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정토회)

즉문즉설_법륜스님***재34편 옳고 그름은 본래 없는가? (27_59)

Buddhastudy 2011. 9. 1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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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서는 늘 모든 것이 좋고 나쁜 것은 원래 없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판단을 해야 할 순간이 오고, 그래서 해야 할지 말야야 할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과연 어떤 기준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를 결정하면 좋겠습니까? 예를 들면 북한 돕기, 미군 반대등의 사안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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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있겠어요? 그러니까 옳고 그른게 없는데 뭘 반대를 하며, 옳고 그른게 없는데 뭘 돕기는 돕느냐? 이사람 얘기는 그런거 같애요. 옳고 그른게 없다 하는 것은 진여의 측면이오. 예를 든다면 우리가 빈라덴이라고 하자.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미국사람 한테 물어보면 백이면 백 다 뭐라고 그런다?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한단 말이오. 그럼 우리가 그것만 듣고 그것만 보면 ‘아, 그놈 나쁜 사람이구나.’ ‘그건 나쁜 놈이다.’ ‘사탄이다.‘ ’악이다.‘ 이렇게 결정을 내릴 수가 있어.

그런데 저 회교도들한테 가서 물어보면 뭐라고 그런다? 그는 신의 뜻을 가장 바르게 알고 대응하는 사람이다. 신의 전사다. 우리말로 하면 영웅이다. 우리가 독립영웅을 말 할 수도 있고, 또 어떤 나라의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영웅이다. 오늘 인공의상이 하나 폭발했죠. 그러니까 미국이나 이쪽은 뭐다? 큰 불행이다. 삼가조의를 표합니다. 그런데 이라크사람들은 뭐라고 한다? 신의 보복이다. 너희가 고렇게 못된 짓을 하니까 알라인들 어떻게 가만있을 수 있겠냐. 신의 뜻을 거역했다. 고 잘된 일이다. 경상도 말로 하면 하방시다. 이런 얘기다 이 말이오.

이런 걸 볼 때, 어떤 걸 악이라 해야 하며, 어떤 걸 선이라 할 수 있겠냐 이거야. 분명히 이 세상에 미국사람은 그게 어떻게 선이 될 수 있느냐? 그건 악일 수밖에 없다. 그게 어떻게 잘된 일이냐? 그건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저쪽 편에 가서 물어보면 그게 어떻게 악이냐? 그건 선이다. 그게 어떻게 잘못된 일이냐? 그건 잘 된 일이다. 그러니 이걸 어떻게 하겠느냐 이거야. 한쪽에서만 보면 선악이 분명히 있다 이거야. 그런데 양쪽을 다 보면 참으로 선이랄 수도 없고, 악이랄 수도 없고.

그런데 우리는 늘 한쪽에서만 본다 이거야. 한쪽에서만. 한쪽에서만 보니까 선이 있고 악이 있는 거요. 양쪽에서 다 보면 참~ 선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악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렇게 되요. 우리가 이렇게 이 분이 질문을 하신 분이나, 그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는 저나, 일상 속에서는 어떠냐? 다 선악이 있어. 옳고 그른게 있다 이 말이오. 스님한테도 옳고 그른게 있다? 없다? 있어. 옳고 그른게 있으니까 막 야간도 치고 그러지.

그 옳고 그른게 있는 이유는 뭣 때문에 그렇다? 한쪽에서만 보기 때문에 그렇다. 그 순산순간 우리는 어느 쪽에서만 보기 때문에? 한쪽에서만 보기 때문에. 양쪽을 다 보지 않고 한쪽에서 보기 때문에 그렇다. 한쪽에서만. 마치 코끼리를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한 면만 보면 코끼리가 뱀같이 생겼다고 말하고, 기둥같이 생겼다고도 말하고, 벽같이 생겼다고 말하고도 빗자루 같이 생겼다고도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양쪽을 다 본다. 전부를 본다. 한꺼번에 본다. 이런 개념이 뭐냐? 그게 깨달음이다.

깨달음이라는게 딴 게 아니고, 어떤 사물을 양측면에서 한꺼번에 다 본다. 이걸 총체적으로 본다. 전면적으로 본다. 있는 그대로 본다. 이렇게 말한다. 비추어 본다. 껌껌한데서 보는게 아니라. 그래서 반야심경에 뭐라고 했다? 조견. 이렇게 표현하는 거요. 그렇게 보면 이것은 선이라 하지만은 선이라 할 수도 없고, 악이라 하지만은 악이라 할 것도 없다. 이쪽에서 보면 동산이고 저쪽에서 보면 서산이지만은 이동네 저동네 사는 사람은 분명히 서산이 있고, 동산이 있어요.

그러나 그 동네에서 떠나서 볼 때는 그건 동산이라 할 수도 없고, 서산이라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깨달은 분상에서는 그 깨달았다 하는게 어떤 특별한게 아니라, 양쪽을 다 보는 전체적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그것은 선도 아니며, 악도 아니며, 옳은 것도 아니며, 그른 것도 아니며,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니다. 그냥 이렇게 말한다. 이거를 한 마디로 뭐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이거를 무아라. 이렇게 말한다.

대승불교에 와서는 이거를 한마디로 뭐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하니까 뭐라 그랬다? 공이다 이렇게 말했다. 무아니, 공이니 하는 글자가 중요한게 아니오. 그러니까 금강경에서는 동산이다, 서산이다, 옳다 그르다. 맞다 틀렸다. 이런 거를 우리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상이라 그래. 상. 아시겠어요? 상이라 할 것이 없다. 그래서 뭐라고 했다? 무상이다. 또는 비상이다. 이렇게 표현을 했어. 이것을 후대에는 공이다. 이렇게 표현을 한 거요. 표현을 그렇게 한 거요.

??면 이것이 진리다. 저것이 진리다 하니까, 진리는 문자로 세워서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게 불립문자요. 글로 쓰면 안 된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그것은 글자로나 말로나 이거니, 저거니 이렇게 단정해서 말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래서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다 이런 거요. 그러면 현실에서는 어떠냐? 현실에서는 옳고 그른게 있어요. 내가 현실에서 산다는 것은 늘 어느 관점에서 본다? 자기를 중심에 놓고 한 측면에서 보기 때문에.

즉 이쪽 동네에 사는 사람은 이미 산다는 거는 어느 한 지역에 살기 때문에 그 산이 뭐가 된다? 동산이 되고, 저 산은 뭐가 된다? 서산이 되는 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동산이다, 서산이다 라고 말 하는 것 또한 틀린 게 아니오. 거기서 보면 동산인거 맞다 이거야. 거기서 보면 서산이거 맞다 이거야.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 말이 맞다 이 말이에요. 그러나 세상이 그 사람의 입장에서만 다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게 문제지. 부엌에 가보면 며느리 말이 맞다 이 말이야. 안방에 가보면 시어머니 얘기가 맞다 이거야. 북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 말이 맞다 이거야. 우리보기에 틀렸지. 저 미친놈들 생떼 쓴다 이러지만, 그 사람들 보기에는 맞아.

미국사람 보기에는 또 맞어. 미국사람들은 어떠냐? 아이 그거 차를 타고 가다 너그는 교통사고 안나느냐? 이거야. 차를 타고 가다가 실수를 했던 어쨌든 못봐가지고 쳤다 이거야. 애가. 그랬으니 이거는 공무집행 중에 이 사고가 생긴 거다. 그러니까 그 개인이 책임 질 일은 아니다 이거야. 그러니까 군대차원에서 배상을 하든지, 뭘 해야지. 그 개인이 인간이 공무 중에 일어난 일로 그 군인 개인이 책임 질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러면 미군이 미국이 책임져야 되지 않느냐? 그런데 한국하고 미국하고 협정을 맺기를 이럴 경우에는 재판권이 어디 있다? 미국에 있다. 미군에 있다. 이렇게 서로 법이 그렇게 돼 있다 이거야. 법이. 그 다음에 그 미국 군대 법으로는 그런 경우에는 이것은 개인이 책임을 물지 않는다. 이렇게 돼 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들은 법대로, 정상적으로 재판을 다 해서 법대로 처리가 돼서 된 거다. 이거야. 아무 하자가 없다 이거야. 그 사람죽은 거는 안됐고 애도가 되지만은 여기 어떤 하자기 있는 건 아니다 이거야. 처리에.

그런데 한국 사람이 볼 때는, 그 죽은 애 아버지 입장에서 볼 때는 이건 말이 안 되는 얘기. 말이 안 되는 얘기. 애가 길을 가다가 와서 치어 죽였으면 뭔가 누군가가 책임져야 될 사람이 있어야 될 거 아니야. 그런데 아무도 책임 없어. 미군은 공부집행중이니까 미국법에 책임이 없고, 그럼 누가 책임을 지냐. 가다가 뺨을 맞았는데 이거 아무 잘못이 없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기냐. 이 부모가 생각할 때 말도 안 되는 얘기고, 그 친구들이 생각할 때, 같이 공부하다 애가 길가다가 차가 와서 치어 죽였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거야.

뭐 운전수가 책임을 지던지, 부대대장이 책임을 지던지, 미국대통령이 책임을 지던지, 누가 뭔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사과를 할 사람이 있어야 될 거 아니냐 이거야. 그런데 아무도 책임을 안 진다. 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얘기냐 이거야. 이게. 그게 만약에 법이라면 법이 고쳐져야지, 이런 법이 세상에 어디 있냐 이거야. 이래서 이게 싸우는 거요.

그런데 미국사람이 생각할 때는 우리가 너희 6.25 전쟁도 막아주고, 너그를 위해서 여기 와 있다 이거야. 그런데 잘한 일은 아니지만은 그 정도는 갖고 그런 식으로까지 하면 우리가 여기 뭣 때문에 있나? 우린 누굴 위해서 여기 있는데, 그런 실수를 가지고 왜 그러냐? 이러는데. 우리가 생각할 때는 언제 우리가 너그보고 여기 있어 달라 그랬냐 이거야. 언제. 너그가 너그 이익을 위해서 여기 주둔하고 있는 거지, 너그가 우리를 위해서 언제 우리가 있어 달라 그랬나? 갈라면 가라. 이런 거요.

그러니까 이쪽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고. 저쪽에서 보면 또 한국 사람들 너무하다. 그럼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볼 때는 우리는 그럼 가가지고 군대까지 파견해가지고 그렇게까지 해 줬는데, 그런 일을 가지고 저렇게 벌떼처럼 일어나고 하니까 거기 뭐하러 가 있노? 철수해라.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거요. 우리는 사람을 치어 죽여 놓고, 아무 놈도 책임도 안지고, 멀쩡하게 있는 놈은 보내버리고, 그럼 누구 보고 책임지라 그러냐? 탱크보고 책임지라 그러냐? 도대체.

그러니까 사람을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이게 주권국가로 태어나 말이나 되는 얘기냐. 말이나 되는 얘기냐. 그러니까 법이 그렇다면 우리가 볼 때는 법이 고쳐져야 되나? 안고쳐져야 되나? 고쳐져야 된다. 이때 누가 책임을 지든지 누가 책임을 지는 어떤 법이 고쳐져야 되지 않느냐? 한국에서 어쨌든 이유로, 교통사고가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교통사고 났으면 책임자가 있어요? 없어요? 있다, 이 말이오. 그런데 왜 너그만 책임을 안지냐 이거야. 너그만. 그래서 개정을 해야 된다. 이게 문제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례를 들 때 어떻게 든다? 어느나라 어느나라인 경우에는, 독일 이럴 경우 때, 재판권이 그 국가에 있지 않느냐? 사례를 드는데, 미국놈은 또 국가마다 조금씩 틀리니까 또 이런 경우에 책임 안지는 국가 계약도 있어요? 없어요? 있지. 우리가 어느 나라도 어느 나라도 책임을 안지는 이런 사례가 있지 않느냐? 그런데 왜 너그만 문제냐.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이 부부간에 삶도 똑같애. 남북 간에도 똑같애. 이쪽에서는 뭐한다? 저쪽에다 퍼줬다. 퍼주고 돈 주고 정상회담해 노벨상 탔다. 여기 있는 사람 다 그럴 거요? 경상도 사람 생각은.

그런데 또 한쪽에서는 그럼 남북이 긴장하고 싸우면 좋겠냐? 전쟁하면 좋겠냐? 어쨌든 저 놈이 제정신 아니고 미친놈이니까 살살달래가지고 큰 불상사가 안일어나도록 서로 협력하도록 해야지. 이렇게 생각해. 저쪽 북쪽에 있는 사람은 또 어떻게 생각한다? 야~ 금강산 구경 투자한거다 이거야. 투자할 때는 우리도 어느 나라든지 선금을 줍니까? 안줍니까? 주죠. 왜? 선점하기 위해서.

원래 통일교재단 쪽에서 그 금강산 개발권을 가지려고 10년 전부터 해가지고 문선명이하고 김일성이 하고는 형님동생 했잖아 그죠? 그래가지고 거기 돈 많이 집어넣었어요. 집어넣어 거의 관광 전권을 쥐려고, 거의 다 됐어요. 그런 상태인데 현대가 가서 그거보다 돈을 열배로 더 주고 현대가 독점해 버렸어. 저도 그 과정을 조금 알아요. 왜냐하면 통일교 그 사람들, 북한 왔다갔다 교섭할 때, 나한테 늘 자랑했거든. 다됐다고. 그래 현대가 자기들이 독점했다 할때도 ‘에이, 그 말이 안 된다. 우리 10년 전부터 해가지고 되 있는데, 그거 정치적 쇼다.’ 이랬는데 나중에 신문난거보니까 현대가 독점해 버렸어.

그럴 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저는 좀 뭔가 뒷돈을 좀 박았겠어? 안 박았겠어? 박았어. 그런데 박을 때 정부하고 정부 허락 없이 박을 수 있나? 없나? 없지, 그죠. 그러니까 이런 문제를 가지고 북한 쪽에서 볼 때는 그 돈을 어디 쓰던 그거야 누구 자유다? 우리 자유다. 우리가 방콕 구경갔다 와가지고 방콕에서 호텔비 어디 써 놓고, 입장료 내는데 그 입장료는 돈을 주면 안 되고, 우리는 쌀로 주겠다. 너그 이 돈갖고 딴 데 쓰면 안 된다. 이런 말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지.

그러면 금강산 너그가 와서 보고, 가 놓고, 그 돈을 구경 값으로 줘놓고, 그 돈을 어디 쓰면 된다, 안 된다 이건 사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요. 보편적으로 하면, 그러니까 북한입장에서 볼 때는 저그가 와서 구경값, 입장료 내 놓고, 그 돈을 어디는 써라, 어디는 쓰지 마라, 그거를 갖고 북한에 돈을 얼마 퍼줬다. 이런단 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태국에 일 년에 얼마 퍼주고, 괌에 얼마 퍼주고, 사이판에도 얼마 퍼줬나 이 말이오. 구경가고 구경값 낸거고, 저거는 그거로 돈벌이 해가 벌었다 이거야.

남한사람들 구경시킨다고 북한에서는 요새 금강산 아무도 못갑니다. 북한에서는 뭐라 그러는 줄 알아요? 남조선 동포를 위해서 우리가 양보해서 금강산을 그 동안에 많이 봤고 남조선 동포는 못 봤으니까, 우리 장군님께서 양보하라, 했다는 거요. 아시겠어요? 당분간 남조선 동포들 좀 보도록, 우리는 그 동안에 많이 봤으니까. 그렇게 알려져 있는 거요. 야 너그는 못 봐 어야냐? 내가 물어보니까, 우리 같은 동포인데 남조선 동포들 보라고, 몇 년간 양보를 했다는거요.

그런 식으로 서로 생각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그 돈이 군대가 쓰여진 거 아니냐. 어디로 쓰여진거 아니냐? 왜 현금을 주느냐? 현금을 주느냐 하니까 공짜로 현금을 준 것처럼 이쪽에선 생각을 한다. 국민들도. 그런데 저쪽 편에서 볼 때는 물건을 주고 사고팔듯이, 그런 것들에 대한 사고 팔았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어젠가 신문에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거요. 정상적인 투자를 한 건데 무슨 뒷돈을 줬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거냐? 이거 봐 다 틀리잖아. 얘기가. 이럴 때 어느 게 옳을까?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만들고 뭐한다? 화학무기 만드니까 아주 나쁜 놈, 위험한 놈이다. 그런데 북한에선 뭐라고 그래요? 야 너그는 핵무기 없냐? 너그는 미사일 만들어서 안파냐? 미국놈은 우리한테 미사일 안산다고 압력을 억수로 집어넣어가지고 비행기하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샀죠. 수조 원어치를. 그래놓고 북한은 미사일을 딴나라에 팔았다고 굶어죽으면서 겨우 그거라도 팔아 밥 먹겠다는데 못 팔게 하는 거요.

그러니 북한입장에서 볼 때는 그 불공평하다. 나라가 크면 크지 왜 남의 나라에 어떤 자주를 위한 어떤 행동이나, 어떤 걸 금지하느냐? 이렇게 말하니까 그 얘기 들어보면 맞는 얘기요. 그런데 미국얘기 들어보면 어때요 또. 아~ 이것들이 핵무기를 만들어가지고 핵무기 만들 때마다 국제협약을 해 놨는데, 이걸 만들고, 미사일을 만들어 파니까 이거 아주 큰 문제라고, 이렇게 얘기하니까, 전 세계 국가가 들으니까, 그것도 그럴듯하잖아. 그죠.

지금 이렇게 해가지고 서로 다툰단 말이오. 그럼 한국 안에서도 그 얘기 듣는 사람마다 또 여러분들 입장이 다 틀려, 미국얘기 들어보니 그게 그럴듯한 사람도 있고, 이제까지 미국얘기가 그럴듯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북한 얘기를 들어보니 그게 또 그럴듯해서 생각이 바뀐 사람도 있고, 처음부터 북한 얘기가 그럴듯한 사람도 있고. 며느리 시어머니가 싸우는데, 동네사람이 가서 들어보니까 며느리얘기 옳다. 며느리 이쪽 사람들 대부분은 다 며느리 얘기가 옳은 거 같고, 노인들은 얘기 들어보니 다 시어머니 얘기가 옳은 거 같고, 이런 거요.

이것이 부처님은 이게 어떻다가 아니라가 어느 게 옳다 그르다가 아니다가 아니라, 이러한 현실을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옳고 그르다하는 것은 본래는 없다.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에서 일어난 거지, 존재자체가 옳으니 그르니, 선이니 악이니 하는 건 소용없다 이 말이오. 그 사람의 생각에서 일어나는 거요. 그러나 사람의 생각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이거야. 사람의 생각은 천차만층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생각이 옳다, 어떤 사람의 생각이 그르다라고 단정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늘 이렇게 산꼭대기 올라가서 비행기타고 위에서 밑으로만 보고 사는게 아니고, 우리는 늘 어느 골짜기에 몸담고 살고 있다. 우리는 남북한 중간에 떡 서서 사는게 아니고, 남한에 살든지, 북한에 살든지 살고 있고, 우리는 경상도 전라도 사이에 접경에 지라산 꼭대기에 올라가 사는게 아니고, 광주에 살든지 마산에 살든지 살고 있고, 우리는 또 어떤 특정한 위치에 살고 있다 이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늘 어떤 것은 옳고, 어떤 것은 그르다고 보인다. 그러니 사람들이 이런 것은 옳고, 저런 것은 그르다 하는 주장은 틀렸다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 라고 하는 것을 옳다고 말해서도 안되지만은, 동시에 이것이 옳다, 저것이 그르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고 니는 틀렸다고 말해도 안 된다. 왜? 그게 그 사람들의 현실적인 한계니까

개인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주어진 환경조건이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동산이다 서산이다 라고 서로 다투는 것은 옳지 않죠. 그럼 이 산은 무슨 산인가?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니다 라고 결정하면 이건 진리이냐? 그것도 진리가 아니다. 왜?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니다라고 단정을 해버리면 동산이다 서산이다 하는 사람을 보면 비난하게 되. 왜? 왜 니 동산이라 그러냐? 왜 니 서산이라 그러냐? 본래 동산도 없고, 본래 서산도 없는데, 왜 동산이니 서산이니 그러냐? 이렇게 해서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니라는 정답을 가지고 동산이다 서산이다 라는 사람을 다시 비난한게 된다.

그럼 이게 동산이다 서산이다라고 싸우는 사람하고 똑같다 이거야. 이것을 법집이라고 말해. 그러면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누군가 동산이다 누군가 서산이다 하면 어떻게 받아들인다? 에이고 이 병신같은 거 그것도 모르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고, 누가 동산이다 그러면, 저건 저 동네 사는 사람이구나, 누가 서산이다 그러면, 저건 저 동네 사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안다.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미국사람 미국사람대로 그렇게 말할 자유가 있고,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대로 그렇게 보고 그렇게 행동할 자유가 있어. 지금까지 문제는 뭐냐? 미국사람들은 그렇게 말해도 되는데,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 안된다하는 사회에 우리가 이제까지 살았어.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그러나 이제 한국 사람도 이것 잘못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 그러면 우린 다 옳고, 미국사람 다 틀리냐? 아니다. 미국사람은 지금까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는데, 우리는 이거를 서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없었어. 그런데 우리도 서산이라고 주장하는 거요.

그러면 이거 어떻게 해결해야 되느냐? 여러분들 어느 쪽에 설거냐? 동산 쪽에 설거냐? 서산 쪽에 설거냐? 여러분 자유에요. 아시겠어요? 여러분들 동산쪽에 서가지고 주장을 하든지, 서산쪽에 서가지고 주장을 하든지 자유에요. 그러나 이 마음이 해탈한 사람은, 내가 비록 서산이라고 주장을 해도 현실적인 우리들의 필요에 의해서 서산이라고 주장을 해도, 동산이라고 주장한 놈은 미친놈이다, 이런 생각은 안한다. 아시겠어요? 그 사람도 그렇게 주장할 권리가 있다라는 것을 이해하되, 나또한 동산이라고, 난 이 동네 사니까 동산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어떤 주장을 할 때도 마음의 분노가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이미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그렇다. 상대에 대해서, 비록 나와 의견이 반대된 사람에 대해서도, 그 사람에 의견을 존중한다. 존중한다는 말은 맞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는 그럴수가 있다 이거야. 그러니까 며느리가 부엌에 있으면서 시어머니 시키는데로만 하라. 이게 아니라, 시어머니는 안방에서 며느리가 해주는 밥이나 떠먹고 있어라. 이게 아니라 시어머니 관점에선 그렇게 볼 수도 있고, 며느리 관점에서는 이렇게 볼 수도 있는데, 제 3자의 경우에는 금방 오~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알 수도 있는데. 당사자인 경우는 그렇게 잘 안되죠.

그러나 수행자는 당사라자 하더라도, 즉 나는 시어머니 말이 무조건 말이 맞다 라는게 당사자가 아니라, 나도 이렇게 주장을 할 수도 있고, 내 애로를 시어머니에게 얘기할 수도 있지만은 시어머니는 무조건 틀렸다는 단정의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이제까지 살아온 환경으로 인해서 그렇게 보실 수가 있겠다.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겠다. 그러나 그거 (끊김...)
하고 앞으로 계속 내가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안살아도 된다 이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