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연달아서 계급제도에 대해서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출가하시고 12년째, 성도하시고 6년째 되던 해에 부처님은 아버지이신 정반왕의 초대를 받고 카필라성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고향집 왕궁에 들어가지 않고 성 밖에 한 10리 뚝 떨어져 있는 그 지역에 머무시면서 걸식을 하셨어요.
아버지인 왕은 12년 만에 아들이 돌아온다니까, 또 출가하는 것을 반대하기는 했지만, 이미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요즘 같으면 국제적인 인물이 되어 고향에 돌아오니 매우 반가웠던 거요.
그래서 궁 안에 많은 음식을 차려서 환영준비를 했단 말이오.
그런데 부처님은 궁 안으로 들어오지를 않으시고 길거리에서 가난한 집 앞에 가서 걸식을 했단 말이오.
이 소식을 들으니 왕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기분이 나빴던 거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이거야.
부모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이것은 왕족의 예의도 아니고, 그래서 부처님은 걸식을 하고 있는데, 왕은 결국 부처님을 만나러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10리 가까이 나와서 부처님을 맞이하게 된 거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부처님과 아버지인 정반왕이 만난 곳은 그 첫 대면은 궁 안이 아니고 궁의 남쪽 한 10리쯤 떨어져있는 곳입니다.
지금도 이 곳에 가면 부처님을 환영한 곳이다 해서 후단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정반왕을 기념하는 탑, 마하빠자빠띠를 기념하는 탑, 라후라를 기념하는 탑, 이런 것들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부처님을 만나서 아버지인 정반왕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궁중에 음식을 다 차려놨는데 오지 않고 길거리에서 걸식을 하는거냐.”
이렇게 부처님께 질문을 했을 때 부처님께서
“아버님, 이것은 저의 가문의 전통입니다.”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러자 정반왕은
“걸식하는 것이 어찌 석가족 가문의 전통인가. 우리 왕족의 가문에는 구걸하는 것은 없다.”
이렇게 반론을 제기했을 때 부처님께서는
“아버님, 이것은 출가 사문의 전통입니다.”이렇게 말했어요.
여기에서 부처님은 자기가 왕족이라느니, 자기가 석가족이라는 것을 버렸다는 얘기죠.
다시 말하면 세속적인 그 종족, 그리고 카스트 이것을 이미 그분은 다 놓아버렸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만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거기에 합당하게 살아가실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세속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이미 출가 사문인데도 왕자로서 태자로서 행동해줄 것을 바란 것이죠.
부처님은 왕의 초대를 받고 설법을 하기 위해서는 왕궁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곳에서 많은 친지들, 친척들을 위해서 설법을 하셨고, 그 설법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했어요. 법을 이해하고.
특히 젊은이들은 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는
‘우리도 출가해서 수행하자.’ 이런 일종의 바람이 불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출가를 하게 된 거요.
이때 7왕자들, 소위 칠공자라고 불리는 석가족 왕자들 가운데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들의 그룹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그룹에 구성된 사람들이 모여서 의논을 해서
‘우리도 출가를 하자.’ 이렇게 해서 7명이 다 출가를 했어.
그 가운데 나중에 10대 제자에 든 분이 있습니다.
천안제일 아니룻다. 그리고 아난다. 이런 분들이 7공자 가운데 한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출가를 할 때, 이발사한테 이발사라는 것은 종입니다. 자기들이 전문적으로 이발해주는 종한테 가서 머리를 자르고 그렇게 출가를 했습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벌써 승가가 어느 정도 제도가 성립되었어요.
그래서 출가를 할 때는 장로, 먼저 스님이 된 훌륭하신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 밑에 계를 받는 거요.
그러니까 이 7분은 사리부트라 존자, 사리불 존자를 찾아가서 출가를 하신 거죠.
그런데 그 분들이 우파리라고 불리는 이발사에게 머리를 자르면서 자기들이 갖고 있던 패물을 이발사에게 준 거요. 자기들은 출가하면 그게 다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이발사는 7왕자로부터 많은 패물을 받아서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발사가 생각하기를 저렇게 높은 집에서 태어나셔서, 또 부잣집에 자라서 저렇게 훌륭한 학문까지 익히고 아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이 사는 저 분들도, 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출가해서 수행자가 되는데, 그에 비교해서 나를 보면 나 같은 사람은 뭐가 아까워 못 버리겠느냐는 거요.
내가 무슨 높은 신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물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학문이 많은 것도 아니고, 지위가 높은 것도 아니고, 이런 생각이 드니까 나도 출가 사문이 되어야 되겠다.
이렇게 발심이 든 거요.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그래서 스스로 머리를 잘라버렸어요. 자기가 이발사니까.
머리를 자르고는 이 사람은 쉽게 말하면 무식하니까, 절차가 어떤지 이런 과정을 잘 모를 거 아니오.
그러니까 무조건 부처님을 찾아간 거요.
부처님께 가서 출가하겠다고 자기 소원을 말한 거요.
“왜 출가하겠다고 그러느냐?” 하니까
지금까지 있었던 이런 사정을 이야기 한단 말이오.
벌써 이런 얘기는 얘기 같지만 이 사람 마음속에 집착이 없어졌다는 걸 말하죠.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어떤 유혹 때문에 발심한 게 아니란 말이오.
그 왕족들이 출가하는 것을 보고, 버리는 것을 보고 자기 마음속에 있던 모든 욕망이 집착이 탁 버려진 거란 말이오.
그래서 부처님께서 그 얘기를 들으시고는 이미 그는 마음에 집착이 놓였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오라, 비구여.” 이래서 바로 출가를 승낙하셨단 말이오. 그래서 그는 스님이 된 거요.
그런데 이 7왕자는 사리불존자에게 거서 기초교육을 받고 그렇게 스님이 되었어.
그 다음에 고참스님들한테 쭉 인사하는 그런 자리가 있는데, 다 훌륭하신 분이니까, 그 앞에서 다 깍듯이 예를 갖추고 절을 하면서 인사를 했단 말이오.
그런데 맨 마지막에 서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려고 보니까, 며칠 전까지 자기 종이요, 자기 머리깎아주는 자기 종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그 앞에서 머뭇거리게 된 거요.
절이 딱 안 되었다 이 말이오.
이해가 되십니까?
‘아이고, 출가하신 스님이 뭐 수준이 그것밖에 안 돼’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한번 법문 듣고 발심한 이 초심자한테는 그 오랫동안 행해온 그 관습이 안 된단 말이오.
이 사람이 비록 하인이고 종이고 천민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직접 대면하지 않는 사람이면 그 스님이라고 하는 수행자라고 하는 형상만 보고 마음이 숙여질 텐데, 이건 자기가 어제까지 다루던 발바닥보다도 못한 그런 존재였는데, 그 앞에서 절을 하려니까 머뭇거리게 된 거요. 안 되게 된 거요.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죠.
그걸 보시고 부처님께서 이 왕자들에게
“우파리에게 절을 하라.” 이렇게 명령을 하신 거요. 명령이라기보다 권유를 하셨다고 말할 수 있죠.
왜 우파리에게 절을 하라 그러는가.
그 우파리에게 절을 한번 함으로 해서 진정한 출가자가 된 거요.
자기 종에게 엎드려 절을 할 때 내 이 허의식, 높은 신분, 이 모든 상이 다 버려진 게 된 거란 말이오.
그때 부처님께서 똑같이 말씀하셨어요.
세상에는 4개의 큰 강이 있지만
바다에 가면 하나가 되듯이
세상에는 4개의 계급이 있지마는
여래의 법 안에서는 하나로 평등하다.
계급이 있는 사회에서 그것이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하나의 제도란 말이오.
그것을 부정하고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 수 있는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사회란 말이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그 계급 제도가 허의식, 잘못된 인간의 의식에서 형성된 거지
인간이 본래로 그 출생에 의해서 귀천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거란 말이오.
첫째 스스로 아셨어요.
그게 지혜에요. 깨달으셨어요.
깨달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어리석음 속에서 허의식 속에서 산단 이 말이오.
이것을 세상 사람에게 깨우치려면 깨우치기가 어렵고,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엄청난 저항이 오게 되는 거란 말이오.
그래서 부처님은 처음에 망설이셨단 말이오.
그 망설임이 경전에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습니까?
마왕 마라의 유혹으로 표현되었단 말이오.
“이렇게 해서 깨달았어, 번뇌가 없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를 했느냐, 이제 마음의 번뇌가 사라지고 깨달음을 얻었으니, 열반에 드십시오.
만약에 이 세상 사람을 향해서 이걸 깨우쳐주려고 하면, 이거는 지금 내가 깨달은 것보다도 더 한 어려움에 봉착하고 이 수고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니 공연이 왜 또 그런 짓을 하려고 하는가,
그러니 부처님이시여, 부디 열반에 드소서.”
이런 식으로 마왕마라의 유혹으로 경전에는 표현이 되어 있다 이 말이오.
그럴 때, 하늘의 또 다른 신인 범천왕이
“부처님, 설법을 하소서.
이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음에 휩싸여 있지마는, 그러나 연못에 가보면 연꽃이 피는데, 어떤 꽃은 연목 위까지 올라와 있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바로 수면에 가까이 있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저 아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 수면에 가까이 올라온 것은 금방 핀다.
그것처럼 이 세상 사람 중에도 어리석음에 휩싸여있지만, 약간만 바른 법을 일러주면 깨달은 사람도 있고,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있고, 아주 어려운 사람도 있고, 똑같지 않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부처님께서 만약에 법을 설하신다면, 이 선근공덕이 깊은 사람들은 이 좋은 법을 듣고 깨달을 거다.”
이렇게 법을 권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게 다 하나는 마왕마라의 유혹이고, 하나는 범천왕의 설법을 청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을 우리가 좀 현실적으로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
바로 마음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그럴 때 부처님께서 바른 지혜로 살폈을 때 바로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좋은 법을 만나면 나처럼 깨달을 수가 있구나.
이쪽으로 보시고, 설법의 길을 떠나신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스스로 깨닫기도 어렵지마는 이것을 세상 사람에게 깨우쳐주기도 어렵고, 또 개개인은 깨우쳐 줄 수 있지만 이것을 사회적으로 실현한다는 거는 더더욱 어려운 거요.
내가 그것을 아는 것 하고,
내가 그렇게 직접 세상 속에서 사는 것 하고는 또 많은 차이가 있죠.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적어도 상가라고 하는,
이 수행자집단 안에서는 계급차별이 없는 그런 모델을 만드신 거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도 전 사회적으로 이것을 다 실현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마는, 적어도 모델은 만드신 거요.
수백 명, 수천 명, 수만 명은 그런 허의식에서 벗어나서 살아가는 소위 모델을 만든.
그래서 우리가 이 상가를 청정하다고 말하고, 이 상가에 귀의하는 거요.
그런데 우리나라 불교역사를 한번 보세요.
신라시대, 고려시대에 불교국가였지 않습니까. 그죠?
불교가 아주 번창하고 위대한 고승들이 참 많이 출현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신라시대 고려시대가 다 신분제 사회죠. 계급사회다 이 말이오.
그래서 사회에서는 어떤 관직을 하나 줄 때는 반드시 그 사람에게 요즘 봉급 주듯이 땅을 줍니다. 그리고 사람을 줍니다. 노비에요. 땅을 주면서 노비를 주는 거요.
그래야 그것을 경작하고 집을 짓고 집을 유지하는, 노비가 있어야 빨래도 하고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다 하는 거요.
그런데 그게 절에도 마찬가지요.
국가에서 큰 절을 짓게 되면 그 절에 먹고 살 땅을 줍니다.
그리고 그 절을 유지 관리하는 노비도 주는 거요. 이렇게 해서 절이 유지가 돼.
우리가 아는 그 많은 훌륭한 스님들이 다 이런 제도 위에서 학문을 공부하고 좋은 가르침을 편 거요. 그러나 그 스님들 중에 이런 노비를 해방시켜 버린 사람, 아니면 그 노비의 노고에 기초하지 않고 자기의 삶을 영위한 사람, 그런 사람 없죠.
그런데 부처님은
그런 노비들의 어떤 종들의 노고에 의한 기초위에 생활을 하지 않으셨어요.
출가사문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 이 말이오.
이게 큰 차이입니다.
불법에 정통하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면서도
이 세상에 모습을 꿰뚫어보고, 그것을 뛰어넘어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거요.
이게 바로 부처님과 우리가 말하는 역대의 큰 스님들과는 여기에 근원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 사회에서 부처님은 2600년 전에 계급제도를 부정하시고, 남녀 차별을 부정하시고, 그런 것을 뛰어넘어 사는 길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사셨는데,
오늘 보면 이 세상이 오히려 신분제도도 없어지고 차별제도도 없어지고 많이 없어져 가는데, 오히려 종교 안에 들어와 보면, 아직도 이 차별이 많습니다.
불교 같으면 스님과 신도의 차별이 많죠. 어느 종교든지 다 그렇습니다.
또 종교 안에 오면 남녀차별이 바깥 사회보다 더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역행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서 우리나라 스님들 중에 이런 것을 뛰어넘으신 스님이 한분 계세요.
원효대사의 그 후반기 삶을 보면 이런 것을 뛰어넘어서 계시죠.
그래서 학문적으로 볼 때는 다른 스님들과 원효대사만큼 훌륭하신 스님들이 있다고 말할지 몰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견주어서 볼 때는 이것은 비교할 수 없는 삶의 모습이다.
이런 것을 우리가 살펴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쩌면
지금 시대에 이르러서 이제야 실현이 되고 있고,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단계에 왔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서양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불교가 새로운 희망으로 비전으로 마치 동녘에 떠오르는 아침햇살처럼 보이는 거요.
어떻게 2600년 전에 이런 가르침을 펼 수 있는가?
오늘의 우리 시대에도 마치 광명같은 그런 가르침이란 말이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그런 불교는 이미 불교라는 이름만 갖고 있지 이 온갖 세속적인 계급제도, 남녀차별, 온갖 허의식에
특히 요즘 같으면 자본주의에 물이 들어 복 받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이런 불교는 우리의 미래에 희망으로 제시되기 어렵다.
그러니까 우리는 불교가 희망의 가르침, 기쁨의 가르침으로 다가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법에 귀의하자. 정말 법에 귀의해서 수행하자. 이렇게 누차누차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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