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정현스님 _ 제19회 직제덕본원 (20:19)

Buddhastudy 2012. 6. 3. 18:46

  방송 보기: 불교TV

 

~ 불설아미타경, 19번째 구요, 부제목으로는 오늘 그~ 제목이 결핍에서 벗어나기. 쉽게 표현하면은 구체적인 용어로는 돈의 결핍에서 재물의 결핍에서 해방하기. 요런 제목으로 오늘 불설아미타경 내용을 같이 좀 공부해 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왜 저 스님이 돈 얘기를 하나? 이렇게 오해하실 수도 있고 그런데. 사실은 이게 굉장히 인간 삶 속에 아주 밀접 되 있거든요. 그러니까 물질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물질을 아주 귀하게 여기면 그 마음의 태도에 의해서 물질이 풍요롭게 돌아온다라고 하는 부처님 진리에 따라서 하나씩 하나씩 정리를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돈의 결핍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돈이 있었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별의별 일을 다 할 수 있는 게 돈의 위력이거든요.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돈을 자유롭게 사용하기보다는 제약적으로 받고 사용할 수밖에 없는 그런 우리들의 삶을 살잖아요.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물질 속에 사는 풍요로움. 이 풍요로움을 누리게 하고, 이 풍요로움을 사용하게 하고, 이 풍요로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바꿔주는 게 이 불교의 가르침이에요. 그리고 이런 부분을 어~ 보다 삶 속에서 풍족해지는 것이 그게 극락이라고 표현하잖아요. 천당 극락이라고 표현하시잖아요.

 

그런데 천당 극락이 되려면 우선 자기 자신의 마음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지 않으면 자기 입장에서 분명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바깥으로 그러니까 생활공간 속에서 그 풍요로움을 불러다 쓰기는 굉장히 어렵다는 얘깁니다. 내가 먹고살고 생활하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부족하고 결핍이 있다라고 느껴지고 있거든요. 이 느껴지고 있는 것들을 한순간 마음 세계를 바꾸는 것으로 해서 그 자체가 지금 즉시 풍요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거를 불설아미타경에 14쪽을 여시면 어~ 變化所作변화소작. 이렇게 먼저 강의 때 이렇게 공부를 했습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내가 선언하는 것처럼 내가 인정하는 것처럼 내가 말하는 것처럼 이게 이제 이렇게 돌아온다라고 하는 아주 궁극적인 그런 표현이었거든요.

 

舍利弗사리불이여. 彼佛國土저 불국토는 微風吹動미풍취동하야, 그러니까 작은 바람이 움직이면은 모든 보배로운 것에 행하여 나뭇잎의 움직이는 것처럼 그렇게 풍요로워진다는 뜻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것이 미풍이라고 하는 것은 뭐예요? 아주 억한 태풍도 아니고, 회오리바람도 아니고, 미풍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결국,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미풍이 따뜻한 바람이 움직여지는 것을 그걸 미풍이라 그러잖아요. 그래서 요게 뭐냐 하면 부자 되는 비결에는 첫 번째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셔야 되요. 예쁜 마음을 가져야 되요. 사랑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되거든요.

 

그런데 요게 잘 안되거든요. 원망하기는 쉽고, 미워하기는 쉽고, 괴로워하기는 너무 쉽지만 따듯한 마음을 갖기는 굉장히 어렵잖아요. 그래서 불설아미타경에서는 뭐라고 표현 하냐 하면 미풍의 세계를 가지자. 이렇게 돼요. 그러니까 봄날처럼. 초여름의 날씨처럼 그런 뜻입니다. 이것을 마음으로 불러들이려면 무엇이 있어야 되냐 하면 가장 빠르게 있어야 될 내용이 조화로워야 한다는 거에요. 자기 자신이 조화로워져야 되요. 우리 삶 속에 조화로움이라는 것이 있답니다. 그러니까 조화로워야 만이 물질의 풍요로움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의 감사함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자기의 살아가는 물질적 모든 요구를 풍요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거꾸로 얘기하면 딱딱한 마음, 차가운 얼굴, 화낸 얼굴, 짜증 부리는 얼굴, 슬퍼하는 얼굴, 어두운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그건 결코 좋은 물질의 공급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돼버립니다. 이 보배의 나무가 움직이는 거 같이 이렇게 보배가 가득해진다는 뜻입니다. 뭐하면요? 조화로워지면. 작은 바람이면은 만생을 자라게 하거든요. 그런데 마음에 늘 태풍을 갖고 있거나 경랑을 가지고 사는 거에요. 저부터. 저부터 온전하지 않은 걸 내가 알거든요. 경험하고 체험하면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느끼면서도 이거 자기 바꾸기가 굉장히 어려운 거에요. 머리 깎고 사는 저도 마찬가지인데, 일반적으로 세상을 급히 급히, 힘들게 힘들게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오죽 이게 쉽겠습니까?

 

그러나 이거 저버리지 말라고 그랬거든요? 저버리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자기 일을 하나하나씩 뚜벅뚜벅 걸어나가면 미풍은 언제든지 있다는 거에요. 아주 태풍이 불어도 그게 지나가도 돌아서면 잔잔한 만생을 자라게 해주는 미풍이 우리한테 있다는 거에요. 그게 불설아미타경의 미풍이라고 나와 있죠. 그래서 여기에는 이게 뭐냐 하면 그 불국토에는 미풍이 불면, 보석으로 장식된 가로수와 羅網나망이라고 그랬거든요? 나망은 얽히고설킨 모든 것을 나망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이거를 나망이라는 말은 삼라만상이라고 그렇게 말을 해요. 우주 전체가 다 그물처럼 연결돼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망이라고 그러는데 나망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거에요. 그 얘기는 우리들 내면 안에서 좋은 소리를 드러내면 돼요. 좋은 따뜻함이 있는 줄을 믿고, 그 따뜻함이 내게 있다라고 말할 줄 알게 되면, 그러면 생활공간에서 아미타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모든 돈의 결핍에서부터 그 순간 해빙하게 돼요. 얼음이 물려있다가는 사용할 물을 마실 수 없잖아요. 녹이면 마실 수가 있는 것처럼. 마음이 딱딱한 마음을 녹이셔야 되요. 차가운 감정을 바꾸셔야 돼. 힘든 일이 있어도 어려운 일이 있어도 용서하실 줄 아는 이 대자대비가 우리한테 필요할 때에요.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이런 태도를 가지면 무슨 일이 생기냐 그러면 모든 결핍에서 해방하기 시작해요. 불교식의 얘기로는 요걸 해탈할 수 있다. 라고 표현하는 거거든요. 해탈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으음. 이게 그~ 살펴보면요, 이 나망에서 나망이라고 하는 것은 우주 전체 삼라만상을 다 이것을 일러서 나망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렇다 그러고. 그런데 내가 일으키는 마음이 곧 우주 삼라만상에 다 자기의 영향을 끼친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다 그런 영향을 끼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은 내 내면 안에서 미풍의 세계가 있다는 뜻이라고 말씀을 드렸고, 그 내용은 다시 감사한 것으로 조화로운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알면은 스스로에게 이 표현하는 것이 나타나게 돼 있습니다. 자기 자신 안에 부족한 것을 헤아리는 것을 그만 그치는 거에요. 부족한 것을 그만 그치지 말고 있는 것에 감사하기 시작하는 거, 요게 풍요로워지는데 첫 단추입니다. 없는 것을 헤아리지 말고요. 없는 거 헤아리지 마시고 있는 것에 감사하셔야 돼. 없는 것에 대해서 불평하지 말고요, 옷이 없다라고 불평하지 말고, 있는 옷이라도 감사하셔야 돼.

 

요게 이제 우리들의 불자가 배워야 될 지혜로워지는 덕목이거든요. 지금 이 순간, 절 좀 보세요. 지금 이 순간, 더 완벽한 세계는 없습니다. 이 자리에 모여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해 가는 우리들한테 더 이상 완벽한 것을 구하지 마셔야 돼. 이 자리에서 완벽함을 들여다보셔야 돼. 이 자리에서 감사함을 느끼셔야 돼. 이 자리에서 내가 세상을 조화할 때 밝게 조화해 가는 만나가는 그런 모습이라고 스스로 정의하셔야 됩니다. 그것이 불설아미타경이 설명이에요. 그러면 뒤돌아보면요, 저 나무에 보배를 걸어서 장식한 것처럼 온갖 것의 다 풍요로운 것이 보배로운 것이 자기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는 거에요.

 

기회는요, 평등하게 열려있다고 그랬거든요. 인과가 넉넉하게 열려져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 내용에 보면은 그 소리가 들려오고 자연히 뭐죠? 모두 다 염불하고 생하게 스스로 뭐죠? 念佛염불 念法염법 念僧염승을 말하게 되고 하게 된다. 이렇게. 스스로 우리에게 갖추어진 것이 하나씩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저 좀 보세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태어난 이후로요, 무엇이 머물러 있는가요? 아무것도 안 머물러 있어요. 전혀 머물러 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풍요로운 삶을 살려면 될 수 있으면 안 좋은 것에 대한 집착은 그만 버리셔야 돼. 그냥 마음을 놓으셔야 돼.

 

놓아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수행이라는 방식을 택했고, 또 염불기도라고 하는 그런 명상도 사찰에서 가르쳐주고, 불교에서 인도해주고 계시는 거거든요. 조금 조금씩 보통보통 것들은 다 이렇게 흘러가게 놔두세요. 웬만하면 다 놔두셔야 돼. 무엇에 대한 것을 발원할 때는 무엇이 없어져 가면 무엇이 반드시 들어오는 거에요. 돈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물론 자기가 어떻게 해요? 방탕하거나 아무렇게 쓰거나 이렇게 쓴 것에 대한 답은 자기 과보죠. 그러나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성실하게 살았어요. 열심히 일하고 살아요. 어쩌면 저보다도 더 훨씬 일 많이 하시는 분도 많아요. 험한 일 많이 하시는 분 세상에 더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재정이 계속 자라나지 않고 성장하지 않는 것은 어디선가 결핍에 대한 두려움을 계속 태어날 때부터 받아들여요. 환경적으로. 저 좀 보세요. 오늘 이후로 돈에 두려워하시면 안 됩니다. 돈에 좀 친근하셔야 돼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념 안에서 우리 개념 있잖아요. 사고방식이죠. 이게 새로운 사고방식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가 됐어요. 불자는 청렴해야 되고, 불자는 가난하게 살아야 되고, 수행만 해야 되고. 염불만 해야 되고. 이런 법 세상에 없습니다. 불자는 부자 돼야 됩니다. 불자가 풍요롭게 살아야 되요. 불자가 성장하고 살아야 되요.

 

요번에 국회의원 뽑으셨죠? 불자가 40명도 채 안 돼요. 과반수가 다 기독교인의 의원들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인격적으로는 아무 하자 없습니다. 그러나 이건 심각한 문제이거든요. 앞으로는 불자님들께서 향후 이런 일이 자꾸 생기면 이게 점점점점 진리가 도태가 돼 버립니다. 진리는요, 언제든지 가득한 거거든요. 진리를 막아내지 못하는 거에요. 여기 저 좀 보세요. 절 보셔야 돼. 사람이 성장한다 라고 하는 의미구조는요, 내가 무엇을 배우고 하나를 받아들이고 성장하고 또 성장하는 것도 이것도 성장이죠. 그런데요,

 

불교식 개념은 어떤 개념이냐 그러면 이해, 알아차려야 될 덕목이 뭐냐 하면, 불자는 본질적으로 원만하고 완전한 겁니다. 본질적으로 이건 풍요한 겁니다. 풍요롭게 사는 것이 요게 당연한 건 데 없으니까 부자가 돼야지 이것이 아니고 내가 본래 부자인데 그 부자를 찾아내지 못하는 거에요.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에요. 아니 제가 이건 제가 스스로 발견하고 스스로 이해하거든요. 자기가 알아차리는 거에요. 자기가 귀한 줄을 알아차리는 거에요. 자기가 불성의 존재를 아는 거에요. 그러면 더불어서 뭐가 쫓아다닌다고요? 자기 안에 풍요로운 것은 당연히 존재해있는 거에요.

 

내가 깨우치는 만큼, 내 마음이 성장하는 만큼, 내 환경 속에 내 조건도 내 안에 스스로 갖추어지게 돼 있는 것이 이게 불교수행이고 가르침이에요. 부자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 되는 것이 그게 좋은 일이에요. 넉넉해지는 것이 좋은 일이잖아요. 여기서 이게 뭐냐 그러면요. 조화롭게 사셔야 돼요. 될 수 있으면은 비난하지 마세요. 될 수 있으면은 아닌 것 가지고 욕하지 마세요. 없는 일 가지고 자꾸 말해가지고 절집이나 교회나 성당이나 똑같애. 으음. 이것도 항의 들어올 내용이다. 모든 것은 평등한 거에요. 삶 속에 평등해요. 어떤 사람이든지 이렇게 이런 소리를 내면은 그러니까 미풍이라 그랬죠. 처음에, 좋은 조화로움이 들어서잖아요. 감사함으로 그 소리가 일어나게 되면은 스스로 스스로 보배장식을 한 나무가 춤을 추는 거에요.

 

그런데 이거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없는 것만 자꾸자꾸 찾아 헤매는 거에요. 자기 안에 들어있는 원동력이 딱 깨우치기 시작하면요, 언제든지 일어나는 거에요. 그런데 요거를 들여다보는 힘이 가질 때 안 되면 이게 저~ 불설 아미타경을 읽어나, 또는 지장경을 읽거나, 또는 지장보살을 불러 공양하거나, 지장보살~ 지장보살~ 이렇게 하란 뜻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하란 뜻입니다. 놀지 말고, 노는 입에 염불한다. 옛날 말도 있잖아요. 안되면 관세음보살이라도 부르고. 그리고 그 속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꾸 불러오시면 희유한 일이 생깁니다. 정말로 희유한 일이 생겨요.

 

어려운 사람이 부자가 된다든가, 그건 우리 은사 스님 때부터 계속 그런 반복적인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 법당에 나오시는 분들에게도 좋은 일들이 많아집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스님이 되가지고 안 보이는 것 같아도 눈이 작아도 다 보이거든요. 얼굴 싹 지나 가면은 도대체 생각이 뭔 생각하고 있는지 거의 다 이게 스르륵 스르륵 나오거든요. 많이 좋아지신 분을 많이 봐요. 얼굴이 많이 밝아지신 걸 봐요. 그러면 지나가면서 내가 딱~ 느낀 게 뭐냐 하면 아~ 좀 풍요로운 일이 오겠구나. 이렇게 봐요. 그런데 찡그리고 오는 사람한테도 봐. 그런데 찡그린 것을 보이지 않고, ~ 지금 찡그려진 것만 얼굴에서 걷어 가면은 이 사람도 풍요롭게 살 사람이구나. 이렇게 보여요.

 

그러면 내 남편이나, 내 아내나, 내 자녀를 좀 찡그린 것만 보면 어때요? 그건 그냥 매주라고요. 매주가 좀 냄새도 나고, 좀 모양도 안 좋고, 좀 불편한 거에요. 불편한 걸 끌어안고 있어야 좋은 장을 만들 수 있고, 키워낼 수 있는 거 아니에요. 하여튼 그렇다. 그러고요. 반응이 없을 때는 그냥 그렇다 그러고.^^ 저 우리 가르침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저 좀 보세요. 아침에 내일 아침에 해 뜨는 거 아시겠죠? 내일 아침에 해 뜨는 거 꼭 믿어지세요? 그거는 분명히 아시잖아요. 그죠? 그런데 내가 풍요롭게 살 수 있다라는 사실은 믿지 못하는데 이게 문제가 있는 거에요. 지금 현장에서 되는 거에요. 불교는 그런 위력을 가지고 있어요. 자기가 믿지 못하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