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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 : 황건적의 난 & 도원결의

Buddhastudy 2023. 12. 14. 19:50

 

 

(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

창천이사 황천당립 세재갑자 천하대길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니 마땅히 누른 하늘이 서리라.

때는 바로 갑자년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중국의 한나라 말기 영제가 통치하던 184.

부패한 정권과 잇따른 정쟁 속에

백성들의 삶은 점점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에, 태평도의 교주 장각은

황색 두건을 머리에 두른 농민반란군, 황건적을 이끌고 난을 일으켰습니다.

장각의 초기 계획은 184. 35

낙양 안팎으로 동시에 거사를 일으켜

단숨에 정권을 뒤집으려고 했으나

제자인 당주가 장각을 배신하여 수도로 가서

황건적 난에 대한 사실을 모두 고발하여

낙양 일대에서 1천여 명의 태평교도들이 피살되었습니다.

 

장각은 당주의 배신으로 인해,

당초 수도를 한 번에 점령하는 계획은 실패했으나

각 지방에 모여있는 무리들에게 파발을 보내

전국 각지에서 난을 일으키도록 명령했습니다.

 

황건적은 견고한 낙양을 둘러싸고 있는

예주에서의 싸움이 가장 중요하다 판단하여

지공장군(地公將軍) 장보가 총지휘를 맡았습니다.

 

장각이 보낸 파발은 2~3일에 걸쳐 각 지방으로 퍼져나갔으며

원래의 봉기일보다 2일 뒤인 37.

황건적이 일제히 봉기하여

삼국지 이야기의 난세를 알리는 시발점을 알렸습니다.

 

형주에 있던 황건적 장만성은

그를 따르는 수만의 무리를 이끌고 남양군을 급습해

남양태수 저공을 죽이고 남양군을 차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참고로, 삼국지 배경의 후한 시대 행정구역은

기주, 연주, 예주, 형주 등 총 13개의 주로 나뉘어졌고

주 아래 각각의 군이 있는 형태로

남양군은 형주의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제갈량이 수학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주 영천군에서는 파재가 낙양을 향해 진격했으며

여남의 팽탈은 여남태수 조겸이 이끄는 관군을 격파했습니다.

이어, 기주에서도 유주에서도 황건적들은

자사와 태수를 죽이며, 기세를 올려갔습니다.

 

장각이 이끄는 태평도의 무리들을 보며 사람들은

누런 수건을 머리에 둘렀다고 황건적 또는 의적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황건적은 업성에서 봉기를 일으킬 때

사람을 제물로 바쳐, 승리를 기원했습니다.

 

장각 삼형제들은 천지인(天地人) 원리를 이용하여 자칭

장각은 천공장군, 장보는 지공장군, 장량은 인공장군으로 불렀습니다.

 

황건적은 8개의 주에서 동시에 봉기하여 관부를 공격

그리고 백성들을 마구 죽이고 약탈하며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하는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황건적의 난으로 인해 각 주와 군이 함락되자

주목과 태수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는 자들이 많았고

난을 일으킨지 10일 만에, 수도 주변은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조정에서는 황건적을 토벌할 장수 배치를 고심했는데

여기에는 황보숭, 주준, 노식, 동탁 등이 거론되었습니다.

궁중의 경비를 담당하는 중랑장은

오관, , , 호분, 우림 5중랑장이 있었습니다.

이 중, , 우 중랑장을 영천의 황건적 토벌에 파견하는데

좌우중랑장으로는 황보숭과 주준을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임시로 북, 동 중랑장직을 신설하여

북중랑장으로는 노식, 동중랑장으로는 동탁을 임명했습니다.

 

아울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황건적의 난을 통해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출현을 알리며

대흥산 전투에서 500명으로 50,000명을 물리치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는 유비를 부각시키기 위한 과장된 연출에 불과합니다.

 

장비가 무찔렀다는 황건적의 부장 등무도

관우가 청룡언월도로 두 동강을 냈다는 정원지도

모두 소설 속 가공인물로

역사 속 삼국시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의 유비, 관우, 장비에 대한 의협심은

아주 유명한 의형제를 맺는 장면인 도원결의로도 나오는데

도원결의 또한

역사 바탕의 정사 삼국지에서는 기록되지 않은 내용입니다.

 

도원결의는 후세 사람들이 유비, 관우, 장비

세 명이 친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는 걸 보면서

더 친숙하게 느끼고 싶은 매니아층이

이들을 의형제화 시키며 상상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형식적인 복숭아밭에서의 맹세가 아니더라도

유비, 관우, 장비가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서로를 배신하지 않고 의기투합한 모습에서

친형제 이상의 의리를 보여준 것은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황건적의 난이 발생했을 무렵의 유비는

평민 출신에 30대 전후반의 나이라, 그 존재감이 미미하였으나

황건적과의 전투에서 작은 공을 세우며 약간의 출세를 하게 됩니다.

유비에 관해서는 다음에 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조정에서는 좌중랑장 황보숭을 임명하여

노식, 주준과 함께 황건적 토벌에 나설 것을 명하였고

뒤이어, 동탁은 천천히 전진하면서 이들을 지원하는 형태였습니다.

황보숭은 젊었을 때부터 재능이 이미 조정에까지 알려져

일찍이 효렴과 무재로 천거된 자였습니다.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한 후한 말에도

황보숭은 문무를 겸비한 충신 중 한 명이었습니다.

황보숭의 가문은 대대로 무관직에서 두각을 드러낸 무장가문으로

황보숭 또한 문무겸전에 재능과 활쏘기 솜씨가 뛰어났습니다.

 

그의 태생은 강족과 선비의 변란이 끊이지 않는 량주(凉州)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생사를 거듭하는 전투경험이 풍부했으며

성인이 되었을 때도, 서량의 군사요충지인

북지태수를 역임하여, 군사문제에 정통했습니다.

 

 

 

황보숭은 병사들을 이끌고 영천군 장사로 향하였습니다.

그는 거만하거나 거친 장군들과는 달리

병사들을 따뜻하게 대해주며, 사기를 북돋우는 데 힘썼고

행군과 휴식을 적절히 분배하여, 병사들은 황보숭을 믿고 따랐습니다.

 

황보숭 군이 장사에 입성한 것을 확인한 황건적의 파재는

압승을 위해 다른 동지들로부터

훨씬 더 많은 대병력을 이끌고와 성을 포위하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황보숭의 병사들과 성 내 백성들은

많은 무리의 황건적을 보며 두려움에 떨었지만

황보숭은 참모와 장수들을 불러모아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작전을 구사했습니다.

 

그는 농민들로 구성된 황건적이 그동안 손쉽게

긴장하지 않은 관군을 물리치는데 자신감이 상승했을 거라 여겨

틈을 노려, 허점을 찌른다면 충분히 혼란시킬거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저녁을 골라

영채에 병사들을 잠입시켜 불을 지르는 화공전을 펼쳤습니다.

 

황보숭의 정예 병사들은 작전대로

파재의 영채에 불을 지르는 데 성공했으며

나머지 병사들은 성 위에 올라가 횃불로 호응을 하니

황건적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혼비백산했습니다.

 

질서가 무너진 황건적은 황보숭의 병사들에 죽임을 당하였고

제대로 진영을 갖추지 못한 파재의 군대는

정신없이 흩어져 도망을 갔는데

그 길을 막아서는 젊은 장수가 나타났습니다.

 

때마침 장사에 도착했던 젊은 장수였던 조조가

황보숭의 병사들과 협공하여

황건적의 대병력을 상대로 이들을 무찔렀고

파재의 병사들은 대부분 죽거나, 도망치기에 바빴습니다.

 

조조는 20대 시절 낙양북부위로 재직하면서

법을 어기는 자는 신분에 관계없이 처벌하는데

이 때문에, 십상시의 배경도 무서워하지 않고

건석의 숙부를 때려죽인 일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환관들은 이러한 조조의 강경함이 곱게 보일리 없었고

언젠가 때가 되면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때마침,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

황보숭과 주준 이외에도 추가 병력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평소 재능이 뛰어난 조조가 눈엣가시로 여겨졌고

마침, 황건적을 물리치는 데 써먹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능력이 부족하다면, 여기서 죽어도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조조를 기도위로 임명하여, 황보숭과 주준을 뒷받침하라고 보냈습니다.

 

조조는 작은 관직이었던 낙양북부위에서도 악명을 떨쳤으며

지방으로 발령났을 때는, 관습적으로 이어오던 뇌물을 금하였습니다.

그리고, 의랑이라는 직책에 있을 때는 과거 환관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상소문을 올렸으나 전혀 통하지 않던 도중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니, 난을 평정하는 데 앞장서게 됩니다.

 

황보숭과 조조의 병사들은 협력하여 황건적의 퇴로를 차단해

1만여 명의 황건적의 목을 베며, 대승을 거두었고

조정에서는 황보숭의 전공을 높이 평가하여 도향 후에 봉했습니다.

 

오늘은 삼국지 12번째 시간으로

184년에 일어난 황건적의 난과 이에 대응하는 조정의 움직임

그리고, 소설 속 도원결의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