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2002년, 한국의 정치사에 기록될 만한 해이지요.
노무현 후보는 극적인 역전 끝에 대선후보가 됐고, 후보 단일화 과정의 부침을 거치면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2002년 그 한해는 그야말로 정치적으로는 드라마틱하기 이를 데가 없는 시간들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리고 숨 가쁘게 돌아가던 그 격동의 시간들 속에서 한국 정치는 또 다른 씨앗을 키워냅니다.
바로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이 본격적으로 대중 속에 존재감을 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2002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가 사용해서 크게 화제가 됐던 말입니다.
이 말 한마디는 너무나 울림이 커서였는지 민주노동당의 존재감을 높이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거에서 권영길 후보 옆에 있던 또 다른 한 사람
이 사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좀 멀리 돌아왔지요?
2002년은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켰고, 권영길 후보를 필두로 한 진보정당을 각인시켰지만, 또 한 사람의 이 진보정치인을 대중 앞에 내놓았습니다.
제가 진행했던 대선 직적의 100분 토론에서 그는 처음으로 대중 앞에 토론자로 나섰습니다.
그 날 이후에 때로는 폐부를 찌르고, 때로는 해학으로 치유하는 토론의 새로운 세계를 연 사람.
이 폭염의 더위 속에서 끝없는 인파가 그의 빈소를 찾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게 한 번쯤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그런 언어들.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것은 정치권 안에서 벌어지는 치밀한 모함과 놓으려 하지 않는 특권뿐이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언어 안에 담긴 온기와 위로와 응원의 말을 되살려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겨울 기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그리그 <솔베이지의 노래> 첼로: 모리스 마레샬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의 곡, 솔베이지의 노래.
서글픈 멜로디와 애잔한 가사로 시대를 넘어선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도 이 곡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던 정치인
지난 2005년 그가 대중의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도 바로 이것이었으니까요.
“지금도 첼로를 하십니까?” 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안하죠.
그러나 악기라는 것이 운전처럼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이 여름날이 가고 더 세월이 가서 누군가 지금도 그를 기억하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의 대답도 그럴 것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시사 - 역사 > 손석희앵커브리핑(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7.31(화) '육조지…judge' (0) | 2018.08.01 |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7.30(월)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걸림돌, 그가 여기 있었다' (0) | 2018.07.31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7.25(수) '경비실에 에어컨 달지 말아주십시오' (0) | 2018.07.26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7.24(화) '비통한 자들의 민주주의' (0) | 2018.07.25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7.19(목) '미륵사의 동탑 그리고 서탑' (0) | 2018.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