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아들에게

Buddhastudy 2024. 12. 3. 20:19

 

 

 

저는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이 시력이 매우 낮은

초등 2학년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아이가 이제 조금 자라면서 최근에 저한테 질문했는데

자기는 왜 다른 아이와 좀 다르게

그렇게 눈이 한쪽 눈이 안 좋게 태어났느냐고 저한테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당시에는 그냥 너는 다른 한쪽 눈이 괜찮고

너보다 더 안 좋은 친구들도 많다 이런 식으로 그냥 넘어갔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말을 하는 게 최선일지

앞으로 또 그것에 대해서 아이가 질문하게 되면

어떻게 답변을 해주는 게 현명할지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제기되면

그거를 항상 그 만병통치약식으로, 안 그러면 단칼에 해결하는

이런 걸 너무 추구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친구가 말기암 환자가 돼서

지금 오늘내일 오늘내일 하는데

면회를 가는데 뭐라고 위로하면 좋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많이 하거든요. 저한테요.

 

내가 물어봐

무슨 말 하고 싶니?”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가서 아무 말도 안 하면 되지 않냐.

 

애가 시험에 떨어졌는데 뭐라고 위로하면 좋겠습니까?”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제가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아무 말도 안 하면 된다.

그걸 왜 남한테 물어봐서 하려 그래?

아무 말도 안 하면 되지.

 

아파 누워 있는 사람한테

찾아오는 사람마다

아이고, 이래서 어떡하노 아이고하고 울고

또 좀 있으면 또 와서

아이고, 이래서 어떡하노하고 또 울고

그러면 이 환자는 내 울다가 시간 다 보내잖아.

 

그러니까 자다 온 사람이 와서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왔다.”

그럼 생각나는 대로

우리 그때 고등학교 때 우리 맛있는 거, 그거 먹으러 갔지? 놀러 갔지?”

이런 얘기 그냥 하고도 가면 되잖아.

 

그러면 누워 있는 사람은

안 그래도 아파서 통증 때문에 이러다가

친구가 와서 고등학교 때 얘기 좀 할 때 깜빡 잊어버렸단 말이야.

아픈 것도 그 또 가면 또 다른 사람 누가 와서

또 뭐 어릴 때 놀던 얘기 좀 하고 갔다.

그럼 또 잊어버렸단 말이야.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지

왜 자꾸 여러분들은 과잉을 하려고 그러냐는 거예요.

 

애가 물으면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면 된단 말이에요.

그럼, 우선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지.

 

옛날에는 남자 여자 차별을 많이 했지 않습니까? 그죠?

그럼, 여자로 태어난 사람은

내가 왜 여자로 태어났나 궁금할까? 안 할까?

태어남으로부터 내가 지금 사는 게 고달프다 이 말이야.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전생에 뭐를 많이 지어서?

죄를 많이 지어가 여자로 태어났다.

 

또 애를 낳는 엄마 입장에서도

남자로 남자 아이를 낳으면 시댁에서 환영을 받는데

여자 애를 낳으면 여자 구실을 못 했다고 구박을 받는단 말이에요.

 

장애를 낳으면 마찬가지죠.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가 장애아를 낳았느냐

또는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장애아로 태어났느냐?”

 

만약에 종이라는 신분 제도가 있다. 그러면

종으로 태어난 사람 뭐라 그럴까?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가지고 종으로 태어나서

한평생 어렵게 살아야 되느냐?”

 

이게 전생의 문제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현실이 차별을 하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

 

/그러니까 장애가 있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신분이 낮기 때문에

이것이 고통의 원인이 아니고

현실에서 차별을 하기 때문에 이게 문제가 되고

문제가 되니까

원인을 찾다가 보니

전생 타령을 하든지, 하느님 타령을 하든지, 사주팔자 타령을 하게 된 거다./

 

요즘 여자아이로 태어났다고

전생에 죄지어서 여자로 태어났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그건 뭐예요?

남녀 차별이 없어졌다는 얘기예요.

그러면 장애로 태어나면 이게 아직도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아직 장애는 차별이 있다는 거예요? 없다는 거예요?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이 차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란 말이야.

그럼 벌써 엄마부터도

거기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이 질문에 지금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러니까 엄마가 여자에 대해서 차별 의식을 갖고 있을 때

여자아이가 나중에 커서

왜 내가 여자로 태어난 걸 나한테 물으면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되지?”

왜 나는 남자 안 태어나 여자로 태어났나? 하면

나는 이걸 대답을 어떻게 하지?”

전전긍긍하는 거는

여자에 대한 차별 의식이 있기 때문에

지금 그런 고민을 하는 것처럼

 

자기가 벌써 한쪽 시력이 안 좋은 거에 대해서

자기가 열등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게 신체 구조라는 거는

태어나다 보면 팔이 하나 없을 수도 있고

우리 지금 눈이, 얼굴이 이렇게 넙적할 수도 있고

피부가 시커멀 수도 있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피부가 까만 애가 태어나면

얘가 나중에

엄마는 왜 죄들은 다 하얀데 나만 얼굴이 얼굴이 꺼멓냐?

내가 전생에 죄를 지어서 까맣게 태어났냐?

하나님한테 벌받아 까맣게 태어났냐?

사주 팔자가 이러냐?”

이래 물을까 봐.

자기가 애가 이거 커서

학교 가서 애들이 뭐라 뭐라 한다고 와서 나한테 얘기하면 어떨까?“

이렇게 두렵다면

자기가 얼굴 검은 거에 대해서

벌써 열등의식을 갖고 있다는 반증 아니에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거기에 대해서 불편할 뿐이야.

장애는 열등한 게 아니라 뭐라고?

불편할 뿐이에요.

불편하다는 건 뭘 말한다?

개선을 하면 되잖아요.

 

걷기가 불편하면 휠체어가 나오게 되고

팔이 없어서 불편하면 의족과 의수가 나오잖아, 팔다리가 없으면.

 

그런데 지금 팔다리는

원래 팔다리보다 좀 못하죠, 그죠?

 

근데 만약에 앞으로 첨단기술이 돼서

의족과 의수가 여러분들 팔보다 훨씬 더 힘도 세고, 성능도 좋다 하면

자기 팔 자르고 다는 사람 생길까? 안 생길까?

안 생길 것 같지?

천만에.

 

원래 성형이라는 게 어디서 나왔어요?

화상을 입었다든지, 장애가 있었을 때 치료용으로 나왔잖아.

 

그런데 이렇게 이렇게 성형을 하니까

원래 자기 가죽보다 더 좋아지니까 어때요?

지금 멀쩡한 코 잘라 세우고

가슴에 뭐 집어넣어 만들고

턱 깎고 지금 난리잖아.

이게 지금 의술이 아니라 미용이란 말이에요.

 

그러면 이거보다 훨씬 더 지금 팔이나

눈도 지금 앞으로 이게 딱 디지털 눈 집어넣으면

지금 우리 눈 이거 딱 보면

가리면 안 보이잖아.

디지털 눈 집어넣으면 어떨까?

그 저기 그 뭐랍니까?

입국심사 통과할 때 이렇게 몸수색하는 거 있잖아요. 그죠?

눈 딱 집어넣으면 벽 너머 보일까? 안 보일까?

다 보여.

천안 눈이 된단 말이에요.

 

그러면 이 중에는 좀 갈아 끼우는 사람 생길까? 안 생길까?

생겨.

지금 성형하는 거 보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완전히 인공지능으로 만든 인간, 새로운 인간

그다음에 현재의 우리 몸의 기능을 기계로 바꿔 낀 거

팔다리를 바꿔 낀다, 눈을 바꿔 낀다

이렇게 해서 파워를 내는

이런 생물학적인 육신과 기계를 조합해서 만든 인간

이게 미래에 중요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활동할 거라고

지금 예측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과학기술이 조금 덜 발달돼서 그렇지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옛날엔 눈 나빠도 안경 깼지만

요즘은 다 이 망막을 갈아버리면 안경 낄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다 없어지잖아요. 그죠?

 

그래서 아이에게 이것은 태어나면서 주어진 건 열등한 건 아니야.

약간 불편해.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불편을 조금 감수하든지

또 그거는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개선이 가능한 부분이에요.

 

근데 그걸 이제 일시적으로는 학교에 가면

애들이 그런 문제를 가지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아예 눈이 안 보이거나

옛날처럼 안 보이는 그런

누가 봐도 이렇게 형식적인 눈, 개 눈이라고 그러죠?

그런 건 놀림이 좀 될 수 있겠지만은

눈이 좀 덜 보이는 거는

그렇게 놀림 될 가능성도 별로 없고.

 

두 번째는 약간의 놀림이 된다 하더라도 그건 크게

그거는 태어남에 의해서 주어진 것은 약간 불편할 뿐이지

그건 큰 열등한 것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애하고 대화하면 되지 않을까?

 

키가 조금 작은 것이

열등한 건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그러나 키가 작으면 키 큰 사람하고 달리기 하거나 뭐 할 때 좀 불편해요? 안 해요?

약간 불편할 수도 있고

그런 것처럼 약간 불편하다.

 

장애는 열등한 것이 아니라 뭐 하다?

약간 불편하다.

그럼, 인간은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서

기술 문명을 발달시켰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거는 개선도 가능하고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자기가 두려워하지 말고

물으면 그것 때문에 그러냐?

니가 뭐 특별히 그거 눈 좀 안 보여서 불편한 거 빼고, 뭐 문제가 있니?

없다.

그러면 걔들이 그래도 그거 아무 문제없어.

이렇게 얘기하면 돼.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다면

애는 그런가 보다 해요.

 

근데 엄마가 더 난리잖아.

그래서 장애인들은

대부분 정신적 장애로 겸하는 거는

엄마가 애를 보면서

계속 울고,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아이에게 정신 형성에 영향을 줘서

아이들은 다 정신적 열등의식을 갖는 거예요.

 

엄마가 그런 생각이 전혀 없으면

애는 전혀 열등의식을 갖지 않게 된다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