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걷다가
이것 때문에 발을 헛디디길 바랍니다.
그리고 잠시나마 기억해보길 바랍니다.” -귄터 뎀니히/ 독일 예술가
독일의 예술가 귄터 뎀니히는 멀쩡한 보도블록을 깨고 그 자리에 동판을 박아 넣었습니다.
슈돌퍼슈타인(Stolperstein)
걸려 넘어지다(stolpern)+돌(stein)
슈돌퍼슈타인, 즉 걸림돌이라 이름 붙여진 그 동판은 독일은 물론 폴란드 헝가리 등 나치에게 희생된 사람이 살았던 장소에 설치된 추모비입니다.
희생자의 이름과 살해된 날이 새겨져 비극을 증언하고 있지요.
도시 곳곳에 설치된 그 걸림돌은 불편했으나
사람들은 불편하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무심코 발을 디디는 순간
떠올리게 되는 과거.
파괴되어 사라진 삶이었지만 사람들은 그 비극을 일상처럼 마주하며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복원을 마친 이른바 ‘고종의 길’이 며칠 후면 세상에 공개됩니다.
물론 되살리고 싶은 과거는 아닙니다.
한 나라의 국왕이 깊은 밤 남의 나라 즉,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을 나갔던 치욕의 역사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러시아공사관까지 이어지는 총 120m의 그 길은
한 걸음 한 걸음 수치스러움으로 얼룩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되돌아보기조차 싫었던 것일까
‘최종적이고 불가역’ 이라던 한일 간의 합의
그것이 과거를 잊고자 함도 아니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도 아니라면 그 최종과 불가역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곱씹어보기도 전에
그 시절의 대법원은 일본을 향한 피해자들의 소송마저 무력화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권력에게 피해자들은 묻어버려야 할 ‘걸림돌’이었을까.
깊은 밤, 숨죽인 임금의 어가가 지나갔을 ‘고종의 길’과
정부가 돌이킬 수 없이 최종적으로 잊고 싶어 했으며 법원이 가로막고 싶어 했던 사람들
유럽의 거리 곳곳 나치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걸림돌 위에는 하나같이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가 여기 있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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