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론 4. 깨달음의 6가지 함정(1)

 

 

 

수행의 발단은 苦이다.

苦란 시공의 한계에서 오는 생로병사에 의한 것도 있지만

더 큰 것은 실존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무명에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한평생 살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존재

이것에 대한 자각에서 고가 싹트고

고를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에서 수행은 시작된다.

 

수행의 첫 단추는 대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화두이다.

 

차원의 굴레에 갇혀 번뇌망상을 일으키며 촌각을 살아가는 나

그것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구성하는 것들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를 꾸미고 있는 생각을 관찰하게 되는데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그것의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수행이 일단락된다.

 

 

이렇게 해서 空의 상태가 되면

무아의 삼매경에 들기도 하고

때론 공에 내재된 초지성을 통해 진아를 깨우치기도 한다.

수행이 보다 깊어지면 삼라만상이 不二라는 사실이 더욱 뚜렷해지면서

절대경이 펼쳐진다.

 

그런 경지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신이 깨달았다는 사실 자체에도 머무름이 없게 되어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

 

무아에서 진아, 그리고 불이의 절대와

일체무애의 해탈에 이르는 과정이 뭇 수행의 전모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

이런 수행의 형태는 싯다르타의 탄생 이전부터 힌두교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것들을 섭렵하고 진정한 깨달음에 못 미친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그래서 그는 홀로 떨어져 나와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하였다.

그것이 불교이다.

 

 

그렇다면 수행자들이 이루는 경지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싯다르타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그냥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이룬 경지를 목적지로 알고 안주하면

수행은 막을 내린다.

 

싯다르타가 만일 힌두교 수행을 통해 얻은 경지에 만족했다면

불교가 어찌 세상에 나올 수 있었겠는가.

 

 

어디에나 함정은 있는 법

수행도 마찬가지이다.

깨달음을 성취하고 싶은 구도욕이 결국엔

그 어떤 것도 조작해 만들어 낸다.

 

어설픈 가아의 번뇌망상을 걷어냈다고 해서 안심하면 오산이다.

진아라고 굳게 미던 알아차림이

심연에 내재 된 깨달음의 욕구에 부응해 펼쳐 놓은 황홀한 각성의 경지는

가히 조물주의 창조를 발불케 한다.

 

무아나 진아, 절대나 해탈을 배롯해서

그것에서 파생되는 영생과 열반의 경지도 거뜬히 그려낸다.

부처의 모습도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하기에

속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수행의 함정은 깨달았다고 느껴질 때 더욱 교묘하게 작동된다.

이런 고차원 함정에 빠지지 않고

끝까지 정진하여 참된 깨달음을 쟁취한 이가

바로 싯다르타가 아니던가.

 

 

깨달음을 달리 무상정등각이라 한다.

참된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 깨달음으로 착각할 만한 현상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따라서 깨달음을 정확히 알기 위해선

우선 깨달음이 아닌 것들에 대해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수행에 있어서 함정을 제대로 이해만 해도

그 절반은 이룬 셈이 된다.

 

 

깨달음으로 오인하기 쉬운 함정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반야로써 불법을 깨우친다.

화두를 풀고 경전을 탐독하다 보면

이치에 밝아져 불법의 어느 한구석도 막히는 바가 없게 되고

구구절절 부처님의 심정마저 느껴지게 된다.

 

연기법은 물론이고 색과 공의 묘리를 터득해

실상을 보는데 막힘이 없게 되니

깨달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철학적 견식이 풍부해지고 지혜가 밝아진 것뿐이다.

매우 똑똑한 중생으로 성장했다고나 할까.

여기에 안주하면 오히려 지식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분별 노름에 더욱 휩싸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수행의 시계는 거꾸로 가게 된다.

옛 조사들이 ‘백 가지 지혜가 하나의 무심만 못하다’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세간엔 박람박식이 지혜나 깨달음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풍부한 지식을 잘 정리해서

대중들에게 쉽게 전해주는 일은 다다익선이다.

하지만 지식에 너무 힘을 주다 보면

진리로 둔갑하는 부작용이 생긴다.

 

실제로 지식을 가지고 대중들의 마음을 얻어

신흥 종교를 꿈꾸는 자들이 적잖게 있다.

대개 선의로 출발하지만

勢가 붙으면 조금씩 폐쇄의 수순을 거쳐 종교화를 이루게 된다.

 

비유를 하나 들겠다.

이종격투기의 최고 고수들은 UFC에서 자웅을 겨룬다

그런데 한 선수가 그런 곳에는 얼씬도 못하고

동네 골목에 나타나 힘을 과시하면 어떨까?

동네 아이들의 입장에선 아마 전설적인 고수가 나타난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UFC 선수가 그런 모습을 보면 어떨까?

 

지식을 겨루는 UFC는 단연코 대학이다.

학자들은 논문을 써서 그것으로 지식을 논한다.

그리고 그 논문 한 편 한 편이 쌓여

찬란한 인류 문명을 이룩하였다.

 

논문의 세계엔 교주가 없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불세출의 석학이 나타나도 어림없다.

인류 문명에 얼마만큼 이바지 하느냐의 명예만 있을 뿐이다.

 

필자가 아는 한 대학 교수가 있다.

네어처에 논문을 무려 20편 이상을 발표한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분에게 왜 대중들을 위한 책을 내지 않느냐고 물으니

논문 쓸 시간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학자는 논문으로 말합니다’이었다.

 

이것이 정정한 지식의 세계이다.

이런 학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지닌 지식에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필자가 소싯적에 몇몇 스님들과 어울려 지낸 적이 있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한 스님은 입만 열었다 하면 불경 타령이다.

들어보지도 못한 경전의 세밀한 구절까지 읊조리며 해설하는데

가히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했다.

본인의 말로는

경전을 통해 반야를 증득 하다가 마침내 깨달았다고 한다.

 

어쨌든 그 스님으로부터

불교에는 경전도 많고 이론도 다양하다는 사실을 새삼 알았다.

 

그런데 반문해 보자.

진리가 복잡한가? 단순한가?

 

우주 삼라만상의 열쇠에 해당하는 實存

그것을 풀이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해야 한다.

너무 단순해서 깜빡 놓칠 수 있는 정도여야

모든 차원을 포괄하는 실존이 성립한다.

 

 

그럼 그 실존을 풀어내는 공식은 어떨까?

그것 역시 가장 단순할 것이다.

고차원으로 갈수록 단순해지는 구조 때문에

공식 역시 간단명료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깨달음에 대해 풀어낸다면 말 몇 마디면 족하다.

팔만대장경처럼 방대해질 이유가 없다.

 

팔만대장경에는 1,538 종의 경전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책으로 엮으면 무려 6,805권이 된다고 한다.

평생 동안 읽이도 어려운 분량이다.

 

내친김에 이런 방대한 분량을 몇 글자로 줄여 보면 어떨까?

대략 ‘정신 차려 잘살자’ 정도가 될 듯싶다.

 

불경이 뭔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속지 말고 정신 차리라는 가르침이다.

 

 

정신만 차리면 되는가?

초기불교에서는 딱 이것만 가르쳤다.

그런데 너무 밋밋하니까 대승불교에서는 ‘잘살자’를 덧붙였다.

이것이 자리이타이다.

자비와 열반을 강조하며 실천적 가르침을 지향한 것이다.

 

그래서 불법은 아무리 길게 말해도

‘정신 차려 잘살자’이다.

이것이 불법의 알파와 오메가이다.

금강경의 주제인 응무소주가 정신 차리는 방법이라면

이생기심이 잘사는 방법이 된다.

 

 

만일 2차원 평면 세계가 있다면

그곳에서의 수행은 머리를 들어 ‘높이’를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듯 불법 역시 ‘높이’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

그것을 잘 가려내지 못하면

지식과 말재주라는 명목하에 복잡하고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반야의 함정이다.

 

5차원 실존, 다시 말해 무상정등각을 깨우치는 수행자들이

진리라고 믿고 있던 것들이 모조리 부서진다.

불법도 산산조각이 난다.

그냥 백지 위에 먹물이 튀겨져 있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이런저런 수행의 경지도 사막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순식간에 증발하여 자취가 없게 된다.

논리로 재단하여 차곡차곡 쌓아 놓은 지혜의 창고 역시

완전히 박살 나며

그 외의 어떤 것도 성립하지 않게 된다.

 

일체의 분별이 완전히 끊어져 버리는 까닭에

세존은 불법을 열심히 설하고도 불법을 설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실체가 텅 비어 있어서 설한 불법도 그렇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3차원에 살면서도 3차원을 볼 수 없다.

2차원 평면을 조합해서 3차원을 그려내고 있다.

 

일찍이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중력에 의해 공간이 휘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휘어진 공간의 모습은 상상 속에서도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야를 2차원 종이로 돌려

그 위에 구체를 올려 찌그러뜨리는 방식으로 이해한다.

 

이처럼 어느 한 차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보다 한 단계 아래의 차원으로써 해야 한다.

 

세존은 5차원 실존을 깨닫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전해주었다.

세존의 머릿속에 있던 5차원 진리는

그의 입을 거치면서 4차원 정보로 낮아진다.

 

여기에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면

형이하의 3차원 정보로 더 낮아진다.

언어를 써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차원의 등급이 격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존은 3차원이나 4차원 정보를 조합해서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5차원을 가르쳤다.

 

그렇기에 그가 입을 통해 언어로 남긴 불법은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5차원 실존이 아니다.

 

 

이것을 일러 不立文字라 한다.

도덕경 첫 장에 나오는 도가도비상도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이유로 5차원 실존을 깨닫게 되면

그동안 진리라고 믿던 것들이 아득하게 멀어진다.

 

행여 이생기심하여 진리를 설하려 하면

그것이 언어의 옷을 입으며 왜곡되기에

웬만해서 침묵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설법하게 되면

“나는 법을 전한 일이 없다”는 모순된 말을 덧붙인다.

이건 자신이 전한 법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실제로 법을 전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지만

세존이 평생 동안 설한 불법은

5차원 실존이 아니다.

 

5차원 실존의 단면을

낮은 차원의 정보로 풀어서 방향을 알려준 것뿐이다.

 

그러니 엄밀히 따지면

세존은 법을 전해 준 적이 없다.

더불어 중생을 구제한 일도 없다.

 

이 점을 경각시키기 위해

불법에는 법상에 대해 경고를 빠뜨리지 않고 있다.

법상이 남아 있으면 5차원 실존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불법에 깨달음이 없다.

불법 속에는 깨달음에 대한 추상적 이미지는 있지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실제적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이치를 잘 알기에 선지식들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없애라

일생동안 어리석은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승이 되지 마라’는

무주의 일침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는 차원의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럴진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지혜, 반야 같은 것들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그러니

“알아도 30방이요, 몰라도 30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