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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9 : 손견

Buddhastudy 2023. 12. 6. 19:36

 

 

고대 중국, 후한 시대에서 삼국 시대로 접어들 무렵

남동부 지역에는 현재 중국의 저장성, 장시성 등이 포함된

양주 지역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양주의 첸탕강, 한국어로는 전당강이라 불리는 강의 부둣가에는

평소처럼 짐을 싣고 부리는 상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는데

이는 물가에서 노략질하는 수적들이 나타났다는 신호로

사람들은 짐을 버리고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당시, 남부 지방에서 악명높았던 수적인 호옥은

사람들을 위협해 물품들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겁탈하며

짐꾼들은 손에 잡히는 데로 베어 죽이는 노략질을 일삼았습니다.

 

큰 칼과 무기들을 들고 나타난 수적들을 피해

강의 하류 쪽으로 도망간 배들은

얼른, 이들이 재물을 갖고 떠나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때, 언덕 위에 한 젊은 장수가 나타나

깃발을 흔들며 군대를 움직이는 듯한 지시를 내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워낙에 당당하여,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습니다.

 

수적들은 우연히 지나가는 관군에게

재수 없게 걸린 것이라고 판단했고

약탈하던 배를 모두 놔둔 채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이에, 젊은 장수는 재빨리 달려와 뒤처진 수적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사람들에게 재물을 돌려주며, 수적 무리를 내쫓는 데 성공했습니다.

 

젊은 장수는 바로 이번 영상에서 다룰 소년 장수인 손견으로

그는 서기 155년 양주 오군 부춘현 출신이며

조조와 비슷한 나이, 유비보다 대여섯 살 많은 나이였습니다.

 

오군 부춘현에는 손씨들이 많이 모여 살았는데

손견은 10대 시절부터 부친과 함께 다니며

어렸을 때부터 대담하고 화통한 기질로 인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전당강 수적떼들을 만났을 때의 손견은 17세로

그의 부친은 포악한 수적들을 피하려 했지만

손견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칼을 잡고 진격하여

기어이 수적 한 명의 머리를 베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러한 10대 활약상 때문인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손견에 대한 묘사는

정사 삼국지와는 약간은 다른 모습으로 각색되어 나타나는 편인데

소설에서의 손견은 역사적 사실보다 영웅적인 부분이 강조되었습니다.

 

삼국지에서 손견, 손책, 손권으로 이어지는 손씨 가문은

그 출생 배경부터가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자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손견 스스로가 자칭 손자의 후손이라 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진수가 집필한 정사 삼국지에서는

손견은 아마 손자의 후손일 것이다라고 추측성 언급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선조가 불확실할 때 쓰는 표현이며

실제, 손견의 가문은 후한 말 오군에 근거를 둔 중소관리로

신흥 호족 가문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삼국지연의에서 손씨 가문은 위촉오 삼국을 구성해야 하는

중요도가 높은 세력들이기 때문에

이를 강조하기 위해 손견은 추후 옥새를 발견했을 때부터

천하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야심 있는 군벌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강동의 손오 기반을 잡아간 것은

손견이 아닌 아들 손책의 활약상으로

손견의 행적을 살펴보면, 독립적인 군벌보다는

명문 귀족들의 아랫사람으로서 장수 역할에 충실한 편이었습니다.

 

184년에 일어났던 황건적의 난을 진압할 때

손견은 약 30세의 나이로 주준 휘하에서 근무하였고

서량에서 반란을 진압할 때는 장온 휘하로 참전했습니다.

이후, 반동탁 연합군 시절부터는 줄곧 원술 휘하에 있었는데

삼국지연의에서는 훗날, 손견이 스스로 형주의 유표를 공격했다고 하지만

역사적 기술로는 원술의 명령을 받고 출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방 신흥 귀족 가문으로써 집안이 부유했던 손견은

타고난 명문 집안 출신들인 조조나 원소, 원술에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 입지가 좁은 배경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군사적 능력 및 경력은 원술보다도 풍부했지만

최고 명문가의 원술에게는 줄곧 기를 펴지 못했습니다.

또한, 손견은 동탁 세상이 펼쳐졌을 때도

모두가 동탁을 두려워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탁의 변방 출신을 놓고서 공포에 짓눌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는데,

사세삼공으로 대표되는 한나라 최고 명문가

적통 후계자인 원씨 가문 앞에서는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전당강에서의 수적을 물리친 손견의 활약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금세 소문으로 퍼졌나갔고

이름이 알려진 손견은 어린 나이에 현위에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환제 말기에 외척이자 대표적인 간신이었던

대장군 양기가 환관들에 의해 죽음을 당한 후

영제가 즉위하면서, 실권은 환관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양기가 조정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고 난 뒤

이제는 환관들이 정권을 농단하는 사태가 이어졌습니다.

청류파 사인들은 환관들의 행태를 비판했지만

영제의 판단은 환관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는 1,2차 당고의 금으로 이어지면서

이응을 포함한 죽은 자만 100여 명

금고의 처분을 받은자가 600 ~ 700명이 되었습니다.

 

조정의 권력다툼, 환관들의 궁궐 장악.

십상시의 횡포로 이어지는 한나라는

백성들이 감당할 수 없는 세금과 굶주림.

급기야 대기근이 일어나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일까지 생겨났습니다.

 

중앙 정부의 질서가 무너져 내리자 도처에서는

이를 견디지 못한 민심들이 하나둘 반란을 일으켰고

낙양에서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오군 지방 또한

조정에서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지방 정부에서도 자리를 잃어버릴까봐

조정의 눈치를 살피며 각종 공물과 조세를 부과하였는데

이를 견디지 못한 양주 회계군에서도

자신을 두고 양명황제라 자칭하는 허창의 세력이 봉기하였습니다.

 

 

 

손견의 10대 후반 시절이었던 172. 회계에서는

아들 허소와 함께 무리를 일으킨 허창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허창은 양명황제라 자칭하면서 여러 현을 선동해

그 무리가 1만을 넘었고, 아들 허소를 대장군으로 두었습니다.

 

이때 양주자사 장민은 단양태수 진인과 함께

무공이 뛰어난 젊은이들을 모아 군대를 형성했는데

최근 있었던 손견의 무용담을 듣고

손견과 어울리던 소년배들을 중심으로

1000여 명의 정예병을 모집했습니다.

 

손견은 강동의 호랑이라는 별명답게

허창의 무리를 제압하는 데 있어 선봉으로 싸웠으며

허창이 토벌되고 난 후, 양주자사 장민이 이를 상세히 적어

손견은 중앙 정부에서 임명하는 염독현 현승이 되었습니다.

낙양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소년 장수가 이름을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그 등장이 화려했던 손견의 별명은

강동의 호랑이 라고 잘 알려져 있으나

정사 삼국지에서는 없는 별명으로

이는 소설 삼국지연의의 극적인 요소와

현대 사회의 게임 등을 통해 붙여진 유명세입니다.

 

또한, 삼국지연의에서의 손견은 주로 멋진 활약과

용맹하고 솔직한 사람으로 묘사되어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받는 캐릭터 이지만

실제 역사의 손견은 이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삼국지연의에서의

원술과 손견은 서로를 경쟁 관계로 묘사하여

원술은 능력도 없으면서 그저 야심만 부리는 인물로,

손견은 원술에게 이용당한 순수하고 비극적인 영웅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정사 삼국지에서의 손견의 성격은

힘 있는 자 앞에서는 비굴함을 보이고

힘이 약한 자는 무자비하게 목을 베어버리는 등

난폭한 성격으로 인해 손견의 친정 일가들은

손견의 성격을 두고 매우 싫어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손견의 단점으로 여겨지는 나쁜 성품을 삭제하였고

순수함으로 인해 원술에게 이용당하다 죽은 피해자라는 이미지이지만

실질적으로 원술과 손견은

정치와 군사력이 합쳐진 공생 관계로서

다른 군벌들을 약탈하며 성장한 세력이었습니다.

 

그나마, 손견이 동탁에게 보여준 용기가 두드러지는 모습이지만

이는 예전부터 동탁과의 개인적 원한으로 인해

사사건건 동탁을 향해 시비를 걸었으며

실제로의 성품은 손견과 동탁 둘 다 포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오히려, 정사 삼국지에서 손견의 정치적인 행보는

최악이며 무식한 인물로 평가되기도 하는데

이는 되려 동탁이나 공손찬의 빼어난 군사행정에 대비해

더욱 박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삼국지 아홉 번째 시간으로

강동의 호랑이라고 불리던 손견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역사 기반의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연의는 다른 면이 많은데

손견 또한 그 묘사에 있어 대표적으로 차이 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