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 중에 하나가 부처님을 공경하고, 부처님께 예경하고, 그리고 법을 전달해주는 스님들께 꼭 마음으로부터 삼보에 예를 다해서 생활을 해야 되겠다 라는 요런 발원이 좀 있으셨으면 참 좋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48대원이라고 하는 것은 법장비구께서 일체중생, 모든 인류중생을 위해서 48대원을 세우셨어요. 그래서 이 48대원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이것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가장 행복한 과정을 얻게 됩니다. 그 문헌적으로나 자료 속에서 찾아 보면은 저 아미타경이라고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내가 부처라고 하는 것을 확인해가는 과정을 설명해 놓은 것이 아미타경이구요,
그래서 불교수행을 한다는 것은 곧 내가 부처님답게 살겠다라고 하는 그런 발원에서 출발이 되거든요. 정말로. 정말로 중생으로 사는게 아니라, 정말로 부처님답게 살다가 가고자 하는 세계를 맞이하겠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였죠. 그죠? 그래서 석가세존 그 당시 이전부터 아미타불의 세계가 형성돼 왔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에서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심중 안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본질 속에서 저 아미타불의 세계가 있다라고 하는 뜻입니다. 다시 크게 설명하면은 불교라고 하는 가르침 속에서 고타마싯달태자의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설명하는 것이 두 가지를 설명하십니다.
네 삶이 참으로 경이롭고, 네 삶이 참으로 미묘하고, 네 삶이 정말로 아름답고, 네 삶이 정말로 행복하다라고 믿고 있는 사람하고, 나한테 무슨 행복이 있어. 이런 게 일 번 얘기죠. 지적이 없다는 거에요. 이게 다 기적이거든요? 오늘 내가 밥 먹을 수 있다는 거, 호흡할 수 있다는 거,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이렇게 차 타고 힘들여서 온 이 자체가 이게 기적이에요. 잘 생각해 보세요. 과거 전세의 인연이 아니면은 어떻게 신경 써서 이 법문 교육받고 수행하는데, 경전 배우는데, 이 어찌 못 올 수 있겠어요. 이렇게 경전을 통해서는 반드시 나를 복되게 하고 지혜롭게 해 주는 거에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자기 자신이 돌아다보기가 참으로 어렵거든요. 지꼴은 절대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남의 꼴은 항상 늘 보이거든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늘 깨우쳐야 될 것이 뭐냐 하면 오늘 이 법회를 통해서 제가 오늘 법문하는 것이 이게 마지막 법문이라고 생각하면은 농담할 시간을 할애하지 못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해를 해요. 뭘 이해를 하냐 하면은 인과법칙을 믿는 사람이고요, 윤회를 믿는 스님이고요, 또 뭐죠? 제가 인생에 살고 그만두고 말 생명이 아니라. 내 삶은 영원히 존재해 가면서 기도하고 수행하고 예경해가는 그런 생명이라는 확신이 자기한테 들어왔기 때문에 이렇게 공간을 만들어서 조력을 받고 보시하고 또 예경 받으셔서 이렇게 하나하나씩 만들어 가는 거거든요.
우리 삶 속에 이런 것들을 어떤 것을 들여다볼 것인가에 대해서 아미타경을 그걸 아주 자세히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어요. 다만 이게 칠보로 가득하고 금사은사로 땅이 되고, 이것만 보이는 거에요. 왜 그렇게 말을 했을까? 왜 땅은 칠보로 이루어졌을까? 왜 극락세계를 말하고 있을까? 그렇죠. 그죠. 우리 간과하고 잊어버리는 게 뭔지 아세요. 아미타경은 늘 극락을 얘기하고 있는 거 같잖아요. 그런데 극락이라는 말은 곧 현실이라는 말과 같은 거에요. 극락이라는 말은 지금이라는 말과 같은 거에요. 극락이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에요. 극락이라는 말은 행복이라는 말과 똑같은 거에요. 전혀 무게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극락이 일만 팔천 리 넘게 얼마나 멀리 있다. 그랬어요? 어마어마하게 멀리 있다. 그랬죠? 그런데 그 멀리 있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의 자성, 자성에 귀의하지 못하는 안목을 가질 때는 영원히 일만 팔천 리를 넘어서도 거기 닿지 않는다는 얘기에요. 그러나 우리가 지견이 열리고 수행을 제대로 하고 수업을 제대로 하나하나씩 해 나가시는 불자님들한테는 일만 팔천 리는 곧 나 자신이 영원불멸의 신간을 얻는 거와 똑같은 거에요. 안 믿어지죠. 쉽지 않죠. 그죠? 왜 그러냐 하면 언제든지 자기의 한계, 자기 복력, 자기 것에 둘레를 가지고 영원불멸하게 그걸 자기 것이라고 자기화하고 있는 동안은 깨우침이 멀어져 버리니까 법장비구께서 그걸 설명하실 때, 저~ 저~ 아미타 부처님께서 설명하실 때, 석가세존께서 설명하실 때 그걸 뭐라고 말했죠? 정말로 먼 곳에 있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그건 물리적 시간을 얘기하는 게 아니죠. 여기 좀 보십시다. 오늘 이곳에서 오늘 하루를 사는 게 이게 오늘 마지막 사는 일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짜증 내고 화낼 시간이 있어요? 그죠? 일반적으로는요, 일반적으로. 너는 병들어가지고 내가 일주일이나 한 석 달 살면 말겠다. 이러면 보통 사람들은 불교를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석 달을 울고불고하다 끝내. 억울하고 뭐가 이렇고 병들고 이렇고 그것만 헤아리다 끝나는 거에요. 거의. 그러나 불교를 배운다는 건 뭐에요? 내가 암 진단받아가지고 석 달 산다. 그러면 그 석 달 동안을 엄청나게 더 열심히 사는 거에요. 그리고 자기 안에 마음의 신행이 들어차길 내가 발원하는 거에요. 뭐라고 발원하셔야 돼요. 아미타경을 배웠잖아요. 무량수 무량광이잖아요. 무량수 무량광이 곧 자기 자신이라는 거에요. 이렇게 두 가지에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것을 취할 것은 어떤 것을 할 것인가? 어떤 것을 취할 것인가? 어떤 것을 가질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에요. 그걸 보고 아미타경에서 말하는 것은 자성불이 있다라는 거에요. 내가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성장해가고 스스로 깨우쳐가고 스스로 뭐죠? 앎을 얻어가고, 이게 우리가 자성불이에요. 부처라는 거에요. 아미타경에서는 그걸 보다 확실하게 정해놓은 것이 뭐냐 하면 저 부처님이라고 하는 말에는 내가 가장 복되고, 가장 지혜로운 최상의 마음 세계를 체득한 상태를 일러서 부처님이라고 그러신 거 잖아요 그러면 그거 우리가 살면서 먹고 사는 것은 다 청빈하게 살아야 된다. 무슨 수행처럼 살아야 된다. 그거 다 모양새 다 상이에요.
불자는요, 넉넉하게 사셔야 돼요. 우리가 매일매일 시계를 가지고 살아요. 요 시계나 저 시계나 전자시계나 시계나 휴대폰의 시계나 다 똑같은 시계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조금이라도 한 부품이라도 어긋나면 시계가 시계로서 작동을 하나요? 안 되는 거에요. 그런 얘기죠. 우리는요, 뭔가 할 일이 있어요. 뭔가 목적이 있고요. 자기가 자기를 느끼지 못하고 왜 이것을 느끼지 못하냐 하면은 늘 망상 속에 살아요. 늘 내가 어렵다 라고 하는 생각, 내가 늘 못생겼다는 생각, 내가 남보다는 시원찮다는 생각, 다른 사람은 다 잘사는데 난 안되는 거 같다. 이런 열등의식, 이런 저 부조화심. 부조화심 아시죠? 그죠? 융화되지 않는 거. 서로 친화되지 이런 자기 생각들이 자기를 계속적으로 자기를 지배하는 그런 과정을 우리 속에 갖고 있거든요.
그런데 한 부분이라도, 한 부품이라도 어디서 어긋난 일이 있으면 절대로 이게 굴러가지 않습니다. 육체도 마찬가지고요. 살아있다는 거는 완벽한 성장을 지금 하고 있다는 거에요.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진보하고 있다는 거에요. 살아있다는 이 자체로만으로도 완벽한 시스템을 지금 작동시키고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거기에 브레이크를 거는 건 누구예요? 자기 생각이에요. 뭐라고요? 내가 병들었어. 이 생각. 나는 불행해. 이러고. 나는 행복하지 않아. 이러는 거. 나는 남보다 적게 가지고 있어. 이런 생각. 이게 부처님의 설명이거든요. 그런 생각을 일러서 크게 말해서 뭐라 그러냐 하면 살아있는 거, 작동하고 있는 것은 뭐든지 뭐죠? 원만하고 완전한 상태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 자신이 이걸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이 조금씩 생기실 필요가 있어요. 경전을 배우니까. 우리에게 두 번 다시 없는 기회를 주는 것이 이 아미타경전이에요. 생명을 얻어요. 사랑을 얻어요. 풍요를 불러다주는 원초적인 원동적인, 그런 힘의 근본을 찾아낼 수가 있어요. 보세요. 그죠. 살아있다는 것은 그냥 원만하고 완전한 순환상태를 가지고 있는 거에요. 나는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너무 멋있죠. 그죠. 재미있게 사셔야 돼. 오늘 하루 이것이 이 날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요, 울고불고하는 것은 일반적인 삶을 사는 거고, 또 저쪽 이웃집에, 거시기 하지 말래. 큰일 날뻔했어.
옆집에 사시는데 몰라. 그러나 불자님들은 부처님을 따르고 종단을 따르는 우리 불자님들께서는 그 고민할 게 없어요. 난 그렇게 생각이 되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살아온 스님이고, 굳이 굳이 ‘창피해서’ 이런 말 하지 말아요. ‘내 남편이 창피하다.’ 이러면 세상이 그 두 번 이혼 감이야. 절대 남편 창피하다는 말 절대 하시면 안 되고, 내 자식 창피하면 안 돼. 세상에 천하에 잘못이 있어도 자기 자식에 대해서 창피하면 안 되는 거에요. 자기 자신 얼굴이지. 세상 똑같은 거에요. 그렇죠. 그죠? 그렇다 그러고. 나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거 같은데도 나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금 진화하고 있다는 거에요.
이 말을 다른 말로 얘기하면 우리 법문에서 여러 번 말씀 드렸잖아요. 지금 이 순간 지금 좋아지고 있는 거에요. 내가 오늘 하루 살고 말 생활을 그렇게 산다면, 그러나 어차피 그 과정을 우리는 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늙는 거, 병드는 거 불행해지는 거, 아파지는 거, 억울하고 분한 거, 이런 것들이 다 아직 졸업을 안 해서 그런 거에요. 졸업하기가 얼마나 아쉬워요. 몸 밖에 나가셔야 되는데 안 나가는 거야. 지가 잘났다고 자기가 잘났다. 그러면서 계속 그 틀 속에 붙들려서 못 벗어나는 거야. 너무 안타깝죠. 그걸 깨우쳐주기 위해서 불교는 그걸 가르쳐주고 계신 거에요. 그것만으로도 뭐 엄청난 거죠.
아미타불은 아미타경에 보면 이렇게 설명이 돼 있어요. 임종시에는 아미타불의 구품연화대에 이르셔서 열반락을 맞으시어 모든 불보살님의 원력으로 법계, 중생계를 위하여 보살행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그렇게 발원하는 것이 아미타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세요. 그런데요, 하나둘씩 하나둘씩 깊이 좀 들여다보면 아미타라고 하는 말은 원 범어 산스크리트어로 보면 아미타라고 하는 말은 한없다는 말입니다. 한자로 표현하면 무량하다는 뜻이거든요. 여기에 유스가 붙어서 아미타유스. 그러니까 아미타라고 하는 말은 한량없다는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한량과 무량수무량광이 요게 합성돼 있는 것처럼 아미타유스.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미타불을 줄여서 아미타 또는 미타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고, 이게 역시 범본, 그러니까 산스크리트어에 의하면 아미타 아미타유스 붓다 이렇게 말해요. 이것을 아미타유스 붓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우리말로 얘기하는 것을 뭐라고 표현한다고요? 무량수불 이렇게 말해요. 영원한 생명이신 뭐라고요? 부처님. 이렇게 돼 있죠. 그죠? 보통 아미타붓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아미타붓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량광불 이렇게 돼요. 그러니까 둘을 합성하면은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 안에는 뭐가 들어있냐 하면 무량수무량광, 요거는 꼭 좀 기억해 두시고 외우셔야 돼. 그런데 이게 단순히 불교 안에 아미타부처님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있고, 상대적인 것도 있고, 또 역사적인 것도 있고, 문화적인 것도 있고 이렇게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아미타경을 배우는 제자들로서는 불자님들께서는 반드시 내 가슴 안에 영원불멸한 무량수가 있어요. 영원한 생명이라는 거에요. 시간공간이거든요. 우리 안에 우주와 똑같은 존재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하나는 무량수, 무량광, 이렇게 돼요.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에는 무량수, 무량광. 역시 초등학교 학생처럼 또다시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가슴에 무량수 부처님, 무량광 부처님, 함께 계시니 감사합니다. 너무 간단한 거죠. 그죠. 복잡하지 않아도 자기를 성장해 주고, 자기를 지켜주고, 자기를 보살펴주는 원동력이 자기에게 스스로 일어납니다.
요거를 진심으로 좀 하면 되는데 정말로 마음을 담아서 무량수불, 무량수, 무량광불, 이렇게 자기 스스로 외우는 것만으로도 이게 원동력을 자기가 불러올 수 있는데, 아직까지 쉽지 않죠. 누군가가 이 법문을 듣고, 이해하고 듣는 사람은, 길을 아는 거에요. 그래서 대승불교에 아미타경은 대승불교 쪽에 들어있는 경전인데요, 가장 중요한 부처님,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처님이 누구냐 그러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일 중요하죠. 그다음에 뭐죠? 보살님도 중요하고, 문수보현보살님도 중요하고, 다 중요하죠. 여러 단계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그랬잖아요. 거기에 가장 근본인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이시고, 경전 안이나 드러나 있는 모든 부처님 중에 가장 으뜸인 것은 아미타부처님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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