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미타부처님은 무량수무량광을 나타내는 아미타유스와 아미타하라고 하는 이 음석이 그러니까 음사가 들어온 것이 우리가 표현한 것이 뭐냐 하면 쉽게 가장 쉽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부타불을 부르면 딱 생각해야 돼요. 나한테는 한량없는 광명과 한량없는 생명이 내게 있다는 거에요. 요렇게 기억을 해 두시면 앞으로 공부하시는데 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옛날 경전 안에 비하경이라고 하는 경이 있는데 보면, 이게 잘 들어나 있지 않은 경전인데, 과거 지나간 겁에, 겁이라고 하는 거는 오랜 시간을 얘기하죠. 신재량이라하는 세계가 있는데 그때 그 나라에 무쟁념이란 전륜성왕이라고 하는 문헌에서 다 확인 못 한, 제가 다 확인 못 한 부처님 이름입니다. 그런데 드러나 있는 문헌으로만 들어있어요.
그런데 그때 그 신하 가운데 보해라고 하는 큰 대신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출가하여, 그의 아들이 보해라고 하는 전륜성왕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 중에 출가해서 보장여래가 되셨다는 거에요. 보장여래는 많이 들어보셨죠. 그런데 그 어느 날 무정념 국왕은 보장여래를 청해서 법을 듣는 중에 내가 이제 진실한 보리도를 향하여 성불할 때 내 국토가 청정하여 모든 냄새와 더러운 기운이 없을 뿐 아니라 삼악도도 없고 중생들이 모두 금색이며, 나쁜 일도 없고, 수명이 무량하여 다른 세계국토의 중생들도 내 이름을 듣고 착한 마음의 근본을 닦아서 내 국토에 나기를 원하는 이는 목숨을 마친 뒤 반드시 이곳에 태어나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이 무정념 국왕이 옛날 말로는 전륜성왕이라고 하는 큰 왕이 대왕이다. 황제다. 이렇게 표현한 거죠.
이런 분이 원을 냈어요. 그때 그 대신의 아들이 출가했는데 그분이 보장, 깨달음을 얻어서 보장여래라는 분을 얻으셨는데. 그분이 설하기를 뭐라고 설했냐하면, 너는 제일항하사 아승지겁을 지내고, 아승지겁이라는 건 정말로 오래된 45억 년 전 시대를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오랜 시간을 얘기해요. 제2기에 아승지겁에 들어갔을 때에 그 세계를 안락이라고 하고 너는 그때 성불하여 무량수여래가 되리라, 하고 무정념왕이 이렇게 수기를 내려 준거에요. 다음 생에 무량수여래가 될 것이다라고 수기를 내리셨습니다. 그 당시 무정념 전륜성왕에는 네 명의 태자가 있었는데, 제1 태자는 관세음보살, 제2 태자는 대세지보살, 제3 태자는 문수보살이 되고 제4 태자는 보현보살이 되었으며 대신 보해는 석가모니부처님이 되셨다고 이 경에서 설명하고 있어요.
어느 경에? 비화경이라고 하는 경에서 설명한 것을 찾아서 말씀을 드리거든요. 이런 말씀이 문헌적으로 맞느냐? 역사적으로 맞느냐? 이렇게 시비를 할 수가 있거든요. 불경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경전은 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나왔거든요. 그리고 제1집, 2집, 3집, 4집에 걸쳐서 후대에 결집된 경전이거든요. 그래서 여기서 나오는 수많은 이런 이야기들이 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통해서 그의 제자로 제3, 제4를 걸쳐서 만들어진 것이 불경이라고 하는 것이거든요. 그 후 무념무정념 국왕은 3자제, 여래 당시 교시가라고 하는 국왕으로서 다시 태어났어요. 왕이 수기를 받아서 태어나서 왕위를 버리고 출가해서 법장비구가 되셨으며, 48대원의 주인공이신 법장비구가 이 경전 안에 문헌으로 어떻게 볼 수 있느냐 할 때 설명을 드리는 거에요. 안하면 안 될 거 같아서 조금만 정리를 하고 갑니다. 그게 꼭 중요한 것은 아니어도, 보고 가는 거에요.
출가해서 왕위를 버리고 법장비구가 되셨으며 아미타 극토를 건설하겠노라고 원대한 48종의 대원을 세우셨어요. 그게 지금 배우고 있는 경전의 오늘 배울 때는 11번째 12번째를 공부하게 될 내용이라는 거에요.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부처님과의 관계는 경마다 기록이 있는데, 조금씩 서로 달라요. 꼭 그것이 맞다라고 하는 법은 없어요. 그런데 차이는 있는데 그 내용은 거의 똑같다라는 거에요. 그래서 과거 지나간 오랜 겁, 대통지승여래 당시 때 국왕이 제9왕자와 제16왕자로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이 각각 몸으로 받으셨고 법화경에는 과거 이래 밀접한 저 석가모니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과의 과거 전세 인연까지도 해놓으신 것이 법화경에도 살펴볼 수가 있다. 그랬죠.
그래서 아미타불은 그 기원은 처음에는 모두 석가모니부처님이 표현한 것이었지만 후대에 와서 석가모니를 다른 각도에서 영원히 표현하므로 해서 추측되어 이를 보살사상으로 견제해서 설법함으로써 아미타불은 석가모니가 대승불교의 보살의 이상 상으로써 직시 되서 모든 중생을 구원시킬 수 있다라고 하는 원동력이 아미타불이 세상에 출현하시게 돼요. 그게 역사적, 그러니까 현실적에서 입장에서 보면 이런 내용들이 다 누구에서 나왔다? 석가세존께서 설법하신 경전으로 나타난 거죠.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배우고자 하는 것은 그 석가께서 설법하신 아미타경이라고 하는 경을 통해서 다시 살펴보고 있는 거죠.
그래서 아미타불이 아미타불 수행을 하시게 되면, 구원불로, 생명구원의 불로 이렇게 명치 돼 있어요. 구원, 생명구원의 불, 그다음에 뭐죠? 모든 험하고 모든 나쁜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아미타부처님이다. 이렇게. 그래서 이런 경이 나타난 것이 무량수경하고 관무량수경하고 지금 아미타경이라고 하는 경전을 배우게 되요. 지금 하시고 계시는 것이 아마티경이죠. 그러면 좀 내려놓고 하겠습니다. 책을 좀 펴세요. 펴시면, 33쪽으로 들어가시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 보면 48대원이 있습니다. 이게 無三惡趣願무삼악취원. 이렇게 돼 있죠.
그런데 요거를 제 말로써 다시 바꿔 설명 드린 것이 첫 번째 것이 뭐냐 하면 제1번이 신구의 삼업을 새롭게 하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더랬어요. 두 번째 것이 원력으로써 성취하자. 이렇게 돼 있었죠. 제3번은 모든 것은 이미 성취되게 하자. 성취되게 하자. 이랬습니다. 넘기시면 네 번째 시비분별 없는 원력으로써 살아가겠습니다. 시비분별하면 문제가 생겨요. 그다음에 영원한 생명으로써 살겠습니다. 다시 거꾸로 가로 열고 영원한 불성으로 내가 살겠습니다. 이런 제목이었고요.
여섯 번째, 나의 뜻은 곧 뭐죠? 하늘의 뜻을 통한다. 통합니다 하는 요런 제목으로 했었고. 일곱 번째 하늘의 지혜가 열리다. 그래서 일곱 번째 설명을 드렸고, 여덟 번째는 이 마음은 모든 것이 창조하고 있다는, 내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아홉 번째는 이 삶에는 해탈의 자유만이 가득합니다 라고 하는 그런 말이 거기 적어져 있었죠? 그다음에 열 번째는 지금의 생명이 영원한 생명인 것을 압니다. 지금 생명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거에요. 요것도 아무리 몇 번 두 번 세 번 얘기를 해도 가슴에서 느끼셔야 돼. 그런데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저 좀 보세요. 우리가 이런 게 있어요.
애기가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어. 또 병원에 갔는데 몸이 아픈데 기도하고 뭐도 하고 뭐도 하고 했는데 병이 회복이 안 된다는 거에요. 이것은 깊이 좀 생각해 볼 것이 있어요. 그렇게 해도 안 되는 일이 있어요. 기도하면 만사가 다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빛은 아까 무량광이라 그랬죠? 빛은 광대무변하고 자제한 거에요. 이 세상에 빛이라고 하는 것은요, 내가 가장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모든 생명요소인데, 이 생명요소는 그냥 편재돼 있을 뿐이거든요. 자유롭게 있고, 해탈상태로 그대로 있는 것이 뭐라고요? 그게 광명세계에요. 빛의 세계.
그런데 빛은요, 그것이 어떤 명령이나 어떤 생각이나 어떤 것을 주고받고 하는 법이 없어요. 단지 빛은 뭐죠? 우리의 선택의 자유의사를 따라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에요. 빛은 우리의 선택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이 되지, 무량수 무량광의 한량없는 시간도 편재돼 있고, 저 광대무변한 저 많은 생명을 살리는 저 따뜻함의 빛도 편재돼 있는 상태이지, 이것이 내가 주제는 아니라는 거에요. 오직 내가 선택하면 있어요. 절에 다녀서 안 되는 일이 있더라도 절에 안 돼서 안 와서 울고불고 절에 안 와 버리고 이렇게 하시잖아. 그러면 이웃집이 똑같이 뭐가 똑같아. 불교를 배운 사람이나 안 배운 사람이나 무슨 차이가 있어.
기분이 좀 나빠도 기분 좀 싫어도, 진리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진리를 택하고 공부하는 거 아니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이 돼요. 그래서 그러거나 말거나 열한 번째 봅시다. 오늘 열한 번째가 뭐냐 하면 반드시 이른다. 반드시 이른다는 거에요. 멸한다는 거에요. 뭘 멸해요? 제도할 것이 정취. 정정취거든요. 부처의 가각에 이른다는 거에요. 본래 불교의 핵심이 자기라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그럴 때는 육체도 구애받지 않고, 생각에도 구애받지 않고, 또 뭐죠?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또 소리에도 구애받지 않고, 인과관계도 서로 얽히지 않는다는 거에요.
이게 뭐냐 하면 반드시 뭐죠? 멸해요. 제도할 것을 뭐든지 멸해버려요. 그래서 뭐가 생겨요? 정정취가 성취가 된다는 거에요.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정정취라고 하는 말은 본래 나한테 정정취가 본래 없는 것은 절대 생기지 않는다는 거에요. 우리가 부처님을 배우고 부처님을 따르고 부처님을 공부한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이미 불성의 씨앗이 있기 때문에 부처를 말할 수 있을 단계이지. 그렇다. 이걸 정정취라고 그래요. 그래서 반드시 이른다는 거에요. 뭐라고요? 제도할 것은 반드시 멸한다는 거에요. 이걸 보고 요즘 말로 제가 바꾼, 제가 좋아하는 말로, 우리가 매일 매 순간을 뭐죠?
가슴 뛰는 삶을 살으셔야 돼요. 가슴 뛰는 생활을 하셔야 돼. 보통 불교를 공부하지 않는 사람,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요, 황홀한 아침을 전혀 맞이치 못하는 거에요. 여러분들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거에요.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삶을 사는 것은요, 기쁨은커녕, 황홀하지 않는데도 아침을 맞이해요. 좋은 사람이 아닌데도, 관계를 맞이하는 거에요. 마음이 열리지 않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 삶을 사는 거에요. 우리 다 그러고 안 살아요? 나만 그런가.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무미한 것에서 정말로 무미한 삶을 끊임없이 생활을 연속시켜가고 있다는 거에요.
이게 얼마나 미련한 짓이고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육체를 시시하게 여기는 거 절대 아닙니다. 육체는 불성이 깃들어 있는 법당이기 때문에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다 부처의 응신이 거기다 움직여지고 있어요.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것이 없어요. 병드는 거 두려워하고 가난해지는 거 두려워하지 마시고 불행해지는 거 그거 신경 쓸 거 없어요. 정말이에요. 내가 아무리 악써도 이건 되지도 않는 일이거든요. 죽어도 죽어도 자기 생각이 더 옳다고 계속 밀어대는 데는 난들 어떻게 할 길이 없어요. 열 번을 설명해도 제 생각이 옳고, 안 되는 거에요. 이제 보세요.
사람은 즐겁지 않은데도 웃고 살아. 저만 그런가요? 여러분 즐겁지 않은데도 같이 웃어줘야 되잖아. 아닌가? 본질에 닿지 않는데도 우리는 더불어 더불어 사는 이웃 때문에 같이 화를 내 주고 그러잖아. 같이 화를 내고 사는 거에요. 본질하고 화답하지 않는데도 화를 내고 사는 거에요. 묘한 거잖아요. 가슴 뛰지 않는 삶은요 삶이 아니에요. 아침을 황홀하게 맞이하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살아서 눈뜨면 얼마나 행복해. 지금 살고 있으셔야 돼. 지금 우리가 살아 있는 존재에요. 지금 살아있어야 되고. 지금 사랑하고 있어야 되요. 지금. 사랑하려거든 자기 자신이라도 사랑하세요.
그다음에 뭐죠? 웃으셔야 돼요. 이 몸뚱아리 가지고 저도 웃는 거 봐. 남이 그래. 돼지가 웃는다. 살아있어야 돼. 이렇게 웃고. 그러고 나서 레슨이라고 그러거든요? 배워야 돼. 배우셔야 돼요. 우리 지금 학교에 와 있어요. 인생학교에 와 있고, 불교라고 하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그 세계에 여기 들어와 계세요. 더군다나 거기 뭐가 있어요? 아미타경이 거기 있습니다. 아미타경을 만난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복중에 가장 큰 복이라고 여겨도 다르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다른 경전도 똑같은 거지만.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
절망적이면서도 우리는 꾸역꾸역 밥을 먹고요, 으음~ 우리가 생활 속에서요, 병드는 것도 인생의 상실이고요, 상실이라고 그래요. 실패라 그러고, 아픔을 겪는 것도 상실이에요. 괴로워하는 일도 우리는 상실감을 느낌 속에서 우리는 사는 거에요. 실패도 불행도 가난도 다 뭐죠? 나로 비롯해서 일어나는 실망감이라는 거에요. 정확하게 표현하면 실제로 실망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실망감을 느끼고 있을 뿐이라는 거에요. 우리가 잘못됐다라고 생각하는 건, 모자르다고 생각하는 건, 부족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만 그렇게 오온이 그렇게 우리가 몸뚱아리가 그렇게 느껴지고 생각이 그렇게 느껴지고 있을 뿐이지, 그게 실체가 아니라는 거죠.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정말로 정말로,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상실이라고 그렇게 보잖아요. 상실이 이라는 거. 그런데 그보다 더 사람을 상실감으로 몰아가는 것이 어떤 건 줄 아세요? 그건요, 내가 지금 살아있으면서도 그 어떤 것들을 자꾸 죽여가면서 산다는 거에요. 이건 저를 비롯해서 다 똑같이. 저도 때때로 실망감으로써 가득 찬 생활을 보낼 수도 있고, 저도 불안하고 저도 싫어하고 저도 미워하는 이런 실망감을 자기를 지배당하고 있을 때도 있거든요.
그러나 머리 깎은 은혜 공덕으로 부처님 덕으로 큰 스님 덕으로 일체중생의 덕으로 불자님들의 화주시주에 의한 공덕으로 노력해가려고 노력을 하고, 자기 삶에 대해서 매일 매 순간이 가슴 뛰는 삶을 사셔야 돼. 그게 뭐라고 구요? 반드시 멸해요. 뭘 멸해요? 그죠? 나쁜 것은 반드시 제도해서 좋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걸 보고 뭐라고요? 至心滅道願지심멸도원이라고 그러거든요? 至心滅道願지심멸도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걸 시원찮게 생각하고 우리가 삶의 이 낯짝. 이 말도 사용하면 안 되겠다. 귀하게 생각하셔야 돼. 정말로 신비롭게 생각하고 이걸 기적이라고 생각하셔야 돼. 내일 아침부터 일어나실 때마다 황홀하게 좀 태어나세요. 황홀하게. 참여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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