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공계 대학원에 진학을 준비 중입니다.
이공계는 지식이 거의 다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글로 써진 영어 자료는 번역을 해서 다루면 되지만
발표를 하거나 상대와 소통을 할 때
또는 저의 아이디어로 상대를 설득해야 할 때는
영어가 하나의 장벽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토종 한국인이어서 그런지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아쉬운 생각이 더 듭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정말 좋은 환경인 것도 알고,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여서
학문과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인 것도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사람이란 욕망의 존재이다 보니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불만족스러운 점이 계속 느껴집니다.
제 생각에 이공계에서는 한국어의 유용성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어의 장벽을 느낄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자꾸 드는데,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학생이 좋은 대학은 가고 싶고
공부는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공부가 하기 싫으면
좋은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고
좋은 대학을 가겠다면
하기 싫어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현재 이공계에서 앞서있는 분야들은
대부분 영어를 쓰는 국가에서
이미 학문의 생태계를 만들어 놓았어요.
영어를 사용하기 싫다면
이 생태계가 아닌 제3의 생태계를 만들면 됩니다.
중국은 지금 그것을 시도하고 있어요.
중국 역시 독자적인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할지
아니면 실패할지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는 다르게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는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고
가장 활발히 교류를 하고 있어요.
초기에 우리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때는
일본을 한번 거쳐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영어를 몰라도 문제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일본이 먼저 서양 문물을 받으면서
용어를 다 만들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일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리말화된 일본말을 쓰지 않고 영어를 바로 써요.
이것은 최첨단에 있는 지식들을
바로 직수입해서 공부하는 것이어서
한번 소화시켜서 건네받은 것과는 차이가 생깁니다.
이렇게 직수입을 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일본과 경쟁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예전처럼 일본이 소화시킨 것을 건네받아서는
일본과 경쟁이 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지금은 영어로 인한 어려움은
달리 해소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아니면 질문자가 독창적으로 연구를 하면 됩니다.
마치 원효대사처럼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는
요즘 말로 하면 국내파와 유학파예요.
의상은 중국에 가서
중국 최고의 석학인 지엄대사에게 배워서 돌아왔고,
원효는 유학길에 올랐다가
깨달음을 얻고 유학을 가지 않고 국내에 남았습니다.
진실은 마음 가운데 있지,
책에 있는 것도 아니고, 중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인도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누구에게 배우지 않고
독창적으로 화엄종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처럼 질문자가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기술을 배운 다음
그다음 단계의 기술을 독창적으로 연구하여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가게 되면
후배들은 영어를 배우는 수고를 하지 않게 될 거예요.
K팝의 대표적인 그룹인 BTS는
주로 우리말로 노래를 하고, 영어를 양념으로 조금씩 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BTS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한국말로 따라 불러야 해요.
마치 옛날에 우리가 팝송을 영어로 따라 불렀듯이 말입니다.
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서 나가게 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외국의 지식을 따라 배워야 한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뒤처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에요.
이 과정을 피하고 싶다면 길은 두 가지예요.
첫째,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공계 분야를 버리고
그렇게 안 해도 되는 대중음악 분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어를 안 해도 돼요.
미국이나 프랑스로 유학을 안 가도 됩니다.
지금 피아노를 치거나 바이올린을 연주하겠다고 하면
유럽에 가야 하잖아요.
그러나 대중음악을 하겠다고 한다면
한국이 제일 앞서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오지 우리가 다른 나라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한 분야를 우리가 선점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에요.
질문자가 본인의 분야에서 세계를 가장 앞서나가게 되면
이와 마찬가지의 일이
질문자의 분야에서도 일어날 겁니다.
그러나 현재 과학 기술 분야는
아직도 미국의 창조성이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있어요.
핸드폰을 처음 만든 나라도 미국입니다.
기존에 있는 것을 모방해서 더 기능을 좋게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데
미국처럼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까지는
아직 우리나라가 잘하지 못합니다.
옛날에는 지금 있는 것에 기능을 더 개량해서
잘 만드는 나라가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이 하던 것을 요즘 한국이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더 나아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나라가 되려면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모방 교육은 맞고 틀리는 것이 있어요.
정답이 있는 거죠.
창조성을 키우려면
정답이 없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아이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건 틀렸다’ 이런 반응을 하지 말아야 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이렇게 반응을 해주어야
사고 체계가 자유롭게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모방을 하다 보니까
앞선 것을 그대로 맞게 베꼈는지 틀리게 베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답이 늘 있고
정답과 다르면 자꾸만 틀렸다고 지적하는 문화를 갖게 된 것입니다.
대중음악 분야로 가는 것이 첫 번째 선택지라면,
두 번째 선택지는 ‘비록 나는 이렇게 배우지만
내 후손들은 이렇게 안 해도 되도록 하겠다’ 하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모국어로 학문을 할 수 있도록 해주면
경쟁력이 월등하게 앞서게 되죠.
그러니 후손들을 위해서
지금은 비록 내가 다른 나라의 언어로 따라 배우지만
그걸 극복해서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기술을
우리 모국어로 다루는 경지까지 나아가 주면 됩니다.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어요.
모방은 한두 번의 실패로 성공할 수 있지만
창조는 천 번을 실패해서
새로운 걸 하나 발견하는 행위입니다.
우리 사회가 창조하는 사회가 되려면
연구원들이 수없는 탐구 과정에서
끊임없이 실패하더라도 이를 용인하는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등수를 매기고,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 때문에
현재는 그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가
단기간에 모방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은 분명합니다.
모방은 성공적으로 해냈는데,
이제 그다음 과제인 창조가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보아야 합니다.
창조라는 벽에 부딪혀서
일본처럼 가라앉게 될지,
아니면 극복하게 될지,
조금은 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동양 사람이 서양 사람보다
더욱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려고 하면,
자연계 학문만 연구해서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불교를 공부해서
불교적 아이디어를 적용하면
서양 사람들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파격적인 접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양에서는 사유체계라든지 물질을 연구하는 방식이라든지
이미 정해진 방식이 있는데,
이것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데에
불교 공부가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만약 불교의 가르침이 자연 과학과 결합하게 되면
서양 사람들이 생각해 내지 못하는
독특한 성과들을 만들어 내게 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변방에서 새로운 창조성이 일어났습니다.
모방만 해서는
문명의 주류를 바꾸기 어려워요.
모방에 익숙한 사회는
오히려 주류 문명이 몰락할 때
함께 몰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불리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질문자가 대학에 가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울 수 있었던 것도
다르게 보면 엄청난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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