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정상적인 상황에서 생각-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살펴보았으니
이제는 그 다음 과제, 즉 죽음을 맞는 순간 생각-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별 어려움 없이 추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을 이해함으로써만 우리는 심령적 차원에서 죽음 뒤에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밖의 다른 어떤 방법에 의해서도 재생은 이해될 수 없다.
죽음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
인간은 정신·물리적 유기체 즉 마음과 몸의 결합체이다.
몸과 마음은 꽃과 향기처럼 서로 긴밀한 결합상태에서 공존한다.
몸은 꽃과 같고 마음은 향기와 같으며 죽음은 공존하던 양쪽의 헤어짐에 불과하다.
임종의 순간 사람의 몸과 마음 명색은 무력하다.
죽음을 맞기 직전까지 모든 면에서 강했을지 몰라도 바로 죽음의 순간에는 힘이 없다.
왜냐하면 죽음의 순간부터 역산한 17번째 심찰나부터 새로운 육체적 기능 작용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자동차 운전자가 차를 멈추기 직전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어내 엔진에 더 이상 추진력이 주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업에서 생겨나는 육체적 속성'들이 더는 일어나지 못하고,
그 심찰나 전 단계까지 존재했던 육체적 속성들은 숨지는 마음 찰나까지만 존속하다가 마침내 멈춘다.
더 이상 새로운 육체적 속성들이 재생되지 않기 때문에 전체 과정은 약해지고 또 약해진다. 그것은 기름 등잔에 기름이 떨어지자 사그라지는 불꽃과 같다.
마음과 몸의 결합체가 결합체로서 살아있기를 멈춘다고 해서 몸이나 마음이 파괴되거나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결합했던 부분들이 제각각 한 조건 상태로부터 다른 조건 상태로 시시각각 간단없이 변화해 나아간다.
비록 이제는 두 개의 과정이 제각각 따로이기는 하지만. 육체를 구성했던 부분은 한때 사람의 몸에 입혀졌었지만 이제는 버려진 낡은 옷처럼
저 혼자만의 변화과정 즉 천천히 부패되는 과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결코 완전히 소멸될 수는 없다.
물질은 에너지이며 없어지거나 파괴될 수 없다.
앞의 장에서 언급한 대로 육체적 성분들은 그를 구성해 온 원소들,
즉 어떤 것은 기체로서 ‘공기’로, 어떤 것은 유동체로서 ‘물’로 그리고 나머지들은 광물로서 ‘흙’으로 변화한다.
이 원소들 역시 파괴되거나 없어질 수 없고 단지 그들의 형태만 바뀔 뿐이다.
인간의 육체 부분에 관한 한 변화의 과정은 이런 방식으로 지속된다.
죽음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
그러면 정신 부분은 어떠한가?
정신 쪽 역시 육체 쪽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육체와는 관련이 없지만 한 조건 상태로부터 다른 조건 상태로 끊임없는 변화를 계속해 나간다.
생각은 물질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이므로 파괴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
앞에서 우리는 마음이 영원한 것도 고정된 것도 아님을 알았고
하나의 단일체가 아니라 빠른 속도로 생각이 생각을 뒤따르는,
그래서 영원하고 고정된 것인 듯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생각의 연속적 흐름임을 보았다.
죽음은 이 연속적 흐름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며 이 과정을 계속 진행시키는 데 장애가 되지도 않는다.
생각생각이 이어져 가는 법칙은 죽음과 더불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임종의 마지막 생각-과정 중 ‘죽음직전 생각-촉진 마음’이라는 마지막 심찰나는
비록 힘이 없어 혼자서는 생각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강력한 잠재력을 끌어낸다.
왜냐하면 죽어가는 마음의 문턱을 들어서는 세 가지 강력한 생각-대상 중 하나가 그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세 가지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가 나타남
그때 임종자에게는 눈앞에 나타나는 이 세 종류의 생각-대상에 대해 저항할만한 힘이 없다. 강력하게 나타나는 이 생각-대상들은 틀림없는 죽음의 표시이다.
임종자의 마음은 비록 생각을 일으킬 힘이 없지만,
이들 세 가지 강력한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 중 하나가 나타남으로써
강력하게 떠밀리거나 혹은 충동을 얻게 되어 다른 생각이 일어나는 데에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이어서 일어나는 생각이 재생의식 혹은 재연결의식이다.
임종시 생각-과정은 반드시 일어난다
죽음을 맞고 있는 사람은 옆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런 의식도 없는 것 같지만
그 내부에서는 이 마지막 정신적 과정이 엄연히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은 죽음을 당하는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갑작스럽고 뜻밖에 닥친 죽음일지라도 임종의 찰나에는 반드시 일어난다.
주석서에 따르면 사람을 갑자기 물에 빠뜨려 직사시킬 경우에도
역시 죽음직전에는 이 마지막 생각-과정이 작용할 찰나가 있다.
모루 위의 파리가 망치에 맞아 순식간에 뭉개지는 경우도
죽음직전 마지막 생각-과정이 작용할 틈새는 있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생각은 에너지이다.
그것도 창조적인 에너지이다.
따라서 어떤 생각이 충분히 강력할 경우에는 어떤 특정상황하에서 능히 창조적 원인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아니라도 앞에서 언급한, 그리고 후에 충분히 설명하게 될 강력한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 중 하나로부터
그 힘을 끌어내는 마지막의 생각-촉진의 마음은
적합한 장소에서 재생의 혹은 재연결의식을 어렵지 않게 일으킬 수 있다.
재생산하는 업
여기에서 언급해 둘 것은 임종 때 나타나는 강력한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가
다름 아닌 임종자가 평생 동안 한 행위들에 의해 조건지어 진다는 점이다.
생각-대상들이란 곧 그 자신이 지금까지 행했던 행위들의 반사 영상이고
재생을 뒷받침해 주는 것도 죽어가는 사람의 과거 행위들이기 때문에
이 중요한 시점에 작용하는 특정 형태의 업은 말 그대로 재생산적인 업이다.
이제 임종자의 이 마지막 생각-과정의 추이를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때의 생각-과정에는 앞 장에서 검토해 본 평상시 생각-과정에서의 여러 단계가 다 포함되지는 않는다.
임종시 생각-과정의 순서
1. 과거의 무의식
2. 무의식의 동요
3. 무의식의 중단
4. 뜻의 문을 향함
5. 죽음 직전의 생각 촉진 혹은 마지막 생각-촉진의 마음
6. 경험의 등록
7. 숨지는 마음
8. 다음 생에서 일어나는 재연결의식 혹은 재생의식
1. 과거의 무의식
정상적 생각과정을 추적했을 때 했던 것과 동일한 설명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죽음의과정이 의식단계의 마음에서 가동하기 바로 직전 단계부터 추적을 시작하자.
그것은 무의식 상태의 마음으로서, 수면 상태이거나 혹은 의식단계 마음에서 하나의 의식적 생각-과정이 멈춘 뒤 다음 것이 시작되기 직전의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에서는 아직 생각-과정이 실제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추적을 시작하는 기점으로 삼기 위해 첫째 단계로 간주하는 것이다.
2. 무의식의 동요 3. 무의식의 중단
평상시의 생각-과정에서 이 두 단계에 대해 했던 설명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여기서도 역시 앞의 단계 즉 무의식의 동요단계는
어떤 자극이 임종자의 마음속에서 흐르는 무의식의 흐름을 교란시키거나 동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데 그친다.
그 다음 단계 즉 무의식의 중단단계에서는 자극이 지속됨에 따라 무의식의 흐름이 완전히 저지당한다.
죽어가는 사람은 아직 작용하고 있는 자극을 인식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이 자극은 다름 아닌 바로 세 가지 강력한 생각-대상들, 혹은 죽음의 표시 중 하나이다.
4. 뜻의 문을 향함
정상적인 생각-과정을 살필 때에 ‘다섯 감각의 문을 향함’이라는 단계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이 단계는 듣고,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는 다섯 감각 통로 중의 어느 하나를 통하여 자극이 인식될 수 있을 때 일어난다.
반면 임종시 생각-과정의 경우, 다섯 감각의 문을 향하는 단계는 대개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임종자의 무의식을 교란시키는 자극은 외적인 것이 아니고 생각이나 기억 등, 본성적으로 내적인 것이며 뜻이라는 통로를 통하여서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계를 여기서는 ‘뜻의 문을 향함’이라 부른다.
5. 죽음 직전의 생각촉진 혹은 마지막 생각촉진의 마음
이제 생각촉진이라고 하는 심리적으로 중요한 단계가 온다.
평상시의 생각-과정을 살피면서 이 단계에 대해 언급한 모든 것이 여기에도 적용되지만
임종이 박두했기 때문에 이 단계가 일곱 심찰나를 다 채우지 않고 다섯 찰나만 지속한다는 점이 다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임종을 맞은 사람은 무력하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종류의 강력한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 중 하나가 나타나 무의식의 조용한 흐름을 방해하고 이를 가라앉게 하여 의식단계의 마음이 일어나게끔 유도한다.
이렇게 일어난 의식과정이 방금 기술한 무의식의 동요, 무의식의 정지, 그리고 뜻의 문을 향하는 단계를 거친 다음
생각-촉진이라는 중요한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제 무능력했던 의식단계의 마음이, 자신을 일깨운 자극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게 되었다.
강력한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에 대한 설명
지금까지 임종자의 마음 문턱에 나타난다고 설명해 온 세 가지 자극은 하나같이 강력한 것이다.
이때의 생각-대상은 죽음직전 생각-촉진 마음의 생각-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다음 생의 재연결의식의 생각-대상이 되며, 또한 다음 생의 무의식단계 마음의 생각-대상이 된다.
이 가운데 나중 두 가지의 식의 상태는 의식단계의 것이 아니고 무의식단계의 것이지만
역시 존재하기 위해서는 생각-대상을 필요로 한다.
그들은 앞 생의 최종 생각-촉진 때에 품었던 특정의 생각-대상, 즉 세 가지 죽음의 표시 중 하나를 그들의 생각-대상으로 취한다.
그러므로 죽기 전 마지막 의식단계의 생각이 취했던 생각대상이 새로운 생에서의 첫 생각의 생각대상이 된다.
그렇게 하여 삶의 과정은 계속 이어지게 되니
한 생각은 다음 생각을 낳고, 하나의 삶이 다른 생을 낳으며 계속된다.
여기서 잊지 말 것은 생각이 에너지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없어지거나 파괴될 수 없다.
생각은 계속 결과를 낳으며, 그 결과들은 다시 그 자신의 결과들을 낳게 되는데 그것이 반드시 동일한 차원의 계에 국한되어야 할 까닭은 물론 없다.
이리하여 존재의 연속성은 유지된다.
임종자의 무의식단계를 교란시키며 최종 단계에 나타나는 생각-대상은 우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도, 임종자가 선택한 것도 아니다.
이 최종 단계에서는 자기 스스로 생각을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다름 아닌 오직 죽어가는 사람 자신이 평생 지은 행위에 의해서 조건지어질 뿐이다.
재생산 업의 작용에 의해 임종자가 과거에 행한 어떤 강력한 행위의 기억이 마음에 솟구쳐 올라 마지막 생각 즉, 죽음직전 생각-촉진 마음의 생각-대상을 구성한다.
그 뒤에 이어 일어나는 생각은 이 마지막 생각의 성질에 따라서 결정된다.
의식상태에서건 무의식상태에서건 어떤 생각도 생각-대상 없이는 기능할 수 없다.
죽음의 단계에서 일어나는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는 다음 세 가지 가운데 하나이다.
(1) 업
아무리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고, 또 죽는 찰나 아무리 주변 환경을 의식하지 못한다 해도 죽음직전에 행한 중요하고 비중 있는 행위에 대한 기억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그에게 다가온다.
그런 행위, 즉 죽음이 다가왔을 때 행하게 된 행위는 아싼나 깜마라고 한다.
죽음의 시간은 미리 알 수 없으므로, 대부분의 경우 죽음이 임박했을 때 아주 선한 행위를 행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죽음직전의 두드러진 선행이나 악행이 없을 경우에는 과거에 습관적으로 해온 행위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 행위가 아찐나 깜마, 즉 몸에 밴 행위 혹은 습관적 행위라는 것이다.
죽음직전의 행위 혹은 습관적 행위를 이행할 때 경험했던 도덕적 혹은 비도덕적 의식이 바야흐로 죽음의 찰나 의식에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2) 업의 상징
때로는 임종자에게 나타나는 기억이 앞서와 같이 자신이 지은 행위를 기억하는 형태로서가 아니라
그가 행한 행위를 상징하는 어떤 형상을 기억하는 형태로 떠오를 수도 있다
그래서 백정의 눈앞에는 칼이, 술고래 눈에는 술병이, 순례자에게는 사원이 보이는 수가 있다.
이것들은 마음의 눈을 통하여 보여진다.
즉 육체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통로를 통하여 보여진다.
(3) 재생의 상징
임종자의 마지막 생각-대상은 그가 다시 태어나게 될 곳에 대한 어떤 징후나 예측일 수 있다.
그러므로 지옥에 태어나게 되어 있는 사람의 마음의 눈에는 불이 나타날 수 있으며
천신의 세계로 갈 사람은 아름다운 꽃이나 궁전을 볼 수 있다.
W. T. 에반스-웬츠 박사는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임종 시 자신의 장래 운명을 예고하는 환상을 본 사람들의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스리랑카나 그 밖의 지역에서 임종자가 자신이 경험한 그런 환상에 관해 간혹 언급했다는 사실들은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스리랑카 칼루따라에서 죽어가는 열두 살 소녀가
슬픔에 잠겨 침대맡에 서 있는 부모를 향해
화려하게 장식한 꽃마차가 자기를 데리러 와 있다고 즐거운 듯이 말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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