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라선공부

[릴라선공부] 진정한 행복은 대자유

Buddhastudy 2024. 7. 16. 19:02

 

 

사람한테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행복이다.

이거는 여러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이 얘기하는 게 행복이잖아요.

인간의 삶의 목표는 행복이다.

 

근데 이걸 깨닫지 못하면

진정한 행복이 뭔지를 우리는 모르고 가는 것 같아요.

 

[진정한 행복]이 뭐냐라고 얘기한다면

제가 보기에는 [자유]인 것 같아요.

자유, 대자유.

구속감이 없는 자유 있잖아요.

 

행복의 조건이 어떤 금전적인 것도 아니고

사실은 건강도 아니고

그다음에 여러 가지 어떤 조건적인 것도 아니고

아니면 어떤 지복도 아니에요.

아니면 어떤 편안함도 아니에요.

 

제가 보기에 진정한 행복은

자유, 대자유, 완전히 무한한 자유,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가

진정한 행복이라고 느껴지고, 생각이 되고

그게 어떤 거냐?

 

마치 자기의 어떤 존재감이

자기가 분명히 예전에 그 사람으로서의

어떤 지식이나 정보나 어떤 습관이나 기억이나 다 갖고 있는데

이걸 딱 깨닫고 보니까

자기의 그 모든 능력이나 그런 것들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의 어떤 존재감이

마치 제로인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있는데 없는 그런 상태?

그때 딱 느끼는 게 뭐냐 하면

진짜 나라는 게 구속이었구나이게

내가 있다라는 이 따로 있다라는 이 느낌

우리는 자기를 강화하려고 세상을 살아오거든요.

나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려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

자기 스스로도 강화하고

남에게도 강요하고, 알리고 싶은 그런 욕구로 평생을 살아왔는데

그게 진짜 감옥이었구나라는 걸...

 

내가 따로 없다라는 거는

마치 어떤 느낌이냐면

그냥 그거예요.

그냥 전체가 나인, 전체가

내가 따로 없다라는 건

전체가 나이면 전체가 나이면은 이상하죠.

이 무한대가 나면은 세상의 모든 무게가 나일 것 같은데

무한대가 내가 되면 무게가 없어요.

나라는 무게가.

 

이 전체가 나라면

모든 것이 평등한 게 돼버리거든요.

평등하려면 공이 돼야 돼.

그럼 만약 전체가 나일 때는 나라는 어떤 무게가 없는 거예요.

존재감이.

1g도 없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구나라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체가 다 있긴 있는데

이게 아주 중요해요.

이게 이 가르침이 중요...

다 있어요, 없는 게 없이 다 있는데

실체성, 존재감이 공이라는 거는 뭐냐면

우리가 공부할 때 일체를 다루는 게 아니라는 얘기예요.

 

그것이 즉 하나인 자리를 깨쳐버리면 된다는 얘기지.

왜냐하면 일체가 하나가 되려면

일체를 자꾸 없애버리면 어떻게 돼?

일체가 공한 거를 깨치는데

그러니까 그건 잘못된 접근이라는 거예요.

 

하나하나를 갖고 상대하는 게 아니다.

그것의 본질, 본바탕에 통하는 거거든요.

그걸 깨치는 거고.

 

그러면 뭐냐 하면

이게 그냥 통으로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낱낱이, 이렇게 뭘 보고, 뭘 어떻게 판단하고, 이런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거는

돈오가 가능한...

돈오, 단박에 깨쳐야 된다.

단박에 자유로워진다, 이거예요.

 

어제는 불행했고 오늘은 행복했으니까

어제의 불행을 그리 생각하지 말고

오늘의 행복을 생각하자.

그런 식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어제의 불행과 오늘의 행복이 이거다

이렇게 깨치는 거지.

어제의 불행은 잊어버리고 오늘의 행복을 생각하자

아니해요, 그거는.

 

왜냐하면

이 생각은 머물러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건 언젠가는 또 불행으로 바뀌거든요.

그럼 또 다른 대치, 대치, 대치

언제 끝날 겁니까? 이게.

 

그러니까 행복도 놓아버리고, 불행도 놓아버리고

이런 식으로 표현해요.

양변을 다 놓아버려라.

 

아니면은 행복과 불행이 똑같은데

그거를 깨쳐라. 그 자리.

그게 바로 이거다.

이걸 깨치고 보면 행복이 이게 도구나.

불행이 이거 도구나.

그 즉, 도구나

이 엄청난 공포심이 이게 도구나.

엄청난 두려움이 이게 도구나.

엄청난 공포가 이게 진리이구나.

엄청난 두려움이 이게 진리구나.

엄청난 분노가 이게 진리구나.

그래서 어떻게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구나.

 

거기서 그래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되죠.

그걸 버리고, 이 진리를 버리고, 어느 진리를 구한단 말입니까?

 

그게 바로 이 경계의 차별성이 사라져야 돼요.

그게 한 관문이에요.

체험하고 나서의.

그 벽이 부서지지 않으면 공부는 나아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