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합니다.
마음 알아차리기가 충분한 방법인지 아니면
조금 더 적극적인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지//
‘마음 알아차리기’라는 거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만이 아니고
내가 버스를 기다릴 때
버스가 제 시간에 안 오면 불안하다든지
또 버스가 제 시간에 오면 만족한다든지
이럴 때 결국 버스 문제인 줄 알았는데
이게 내가 “왔으면 좋겠다” 할 때 오면 기쁘고
“왔으면 좋겠다” 할 때 안 오면 불안하구나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되면 뭐든지
원하는 대로 되면 마음은 만족을 느끼고
원하는 대로 안 되면 마음은 부정적으로 작용하구나.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한테 약속을 했는데 30분 전에 도착했어.
근데 그 사람이 5분 늦었어.
그러면 “왜 이래 늦었나?” 이렇게 내가 문제 제기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5분 기다리는 게 굉장히 지루해요.
그런데 내가 10분을 늦게 갔어.
근데 이 사람이 안 왔어.
근데 이 사람이 10분 늦었어.
그러니까 20분 늦게 왔어.
그래서 본인이 막 어쩔 줄을 몰라.
“아이고 미안합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내가 마치 성인처럼
“아니요, 괜찮아요, 늦을 수도 있죠” 뭐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게 5분 늦고 10분 문제가 아니고
내가 원하는 거에 따라서 일어나는 거다.
그러니까 부부지간에도
남편이 아무리 훌륭하고 안 하고 이게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남편에게 100을 기대하는데 70이면 부족한 사람 되고
내가 50을 기대했는데 70이면 만족스러운 사람이 되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는
“상대가 더 나한테 잘해서 내 만족을 채워라”
이걸 끊임없이 지금 요구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그거는 상대가 하는 거니까 잘 안 돼요.
그런데 나의 기대를 조금 낮추면
다 만족스럽게 되는 거예요.
12시에 들어오는 사람을
“그래도 사람이 10시에는 들어와야 되지 않느냐”
자꾸 이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과 매일 저녁에 싸우게 되는 거예요.
근데 그래도 “우리 남편은 자정 전에는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쩌다가 한 번씩 늦지
거의 대부분 들어오게 되는 거예요.
그래도 “우리 남편은 잠은 집에 와서 잔다”
이렇게 정하면
뭐 2시에 들어와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까 내 말은
그저 “내가 다 양보해라” 이게 양보의 문제가 아니고
대화를 해서 우리는 늘 노력을 합니다.
근데 그 사람을 고치는 거는 굉장히 어렵다는 거예요.
내가 나도 안 고쳐지는데 어떻게 남을 고치겠어요?
그러니 내가 그것을 어떻게 수용할 거냐?
“나는 하늘이 두쪽 나도 맨날 늦게 들어오는 사람하고 못 살겠다”
그러면 그 사람이 인물이 아무리 잘났든, 돈이 아무리 많든
“안녕히 계세요” 하고
딱 그냥 내가 선택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딴 거 다 괜찮은데
늦게 들어오는 한 가지 때문에 문제다 하면
“그 정도는 뭐, 사람이 흠 없는 사람이 어딨노” 하고
그 정도는 수용을 해버리면 문제가 없는 거예요.
근데 그런 결정을 내가 하는 거예요.
내가 주인이 돼서
“내가 이 경우에 어떡할 거냐?”를 결정해야 되는데
자꾸 [그 사람 때문에 문제다] 하니까
내가 결정권이 없는 거예요.
그 사람이 바뀌도록
그 사람이 이렇게 해주도록 저렇게 해주도록
늘 매여 살아야 된다는...
그 노예 생활을 하는 거예요.
우리는 자기 잘나서 노예 생활을 하는 거예요.
내가 결정을 하고 그 사람에게 맞게
“그 사람이 어떻든 내가 결정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하든 그건 그 사람의 인생이고
“그 경우에 나는 어떻게 할 거냐?”
이건 내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데서 자기가 아버지하고 같이 있으면 불안한 심리가 있다면
어릴 때 야단 맞았거나 원인을 규명하면
여러 이유가 있겠죠.
그러면 심리학자는 그 원인이 뭔지를 규명을 해서 연구를 하고
이런 게 학자가 하는 거고
즉 자동차를 전문적으로 기술자는
자동차가 어떻게 움직이고 이런 걸 아는 거고
이 운전자는 어떠냐?
그냥 자동차 시동 걸고, 엑스레이더 밟고, 브레이크 밟고,
핸들 돌릴 줄만 알면 되는 거예요.
그것처럼 우리의 수행자는
‘심리가 어떤 원리로 움직인다’
이것까지 알면
이제 학자가 되고
그걸 갖고 강의하는 사람이 되는 거고,
내가 내 인생을 운영하는 거는
“불안하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돼요.
“왜 불안하지?” 이런 연구까지 안 해도 돼요.
“불안하구나”
불안한 건 좋은 거냐? 나쁜 거냐?
안 좋은 거예요.
그러면 “불안하구나” 하는 거를...
/여기는 ‘불안하구나’ 아는 것과 ‘불안한 건 좋은 게 아니다’ 하는 거
두 가지가 결합을 하면
‘불안하구나’ 하고 알아차린다는 거는
곧 ‘불안이 가라앉는다’는 거를 의미하는 거예요./
근데 이게 아버지로부터 내가 좀 자유로워지고 싶으면
실험을 자주 해보면 돼요.
그러니까 아버지를 자주 만나서
아버지하고 있을 때 불안한 거를
아버지하고 조금 떨어지면 괜찮고, 아버지하고 가까이 가면 불안하고
아버지하고 아무 관계도 없는데 왜 불안할까?
이게 꼭 밤에 어두울 때 두려움이 일어나면
전기 스위치를 딱 쥐고
탁 끄니까 두려움이 일어나고
딱 켜니까 두려움이 없어지고
딱 끄니까 두려움이 일어나고
그럴 때 아니 불이 켜지고 꺼지는 것뿐인데
왜 두려움이 일어날까?
이런 거는 자기가 이렇게 [탐구]라 그래요.
원인을 규명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럴까?” 이렇게 생각할 때 불안이 사라져버린다.
이 말이야.
아버지를 가까이 가면 불안하고, 멀리 떨어지면 괜찮고
또 가까이 가면 불안하고
그러면 아버지하고 자주 있는 게 연습하기가 더 좋겠죠.
그래서 수행은
자기 알아차림만 잘 있으면
안 맞는 사람하고 있는 게 공부가 더 빨리 돼요.
왜냐하면 연습 기회가 많기 때문에.
그러니까 아버지하고 있으면 불안하다고
아버지하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별 문제가 없으니까 해결된 줄 아는데
가면 또 일어나.
그러니까 이거는 피해서 보호하는 방법이고
/만나서 해결해 버리는 게 진정한 자유거든요./
근데 그게 도저히 안 되는, 병이 심할 때는
피해서 안정을 누려야 되고 격리해서
그러니까 우리도 지금 면역력이 약하면
격리해서 일단 치료를 해야 되잖아요.
그 면역력이 강해지면 어때요?
결핵균이 있든, 균이 있든 상관없지 않습니까?
거기에 있는 속에서 자유로워져야 된다.
그런 관점에서
아버지하고 같이 얘기하면서
늘 불안한 마음이 일어나면
“불안하네, 아버지하고 있으면 불안하네”
“그래서 문제다”가 아니라
“왜 불안하지?”
이런 정도로 관찰을 해 나가면
연습을 많이 하면 금방 좀 좋아진다, 이런 얘기에요.
강도가 약해진다.
전에는 막 도저히 거부 반응이 있어서
가까이 가기도 싫었는데
이제는 가면 연습하는 시간이니까 불안해도 괜찮은 거예요.
불안 안 하면 다행이고
불안하면 연습하면 되고
그래서 불안하든 안하든 상관없는 경지로 나아가게 된다.
...
네, 원인을 규명하는 것도 좋은데
원인을 규명한다는 게
실제로 탐구를 해야 되는데
우리가 원인을 규명하는 건 자꾸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원인 규명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은 원인 규명에 너무 빠지면
자꾸 생각을 하기 때문에
번뇌가 늘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탐구
괴로우면
“왜 괴롭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정말 “왜 괴롭지?” 하고 탐구를 해야 돼요.
탐구를 하면 사라집니다.
대부분 여러분들이 90% 이상 자꾸 생각을 해요.
그래서 명상에서는 생각을 하지 마라잖아요.
탐구하고 생각하는 건 서로 다릅니다.
탐구는 화두를 탐구한다.
과학자가 어떤 원인을 규명한다
이게 탐구고
생각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머리를 갸우뚱하게 하는데
수행에서는 생각은 망상이라 그래요, 망상
‘망상 피운다’ 이렇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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