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미국 대학가에 번지는 전쟁 반대 시위,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2024.05.06.)

Buddhastudy 2024. 5. 16. 19:48

 

 

저는 시위에 관한 질문에서 추가로 이어지는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한 주 전에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제가 다니는 대학교에서 시위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시위하는 동안

불교 수행의 가치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시위에 참여하면서

어떠한 증오나 분노도 없이

올바른 언어 사용을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시위를 하던 중, 후추 스프레이를 맞고 체포되어

이틀 동안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매일 그 감옥 안에서 일어나고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깊은 고통을 실감했고,

저와 함께 체포된 다른 청년들이 겪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깊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감방에 들어가기 몇 시간 전, 저는

다른 학생들에게 명상하는 방법과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있을 때

어떠한 마음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가르쳤습니다.

 

저는 많은 청년들이 그런 경험을 자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특히 시위 중에

제 의견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나

불교 배경이 없거나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어서입니다.

이러한 수행의 가치나 효과를 그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해 조

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남을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족이 죽거나 자신의 조국을 빼앗긴 사람들은 분노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분노하지 마라’, ‘평정심을 가져라.’ 하고 말하면

그 말이 그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신은 가족이 죽지 않았으니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하고

반발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보디사트바라면

중생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중생의 고통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항의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속에 분노와 증오가 있는지 살펴서

그것을 누그러뜨려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마음에 분노가 없으면

행동을 하지 않게 됩니다.

또 분노를 가지고 행동하게 되면

폭력적으로 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분노 없이 적극적으로 행동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쉽지 않죠.

그렇기에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그리고 분노하지 않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모범을 보일 때 사람들에게 불법을 올바로 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은 화가 나지 않습니까?’, ‘당신은 두렵지 않은가요?’ 하고 물을 겁니다.

물론 나도 화가 나고, 두려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화를 내거나 두려워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질문자가 시위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인도적 지원이 행해져야 한다.’, ‘폭격이 멈춰야 한다.’,

민간인이 다쳐서는 안 된다.’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올바르지 않은 일에

미국인이 낸 세금이 쓰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런 목표를 실현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려면

폭력적인 행동을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두려워서 참여하지 못하게 됩니다.

 

문제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입니다.

비폭력적으로 행동할 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설령 나에게 폭력적으로 대응하더라도

나는 비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목표 달성에 더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 접근하면

저항을 덜 받게 됩니다.

어떤 일이든 변화를 가려오려면

저항이 따르게 되어 피해가 발생하므로

나부터 모범을 보이면서 행해야 합니다.

 

앞에서 붓다가 출생할 때의 모습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붓다가 말한 첫 번째 문장인

사람과 신들 가운데 가장 존귀하다.’ 하는 문장은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분노나 두려움,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문장은

세상이 고통 속에 있어서 내가 그들을 편안하게 하리라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

즉 불평등과 차별을 철폐하는 데에 앞장서야 합니다.

이것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저는 선택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사람을 붓다의 길로 가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후 위기를 얘기하면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모순이잖아요?

 

지금도 지구상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있고, 병든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충분하다면

일단 조금이라도 그들을 위해서 기부를 해야 합니다.

 

증오심으로 투쟁을 한다면

전쟁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회가 좀 더 평화로워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먼저 자기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늘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내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긴장이 된다면

하고자 하는 일을 오래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지쳐서 멈추게 됩니다.

 

변화를 가져오려면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말은

참여하지 않음을 포장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평정심을 유지해야

이 일을 꾸준히 해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