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84년. 한나라 영제와 십상시의 폭정은
백성들을 가난과 궁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 때문에 전국 도처에는 지배층에 대항하기 위하여
황건적의 난, 연이어 도적떼들의 출몰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황보숭을 중심으로 한 관군들은 황건적의 난을 진압했지만
이때 살아남은 농민들은 그 후에도
해마다 각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중에서 세력이 큰 난으로는
100만 명에 이르는 세력인 장연의 흑산적과
서량 지역 양주에서 일어난 변장ㆍ한수의 난이 있었습니다.
원래 한나라 때는 장수라는 한 개인이 사병을 두지 못했는데
병사들을 거느릴 수 있었던 관직으로는
중앙 무관직의 대장군을 포함한 8명의 장군과
5명의 교위가 상설직으로 군대를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한나라 외부 민족과의 전쟁이라든가
국내에서의 반란이 끊이질 않자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명성을 쌓아가던 장수들은
자연스레 사병화 조직을 만들어갔습니다.
184년부터 시작된 서량(양주)의 난은
황건적의 난 때와는 달리, 전문적이고 조직화 된 반란이었습니다.
한나라의 장수들과 병사들은, 이를 제압하는데, 난항을 겪었지만
이 때문에, 실전 전투 경험을 쌓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량 지역은 중앙 정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
이민족으로부터 잦은 침입에 시달렸고
그와 동시에 강족, 호족들과도 어울려 살아가는 등
적은 인구에 비해, 많은 병사들이 주둔해 있었습니다.
조정에서는 관리하기 힘든 서량 지역을
아예 포기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는데
184년, 황건적의 난이 진압될 무렵에는
북궁백옥을 수령으로 서량(양주)의 난이 발생했습니다.
량주에서 난을 일으킨 초기에 반란군은
먼저, 옹주 가까이에 있는 금성군을 점령했습니다.
금성군에는 변윤과 한수라는 인물이
사람들로부터 인망이 두텁기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북궁백옥을 비롯한 도적들은
지금보다 좀 더 전문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
변윤과 한수를 직접 만나 포섭하기로 했지만
한수는 아예 이들을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소설 삼국지 연의에서 한수는 변장과 함께
서량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정도로
짧게 언급이 되고 난 후에는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마초와 함께 잠시 등장합니다.
정사 삼국지에서 한수는 본래 본명이 한약으로
금성군의 오래된 호족 집안의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가 금성군에서 관리 생활을 하다
잠시 중앙직으로 발령 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때, 한수는 아버지를 따라 낙양에서 소년배 생활을 하며
자신의 능력은 그리 빼어나지 않았지만
차분한 성격으로 인해, 원소, 원술, 조조 등
이름있는 호걸들과도 잘 지냈으며
나이가 들어서는 고향으로 돌아와 량주의 관리가 되었습니다.
한수가 서량 반란군의 면담을 거부하자,
휘하 장수였던 왕국은 한수에게 난에 가담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수가 끝까지 항복하지 않자
왕국은 금성태수 진의와 변윤, 한수 등
지역 유력인사 수십 명을 잡아 도적떼의 진영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때, 진의는 탈출하여 도망을 쳤지만
왕국은 진의를 끝까지 쫓아가 목숨을 빼앗아 버렸고
그 후로도, 왕국이 반란군에게 투항하는 과정에서
납치된 사람들 중 일부는 죽고, 일부는 석방되었습니다.
변윤과 한수는 반란군들 사이에서도
그들의 인성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 존경을 하는 자들이 많았으므로
왕국은 이 둘에게는 배려 차원에서 해를 입히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석방해주었습니다.
당시, 후한의 서쪽 지역은 중앙 지역에 비해 그 인구가 매우 적었는데
반란으로 인해 질서가 붕괴되고 혼란이 가중되니,
사람들은 어느 세력에 붙어야 할지 갈팡질팡했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이 붕괴된 지역 사람들은 가만있어도
관군이냐 반란군이냐 하는 의심으로 서로를 죽이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왕국이 금성태수 진의와 유력인사들을 반란군 쪽으로 잡아갔을 때
진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죽었는데
변윤과 한수만 살아서 돌아오니
죽은 자의 가족들은 이 둘이 배신을 한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습니다.
결국, 변윤과 한수는 고향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게 되면서
이들의 운명은 어쩔 수 없이 반군에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원래 조정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진 터라
변윤은 이름을 변장으로 바꾸었고
한수 또한 원래 이름 한약에서 한수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한수는 30대의 나이로 반란군에 가담해 보니
이들의 세력은 크고 작은 잡다한 무리들이 모여
그 안에서도 수시로 내부 갈등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한수는 자신이 갖고 있던 특기였던 중재자 역할로
반란군의 질서를 잡아가며, 점점 리더로 성장했습니다.
강족과 호족, 그리고 여러 이민족들이 모여
무질서한 도적떼처럼 활동을 하던 반란군들은
한수에 의해 한층 더 강화된 하나의 큰 세력으로 거듭났고
조정에서는 이를 골칫덩어리로 여기며
변장ㆍ한수의 난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봄이 되자 수만 명의 기병을 앞세워
삼보까지 쳐들어왔는데, 관중이라고도 알려진 삼보는
전한의 수도권에 해당하는 장안 주변으로
중국 역사에서는 중앙 지역의 낙양과 더불어
서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변장, 한수가 이끄는 무리들은
백성들의 삶을 힘겹게 하는 십상시를 포함
환관들을 파멸시키겠다는 명분을 내걸었습니다.
그리고, 서쪽 지역에서 시작된 도적들의 난은
점점 중앙 권력을 위협하는 대란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변장ㆍ한수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조정에서는 황건적의 난을 진압했던 영웅
황보숭과 그의 부장으로 동탁을 임명하여 서쪽으로 보냈습니다.
동탁은 장각과의 싸움에서 패해 면직되었지만
이 기회를 틈타, 다시 활동을 재개하게 됩니다.
서량의 반란군은 원래부터 단일화된 집합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황보숭이 이끄는 관군들은 전투에서 잦은 승리를 거두어도
반란군은 금세 뿔뿔히 흩어지면서, 쉽사리 진압되지 않았습니다.
관군이 동쪽의 반란군을 진압한다 싶으면 서쪽에서 반란군이 나타났고
서쪽으로 병력을 돌리면, 다시 동쪽에서 반란군이 나타나는 식이었습니다.
이렇게, 황건적을 진압했던 장군인 황보숭이
변장, 한수를 상대로는 쉽사리 제압하지 못하고 있자
때마침, 조정의 환관에서는 그동안 황보숭의 공을 시기하던
환관들이 나서, 이참에 황보숭의 자리를 박탈시켰습니다.
그리고, 후임으로는 사공(司空) 장온(張溫)을 지명했는데
그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 주준을 변호했던 자로
채널 내 삼국지 13편에서 잠시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장온은 도겸에게 지혜를 빌리기 위해
도겸을 군사로 앉혀 대우를 해주었지만
도겸은 장온의 무능력 때문에, 장온을 경멸했다고 합니다.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새롭게 구성된 군대는 장온을 중심으로
그 뒤를 받쳐주는 부하 장수로 동탁과 주신이 임명되었습니다.
또한, 장온은 조정에 상소를 올려, 젊은 장수 중에서도
소문난 전투력을 가진 손견을 데려가게 해달라고 청원했습니다.
장온은 동탁과 주신, 그리고 손견 등을 데리고
서쪽으로 향하는 동안 여러 군을 들르면서
10여 만의 보병과 기병을 모집했습니다.
그리고, 서량 반군의 세력이 통합된
변장과 한수의 세력을 맞아 접전을 벌였습니다.
양쪽은 소모전을 치루며, 몇 차례의 전투가 이루어졌는데
시간이 갈수록 전황은 점차 관군들이 불리해졌습니다.
서량의 도적떼들은 한낮 도적으로 불리기에는
오랜 세월 동안 전장에서 잔뼈가 굵어 막상, 실전 전투에서는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한 관군에 비해 뛰어난 병력이었던 겁니다.
거기 장군 장온이 이끄는 새로운 관군은 고전을 금치 못했는데
이때, 서량 지역 농서 출신의 거친 싸움꾼 동탁이
우부풍 태수 포홍 등의 여러 장수를 이끌고
반란군의 틈새를 노려, 일격에 적을 대파하였으며
수천 명의 수급을 참하였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갖고 있던 동탁은
상관인 장온에게 있어 그리 탐탁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대규모의 난을 진압하는 데 있어, 동탁의 능력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그는 상관인 장온의 전투 능력이 부족하다 생각했기 때문에
평소, 명령에도 불복종하는 오만함을 보였던 겁니다.
이러한 동탁의 태도를 보며, 성질이 불같았던 손견은
장온에게 군율을 무시하며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동탁을 살려서는 안된다고 간언했습니다.
하지만, 장온은 동탁이 제 멋대로이긴 하나, 그를 필요로 했고
동탁의 활약으로 인해 점점 그 명성을 더해갔습니다.
한편, 장온은 동탁의 활약과는 별개로
또 다른 장군인 주신에게 3만 명을 이끌고
금성군을 제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주신은 손견과 함께 금성에 도착해
한수가 있는 성을 포위했습니다.
성 밖에 주둔한 손견은 주신에게 계책을 꺼내 들었는데
자신이 1만의 군세로 앞장서고
주신은 2만의 군사로 뒤를 따라와 준다면
자신이 먼저, 한수의 성에 보급되는 수송 통로를 끊어
굶고 있는 병사를 상대로 주신이 토벌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주신은 이제 막 중앙 정부에 진출한
남쪽 변방 출신의 새파란 손견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손견의 계책을 그 자리에서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3만 명의 전군을 직접 몰아 바로 성을 향해 돌격했습니다.
주신 군대가 직진으로 돌격해오는 모습을 본
성안에 있던 변장과 한수의 반란군은
성 밖 뒤쪽에 있는 협곡을 이용하여
주신 부대를 가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주신의 군대가 진치고 있는 후방의 계곡은
관군의 유일한 보급 통로였는데
반란군은 부대를 나눠, 변장이 성을 지키고
한수가 포위망을 우회해 협곡을 점령했습니다.
한수가 협곡에서 보루를 설치하며
순식간에 주신 부대의 식량 보급로를 점령하니
뒤늦게 이를 알아차린 주신은 겁에 질려
필요 없는 짐은 모두 버리고, 퇴각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오늘은 삼국지 19번째 시간으로
서량의 반란과 한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동탁과 주신 부대의 전투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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