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최근에 열흘 정도 몸이 안 좋았습니다.
몸이 안 좋으니 마음도 같이 가라앉았습니다.
그 순간 알아차리면 가라앉는 마음은 좀 진정이 되는데
회사 생활과 일상생활이 힘이 들다 보니 자꾸 괴로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스님께서는 몸이 안 좋으셔도 늘 여여하신 모습을 저도 좀 본받고 싶어서
새벽 5시 기도도 하고
모든 것을 정상적으로 행동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몸이 더 안 좋아지니깐
‘내가 왜 그랬나?’ 하는 후회가 올라왔습니다.
그 후로는 몸에 더 집착하게 되고, 빨리 낫고자 잠도 많이 자고,
기도조차 빼먹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몸이 아플 때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괴롭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플 때는 수행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몸이 아픈 것은 몸이 아픈 것이고
그것과는 별개로 내가 하기로 한 것은 하면 되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아픈 것은 몸일 뿐이니까 내가 하기로 한 일은 그냥 하면 됩니다.
그런데 몸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하기로 한 일을 할 수 없을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사고로 다리를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108배를 하지 못합니다.
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목소리가 안 나온다면
강의를 못 할 수가 있어요.
그럴 때는 못 하는 것에 대해 너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은 수행의 과제이지만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일 때
‘하고 싶다’, ‘해야 한다’ 하고 너무 생각하는 것은 집착이에요.
도저히 못하는 상황일 때는 집착을 놓아야 합니다.
지난번 해외순회강연 일정 중에 보스턴에서 토론토로 가야 하는데
항공편이 결항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면 포기를 해야지
계속 안타까워하는 것은 집착입니다.
토론토에서 강연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도 어쩔 수 없습니다.
갈 수 없는데 마음만 아파해 봐야 감정 낭비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포기하기 전에 먼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찾아봐야죠.
그래서 다른 노선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았는데
그마저도 항공편이 결항되었어요.
그래서 차로 토론토행 항공편이 있는 다른 공항까지 달려갔습니다.
이륙하기 전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공항이 뉴왁 공항이었고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는 12시에 있었습니다.
보스턴에서 뉴왁 공항까지 차로 4시간이면 갈 수 있으니
한번 시도해 볼만하겠다 싶어서 그렇게 갔습니다.
다행히 시간에 맞춰 뉴왁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승무원이 안 와서 출발이 한 시간 연기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보통 승무원이 늦는다고 하면 한 시간 늦는다고 해놓고
계속 더 늦어진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어요.
그래서 강연장에 늦게 도착할 가능성이 높으니
뉴왁 공항 근처 어느 집에 방송 시설을 준비해서
청중은 온라인 생중계로 강연을 들을 수 있게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니까 여자 승무원이 오고
뒤이어 남자 승무원이 도착했어요.
출발 시간이 늦어지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비행기를 타지 않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준비해 둔 방송 시설을 내버려 두고
비행기를 타고 토론토로 갔습니다.
그래도 한 30분은 강연장에 늦을 것 같아서
비행기가 서자마자 양해를 구하고 총알같이 앞으로 뛰어나왔어요.
그런데 입국 심사를 해야 해서 또 줄이 길게 늘어져 있는 거예요.
그래도 어떻게 해서 공항을 나왔고
결국 30분 늦게 도착해서 강연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최선을 다 했는데도 안 되면 그건 포기해야죠.
그것처럼 몸이 정말 아프다면
기도를 안 한 것에 너무 집착하면 안 돼요.
다음날 기도할 때 어제 못 한 것을 보충하면 됩니다.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을 극복하는 것이 수행이지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절을 하는 것은
‘절을 해야 한다는 것’에 집착하는 거예요.
할 수 있는데 안 하거나
하기 싫은 마음 때문에 몸이 아프다고 핑계를 대는 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그럴 때는 과감하게 하기로 한 것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몸이 정말 아프다면
기도마저도 내려놓고 그날은 쉬어야 합니다.
대신에 하루 빼먹으면
다음날 두 배로 보충한다고 원칙을 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비교적 입장 정리가 잘 돼요.
기도를 한 번 빼먹으면 다음날 두 배를 보충해야 하니까
아프지만 지금 하는 게 낫겠는지
바로 정리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몸이 아파서 누워있으면
주위에서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해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몸이 조금 아프기는 하지만
일을 할 수는 있을 때 누워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일을 하려니깐 몸이 아프고, 누워있으려니 미안한 거죠.
그럴 때는 약간 가벼운 일은 할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정말 아프다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는데 미안할 일이 없죠.
누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할 때 망설여진다는 건
빌려줄 수 있는 처지가 된다는 거예요.
누가 1조 원을 빌려달라고 할 때는 하나도 안 망설여집니다.
‘돈 없어’ 이렇게 대답하면 끝이지
미안한 마음이 조금도 생기지 않아요.
그런데 백만 원을 빌려달라고 싹싹 빌면
겉으로는 돈이 없다고 말해도 속으로는 마음이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빌려주려고 마음만 먹으면 빌려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잘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
실제로 몸이 더 안 좋아지는지 한번 해보면 되죠.
꾸준히 절을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엎드려서 죽나 안 죽나 보고
안 죽었으면 일어나고
일어나서 안 죽었으면 또 엎드리면 됩니다.
‘절을 한 번만 더 하면 다리가 부러질 것 같다’, ‘죽을 것처럼 힘들다’
이런 거부반응이 심리 불안을 조장합니다.
그럴 때는 망설이지 말고 해야 합니다.
‘아픈 것은 몸이 아픈 것이고, 내가 할 일은 내가 한다’
이렇게 딱 대응을 해야 꾀를 덜 내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너무 아프면 쉬어도 됩니다.
...
당연하죠.
수행은 수행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마음 작용의 원리를 일상생활에 적용하기 위해서 연습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제가 농사일을 할 때 맨날 예초기를 돌리니깐
허리가 아파서 허리가 잘 안 펴집니다.
그래서 허리에 파스를 붙이고 별도로 재활 운동을 하는 대신에
예초기를 잡는 방향을 반대로 한번 해봤습니다.
어차피 근육이 뭉친 곳을 풀려면 재활 운동을 해야 하는데
예초기를 반대 방향으로 잡고 돌리면
그것 자체가 재활 운동이 되는 거예요.
왜 꼭 일하다가 아프면 쉬어야 합니까?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해서 근육이 뭉친 것을 풀면
일을 하면서도 치료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해도 안 되면 병원에 가든지 쉬든지 해야 되겠죠.
꾀병을 부리는 것은 극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플 때는 아프다는 핑계로 계속 꾀병을 부리게 됩니다.
몸이 아픈 것은 핑계를 대기가 참 좋거든요.
본인이 본인 스스로를 속이는 거죠.
그렇다고 너무 무리해서 몸을 아프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몸을 무리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꾀병은 극복해야 할 일입니다.
꾀병인지 아닌지는 한 번 아파보면 됩니다.
한두 번 아파보고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가보면
‘내가 조금 과로했구나’, ‘욕심으로 일을 하는구나’ 하고 알게 되어
나중에는 저절로 조심을 하게 됩니다.
꾀병인지 아닌지 잘 모를 때는 그냥 해보는 게 좋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일단 해봐야 하는 건 아니에요.
관절염으로 다리가 아픈 사람이 절을 하면 다리가 더 아프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늘 어떤 핑곗거리를 잡아서 작용합니다.
그래서 핑계를 용납하지 않아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뜻이지
무조건 무리를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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