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스님. 저의 고민은 조금 어두울 수도 있는데 제가 연애 좀 하려고 하는데 너무 이래 차이고 저래 차이고 하다 보니 제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이런 생각 너무 많이 들기도 하고 요새 고민입니다.//
그게 바람맞은 거 아니야. 저렇게 모자라니 바람맞는 거 아니야. 만나는 데 그 여자가 나를 싫다 이런단 말이지?
자기가 매력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고, 자기가 너무 눈을 높여서 만나서 그래요.
아이고, 그거 잘못 되었어. 눈을 이만큼 높여서 높은 여자를 만나니까 그 여자가 나를 내려 보니까 자기가 높이려고 올라가려니까 힘들다는 거지.
나보다 낮은 여자를 찾으면 되잖아. 자기 몇 살이오? 그럼 38~45정도 되는 여자하고, 그것도 한번 결혼해서 애 하나 있는 여자하고 이렇게 만나면 바람 맞을까? 안 맞을까? 그래. 그럼 자기가 뭐가 부족한데? 아무 부족한 게 없어.
이상형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눈을 높여서 본다는 얘기잖아. 내 이상형이니까.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눈을 높여서 보니까 그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낮게 보일 거 아니오. 그럼 내가 맞추기가 어렵지. 그건 본래 어려운 거요. 자기만 어려운 게 아니라. 자기가 그것을 딱 알아야 된단 말이오.
그래서 나는 나를 누가 좋다 해도 한 70된 80된 여자 분이 나를 좋다하면 그건 정신이 제대로 있는 사람이오. 아시겠어요? 그렇지만 내가 봤을 때는 나한테 좀 과분하다 하면 그건 정신병자 아니면 꽃뱀이거나 요주의란 말이요. 이렇게 생각해야 실수 없이 인생을 살지, 스님이 이래도 좋다고 미쳐 따라다니는 사람 가끔 있어. 그런데 대다수 보면 정신질환자요. 나 이거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나를 보존하는 것은 욕심을 안내어야 된다. 이 말이오. 욕심에 눈이 어두우면 꽃뱀을 문단 말이오. 잡는단 말이오.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눈을 약간 낮추면 자기 아무 문제가 없어. 자기는 괜찮은 남자야. 그런데 다만 문제는 자기가 눈을 너무 높이니까 문제가 되는 거지. 나도 70된 할머니하고 만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어. 정신 좀 차려.
그러니까 그렇게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데, 자기가 문제가 있는 남자는 아니다. 요점은 이거야. 그것을 하지마라는 게 아니라. 자기 문제가 없다 이 말이야. 못 알아 들어? 다시. 이 물병이 있어. 여기 물 컵이 있어. 여기 물 컵 뚜껑이 있어.
자, 이 컵은 물병보다 커요? 작아요?
이 컵 뚜껑보다는 커요? 작아요?
물병보다는?
컵 뚜껑보다는?
그럼 이 컵은 커요? 작아요?
이게 커요? 작아 이게? 모자라기는 모자란다. 이 컵이 커요? 작아요? 아이고 똑똑다. 그래. 이 컵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 이 컵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오. 이 컵은 그냥 컵일 뿐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될 때는 뭐가 된다? 작다. 이렇게 될 때는 크다. 그러면 크고 작은 것이 컵에 있는 거예요? 우리가 인식에 있는 거요? 알아들었어요?
자, 크다 작다하는 거, “저게 작으니까 작은 거지, 크니까 큰 거지.”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에요. 크다 작다는 인식에서 일어나는 거요. 그러면 저 사람 나쁘다 좋다하는 그 사람에게 있어요? 내 인식에 있어요? 인식에 있어요. 그러면
천하 만물은 다만 그것일 뿐이에요.
그것이 크다 작다 무겁다 가볍다,
새거다, 헌거다, 값비싸다, 값싸다 하는 것은
다 인식상의 문제에요.
그래서 이것을 뭐라고 그러냐?
일체유심조라는 거요.
다 어디서 일어나는 거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다.
내가 이것을 금이라면 금이다. 이런 뜻이 아니에요. 자, 그런데 우리의 착각은 이렇게 비교해서 맨날 이 컵을 작다 작다 작다 작다 이렇게 인식하다가 보면, 이렇게 부르다 보면 이 컵을 우리가 착각한다. 원래 작은 거로 착각한다 이 말이오. 이거하고 같이 있어서 내 크다 크다 부르다보면 큰 것으로 착각을 하는 거요.
자긴 지금 컵인데 여자를 어떤 여자를 만났다? 이 물병 같은 여자를 만나 있다 보니 자기가 자꾸 작아졌어. 자기가 지금 뭔가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스님이 말하는 것은 컵 뚜껑 같은 사람을 만나다보면 자기는 뭐가 된다? 그래.
그런데 사실은 우월한 것도 아니고 열등한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은 모든 사물은 다만 그것일 뿐이다.
이것을 공이라 그래. 뭐라고? 공.
철학적인 용어로 마하야나,
대승불교용어로는 공이라 그러고.
그러면 이것을 금강경의 언어를 빌리면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니고 뭐다?
비대비소다.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러니까 지금 질문자는 훌륭한 사람도 아니고 부족한 사람도 아니고. 아시겠어요? 다만 자기는 뭐일 뿐이다? 자기 일 뿐이에요. 자기가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서 고 순간에 인식되기를 키가 크다고 인식되든, 키가 작다고 인식되든, 능력이 있다고 인식되든, 능력이 없다고 인식될 뿐이야.
자기하고 나하고 달리기하면 자기가 잘할 것 같아? 내가 더 잘할 것 같아? 그래. 그럼 자기는 빠르다. 이렇게 인식이 된단 말이야. 그런데 자기하고 나하고 불교교리에 대해서 얘기하면 누가 더 많이 알 것 같아. 그럼 그것만 비교하면 요때는 스님이 더 능력이 있다. 이렇게 인식이 되는데, 이 비교를 몇 가지를 할 거냐는 거요. 비교를.
그러니까 몇 가지만 하면
고것만 가지고 누가 1등이고 누가 2등이 되지만,
천 가지 만 가지 억 만 가지를 하면 다 똑같아.
자, 그러면 자기는 자기가 이상형을 만나도 괜찮아. 이런 컵처럼 작다고 불려도 괜찮아. 작다고 불려도 난 작은 건 아니야. 작다고 불릴 뿐이지. 그러니까 자기는 이상을 추구해도 괜찮다 이 말이야. 그러나 자기가 부족한 사람은 아니다. 이 말이야. 말귀 알아들었나? 못 알아들었나?
얼굴표정을 보니 확실히 알아들은 거 같지가 않아. 그러면 잘난 여자 만나도 꿀릴게 있나? 없나? 없어. 못난 여자 만났다고 잘난 척할 필요가 있나? 없나? 없지. 그러면 잘난 여자하고 만나면 결혼이 성사되거나 연애가 성사되면 아주 기분이 좋아. 그런데 자기가 늘 을로 살아야 돼. 죽을 때까지. 을. 갑을 중에 을로 살아야 된다 이 말이야. 늘 전전긍긍하고 살아야 돼. 그렇게 살래? 그래.
그러니까 저런 것 때에 어떤 남자가 나 좋다가 내가보니 별 볼일 없는 남자인데 나 좋다고 3년을 아무리 수모를 주고 발로 차도 따라다녀서 불쌍해서 ‘저렇게 정성을 기울이니까 그럼 내가 별 볼일 없다 하더라도 내 하나는 사랑하겠구나.’ 이렇게 결혼을 하면, 100% 실패입니다. 왜 실패할까? 그것은 결혼하기까지 심정이고, 이 고생을 해서 이 수모를 겪고 결혼을 하면 이제 대우받으려고 그럴까? 안 받으려고 그럴까? 남자는 내 고생했으니까 대우받으려고 그래. 나는 목표를 달성했으니까. 그런데 여자는 “네가 나를 받들겠지.” 이렇게 생각했잖아. 그래서 결혼하자 얼마 안 되서 싸우는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만약에 결혼한다면 남자는 지속적으로 초심으로 돌아가 줘야 되고, 여자는 남자한테 결혼하는 다음 날 부턴 팍 숙여야 됩니다. “그 동안에 당신 내 애를 먹여서 죄송합니다. 오늘부터는 내가 당신을 받들겠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바꾸어 줘야 돼. 나를 죽어라 따라다니는 여자하고 결혼해도 남자하고 결혼해도 결혼은 원만하지가 않고, 내가 죽어라고 따라다닌 사람하고 결혼해도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가 않습니다. 열에 아홉은 실패합니다. 서로 기대가 다르기 때문에.
그러면 나이도 많고 여러 가지 조건이 나보다 못해서 나좋다가 따라다녀서 결혼을 해주면 괜찮을까? 그러면 좀 편해요. 갑으로 살 수 있기는 있는데 가족이 되면 어떠냐하면 이 사람이 조금만 내가 딴 여자하고 차만 마셔도 난리요. 아시겠습니까? 자기 열등의식이 있기 때문에 놓칠까 싶어서.
그래서 내가 컵이 물병하고 살면 내가 열등의식 때문에 질투하고 평생 살아야 되고, 내가 조금 우월한 조건에서 살면 늘 그냥 신경질 나게 잔소리 듣고 살아야 돼. 늘 의심받고 살아야 돼. 그래서 나처럼 혼자 사는 게 제일이다.
두 번째는 결혼을 하려면 이런 원리를 알고 내가 좀 내 눈에 괜찮은 사람하고 결혼했으면 을로 살 준비를 해야 된다. 알았죠? 내가 괜찮은 남자를 잡았다하면 바람피우더라도 “그래도 최대주주는 나다.” 이런 자부심이 있어야 되요. 그렇게 관점을 딱 가지면 이게 사는데 문제가 없다. 그 다음에 내가 조금 우월하다고 너무 하면 아내의 열등의식, 또는 남편의 열등의식을 내가 이해해야 됩니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상처를 엄청나게 입어요.
그러면 그 해명하는 것도 힘들어요. 한두 번 해도 해명이 잘 안 돼요. 그럴 때 “아, 아내는 좀 자기가 열등하다고 생각하니까 의심도 많고 상처도 많구나.” 이렇게 보듬어줘야 돼. 이렇게 맞출 준비를 하면 결혼하면 괜찮아요. 어떻게 살든. 나는 맞출 의향이 없으니까 어떻게 한다? 혼자 살고, 여러분들은 맞출 준비가 되었으니까 뭘 했다? 결혼을 했어. 그래놓고는 안 맞춰. 그래놓고는 나한테 와서 자꾸 시비를 해. 왜 그것을 나한테 물어?
그러니까 저의 생각은 어떠냐? 그럴 때 별로 걱정이 안 되고 고소하다. 어디 공짜로 먹으려 그래. 고생 좀 해라. 이런 거요. 그러니까 남편이 죽어서 고생도 하고, 바람피워서 고생하고, 술도 먹어서 고생도하고 그래야 되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럴 때 어떻게 생각해야 되나? “아이고 우리 남편이 죽어도 나는 결혼 한번 해봤다. 너는 못해봤지?” 이런 정도의 줏대가 있어야 됩니다.
“우리 남편이 술을 먹어도 그래도 나는 남자 있다. 너는 없지?” 이런 정도의 자신이 있어야 된다 이 말이오. 그 자기 선택에 대한 긍정성이 있어야 됩니다. 이해하시겠어요? 나는 여러분들이 아무리 예쁜 여자, 아무리 좋은 남자,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져도 별로 부럽지가 않아요. 큰 집에 가면 나는 뭐부터 걱정하는지 알아요? “아이고 청소하려면 고생이다.” 이런 생각부터 먼저 들어요. “좋겠다.” 이런 생각이 안 들고.
그래서 자기 삶에 긍정적이어야 된다. 여러분은 누구나 다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관점을 이렇게 바꾸면. 아시겠어요?
누구나 다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을 불교용어로 하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일체중생 개유성불, 모든 사람은 다 뭐다? 부처다. 이거야. 결혼하면 안 해서 좋고, 하면 해서 좋고, 떠나주면 난 딴 남자 만나서 좋고, 관점이 이렇게 되어야 되요. 바람맞았다고 우는 게 아니고. 지가 알아서 떠나주니까 좋으나? 안 좋으나? 좋지. 내가 차고 떠나면 양심에 가책을 느끼잖아. 세상에 비난받고.
그러니까 놔놓고 헤어지고 딴 남자 만나려면 애들도 욕하잖아. 그런데 지가 죽어버렸기 때문에 나야 뭐 출가를 내가 비구니가 되어도 되고 재혼을 해도 되고 혼자 살아도 되고 선택지가 많아졌어요? 좁아졌어요? 그런데 뭣 때문에 울어? 왜 울어? 선택지가 많아졌는데.
자, 그런 관점을 가지고 어떻게 할래 자기는? 계속 이상을 쫓을래? 그냥 적당하게 만나서 살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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