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는 정말 답하기가 어려워요. 왜 어려우냐 하면, 분명히 이분들도 지금 악연이라고 생각하지만 처음에 만났을 때는 좋았을 것 같아요. 안 그런 가요? 그래서 “너 없이는 못살아. 너와 함께 있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을 가지고 아마 새끼손가락을 걸었을 거고, 그것이 진행이 되어져서 “평생 싸우지 말고 살자.”라는 마음으로 출발했을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처음에 할 때 들은 얘기가 있어요. 주례사를.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싸우재요? 행복하게 살재요? 행복하게 살자고 출발을 했어요. 그런데 이 세상에 너 없이 못살 것처럼 시작했던 그 결혼이 몇 년 살고 나니까 뒤통수만 쳐다봐도 열 받는데요. 그래서 세상에 ‘너 없이 못 살겠다.’고 시작한 게 ‘너만 없으면 살겠다.’고 바뀐 이 부분을 보면 분명 이 세상의 삶은 영원하지 않은 게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느냐? 아니요. 다 그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참고 사는 거죠. 그래서 이 세상의 삶의 목표가 행복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행복이라는 복을 짓고 온 것이 아니고 업을 갖고 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우리가 사는 세계를 뭐라고 말씀하셨냐하면 감인(달 감, 참을 인)의 땅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참는 것을 달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삶이 우리의 삶인 것이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고해의 중생이다. 우리는 고통의 바다에 떨어져 사는 중생이다. 그 모진 풍파를 견뎌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이 우리 삶인 것이다.
여러분 흔히 현재 부부지간에 딱 맞아 사람이 몇 프로나 될까요? 나는 그런 세상이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살고 있잖아. 그런 세상은 없어요. 맞춰 사는 겁니다. 아니 한 어머니 뱃속에서 같은 문화 속에서 수십 년을 같이 살아온 형제인데도 싸울 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어요. 한 어머니 뱃속에서 한 어머니 가르침을 통해서 살아온 우리들도 가끔은 안 맞을 때가 있는데, 구구각각 딴 어머니를 통해서 수십 년을 성장을 하고 그리고 서로 만나서, 소위 부부지간에 어떤 그런 인연을 가지고 사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딱딱 맞아 떨어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연애를 할 때는 좋은 것만 보여주니까 속지만, 붙어 살면 안 좋은 것도 보여주고 살다보니까, 안 맞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요? 당연하듯이 참고 살아야 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삶은 다 변하는 거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변하지 않기를 바라잖아요. 딴 놈은 다 변해도 내 신랑은 변했으면 안 변했으면 좋겠어요? 안 변했으면 좋겠어.
그런데 남편에게만 변하지 말라고 강조를 해놓고 저는 변했어? 안 변했어? 저는 변해놓고 왜 상대방은 변하지 말라는 거라. 서로가 변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부족한 부분을 맞추려고 애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저한테 엄청난 숙제를 하나 물었는데, 계속 같이 살까요? 헤어질까요? 이래도 병이고 저래도 병이에요.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야 될 것이 뭐냐 하면 옷깃만 스쳐도 500생의 인연이 있어야 옷깃이 스친다고 그랬어요.
옷깃만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연도 500생이라고 그랬어요. 부부의 인연은 몇 년인지 알아요? 8천겁을 지내야 부부의 인연을 만날 수 있어요. 그냥 500생이 아니고 8천겁이야. 그럼 겁이라고 하는 것은 뭐로 설명을 해야 되냐 하면 사방 30리가 되는 바윗돌을, 얼마나 큰 바위이겠어요. 바윗돌이 30리가 되는 사방의 바윗돌을 저 천상에 사는 선녀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 고운 옷자락으로 벽화 같은 데 보면 비천상이 있잖아요. 비천이라고 하는 것이 선녀거든요.
그 고운 옷자락으로 3년에 한번 스치고 간다고 그러는 거예요. 3년에 한번씩. 그 바윗돌이 다 닳아 없어졌을 때가 한 겁이야. 그러기를 8천겁이 지나야 부부가 하나 되는 거야. 그러니까 이 부부가 만난 것이 이미 8천겁의 인연을 통해서 만났는데 조금 싫다고 돌아서면 그 업장 소멸이 다 된 거에요? 안 된 거예요? 안 된 거예요.
그래서 이번 생에 싫다고 돌아서면 다음 생에 또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아. 왜? 업은 녹여야 되니까. 관계라고 하는 것은 녹여야 되는 거 아닙니까? 얼음처럼 얼은 그 관계를 녹여야 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냥 바꾸려고 하지 말고 마음을 좀 바꿔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시겠죠.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상대방 마음을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을 바꾸기란 어렵지 않아요. 내 마음을 바꾸기가 쉬운 거지, 상대방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제가 구인사에 있다 보면 찾아오신 분들이 좋은 일을 가지고 온 분들이 별로 없어요. 꼭 힘들 때 찾아오지 않습니까.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들도 좋은 일 생기면 “아, 부처님한테 가서 일러야지.” 그래요? 안 그래요? 좋은 일이 생기면 본인이 잘나서 잘된 줄 알아요.
물론 오늘처럼 합격을 하고 난 이후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온 친구도 있지만, 참 그러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대게 보면 우울한 일,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부처님 아닙니까? 그렇죠? 그때 와서 눈물 콧물 빼고 “부처님, 나 좀 봐 달라.”고 축원 드리는 경우도 있고, 또 아주 귀한 일이 있을 때 그 일이 정말 진정 잘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을 때 우리가 부처님을 찾아오지 않습니까?
가끔은 그렇듯이 이혼 때문에 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언젠가 어떤 분이 저를 찾아와서 남편이 틈만 나면 자기를 때린 데요. 그러니까 너무너무 맞고 사는 것이 괴로워서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저한테 왔어요. 그러 길래 제가 경험이 없으니까 뭐라고 그랬냐하면 “그 더러운 놈하고 왜 사냐? 살지 마라.” 내가 그래버렸어요.
그랬더니 그 분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 알았다."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가서 이혼을 해갖고 왔어요. 이혼을 했다고. 이혼을 하고 와서 너무 좋다는 거예요. 지금 너무너무 기분 좋게, 때리는 놈도 없고, 내가 거기 뒤치다꺼리 할 일도 없고 너무너무 자유롭고 좋다는 거예요.
몇 년 지나서 그분이 오셔서 하는 얘기가 “스님, 스님, 너무 외로워주겠다.”는 거야. 그냥 옛날에 참고 살 건데, 내가 그것을 참지 못한 게 조금 한이라는 쪽으로 생각을 하면서 은근히 누구 원망을 해? 내 원망을 하더라고. “아, 스님 그때 말이야 좀 참고 살라고 이야기를 하지.” 그래서 내가 미안하다고 그랬어요. 내가 스님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렇게 답을 했다고.
그리고 난 다음에 한참 지나고 난 이후에 너무 외로우니까 또 한 놈을 만나서 왔어요. 이놈은 안 때릴 것 같데요. 그래서 내가 속으로 그랬어. 겉으로는 못하고, “처음부터 때리면서 같이 살자는 놈이 있겠냐. 두고 봐야 알지.”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난 이후에 또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왔어요.
문제는 뭐냐 하면 상대를 아무리 바꾸어도 내 마음의 근본을 바꾸지 않는 한은 갈등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고로 상대를 바꾸려 애쓰는 것 보다는 항상 나의 문제는 없는지 점검해 보고, 서로 타협이 되도록 하는 공간이 부처님 도량이잖아요. 절에 오셔서 주지스님과 상담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래서 혼자 하지 말고 남편과 함께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대게 보면 본인은 기도를 열심히 해놓고 상대방이 마음을 바꾸어 달라고 그러는데, 어떻게 보면 동기유발이 필요하죠. 그래서 꼬시고 꼬셔서라도 절에 와서 큰스님 법문 듣고 상담도 하고, 이렇게 차담도 하고, 그리고 주변 사람 이야기도 듣고, 그리고 자꾸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부르고 노력하다보면, 상대도 달라지고 나도 달라져서 화합을 이루어갈 수 있는 좋은 분위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모쪼록 부처님 진리를 통해서 여러분이 부처님과 하나 된 마음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서 편안한 가정을 이루어갈 수 있으면 합니다. 다시는 안 먹겠다고 침 뱉고 돌아선 분을 우리는 언젠간 또 만나게 되어있습니다. 이게 인과고 이게 인연입니다. 인연을 아주 소중히 여기셔서
이번 생에
죽고 못 살도록
다 좋아하고 난 다음에 죽으면
다음 생에 안 만나요.
그런데 이번 생에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못 잊는다고
이갈고 죽으면요,
다음 생에 또 만나요.
그러니까 절대 안 만나고 싶거든
좋게 살아라.
그래서 모든 업장을 녹여갈 수 있는 지혜로운 불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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