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24)

[신박한깨달음] 우주 만물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마음이 곧 모든 물질의 매트릭스이다 |디바인 매트릭스

Buddhastudy 2024. 6. 25. 18:57

 

 

우주는 약간의 물질과 대부분의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빈 공간이

말 그대로 단순한 빈 공간이냐

아니면 물질들을 연결하는 어떤 매질로 이루어져 있느냐 하는 것은

오랫동안 과학적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양자 이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막스 플랑크는

고대인들이 에테르라고 불렀던 이 매질을 매트릭스라 칭했고

행성과 생명체의 DNA를 비롯해

우주만물 모든 것이 탄생한 곳이 매트릭스라고 선언함으로써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디바인 매트릭스>라는 책의 저자인 그렉 브레이드는

우주의 모든 것을 잇는 근원적 에너지 망과

모든 것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에너지장의 존재를 20년간 연구한 후

그것을 디바인 매트릭스라고 명명했다.

 

디바인 매트릭스는

우주 만물이 시작되고

순수 에너지가 존재하는 곳이다.

 

오늘은 우주적 힘의 원리에 대해 양자물리학적 해석을 시도한 책

<디바인 매트릭스>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텅 빈 공간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봄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일어나게 만드는 것은

더 높거나 더 깊은 층위의 우주라고 믿었다.

 

우리의 물리적 세계는 현실의 보다 미묘한

층위들로 인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봄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가

더 거대한 우주 질서의 표현물들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둘을 감추어진 세계와 드러난 세계라고 이름 붙여 구분했는데

바위, 바다, 동물, 사람 등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은

우주의 드러난 세계에 속한다.

 

하지만 뚜렷이 구분되어 보일지라도

사실 이들은

우주의 보다 높은 층위에서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단지 우리가 속한 우주의 층위에서는

그러한 연결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서로 다른 별개의 존재로 보이는 것들이

실상은 보다 큰 우주의 일부인데

이 우주가 바로 감추어진 세계이다.

 

1970년대의 봄은

우주가 서로 다른 존재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통일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보다 생생한 비유를 들었다.

 

창조계의 상호 연관성을 깊이 연구한 결과

그는 이 세계가 거대한 우주 홀로그램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홀로그램 속에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부분에는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그 물체의 전체성이 담겨 있다.

 

인간의 몸이야말로 홀로그램의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신체의 어느 부위를 보든

DNA는 똑같은 유전자 코드를 갖고 있다.

머리카락이나 혈액 등 어디에서 채취하더라도

거기에는 DNA의 부분이 아닌 전체가 담겨 있다.

 

우주는 감추어진 세계에서 드러난 세계로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보이는 세계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창조의 역동적 흐름을 빚어낸다.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지혜 전통들에 따르면

[디바인 매트릭스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감정의 언어]이다.

 

양자역학의 아버지인 막스 플랑크는

모든 물질은 어떤 힘에 기대어서만 발생하고 또 존재한다.

이러한 힘의 바탕에는

의식적이고 지적인 마음이 분명 존재한다.

이 마음이 곧 모든 물질의 매트릭스이다라고 했다.

 

현대 과학은 우리가 어떤 감정을 겪을 때마다

우리의 신체와 호르몬 등이 화학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사랑, 용서와 같은 긍정적 감정과

증오, 질투 같은 부정적 감정을 통해

우리는 매 순간 우리 존재를 확인하거나

부정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감정은 우리 신체 내부뿐만 아니라

우리 신체 외부의 양자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마디로 디바인 매트릭스는

만물 사이사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덮고 있는

우주의 담요라고 할 수 있다.

 

 

--우주 만물을 연결하고 있는 에너지장

 

우주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호 연결성을 의식적으로 이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인간의 안에는 전체성이 존재하며

이 덕분에 우리는 원자, , 심지어 생명체의 DNA에 이르기까지

우주 만물을 창조하는 힘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소한 문제가 있다.

이러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능력을 잠에서 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 비결은

세상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시각을

살짝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우주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일부임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겪는 모든 것과

우리 자신이 하나임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그러한 연결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만물을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로 인해

우리가 과거에 알고 있던 시간과 공간의 법칙을

깨뜨리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빛의 입자는 동시에 두 곳에

그것도 수 킬로미터 떨어진 상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아인슈타인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했지만

우리 몸의 DNA에서부터 세상 만물의 원자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물질은 그 이상으로 빨리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몇몇 실험에서는 데이터가

원래 지점에서 출발하기도 전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이는 우리가 기존의 물리 법칙에

제한받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여행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은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상상력과 감성이 결합되면

그 가능성에는 생명이 부여되어 현실화 될 수 있게 된다.

 

윌리엄 블레이크라는 시인은

인간은 곧 상상 자체이며,

인간의 영원한 몸은 상상, 곧 신 자체이다라고 했다.

 

현대과학의 아버지인 아이작 뉴턴은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투명 물질을 [에테르]라고 칭했는데,

빛이 텅 비어 보이는 우주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에테르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아인슈타인 역시 물리 법칙이 존재하기 위해

에테르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에테르가 없는 공간에서는 빛의 전파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기준이 존재할 수조차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에테르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에테르가 일반적인 의미의

에너지가 아닐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현대의 실험들이 장의 존재를 계속 입증할지라도

에테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단어를 언급하기만 해도

과학계는 사이비 과학자나 헛소리라는 말을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태초 이전의 힘

 

때는 1997, 스위스 제네바 대학에서는 하나의 광양자를

똑같은 특성을 지닌 2개의 쌍둥이 입자로 나누었다.

특별히 고안된 기계를 이용해

두 입자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발사했는데

광섬유 가닥이 끝나는 곳에서

쌍둥이 입자는

동일한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임의로 선택해

나아갈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었다.

 

이 실험에서 흥미로운 점은

두 입자가 선택을 해야 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그들 모두가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똑같은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고전물리학에 따르면

쌍둥이 입자는 분리되어 있기에 서로 소통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행동했는데

물리학자들은 이 신비로운 연결을 [양자 얽킴]이라고 이름 붙였다.

 

얽혀 있는 양자들은 마치

하나의 존재처럼 행동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물리적 물체들이 떨어져 있으면

모든 의미에서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은

우리의 그런 믿음이 아주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빅뱅이 일어나기 전 우주의 모든 물질은

아주 좁은 공간 안에 압축되어 있었다.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빽빽이 들어찬 물질들은

실제로 서로 결합되어 있었다.

 

하지만 빅뱅으로 우주가 확장하면서

물질 입자들이 갈가리 찢겨 더없이 넓은 공간으로 흩어진 것이다.

 

제네바 대학 실험은

두 물질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한때 결합되어 있었다면

언제나 이어져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렇게 서로를 이어주는 에너지가

바로 막스 플랑크가 말한 [만물의 매트릭스]이다.

 

과학계와 종교계가 뭐라고 정의하든

어떤 힘, 어떤 장, 어떤 신성한 존재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7천 년 전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베다>라는 경전에는

태초 이전에 힘에 대한 구절이 있다.

브라만이라고 불리는 이 힘은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있는 태어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 디바인 매트릭스는

다른 모든 힘, 이전의 힘이다.

또한 우주를 담는 그릇이며

물리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설계도이다.

 

디바인 매트릭스는 우주의 재료인 만큼

우주가 창조된 이후 줄곧 존재해 온 것이 당연하다.

 

물리학자 존 휠러는

우리가 의식 자체에 의해

실제로 창조된 세상에 살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휠러는 이를 참여하는 우주라고 불렀다.

 

이에 따르면

그 어느 시간과 공간에도

관찰자가 없는 우주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우주의 건축 재료 자체가 바로

참여하는 관찰자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휠러는 양자이론의 핵심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어떤 자연 현상도 관찰되기 전까지는 현상일 수 없다.”

 

 

--가능성은 여럿이지만 현실은 하나뿐

 

우리 인간은

우주를 바라보는 자그마한 일부인 동시에

우주를 만들어가는 일부이다.

 

만약 우리의 의식이 우주를 만드는 것이라면

우리의 우주는 우리 의식의 결과이다.

 

참여하는 우주에서 의식을 집중하는 행위,

, 어딘가를 바라보며 관찰하는 행위는

곧 우주 자체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세계를 관찰하고 연구한다.

우리가 바로 막스 플랑크가 말한 마음인 것이다.

 

과학만으로는 우주의 신비를 영원히 밝히지 못할 것이다.

양자계를 아무리 깊이 파고들고

드넓은 우주를 탐험하더라도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기대를 품고 바라보는 우리의 행위는

우리가 볼 무엇인가를 창조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나, 우리가 하는 일 모두는

절대적으로 우리 의식의 산물이다.

이러한 이해를 기초로 상상의 힘을 발휘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디바인 매트릭스는 우주 전체를 담는 그릇이자

우리 의식으로 빚어진 그릇이기에

이 그릇 밖에서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

 

결과를 향해 노력하는 것과

결과를 성취한 것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것 사이에는

미묘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우리는 꿈을 이룬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꿈을 향해 다가가는 상태에 있다.

 

소망을 달성한 모습을 그리며

이미 소망을 달성했다고 생각해보라.

목표를 이루는 어려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게 아니라

아직 성공하기도 전에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이

삶에서 일어나는 일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째서일까?

 

예를 들어

세상이 세계대전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정말로 전쟁이 일어나야만 하는 것일까?

 

다양한 가능성 중 어느 것이 현실이 될지는

우리의 의식과 관찰 행위로 결정되는 듯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관심을 주는 가능성이

우리 세계에 현실이 되는 것이다.

 

디바인 매트릭스가 인지하는 언어가

감정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무 느낌이나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이 사람의 감정과 저 사람의 전혀 다른 감정이

얽히고설켜 세상은 온통 뒤죽박죽되고 말 것이다.

 

물리학자 아미트 고스와미가 말했듯이

양자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의식 상태로는 부족하고

비범한 의식 상태가 되어야 한다.

 

현대적인 표현을 쓰자면

에고의 기반을 두지 않은 마음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상상, 믿음, 치유, 평화를

현재의 현실로 만드는 가장 큰 비결은

그 선택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즉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한다든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내지 말고

기도에 임해야 한다.

 

느낌이 바로 우리가 선택한 방법이기에

우리가 항상 느끼고 있다면

우리는 항상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어딘가에는 평화가 있기 마련이므로

확신을 갖고 세계 평화에 대해 늘 감사함을 느끼자.

 

우리는 매일 어느 정도씩 치유되고 새로워짐으로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건강에 대해

늘 감사함을 느껴보자.

 

고대의 영적 전통들이 암시하듯이

우리의 깊은 믿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우리의 가장 큰 감옥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감옥에 갇힐 수도 있고

자유로울 수도 있는데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