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이가 있는 남자와 5년째 같이 살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결혼식을 올릴 예정입니다.
제 고민은 예비 시아버님입니다.
남편의 고모할머니께서 유명한 무속인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남편이 처음 결혼할 때도
전처와 결국 이혼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아버님은 그분을 굉장히 신뢰합니다.
그분은 저를 아직 보지도 않고
저와 결혼하면 이혼할 것이라는 말씀을 또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아버님은 저와의 결혼을 계속 반대하고 계십니다.
저희는 시아버님의 속상한 마음을 헤아려 5년을 기다려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어서
더 이상 결혼을 미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리니
이번에 무속인이 3개월 만에 또 다른 여자가 생겨서
이혼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아버님이 저희 결혼을 계속 반대하고 계십니다.
무속인의 말을 맹신하며 행동하는 것을 과연 옳다고 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즉문즉설은 질문자 스스로 변해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다른 사람을 바꿔서 내가 덕 볼 수 있는 방법을 나누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수행이 아니에요.
지금 질문자의 질문은 오히려 질문자가 그런 무속인한테 가서 빌어야 할 내용입니다.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시아버님보다
더 무속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네요.
그 무속인이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남편과 질문자가 결혼하겠다면 하면 됩니다.
안 하는 게 낫겠다고 결정하면 안 하면 됩니다.
그건 결혼할 두 사람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두 사람의 결혼에 무속인 얘기를 끌어들이거나 시아버지를 핑계 삼는다는 것은
두 분 다 결혼할 마음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결혼을 하면 되는데,
왜 여기까지 와서 저한테 질문을 하게 되었을까요?
시아버지는 반대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서요?
요즘 시대에는 그 무속인의 말이 맞을 가능성이 큽니다.
요즘은 결혼해서 평생 살아가는 부부가 많습니까?
중간에 이혼하는 부부가 많습니까?
요즘엔 이혼하는 부부가 많으니까
그 무속인의 말이 맞을 확률이 더 높죠.
무속인의 말은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질문자가 자꾸 염두에 둔다는 것은
맞을 확률이 높다고 볼 수 있어요.
지금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누군가 자신의 결혼을 반대하면 그 사람이 미워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해서 생활하다 보면 누구나 다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러면 질문자처럼 어떤 무속인이 결혼 전에
‘얼마 안 가서 이혼할 것이다’ 하는 얘기를 들은 부부들은
그 무속인의 말을 끌어와서 이혼을 합리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똑같은 갈등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런 말을 들은 부부들이 이혼을 선택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양가 어느 쪽이라도 반대가 있는 결혼은
나중에 이혼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누구나 같이 모여서 살면 갈등이 생깁니다.
그 갈등을 극복해야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강연장을 찾아오신 여러분들 중에도
부부싸움 한번 안 하거나
이혼할 생각조차 한번 안 하고 사신 분은 거의 없을 거예요.
‘아이만 없으면 이혼해 버렸을 텐데’ 하며 살아온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또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서 지금 이혼하려고 하면
재산 분할 문제가 생겨서 그냥 사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만약 친한 사람이 결혼을 반대했다거나 부모님들이 결혼을 반대한 경우
나중에 부부 갈등이 생기거나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 이야기를 전부 끌어와서 이혼을 합리화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반대했구나’
‘그래서 저 남자는 안 된다고 그랬구나’
‘그때 엄마 말을 들을 걸’ 하면서 이혼으로 마음을 돌립니다.
질문자가 그 무속인을 문제 삼는 것을 보면
앞으로 질문자도 이혼할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질문자는
‘그분은 무속인이라서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그건 그분의 얘기이고, 나는 결혼을 하겠다’
이렇게 마음을 내어 결혼을 하면 됩니다.
지금은 이혼에 대한 사회적 관점이 많이 변했습니다.
옛날에는 이혼하면 여자가 혼자서 살기 힘든 시대였지만
지금은 이혼해도 혼자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전처와 자식까지 있는 남편도 이혼을 하고
나 같은 여성과 재혼을 하는데
만약 나도 이혼하더라도
남편처럼 자식 데리고 다른 남자와 재혼해서 또 살면 되지.’
이렇게 마음을 열고 살아가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남편은 벌써 두 번째 결혼인데,
세 번째 결혼을 한들 요즘 시대에 무슨 흉이 되나요?
나중에 이혼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때 선택하면 되지 지금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
대한민국 헌법에 종교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질문자가 시아버님의 종교를 반대할 권리가 있습니까?
지금 밖에 나가 보세요.
수많은 종교가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지 않나요?
그게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입니다.
강요가 없으면 좋지만
우리는 지금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질문자는 이론으로만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만약 그 무속인이 시아버님에게 이 결혼이 좋다고 추천했다면
질문자는 시아버지를 좋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또 질문자가 그 무속인을 문제 삼을 이유도 없지 않을까요?
지금 질문자의 문제는 그 무속인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질문자가 바라는 바를
시아버님이 반대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입니다.
종교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시아버님은 아들에게 이미 이혼 경험이 있으니까
또 이혼할까 봐 염려가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결혼에 반대하는 시아버지를 탓하거나 바꾸려고 한다면
질문자가 인생을 공짜로 살겠다는 심보를 갖고 있는 겁니다.
시아버지가 반대하더라도 내가 결혼하겠다면 하면 됩니다.
오늘처럼 날씨가 춥더라도
즉문즉설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크면 옷을 껴입더라도 나오게 됩니다.
물론 날씨가 따뜻하면 제일 좋겠죠.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인생이 늘 이렇습니다.
만약 결혼을 하려고 할 때
양가의 한쪽은 불교 집안이고 다른 한쪽은 기독교 집안이라면
반대하는 정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컸을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도 결혼을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시아버님의 의견은 참고하되
결정은 질문자와 남편이 하면 됩니다.
결혼을 하기로 했으면 시아버님께 이렇게 얘기하세요.
‘아버님, 저희가 설령 이혼한다고 하더라도
초혼인 제가 손해이지 남편이 손해 볼 게 뭐가 있겠습니까?
결혼생활 하면서 손주들도 키우고, 가정도 돌보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하겠습니다.’
시아버지의 의사를 부정하거나 무속인을 문제 삼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시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하더라도 결정은 질문자와 남편이 하면 됩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어떻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또 시아버지를 시비하겠다는 거예요?
(저는 저의 길을 그냥 가겠습니다.)
우리는 무속신앙이라고 하면 좀 나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속신앙은 크게 보면 그냥 종교의 일부일 뿐입니다.
서양 역사에서 ‘마녀 사냥’이라고 들어보셨죠?
마녀란 동유럽에 존재했던 여성 사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성 중심의 중세 기독교가 동유럽으로 확장하면서
토착 신앙과 갈등을 일으키게 되어 일어난 일이 마녀사냥입니다.
신앙에는 높고 낮음이란 게 없습니다.
다만 각각의 신앙이 서로 다를 뿐입니다.
우리는 토속신앙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지도 있는 큰 종교들처럼
무속신앙도 서로 다른 신앙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손금으로 운명을 예측하기도 하고, 뱀을 숭배하는 곳도 있습니다.
하늘을 숭배하기도 하고, 사주팔자로 사람의 운명을 점치기도 합니다.
굿을 하거나, 동전을 던지기도 하고
하늘의 별을 보고 점을 치거나 미래를 예측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모두 각자가 가진 서로 다른 믿음일 뿐입니다.
그 믿음을 다 옳다고 말할 수도 없고, 다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각 종교에서 신자들이 그렇게 믿을 뿐입니다.
질문자는 지금 시댁에서 결혼을 반대하는 상황에 놓여 있을 뿐이지
그것을 신앙 탓으로 돌리면 안 됩니다.
가족들이 반대하더라도
당사자 두 명이 상의해서 결정하면 되는 문제라고 보셔야 합니다.
시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해도
두 분이 상의해서 결혼하자고 결정할 수도 있고
결혼하지 말자고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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