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를 사랑하시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설민석입니다.
이번에는 <말모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여러분들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말모이는 ‘우리의 말을 모은다’라는 뜻으로
일제 강점기에 편찬하고자 했던 사전의 이름이자
말을 모으는 운동이었는데요,
자, 이 ‘말모이’ 사전 편찬 작업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의 독립운동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종대왕님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이후에 후손들은 한글을 하찮은 문자 정도로 무시했고, 연구와 재정립에도 소홀했습니다.
그렇게 수백 년이 지나고 일제에 의해서 국권이 피탈되기 몇 년 전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님은 ‘문명 강대국은 모두 자국의 문자를 사용한다’라는 큰 깨달음을 얻으시고 우리의 국어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주시경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보아라. 지금 일본이 우리를 침략했으니, 앞으로 우리의 근본을 무너뜨리려 할 것이다.
그 근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문화요, 그 문화를 지탱하는 것이 우리의 언어다.
그러므로 저들은 제일 먼저 우리의 말과 글을 빼앗으려 할 것이다.” 라고 말이죠.
자, 그러면 말과 글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시경 선생님이 국어 연구를 시작해 보니까 표기와 띄어쓰기가 통일되지 않으니 글을 배워도 서로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것이죠.
‘그래,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우리의 말들을 모아서 통일된 사전을 만들면, 그것이 우리 국어의 기준점이 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하셨고, 그래서 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하게 됩니다.(1911년)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주시경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1914년) 일제 탄압에 사전 작업에 동참했던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져 그만 사전 편찬 작업은 중단되게 됩니다.
자, 그렇게 15년이 흐릅니다.
그 이후에 뜻있는 분들이 다시 모여서 주시경 선생님의 뒤를 이어서 사전 편찬 작업을 재개하게 됩니다.
1929년 10월, 조선어학회의 108명의 위원들이 모여서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게 됩니다.
1. 자, 이들은 사전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게 됩니다.
자, 맞춤법이 왜 필요합니까? 사전의 글을 기록해야 하는데 예를 들면 ‘빛을 비추다’라고 기록을 해야 하는데, 이 받침을 치읓을 써야 할지, 시옷을 써야 할지, 아니면 빛 다음에 을을 써야 할지, 츨을 써야 할지, 사전에 기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했던 것이지요.
2. 자, 그리고 두 번째 단계를 표준어를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사물을 두고 지역별로 사용하는 표현이 각기 달랐기 때문에 하나의 기준점을 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표준어를 정하는 데만 3년의 시간이 걸리고, 그 결과 6천백여 개의 표준어가 지정되게 됩니다.
자, 이제 표준어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표준어를 정하고 나니까, 표준어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말들은 모두 사투리가 되잖아요.
하지만 각 지역의 사투리도 결국 우리의 말이고, 이 사전에 사투리가 수록이 되어야 각 지방에 있는 분들이
“아, 우리 지역에서 쓰는 이 말이 표준으로는 이렇게 지정되었구나.” 알게 되어 서로 소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3. 전국 사투리 수집
그래서 팔도의 사투리를 모아야 할 말모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이죠.
자, 이렇게 말이 지역별로 다 다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였죠.
어떻게 모을지 고민을 하다가,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등장을 하게 됩니다.
당시 조선어학회에서는 ‘한글’이라는 잡지를 전국적으로 간행하고 있었는데, 그 잡지에 ‘전국의 사투리를 모집합니다’라는 광고를 실으면 되지 않겠냐 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게 대박이 납니다. 이 광고를 본 전국의 학생들을 비롯한 남녀노소가 자신의 지역에서 쓰는 말을 기록하고 심지어 뜻까지 풀이해서 편지로 적어 보내는데, 편지가 조선어 학회로 물밀듯이 들어옵니다.
전국적인 참여로 모인 우리의 말은 다시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 그리고 옛말, 새말, 사투리, 전문어, 고유 명사 등으로 일일이 구분해서 가려내어져서 차츰 사전의 형태를 갖추어 나가게 됩니다.
자, 이렇게 다시 시작된 사전 편찬 작업은 무려 13년에 걸쳐 비밀리에 진행되게 됩니다.
자, 그러면 일본은 이 조선어 사전 편찬 작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당시 사전 편찬 작업이 한창이던 30~40년에는 일제의 탄압이 절정으로 가던 시기였습니다.
일본은 조선의 완전한 지배를 위해서 민족 말살 정책을 시행하게 됩니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일본과 조선은 본래 하나의 나라이다. 이른바 내선일체内鮮一体
일본과 조선의 조성은 동일하다. 일선동조日鮮同祖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꿔서 일본인으로서의 영광을 누리자. 창씨개명創氏改名
황제의 국가에 신하 된 백성으로 충성을 다하자. 황국신민皇國臣民
이런 말들을 외치며 우리의 가슴속에 있는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강구했던 것이지요.
일제는 집권 초기부터 국어 시간에 일어를 가르치고, 우리 조선어는 한문과 함께 배우는 외국어 취급을 했습니다.
그리고 민족 말살 정책 시기에 이르러 우리말과 우리글을 학교 수업에서도 사실상 폐지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당시 조선어 학회는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고 있었으니까 일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정책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도전하는 위험한 행위라고 판단을 했던 것이죠.
그러다 1942년 일제는 조선어 학회 회원들을 민족 독립운동 단체로 규정하고 당시 가장 수위가 높은 치안 유지법의 내란죄를 적용해서 전국의 회원들을 긴급 체포하게 됩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조선어 학회 사건인 것입니다.
이런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검거된 회원들 중에 이윤재, 한징 두 분이 감옥에서 옥사를 하시고 다른 분들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진 고문을 겪어야만 했으며, 결국 살아남은 회원들도 광복 이후에나 석방되게 됩니다.
그 이후에 다행히도 조선 총독부에 압수당했던 사전의 원고가 우연히 발견되게 되어 조선어 학회 회원들은 염원하던 사전 편찬 작업을 또 다시 일어 나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1947년에 <조선 말 큰 사전> 1권을 간행하였고, 1957년까지 총 6권을 펴냄으로써 주시경 선생님이 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한 지 46년 만에 조선어 사전 편찬 작업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말과 글을 민족의 혼과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 했습니다.
그 그릇을 끝가지 지키려 했던 평범했지만 위대했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영화 <말모이>를 통해서 만나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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