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여러분들이 인도에 있는 절 가운데 제일 기억에 남는 절이 뭐요? 아마 기원정사일 거요. 이 기원정사와 관계되는 얘기를 중심으로 해서 해보겠습니다.
이 기원정사를 지은 분은 수닷타 장자라고 불리는 분이에요. 이 분의 별명은 아난다 빈티카라고 그래요. 한문으로 번역하면 ‘급고독 장자’ 금강경에 나오니까 잘 아시겠지요?
‘사위성 기수급고독원’ 할 때 나오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중림정사에서 사리부트라, 목갈라나, 마아가섭 이런 아는 제자들을 교화하시고, 그 왕사성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그런 즉, 성도하신 후 3년 정도 지난 어느 날이었어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위성에 사는 수닷타 장자는 왕사성으로 사업을 하러 갔는데, 사업하러 가면 늘 자기 친구 집에 가서 머물면서 물건을 구입하고 팔고 이랬습니다.
또 그 집에 가면 친구가 참, 환영을 했어요. 다른 일을 다 그만두고 환영하고 맞이하고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이번에 왔을 때는 하인이 안내를 해주고 1시간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거요.
그래서 더 지나자 주인이 헐레벌떡 나타서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거요.
그래서 수닷타 장자가
“도대체 무슨 일이오? 그렇게 바빠요? 아니 아들 장가라도 보낸단 말이오? 딸 시집이라도 보낸단 말이오?” 이렇게 물었더니
“아이고, 그만 일에 내가 자네를 기다리게 하겠느냐”
“그럼 그거보다 더 큰일이 뭐가 있느냐?”
“내일 부처님이 우리 집에 오신다네. 1200제자들과 우리 집에 오니까, 그 공양 준비하느라 바빠서 그랬다네.”
“부처님이라니? 누굴 말하는데?”
“아니, 부처님도 모른단 말이야? 아 넌 참 사위성에 살지.”
이 왕사성에서는 부처님에 대한 명성이 자자했다. 요즘 말하면 해성같이 나타나서 명성이 자자했는데, 아직 이 성도하시고 얼마 안 된 시기니까, 이 멀리 떨어진 사위성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요.
“부처님이 어떤 분인가” 이래서 친구가 기뻐서 부처님에 대한 자랑, 부처님의 법문을 얘기 했어. 사람이 법문 듣고 좋으면요, 약간 도취현상이 생기죠. 남한테 얘기할 때 자기가 마치 부처님인냥, 그죠? 막,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그 얘기를 들으니까 이 수닷타 장자가 친구 얘기를 듣고도 너무너무 좋은 거요. 밤이 깊어져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를 하다가
“내일 아침에 부처님이 오시니까 너는 복이 많다. 부처님 뵙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넌 여기 앉아서 부처님을 볼 수 있다”는 거요. 그리고 헤어졌는데.
그런 훌륭한 분을 내일 아침에 뵙는다니까 마음이 들떠서 잠이 안 오는 거요. 그래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뭘 물어볼까, 어떻게 말씀하실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못들어 하니까 이미 새벽녘이 가까워 왔어.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을 열고 산책을 나간 거요. 숲속을 산책을 하는데, 저 안개가 자욱하게 낀 그런 숲속 나무 밑에 어떤 분이 바른 자세로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는 거요.
그런데 수닷타 장자의 생각에 딱 보니까, 그 모습만 봐도 어제 친구한테 들은 부처님 같아. ‘저 분이 부처님이다.’ 이런 생각이 딱 들어서 최대로 경의를 표하는 인사를 하면서
“부처님, 부처님이 아니십니까. 저는 사위성에서 온 수닷타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친구에게 잘 들었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드렸더니, 부처님께서
“잘 알고 있소. 내가 당신을 기다린지 이미 오래요.”
이미 부처님이 처음 만난 사람보고 ‘내가 당신을 기다린지 오래됐소.’ 이렇게 말한 사람이 수닷타 장자가 있고, 마하가섭 존자도 부처님께 처음 가서 인사를 드렸을 때 부처님께서
“내가 너를 기다린지 오래됐다.” 이렇게 말했어.
그래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수닷타 장자가 너무너무 기뻤어. 그러니까 이런 훌륭한 제자들은 아마 대중이 있는 자리에서 만나는 거 보다 혼자 만나는 게 더 좋았는지, 안 그러면 수닷타 장자가 대중이 있는 자리에서 못 물어보고, 부처님한테 특별히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서 어쩌면 친구한테 물어보고, 부처님 오시기 전에 자기가 부처님을 먼저 찾아왔는지, 그건 모를 일이지요.
왜 그랬을까? 그건 그렇게 훌륭한 분이라면 우리나라에도 초청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었지 않았나, 싶어요. 법문 듣고 너무너무 기뻐서 부처님께 청을 했어요.
“저는 코살라국 사위성에서 온 사람인데, 그 나라에는 이런 좋은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우리나라에 오셔서 좋은 법을 전하시면 우리나라 사람 중에도 인연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좋은 법을 듣고 깨치지 않겠냐. 그러니 우리나라에 좀 오십시오.”
이렇게 청을 하니까, 부처님께서 침묵으로 승낙을 하셨어요.
이게 불교정신입니다. 법을 듣고 기쁘니까 그 자리에서 청을 하고, 자기가 기뻤으면 됐잖아요. 복을 빌면 자기가 복 받으면 됐지, ‘쟤도 복 좀 주세요.’ 이런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이오. 그런데 이 법은 아무리 나눠가져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저 사람에게도 좀 나눠주십시오.” 이거 아니오.
이렇게 해서 그는 장사고 뭐가 다 팽개치고 말을 타고 달려서 고향 사위성으로 돌아와서는 자기가 거기서 본 게 뭐 밖에 없어요? 왕사성 밖에 있는 중림정사 아니오. 왕사성이 있고 중림정사가 있고,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고.
이런 생각을 해서 “사위성에도 중림정사에 버금가는, 더 나은 수행자 처소를 마련해 드려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는 주위를 둘러봤어요.
그러니까 사위성으로부터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는 그런 곳에 가장 아름다운 숲의 소유주가 제타라고 불리는 태자의 것이었습니다. 이 나라 왕의 아들 거였어요. 왕의 아들 거라면 좀 구입하기가 어렵죠.
그런데 찾아가서 “숲을 저에게 파십시오.”하니까, 태자가 안 판다 그랬어. 그러니까 이 장자가 뭐라고 그랬냐하면
“값은 얼마든지 쳐드릴테니까 파십시오.” 이 얼마든지 쳐든다. 이거 무서운 소리요. 백지 수표를 내어놓은 거요.
그런데 당시 인도 문화에서는 이런 거에 대해서 그냥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가 봐요. 상대가 얼마든지 준다 할 때는 값을 제시를 해서 포기하도록 해야 된단 말이오. 그래서 이 태자가 제시한 가격이
“그러면 당신이 사고 싶은 땅에다가 금화를 까세요. 그럼 그만큼 팔겠습니다.”
이것은 상식에 어긋난단 말이오. 금화 한 닢만 해도 땅을 수백평 살텐데, 금화 크기 만큼만의 땅을 금화 한 냥을 받겠다는 거 아니오.
그럴 때 보통 사람 같으면
“아이고, 그렇게 비싸게 부르면 어떻게 합니까? 받을 것만 말하세요.” 이건 예의가 아니에요. 자기가 얼마든지 갚은 쳐 줄 테니까.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여기서 받아들이든지, 물러나든지 해야 된다. 그러니까 이 수닷타 장자가 “감사합니다.” 하고는 그대로 와서는 창고 문을 열고는 있는 돈을 다 꺼내갔어. 마차에 싣고 와서 막 까는 거요.
이 소문을 듣고 태자가 자기는 거절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 사람이 이렇게 하고 있다니까, 진짜인가 싶어서 가봤더니 정말 그러고 있어. 그래서
“당신 이 땅 사서 뭐하려고 그러오?” 라고 물어봤어.
이 사람이 보통 사람이었으면 정신 나갔나 이렇게 생각했을 텐데, 이 사람은 사업을 해서 돈도 많은 사람이지만,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도왔나 봐요. 그래서 ‘외로운 자를 돕는 자’, 그래서 급고독이라는 별명을 얻은 거요. 요즘 말로하면 자선사업가란 얘기에요.
명성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이 분이 하는 얘기가
“아, 예,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머무를 곳을 마련하려는 것입니다.”
자기가 생각할 때는 이 만 한 돈을 주고 땅을 살 때는 곡절이 있을 거다. 이마 땅 속에 금이 있든지, 장사꾼이 투자를 할 때는 몇 배의 돈이 벌려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 장사꾼이 하는 얘기가 수행자들 처소 마련한다는 거요. 그건 아무 돈 되는 일이 아니란 말이오. 도대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거금을 투자를 해서 마련하느냐. 그랬더니 부처님은 이러이런 분이다 하고, 자기가 듣고 보고 한 얘기를 다 하는 거요.
그 얘기를 듣고 태자도 감동을 해서 “그렇게 훌륭한 분이라면 나도 동참하겠소.” 그러니까 지금 금화를 깐, 고 부분만 팔게 되어있는 거 아니오. 나머지 곳을 다 기증을 한 거요.
이렇게 해서 이 절은 기타태자가 제공한 숲에 급고독 장자가 절을 지었다. 그래서 뭐다? 기수급고독원이 된 거요. 줄여서 기원정사. 그러나 인도말로는 그냥 ‘제다바나’라고 그럽니다. ‘제다바나’ ‘제다’는 사람 이름이고 ‘바나’는 숲이란 얘기에요. 그러니까 제다태자의 숲이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이 오실 정사를 마련한 거요. 그래서 3개월 후에 부처님께서 이곳으로 오셨고, 부처님께서 이 곳에 머무르셨는데,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고 45년 가운데서 사위성에 안거를 여름 석 달을 머무신 게, 24회입니다. 절반이 넘죠. 그 가운데 19안거를 이 기원정사에서 보냈어요.
사위성에서 24번 중에 19번은 이곳에서 보내고 다섯 번은 다른 곳에서 보낸 거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경전 중에 법문을 많이 설하신 곳이 제일 많은 나오는 곳이 어디다? 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이 제다바나에요.
두 번째가 왕사성 벨로바나 중림정사, 또는 영축산 기사굴산이에요. 여러 지명이 나오는 데, 한 40% 가까이가 기원정사에서 설했다. 이렇게 나오죠. 이 절을 지은 분이 수닷타 장자인 거요.
여기서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돈밖에 모르던 사업가가 물론 자선 사업을 좀 했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법을 듣고는 이 법을 전하는 것이, 그러니까
어려운 사람에게 밥 주고 도와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어리석은 사람에게 법을 깨쳐주는 이것이야 말로
최고의 보시라고 생각이 들었던 거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전 재산을 여기에 투자하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거요. 이것이 당시에 법을 경험한 부처님의 제자들의 태도였습니다. 출가한 스님뿐만 아니라, 재가한 신도들도 법을 얻는 기쁨이 이와 같았다.
이 수닷타 장자는 그 이후에도 부처님이 어려운 시기마다 이 교단을 위해서 많은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불법이 이렇게 오게 된 것은 부처님과 출가한 제자들만의 힘으로가 아니고, 거기에는 법을 증득한 재가수행자, 재가신자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 부처님의 법이 너무 이렇게 널리 퍼지니까, 이교도들의 시기와 질투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모함하려고 많은 시도들이 있었어요.
그 가운데 그런 모함이 먹혀들어서 아주 곤궁에 처한 때도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교도들이 여러 종류로 부처님을 모함 했는데도 그게 잘 안 먹혀들었어요. 그래서는 아주 유녀 중에 제일 아름다운 유녀를 돈을 많이 주고 사서는,
매일 저녁때는 기원정사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침 새벽에는 급히 정사에서 나오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볼 때,
“오, 이 밤에 저 여자가 왜 저 숲으로 가나? 오, 이 꼭두새벽에 웬 정사에서 저 여자가 나오나?” 이렇게 생각하도록 계속 한달 이상을 하고는 여자가 없어져버렸어.
그래서 ‘여자가 없어졌다. 기원정사에 자주 다녔다.’ 그래서 기원정사 주위를 수색을 하니까, 누가 여자를 죽여서 숲에다 묻어 놓은 거요. 그러니까 이게 ‘부처님과 비구들이 이 여자를 결국은 탐하고는 탄로 날까 싶어서 죽여서 묻었다.’ 이렇게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그럴듯해서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면서 대중들이 길거리에 탁발을 가면 사람들이 욕을 하고 다 거부를 하고 밥 주기를 거절을 했어요. 그때 부처님께서 늘 비난을 받으시고, 빈바루를 들고 오시면서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대중들이 물으면
“여래는 바른 법을 가르친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봐라.” 이렇게 다만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스님들은 그렇다 치고 수닷타 장자나 베사카 부인이나 이런 분들은 이렇게 어려움에 처하니까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그래서 백방으로 진의를 밝히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은 사건이 밝혀졌는데 1주일이 지났어요. 이교도들이 돈을 주고 사서 이렇게 하고는 여자를 죽여서 숲에 묻어 놓은 거요.
그런데 그 여자를 살해한 사람들이 술 먹고 취해서 저희끼리 그냥
“야, 우리가 어떻게 했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탄로가 나서, 그렇게 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서 부처님과 제자들은 더욱 더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얻고 칭송을 받게 됐다. 이럴 때 이걸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 누구냐? 이분이 수닷타 장자요.
그러니 우리들이 재가신자라고 해서 불교 교단 안에서 2등 국민이 아니다. 스님들은 1등 국민이고 재가신자들은 2등 국민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우리는 다 일불제자입니다. 똑같이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율도 같이 지켜야 되고, 또 법을 믿고 따라서 수행도 같이 해야 됩니다. 다만 스님들은 전문적으로 하니까 아마도 투자하는 시간이 많고, 또 전문적으로 수행을 공동체적으로 사니까 규칙도 많죠. 그래서 계율이 많은 거요.
그러나 법을 믿고 이해하고 실천하고 증득하는
여긴 차이가 있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재가신자라고 하더라도 법을 듣고 이치를 깨쳐서 수다원과는 증득을 해야 된다.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 법문 듣고 이치를 깨쳤다. 그래서 견도가 열렸다. 수다원과를 다 증득했던 거요. 그래야 불자라고 할 수 있는 거요. 안 그러면 법을 만난 기쁨을 경험하지 못하면, 불자라고 하기가 어려운 거요.
그러니 이것은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그런 가르침이기 때문에 머리를 길렀느냐, 깎았느냐, 옷을 어떻게 입었느냐, 이름이 어떠느냐? 이거하고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다만 우리가 역할 상, 스님들이 하시는 역할이 있고, 재가신자가 하는 역할이 있죠. 역할은 업무 분담을 해서 나눠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법을 믿고 따라서 해탈과 열반을 향해서 나아간다. 하는 이 길에는 다름이 없다. 그런데서 우리는 수닷타 장자, 지바카 의사, 그 다음에 베사카 부인, 이런 훌륭한 재가신자들, 이런 분들은 다 깨달음을 얻어서 번뇌가 다 한 분들. 이런 분들을 우리가 늘 우리들의 모범으로 삼아서 수행정진을 해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이 수닷타 장자가 법을 전하기 위해서, 법을 전하는 기초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행하신 이런 거룩한 일을 다 본받아야 합니다.
무턱대고 큰 절을 짓는 게
불사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법을 듣고 기뻐하는 마음
그래서 자발적으로 하는 행위
그것이 진정한 보시이지
이름을 내기 위해서
세력을 얻기 위해서
어떤 다른 목적을 가지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좋은 우리 재가신자의 사례를 여러분께서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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