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영상 후반부에 언급되었던 미노스 문명이 있던 시절.
기원전 1600년 무렵부터,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지역에서 힘을 키운 미케네인들은
기원전 1400년 무렵 크레타 섬을 정복하게 됩니다.
미케네인들은 당시 그리스 부근에서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였고
비슷한 시기 현재 터키 지역의 소아시아에 위치했던
또 다른 강력한 도시국가 트로이와 적대 관계였습니다.
특히, 트로이 전쟁에서 미케네 비장의 무기인
트로이 목마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역사학자들은 트로이의 존재 여부가
실존하지 않았다는 쪽에 무게를 많이 두고 있습니다.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이 트로이의 발굴을 위해 많은 시간을 공들였지만
이 역시 학계에서는 그리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어
트로이 전쟁은 현재까지는 그리스 신화 속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을 정도인데요.
트로이 전쟁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미케네인은 점차 세력을 확장해가며
동지중해 연안과 소아시아 연안 지방을 정복하여
동지중해를 지나는 선박에게 통행세를 거두며
5백년간 지속된 문명이었습니다.
통치계급은 주로 전사귀족 계급이었으며,
크레타 섬을 정복 후에는 크레타 문명을 받아들여
미노스 문명의 문자를 변형하여 사용했습니다.
미술과 건축 부분에서 발전을 보여
조각과 장식품에서도 많은 작품을 남기게 되는데요
미노스 시절, 크레타 문명의 우아한 궁전과는 달리
미케네 문명의 궁전은 튼튼한 벽을 지닌 요새였습니다.
멋과 우아함을 자랑하던 미노스 문명 때와는 달리
미케네 인들은 무예를 중시하고,
실용적인 국력을 위해 정확한 설계도에 따라 건축물을 올렸으며
이는 훗날 그리스 건축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대표적인 건축물인 ‘사자의 문’은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고대 아테네의 시대보다 800년이나 먼저 세워졌다는데서
조각작품으로 미술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금속 세공 면에서는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가 유명하지만
이는 조금 전에 얘기 드린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의 주장이었으며
이후 연구가 진행되어 아가멤논 시절보다 앞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지금 미케네 문명은
얼마나 오래된 문명이냐를 한 번 짚고 넘어가기 위해서 확인을 하자면
우리가 보통 고대 그리스라고 하면 까마득한 옛날로 떠올리는데
고대 그리스에서 도시국가를 의미하는 폴리스는
기원전 800년경부터 등장했고,
그 중 대표적인 폴리스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있죠.
미케네 문명인들이 크레타섬을 정복했을 때는
기원전 1400년 무렵이었으니
고대 아테네나 스파르타보다 훨씬 더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황금 마스크의 주인으로 오해 받았던 아가멤논은
그리스인들이 만들어냈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죠.
아가멤논은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며, 미케네의 왕이기도 했습니다.
영화 ‘트로이’에서는 너무나도 잘생기고 젊었던
브래드 피트와 에릭 바나에게 가려져 비겁한 악역으로만 등장하지만
아킬레우스를 제외하면 일리아스 서사시 전체에서
전투력이 가장 뛰어난 전사 중 한 명이었죠.
하지만, 강력했던 미케네의 문명도
기원전 1180년 무렵에는 멸망하게 됩니다.
수많은 도시가 약탈되고 학살의 흔적이 있었으며
미케네인들은 그리스 섬들 혹은 키프로스로 도주하는데요.
북쪽에서 성장하던 도리아인들이 미케네를 정복하는데
당시 미케네 인들은 청동 무기인데 반해
도리아 인들은 철 무기를 지니고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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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미케네인들이 등장한 그리스 신화, 트로이 전쟁을 살펴볼까요?
2004년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트로이’는
국내에서만 2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많은 분이 재미있게 본 작품인데요.
아킬레우스 역의 브래드 피트를 보러 갔다가
헥토르 역할의 에릭 바나에게 반한 분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으로
오랫동안 신화에만 등장하는 전쟁으로 여겨졌는데,
전쟁 자체는 실제 사건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직까지 진실 여부는 논란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으로 들어가자면, 트로이 전쟁의 발발 이전에는
파리스와 세 여신의 이야기로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는데요.
어느 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이 열리게 되었는데
이 둘 사이에 태어나는 아들이 자라서 추후, 아킬레우스가 됩니다.
어쨌든 이 결혼식에서 모든 신들은 초대받았으나
초대받지 못한 여신이 있었는데
그녀는 바로 ‘불화’의 여신 에리스였죠.
에리스가 나타나는 자리에서는 항상 문제가 발생하니
결혼식에 초대를 하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자신을 일부러 초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에리스는 더욱 화가 나서 결혼식에 가서는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데요.
그녀는 황금사과에 글귀를 적어, 연회장에 던져둡니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만이 이 사과를 가질 수 있다.” 라고
자존심 강한 여신들을 건드리는 문구였죠.
이 사과를 보고 세 명의 여신이 반응을 하게 됩니다.
여신 중에서도 권력의 최고봉이었던, 제우스의 아내 헤라와
세상의 모든 지혜와 용기를 지니고 있던 아테나
그리고 아름다움의 대명사 아프로디테였죠.
무려, 세 명의 여신은 황금사과를 놓고서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자기 것이라 우기며 싸움이 끝나지 않고 있었는데요
그동안 세월은 흘러, 테티스와 펠루스의 아들인 아킬레우스도 성인이 되고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도 성인이 되었습니다.
여신들이 황금 사과를 놓고 싸움을 하다 인간세상을 보던 중
잘생긴 트로이의 왕자. 영화에서는 올랜도 블룸이었죠.
파리스에 다가가서는 황금 사과의 주인을 정해달라고 하며
각자 자신을 선택할 때의 선물을 이야기 해줍니다.
헤라는 자신을 선택하면, 최고의 권력과 부를 줄 것이며
아테나는 세상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지혜를 줄 것이고
아프로디테는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시켜주겠다고 합니다.
젊은 혈기가 가득차 있던 파리스는
두 말 않고 아프로디테를 선택하게 되는데요
아프로디테는 약속대로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헬레네를 데려다 줍니다.
하지만, 헬레네는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고
그녀의 남편은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였던 겁니다.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트로이를 쳐야겠다고 마음먹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형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의 형은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었습니다.
이렇게 헬레나를 되찾기 위해서 각 나라의 왕들이 연합군을 구성해
그리스 연합군이 된 셈인 거죠.
그리스 신화에서는 여신들이 황금사과를 두고서
파리스의 선택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트로이 전쟁이 실제 있었다고 주장하는 역사가들의 이야기에서는
좀 더 현실적인 가설이 등장합니다.
영상의 초반부에 말씀드린 미케네인들이
당시, 이 구역에서 강력한 권한을 행세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지중해 사용료에 대한 통행료 거두기였죠.
그런데, 트로이는 통행료를 거부했으며,
이것이 곧 무력 충돌로 이어지게 된 것이라는 거죠.
약 25,000명으로 추산되는 그리스군은
2년동안 트로이 전쟁준비를 마친 뒤,
트로이 해안에 군대를 상륙시키고는 공격진지를 구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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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군이 트로이 해안에 도착할 무렵,
트로이군 또한 기세가 만만치 않아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도록 준비한 탄탄한 요새와
잘 훈련된 수비대가 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방에 탑들은 접근해 오는 적을 한눈에 감시할 수 있었으며
높이 6m, 두께 4.5m의 두꺼운 성벽 덕에
급조된 그리스 연합군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죠.
또한 트로이에는 삼국지의 관우같은 명장이 있었는데
헬레네를 데리고 간 파리스의 형인 헥토르였습니다.
트로이 왕의 장남 헥토르는 그 명성이 자자하여
수많은 전투에서 헥토르를 이길 수 없었으며
영화 ‘트로이’에서는 에릭 바나가 이 역할을 맡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그리스 쪽에서는 명장이 없느냐?
당연히, 그리스군에도 헥토르와 버금가는 명장이 있었는데
바로 황금 사과 사건이 있던 날 결혼식을 올린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였습니다.
잠시 아킬레우스 이야기를 하자면
그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주 아름다운 여신이었는데요.
그 미모가 뛰어나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구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신들의 예언자인 프로메테우스가 예언하기를
“테티스가 낳은 자식은 무조건 아버지보다 위대하다.” 라는 예언을 했었죠.
자신보다 잘난 자식에게는 위협을 느끼는 제우스는
신과 인간의 자식이라면 괜찮다 싶어서
테티스를 인간인 펠레우스와 결혼시키는데요.
이렇게 해서 아킬레우스가 태어났고
어머니는 자식을 불사신으로 만들고 싶어해서
저승을 흐르는 스틱스 강에 가서 무적으로 만들어 버렸죠.
이때, 물에 담글 때 발뒤꿈치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발뒤꿈치 부분이 약점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발뒤꿈치의 약한 부분인 아킬레스건의 유래가 된 이야기죠.
이제 다시 트로이 전쟁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리스군이 계속 공격을 퍼붓지만
수많은 경험을 지닌 헥토르의 방어 전술로 인해
전쟁은 쉽사리 결판이 나지 않고 9년이나 지속됩니다.
그리스 군에서는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 간에 불화가 있었는데
그 둘의 자존심 대결로 내부에서 단합이 되지 않아서
아킬레우스는 참여하지 않고 뒷짐만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둘의 감정싸움이 정리되고는 아킬레우스가 나서는데요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에게 창을 던지지만
투창은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튕겨나가고
한 수 위였던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의 지휘관 헥토르를 쓰러뜨리게 됩니다.
하지만, 헥토르가 죽고 나서도 트로이의 방어는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고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그리스 측에서는
오디세우스가 한 가지 계책을 냅니다.
커다란 조각상인 목마만 남겨두고, 모두 퇴각하자고 했죠.
트로이군이 멀리서 보고 있으니,
그리스군은 전쟁을 포기한 듯 채비를 갖춰 배를 타고 도망가버리는데요.
승리를 만끽하는 트로이군은 전리품을 챙겨오는데
거대한 목마들을 성안으로 가지고 옵니다.
그런데, 그 목마 안에는 그리스군의 정예병들이 숨어 있었고
이로써 철벽방비였던 트로이성은
성벽 안에서 문이 열리고, 그리스군이 진격하게 된 거죠.
이로써 트로이는 완전히 정복당하게 됩니다.
테티스는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뛰어들 때, 이런 예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전쟁에 뛰어들면, 목숨을 잃지만 이름은 영원할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군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예언처럼, 파리스가 쏜 화살이 약점인 발뒤꿈치에 맞아 죽게 되고
그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남겨지게 됩니다.
오늘은 미케네 문명에 대한 정리와 관련해서
그리스 신화인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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