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누군가에게 잘못이나 실수를 했을 때는 며칠
또는 몇 달 동안 자책을 하고 괴로워합니다.
누군가에게 내 평가가 많이 바뀌었을 거란 생각에
그리고 또 그 사람에 대한 미안함에 자꾸 괴로움이 올라옵니다.
일에 대해서는 그 괴로움과 자책이 더 심합니다.
대화가 잘 끝난 뒤에도 자책이 계속 이어지고
특히 손님들을 실망시켰다는 생각에 괴롭습니다.//
좋게 말하면 착한 사람이고
좀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래, 너 잘났다”이런 사람이에요.
아이고..
얼마나 잘났는지 모르지만
“나는 실수를 안해야 하는 사람이고
나는 세상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해야 하는
그런 사람이다.”
이건 엄청난 자기 우월의식이에요.
부처님도 부처님을 비난하고 부처님 때문에 못 살겠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부처님을 죽이겠다, 헤치겠다는 사람도 나왔고요
예수님도 예수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자기가 부처님이나 예수님보다 더 잘났어요?
지금 자기 얘기 들어보면
나를 어떻게 부처님, 예수님한테 비하냐?
나는 열배 백배 잘났다, 이런 얘기하고 같다, 이 말이에요.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다
모든 것을 잘할 수 없습니다.
이걸 먼저 인정해야 한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다, 이걸 인정해야 하는 거예요.
부족하다, 이 말이 완전할 수 없다, 그래서 문제가 있다, 이런 뜻이 아니라
원래 존재 자체가 그렇다는 거예요.
부족한 게 정상이라는 거예요.
부족한 게 뭔가 흠이 있어서 생긴 게 아니고
그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자기는 부족한 걸 인정 하지 않고
완전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오는 문제가 아닐까.
우리가 원하는 걸 다 이룰 수가 없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거 다 이루어져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게 안 이루어지면
화내가 짜증내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괴로워하고 이런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게 다 이루어질 수 없어요.
또 이루어진다고 반드시 좋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어요.
원하는 게 이루어진 게 오히려 화가 되어서 큰 재앙을 받은 사람도 많잖아요.
그래서 옛날부터 인생 지사 세옹지마다, 이런 말도 있단 말이에요.
그것처럼 남이 나한테 원하는 걸 내가 다 해줄 수 없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남이 나한테 원하는 걸 내가 그 사람에게 만족하게 다 해줄 수 있다는 이런 착각을 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질 수 있다는 착각과 똑같이
이것도 큰 착각이에요.
그러니까 남이 원하는 걸 내가 다 못 해줬다.
그래서 자기를 자책한다, 이 말이오.
내가 원하는 것을 네가 다 안 해줬다 해서 상대를 미워하나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다 못 해줬다고 나를 미워하나
똑같은 거예요.
“너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 필요가 없어” 하고 죽이는 것을 살인이라고 그러죠.
자기한테
“나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 필요가 없어”하고
자기를 죽이는 게 자살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자살은 살인과 똑같은 행위인데 차이점은
살인은 살인한 사람이 있으니까 처벌할 수 있는데
자살은 살인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
이 차이밖에 없지
똑같은 살인 행위에 해당한다.
얘기가 조금 옆으로 나갔습니다마는
남을 미워하는 거나 자기를 미워하는 거나
남 부족하다고 탓하는 거나 자기 부족하다고 탓하는 거나
같은 거다.
남을 미워하거나 부족하다고 탓하는 것은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 부족한 걸 탓하거나 자기 미워하는 것은 착한 사람이다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똑같은 거예요.
자기가 부족한 게 정상인데,
남이 원하는 걸 내가 만족스럽게 해줄 수 없는 게 정상인데
자긴 지금 어떤 착각을 하고 있는 것에요.
나는 그렇게 다 해줄 수 있다.
그래서 제가
“아이고 그래, 너 잘났다!” 이렇게 얘기 하는 거예요.
자기가 얼마나 잘났으면 그걸 다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부처님도 못하고 예수님도 못한 일이에요.
내가 잘못한 거를
“잘못 안했소!”하고 우기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걸 가지고 계속 자기를 탓하고 있는 것도 똑같이 문제다.
다만 남을 탓하는 것은 비난할 대상이 있지만
자기를 탓하면 사람들이 비난을 하지 않으니까
이건 괜찮은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제가 볼 땐 이게 더 큰 병이다.
이것은 약간의 심리적인 그런 일종의 우울증 같은 그런 심리가 있으면
더 심해집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이 자책하는 것이 점점 심해지면
병원에 가서 이건 치료받아야 합니다.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해요.
남 미워하는 거 보다, 이게 더 큰 병이다.
그런데 그것이 치료받을 정도가 아니다.
그러면 그거는 자기 우월의식, 결벽증이라 그러죠.
자기는 흠이 없어야 한다.
자기는 완벽해야 한다하는 착각을 하고 있다.
이 결벽증도 그래서 ‘증’이라고 뒤에 붙잖아요.
병에 들어간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병을 계속 앓든지
안 그러면..
항상 부족한 거예요, 우리는.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안 되듯이
또 엄마나 동생이나 아빠나 회사나 세상 사람이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 없는 게
정상이에요.
하는데 까지 하면 되요.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죄송합니다”하고 넘어가면 돼요.
그런데 자기 얘기들어니 제가 볼 때는
증상이 약간 병증에 가까운 수준이에요.
자기 지금 말하는 거 들어보면.
거의 치료를 받아야 하나, 할 정도의 수준이다.
병원에 안 가고 집에서 기도하려면
“저는 편안합니다.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우선
“이 상태로 이대로 좋습니다.”
지금 이대로, 뭔가 내가 노력해서 뭐가 되어야 좋은 게 아니라
“지금 이대로도 좋습니다.”
부족한 이대로 완전한 거예요.
말이 좀 안 맞죠.
부족한 이대로 완전하다.
이 말이 안 맞잖아, 그죠?
부족하면 부족하지 어떻게 완전하냐?
그 말의 뜻은
부족한 것이 정상이다, 이런 얘기에요.
흑인의 얼굴이 희어야 하는 게 아니고
흰 게 정상인데 검은 게 아니고
검은 게 정상이다, 이거야.
그래서 검은 것이 아름답다.
키가 작은 사람은 작은게 정상이다.
그게 무슨 질병이 아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런 다른 사람이 나한테 원하는 걸 내가 다 해줄 수는 없는 게
정상적인 인간관계다.
“내가 부족한데 어떡할 거야?!”
이렇게 항의하라는 게 아니라 그냥
“죄송합니다”하고 넘어가면 된다.
자기같이 그렇게 하면 앞으로
자기 병 때문에 경제적인 손실도 많이 생겨요.
괴로울 뿐만 아니라.
안 물어줘야 할 것도 물어줘야 하고
배상 안해야 할 걸 해야 한다든지
사과 안할 걸 한다든지
자칫 잘못하면 비굴하게 살 위험이 있다.
너무 잘 나서 비굴하다, 이거 얼마나 모순이에요.
너무 자기가 완벽한 거를 추구하다 보니 비굴해지게 된다.
그러니까 부족한 걸 인정해 버리면 비굴 할 게 없어요.
나 잘났다, 하고 목에 힘줄 교만할 것도 없지만
비굴할 일도 없어지지 않겠나.
얘기 들으면서 내 관점은 그런데
자기 고민을 더 얘기해 봐요, 있으면.
...
무슨 실수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요.
어떤 실수를 말하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말을 그렇게 한 거지 무슨 말실수가 있어요?
...
까칠하게 할 수 있죠.
...
지금 직업이 뭐예요?
손님한테 어떤 잘못을 했는데?
구체적으로 예를 하나만 들어봐요.
...
구체적인 내용은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첫째, 부족하면
“당신이 보기에 부족했다고 하니까
죄송합니다” 이러고 말로해서 끝내도 될 일인 거 같아요.
예를 들면 10시간 수업해야 하는데
내가 지각을 하거나 결석을 하거나 해서 7시간만 했다.
이럴 때 환불에 해당이 되지
10시간을 다 채워서 최선을 다했는데
소비자가 듣기에 부족하다, 이렇게 한다고 모든 걸 다 환불조치를 취한다 그러면
그거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 먹어보고
자기 입맛에 안 맞다고 환불을 요청하고
가서 서보고 자기가 원하는 만큼 안 된다고 환불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그렇게 항의를 하니까
“제가 좀 부족해서 죄송합니다”하고 말로 첫째 끝내야 할 일이다.
제가 볼 때는.
구체적으로 모르니까 제가 그런 얘기하는 거예요.
두 번째, 자기가 환불을
“그래, 본인이 부족하다고 하니까 환불을 해줘야 하겠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자기가 환불한 거로 그거는 끝나야지
거기에 더 이상 죄송하다고 할 필요는 없다.
그게 그래도 계속 그 사람한테 미안하다 그러면
자기는 두 가지,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겠다는
현실에 가능하지 않은 그런 환상, 욕심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지금 내가 말한 대로 병이다.
병원에 가서 한번 체크를 해볼 만큼 병이다.
이런 얘기에요.
지금 자기 점검을 정확하게 해야 해요.
지금 자기 상태가 절대로 정상이 아니에요, 그렇게 하면.
그러면 이 세상에서 자기도 남도 관계가 굉장히 복잡해요.
예를 들면 부부인데, 계속 아내가
“미안하다, 여보 미안하다” 이러면
처음에는 “잘났다” 하는 거 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데
관계를 오래 맺으면 짜증나요.
늘 징징대고 미안하다 그러고.
그래서 이것은 직장생활이든 어디든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조금 관점 정리를 하는 게 필요하겠다.
만약에 여유가 있다면 그냥 뭐, 요즘 기본 치료비가 비싼 건 아니니까
한번 가서 자기 상태를 저한테 얘기하듯이 얘기하면
의사가 “
“뭐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하면 괜찮고
”오, 조금 심하다“ 이러면 아마 약간의 조언이나 치료를 요구할지도 몰라요.
무슨 큰 병이다, 그거는 아닌데
지금 상태가 심해지면
자기 사회 생활하기 좀 어려워져요.
병이 아니면 자기 결벽증이 너무 심하고
안 그러면 자기 어떤 몸이나 정신적인 어떤 그런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면 치료가 필요하다.
절대로 정상적인 사고방식은 아니에요.
심리가 굳건하다든지, 건강하다든지 그런 상태는 아니다.
지금 남에게 피해를 안 주니까 사람들은 뭐, 문제 안 삼지만
한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큰 결격사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행복해지는 데는 지금 같은 심리상태는 거의 어렵다.
오히려 화내가 짜증내고 남 욕하고 미워하는 사람보다도 치료하기 더 어렵다.
행복해지기 더 어렵다.
그런데 화내고 짜증내고 지가 잘났다는 사람
이런 사람은 치료하기 비교적 쉽습니다.
즉문즉설을 통해서도 치료하기 쉬워요.
그런데 자기 같은 사람은 치료하기 어려워요.
자기주장도 하고 세우고 잘났다 그러고 이래야
이걸 깨부술 수 있는데
”제가 잘못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니
이건 치료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이건.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위축이 되지 말고
그 위축이 못나서 위축이 된 게 아니라
너무 잘나고 싶은 마음이
현실의 자기가 충분히, 현재 이대로도 충분히 좋은데
너무 잘나고 싶은 것 때문에 자기 부족을 너무 심하게 느끼고.
그리고 사람 관계라는 건
좋은 관계도 있고 나쁜 관계도 있고
본의 아니게 나빠지기도 하고 내가 잘못해서 나빠지기도 하는데
모든 관계를 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거다, 이런 것도 사실이 아니에요.
법륜스님도 욕하고 미워하고 하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 조금 그런 관점을
너무 바깥으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이 대다수 사람의 문제라면
자기는 너무 자기 쪽으로 뭐든지 자꾸, 하는 것.
자기 쪽으로 너무 이렇게 안절부절하는 이건 병에 들어갑니다.
남을 미워하고 이런 건 병이라 안 그러고
성격이 더럽다, 이렇게 말한다면
자기처럼 이렇게 위축되는 건 병에 들어가는 거예요.
이건 치료가 필요한 겁니다.
조금 더 가볍게 하고
자기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면
언제든지, 어디든지 세상에는 컴플레인이 있을 수 있는 것에요.
왜냐하면 내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
그 사람의 성향도 있기 때문에
100% 맞출 수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그 사람이 나중에 마음에 안 들면 자기가 수업을 안 들으면 되는 거고
그런데 그런 것마다 항의한다고 다 환불하고 전전긍긍하면
문 닫아야 해.
네.
'법륜스님 > 즉문즉설(20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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