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1985년, 제 딸이 3살이었을 때 5년간 함께한 남편이 사망했습니다.
90년대 초에 전 약혼자가 사망했습니다.
6년 동안 사귀었던 남자 친구는 유기농 생활을 하며
유익한 비타민에 대한 연구 결과를 웹사이트 동료와 함께 공유했는데,
2022년 1월에 병에 걸려 그해 4월에 사망했습니다.
셋 다 각자 다른 질환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제 성격에 이런 것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어떻게 이 패턴을 바꿀 수 있을까요?//
질문자가 직접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면
질문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명이 다해서 죽었기 때문에
질문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일이 똑같이 두 번 반복되면
약간 신비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이게 나의 운명인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연히 비슷한 일이 두 번 연달아 일어났을 뿐입니다.
그것이 비록 세 번 연달아 일어났다고 해도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주사위 던지기를 한번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주사위는 1부터 6까지의 숫자가 있습니다.
주사위를 던지면 그중 하나의 번호가 나오게 됩니다.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1이 나올 확률은 여섯 번 중에 한 번이 됩니다.
그러나 주사위를 여섯 번 던진다고
반드시 1이 한 번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안 나올 수도 있고, 한 번 나올 수도 있고,
두 번 나올 수도 있고, 여섯 번 다 나올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한 번 나올 확률이 가장 높죠.
그래서 여섯 번 던졌는데 모두 1이 나왔다고 해서
이것이 운명은 아니라는 거예요.
다만 그럴 확률이 낮은데도
현실적으로는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횟수가 점점 많아지면,
즉 천 번을 던지고 만 번을 던지면,
1이 나올 확률이 ⅙에 점점 가까워지게 됩니다.
실제로 실험해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특정 결과가 나타날 확률을
실험적 확률이라고 하는데요.
이 실험적 확률은 횟수가 많아질수록 수학적 확률에 근접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떤 일이 두 번, 세 번 되풀이되면
그것을 자꾸 논리화해서
어떤 결론을 내려고 합니다.
제가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을 위해
학교를 지어 운영한 지가 30년 정도 됩니다.
그 마을에서는 저를 좀 신비주의적인 인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어느 해 가뭄이 들어서 모내기를 못하고 있는데
제가 그곳을 방문하자마자 바로 비가 왔습니다.
처음엔 아무 일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다음 해에 갔는데 또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아! 스님이 비를 몰고 온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또 방문했는데 또 똑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은 스님이 비를 몰고 온다고 완전히 믿어버렸어요.
그러니 그다음 해에는 가뭄이 심해지니까
스님이 오셔야 한다고 요청하는 일이 생겼어요.
이렇게 횟수가 거듭되면
‘아! 이렇구나’ 하고 어떤 결정을 내버리는 것이
뇌의 작용입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고민하는 문제도
두 번 아니라 세 번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당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또 다른 조언을 드린다면
어떤 성격적인 문제가 이런 일을 유발하는 그런 작용이 좀 있습니다.
동양의 음양오행으로 말한다면
예를 들면
남편의 성격이 목(木) 성이고 부인은 금(金) 성이라고 할 때,
서로 부딪히면 외부적으로 보면
남편이 아내를 때리고 구타하는 행위를 하더라도
죽기는 남편이 먼저 죽습니다.
왜냐하면 나무를 가지고 쇠붙이를 때리면
때리는 건 나무가 때리더라도
부러지는 건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이것은 쇠붙이의 책임이 아닙니다.
나무가 쇠붙이를 때렸기 때문에
그것은 나무의 책임이지
쇠붙이의 책임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나 이런 원리를 안다면
쇠붙이가 나무를 피해 줘야 합니다.
즉, 남편이 화낼 때
누가 옳으니 그르니 충돌하지 않고
‘당신이 맞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피해 줘야 합니다.
만약 이 문제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면
제가 조언을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당신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
네, 그건 좋은 일이에요.
그가 죽었기 때문에 질문자는
결혼을 한 번 더 할 수도 있고, 혼자 살 수도 있고
기회가 많아졌잖아요.
옛날에는 한 사람하고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모두가 했기 때문에
‘여자가 남편 복이 없다’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하고 살아야 한다는 이런 기준을 없애 버리면
오히려 질문자는 남자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한 사람하고만 끝까지 살다가 죽는 사람은
사실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복이 있다’,‘복이 없다’ 하는 것은
모두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근본으로 돌아가면,
복이 있다고도 할 수 없고, 복이 없다고도 할 수 없고
다만 그런 일이 생겨났을 뿐입니다.
이것을 철학적으로는 ‘공(空)’이라고 표현합니다.
공(空)을 알게 되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법륜스님 > 즉문즉설(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하루] 척추 수술 후 삶이 망가졌습니다. (2024.09.20.) (0) | 2024.09.25 |
---|---|
[법륜스님의 하루] 다른 사람들을 공감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힘듭니다. (2024.09.19.) (0) | 2024.09.25 |
[법륜스님의 하루] 마음속으로는 이미 이혼했지만, 아이가 마음에 걸립니다. (2024.09.17.) (0) | 2024.09.24 |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행복과 불행의 간극을 줄이기에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요? (0) | 2024.09.23 |
[법륜스님의 하루] 아내와 더러움의 기준이 많이 달라서 힘듭니다. (2024.09.16.) (0) | 2024.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