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구슬로 이루어진 세상이 있다.
바로 유리구슬과 수정구슬이다.
유리구슬을 가슴에 지닌 사람들은 번뇌망상으로 인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뭉뚱그려 중생이라 부른다.
이런 때에 중생들에게 더 높은 차원을 가르치는 무리들이 있으니
바로 힌두교의 수행자들이다.
그들 구루들은 중생들이 지니고 있는 유리구슬을 수정구슬로 바꿔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원리는 간단하다.
한계상의 무상함을 인식하고 생각을 고요히 가라앉히면 수정구슬이 된다.
번뇌망상만 잦아들면 그 자체로 수정구슬이란 얘기이다.
이렇게 텅 빈 마음 바탕에서 찾은 수정구슬을 아트만이라 부른다.
아트만은 우주와 둘이 아니기에 유리구슬이 지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은 소멸되어
영원불변하게 된다.
유리구슬의 중생에겐 더 없는 구원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대략 2천5백여 년 전에 자신이 지닌 유리구슬로 인해 몹시 괴로워하던 한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싯다르타이다.
그는 유리구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힌두교의 구루들을 스승으로 삼고 수행에 정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수정구슬을 얻게 되었다.
깨닫고 나니 자신은 본래부터 수정구슬이었다.
유리구슬은 스스로 왜곡해서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싯다르타는 한동안 수정구슬에 만족해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의구심이 들었다.
수정구슬은 과연 온전한가?
모든 구루들이 범아일체를 거론하며 아트만이 곧 우주 삼라만상임을 강조했다.
이때 쓰이는 비유가 ‘수불리파 파불리수’이다.
아트만이 파도라면 브라만은 바다여서 결국 같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이런 논리에 뭔지 모를 부족함을 느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확정할 수 없지만 수정구슬에 대한 그의 의심만은 뚜렷했다.
결국 그는 구루들의 수정구슬을 능가하는 또 다른 무언가를 찾기 위해 홀로 수행에 임했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다이아몬드구슬을 찾아냈다.
기존에 깨달음의 궁극이라고 믿고 있던 수정구슬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값진 보배였다.
세상에서 홀로 다이아몬드구슬을 갖게 된 싯다르타
그는 자신이 이룬 경지를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이아몬드 구슬을 전해 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이아몬드구슬은 너무 쉽고 단순하여 사람들이 이것을 알아채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였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가장 쉬운 건 가장 어려운 것과 상통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전해 줄 다이몬드구슬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중생들의 무지와 아집은 어떤 것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싯다르타는 전법 할 마음을 접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발 디딜 때 느껴지는 발바닥의 감각을 통해 전법할 방법을 찾아냈다.
이런 우연한 일을 계기로 싯다르타의 법문은 열렸고, 그의 다이아몬드구슬은 마침내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싯다르타의 다이아몬드구슬은
기존 힌두교의 수정구슬과 비교해 뭐가 다른가?
아무리 살펴봐도 그 빛깔이나 촉감에 있어서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혹시 싯다르타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수정구슬을 가지고 다이아몬드구슬이라고 허세를 부릴 건 아닐까?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잠시 보자.
그는 기존의 아트만을 대놓고 부정했다.
수정구슬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철저히 분석학에 입각해서 사물의 실상을 논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기법에 따라 합성된 것들이고
그래서 쪼개보면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이다.
그 텅 빈 것을 깨달으면 그게 다이아몬드구슬이란 얘기이다.
이런 말에 힌두교의 구루들은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수정구슬은 원래부터 텅 빈 곳에 있었다.
그 텅 빈 곳은 무처럼 보이지만 여백으로서의 기능을 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바로 순수 알아차림이다.
여백에 곧 참나란 얘기이다.
참나가 한 생각 일으키면 삼라만상이 그려지고 그것들에 매여 있으면서 중생이 된다.
유리구슬과 수정구슬은 모두 마음먹기에 따른 것이니 일체유심조이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텅 빈 곳에 자리한 여백의 의미마저 부정했다.
텅 빈 각성인 아트만은 깨달음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는 다이아몬드구슬을 꺼내 들었다.
그것에 대한 사전적 정의나 어떤 구체적 묘사도 없이
그저 텅 빈 곳에 아무것도 없다는 제법무아만을 강조했다.
제법무아의 이치를 터득하면 다이아몬드구슬을 얻게 된다는 단순한 논리이다.
그 당시 힌두교 수행자들은 싯다르타의 이런 주장에 두 가지 의문을 내었다.
-첫 번째는 싯다르타의 법이 유물론과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물질이 산산이 해체되면 남는 것이 없게 된다.
영혼도 물질의 산물이니 그것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수정구슬이든 다이아몬드구슬이든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그냥 오로지 무일 뿐이다.
-두 번째는 유물론이 아니라면 텅 빈 곳에 뭔가 있어야 한다.
수정구슬이든 다이아몬드구슬이든 그것을 알아차리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이 뭔가를 힌두교에서는 인정했다.
바로 참나이다.
만일 싯다르타가 말한 다이아몬드를 알아차리는 어떤 인식 작용이 있다면 그건 기존의 아트만과 같게 되고
결국 그는 수정구슬을 다이아몬드구슬이라고 허풍을 친 것이 된다.
싯다르타의 다이아몬드구슬엔 이렇게 두 가지 의혹이 남는다.
유물론이냐, 아니면 또 다시 아트만의 재탕이냐의 문제이다.
사실 이 점을 묻게 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평생 동안 싯다르타는 침묵했다.
독화살의 비유를 들며 입을 굳게 닫았다.
독화살에 맞아 죽게 됐는데, 그 화살의 재질을 꼬치꼬치 따질 필요가 있느냐는 논리이다.
그리곤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세상은 연기법에 의해 합성된 것으로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제법무아의 이치를 깨달으면 다이아몬드구슬이 된다”고..
적잖은 제자들이 그의 침묵에 의혹을 품고 떠나갔다.
하지만 힌두교의 수정구슬에 의혹을 품은 수행자들은 여전히 그의 다이아몬드구슬에 희망을 걸었다.
이렇게 해서 다이아몬드구슬을 가치로 내건 불교가 탄생했다.
그런데 당시의 싯다르타는 왜 형이상의 진리에 입을 닫았을까?
뒤에 살펴보겠지만 싯다르타는 그냥 있는 법을 가르쳤다.
이것이 불법의 정수인 중도이다.
그런데 적잖은 제자들이 그냥 있지 않은 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때 세존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질문에 일일이 장단을 맞추다가는 그냥 있는 법이 더욱 미로에 빠져들 수 있다.
그래서 세존은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 침묵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그냥 말하기 싫었다.
가령 누군가가 자신에게
“숨을 들이쉬면서 공기를 마셔야 합니까?”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말하기 싫든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을 것이다.
당시의 싯다르타 역시 같은 심정이었다.
너무 당연한 것이나 본말을 전도시키는 질문은 그냥 넘기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어쨌든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갔다.
과연 싯다르타의 말대로 다이아몬드구슬을 지닌 사람들이 나왔을까?
결과는 참담했다.
수행자들은 계속해서 유리구슬의 얼룩만 닦고 있는 것이었다.
유리구슬에 낀 번뇌망상의 때를 지우며 평생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일이 무려 500여 년이나 지속되었다.
이를 지켜보는 힌두교의 구루들은 그들 불교 무리의 우매함에 혀를 내눌렀다.
그런 시선이 불편했던 것일까?
유리구슬의 허망함에 지친 불교 수행자들은 하나둘씩 힌두교의 수정구슬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오온이 사라진 텅 빈 바탕에 초지성의 알아차림만 집어넣으면 초지성이 된다.
그리고 수정구슬이 되어 바라보면 지금껏 알고 있던 유리구슬은 모두 증발한다.
번뇌망상도 모두 수정구슬의 빛이 뿜어져 나와 이루어진 것이다.
삼라만상 모든 것이 수정구슬과 둘이 아니다.
절대와 해탈 역시 저절로 이루어진다.
기존의 유리구슬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높디높은 경지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제 불교수행자들은 힌두교의 아트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트만이 거짓된 것이라는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가차 없이 버렸다.
사실 그들 입장에서 죽어라고 불법을 닦았지만
기대했던 다이아몬드구슬은 없고 남은 것은 얼룩이 지워진 유리구슬뿐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힌두교의 수정구슬로 향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다면 왜 불교를 버리고 힌두교로 귀의하지 않은 것인가?
힌두교로 귀의한 불제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상당수의 불제자들은 힌두교의 수정구슬에 이름을 바꿔 달아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쪽을 택했다.
아트만 대신 참나, 진아, 불성, 본성, 여래장, 일심.. 등의 수 많은 이름을 가져다 붙였다.
이미 하나를 훔쳤는데 두 개, 세 개를 못할 게 없었다.
영혼이 인정되니 자연스럽게 윤회론이 도입되고
내친김에 업장론이나 인과론도 가져다 썼다.
이뿐만 아니다.
다양한 힌두교의 신들도 끌어들였다.
시바를 비롯한 힌두교의 신들은 보살이란 이름을 달고 불교의 신이 되었다.
천수경 같은 경전엔 세세한 힌두교의 신들마저 등장하지 않던가.
신의 등장은 자연히 경배하는 의식으로 이어져 불공이 되었다.
이런 구복적 신앙에 자리이타의 자비심을 더해 대승불교라는 명패가 올라갔다.
바야흐로 힌두교의 수정구슬은 대승불교로 넘어와 깨달음의 상징이 되었다.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끈 이가 용수이다.
용수는 무작정 반대만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싯다르타가 침묵한 것을 꺼내들었다.
바로 다이아몬드구슬의 설계도이다.
그것을 만천하에 펼쳐 보임으로써 불법이 허황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것이 바로 공이다.
그런데 싯다르타의 우려는 여전히 유효했다.
용수의 공을 이해하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 그의 공은 철저히 왜곡되어 도로 텅 빈 것이 돼 버렸다.
그것이 무 쪽으로 치우치면 초기불교이고
텅 빈 자각 쪽으로 기울면 대승불교가 된다.
전자는 유리구슬이요, 후자는 수정구슬이다.
용수의 공 어디에도 다이아몬드구슬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색이 공이고 공이 곧 생이라는 명제는 불법의 상징과도 같다.
하지만 여기에 쓰인 공은 용수가 꺼내 든 공이 아니다.
그건 실체가 텅 비어 있다는 뜻으로 일종의 무의 왜곡이다.
무라고 하면 참나가 부정되고
그렇다고 유라고 하면 현상계에 매여 있는 것 같아서
대충 얼버무리기 위해 꺼내든 도피용 말장난이다.
그래서 ‘실체가 텅 비어~’ 라는 생각만 해도 논리는 깨지고 의식이 일종의 맹신처럼 굳어진다.
불행히도 수행에 발을 담그는 순간부터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기독교 신자들이 ‘주여 주여~’ 하는 것과 같다.
아무튼 이렇게 되니 용수의 공논은 이것도 저곳도 아닌 어중간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역사적 평판도 엇갈린다.
설익은 수행자라고 폄하 하는 이들이 있고, 어찌 되었든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역할을 맡았다며 높이 평하는 이들도 있다.
결과적으로 용수의 다이아몬드구슬은 그것을 헤아릴 수 없었던 수행자들에 의해 퇴색됐고 그는 중친학파로 내몰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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