가
어쩌다가 그냥 보이지 않는 데서 만약에 채갈 때
그냥 누가 채가는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수밖에는 없지. 어째, 어째…
보는 사람이 때려서 죽였다면 그냥 사생결단을 하지만
보이지 않는 데서 채가는 거는 어쩔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이 공부, 마음 공부를 해야
사는 날까지는 꼭 편안하게 살게끔 하기 위해서
몸을 이 콩씨가 다 여물고 다 여물은 연에, 심을 수 있게끔 된 연에
콩깍지가 벗겨져야지 정상인 거거든.
그러니까 인간도 그렇게 되게끔 하기 위해서
사는 날까지 꼭 틀림없이 편안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그 나무를 정상적으로 기르려면은
이 도리를 알아야 한다 이거야.
자식들도 새 알처럼 잊어버리고
새 새끼가 또 죽거나 이래도…, 채가고 먹히고.
새 새끼만 그런 게 아니지.
그렇게 강하게
스스로서 그렇게 자기가 해야 될 문제를, 소임을
꼭 해야 지키고 간다 이거야.
연어나 뱀 새끼나 뭐, 뱀도 여러 종류지마는
종류대로 자기 몸을 희생해서 새끼를 살려서
즉 말하자면 자기 몸이 아니라
자기 자식이 자기 몸이라고 생각하는 짐승은
다 자기가 희생하고 들어가요.
옷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자기 옷은 딱 자기 새 옷을 많이 내놓고는
자기는, 헌 옷은 그냥 죽어버리는 거
부모가 죽어버리는 거, 이런 거 있지?
껍데기를 벗고서 새 알맹이가 나오고 말이야.
또 다른 벌레가 또 다른 벌레로다가 진화하고
이러는 거 많이 보지 않아?
그러면 인간도 역시 그렇다는 걸 알아야 돼.
마음이 차원에 의해서 바꿔짐으로써
모습도 바꿔져.
현재 모든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그렇지
내 체질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야.
그래서 애 낳는 사람이
‘순산하게 해 주십시오.’ 그랬는데
순산치 못하게 될 때는 그거를
즉 말하자면 거꾸로 있거나 뭐 잘못됐거나, 태반이 기울어졌다거나
이런다면은 벌써 거기다가 관하면
그 태반도 올바로 세워지고
또 거꾸로 있던 아이도 바로 세워지고
이렇게 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이 얘기야.
그 속에 소임 맡은 공장에서들 다
너 나 할 거 없이 통신이, 정수에서 대뇌에서 통신이 가면,
사대로 통신이 가면
다 그렇게 작용을 해주게 돼 있다 이거야.
그렇기 때문에 진실하게 믿고
진실하게 해야만
대뇌로 통신이 된단 얘기야.
이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그냥 무대포로 생긴 인간이 아냐.
이것도 과학적이고, 컴퓨터가 벌써, 자동적인 컴퓨터가 머리 위에 달려 있어, 머리에.
대뇌가 이게 인간 컴퓨터야.
오신통이라고 하는 이름이
바로 머리의 누진에서 가지고 있는
그 자체가 바로 자동 컴퓨터거든.
그러니까 입력된 거를 지울 수도 있고
입력된 거를 입력된 대로 나오게 할 수도 있는 게
바로 누진이야.
컴퓨터를 만지는 주인이다, 이 소리야.
그렇게 하면서도 아리송 하지?ㅎㅎㅎ
그저 잘못되든지 잘 되든지
내가 떡 그릇에 들어가 보고
그냥, 아무 데라도 들어가 보고
그걸 체험을 하고 들어가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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