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계속 하세요. 우리가 이 공부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길을 잘못 든 케이스가 있어요. 문제를 자기로 돌이키지 않고, 아직도 바깥에 문제가 있다고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 이거는 관점이 잘못 된 거에요. 등산을 갔는데 길을 잘못 든 거에 속한다 이거요. 이거는 한다고 되는게 아니에요. 이거는 관점을 바꿔야 된다. 두 번째, 길은 바르게 들었다 해도 안 되는게 있어요. 그것은 자동차를 어떻게 운전한다 하는 걸 배워도 실지로 해보면 안 되는 거와 같다.
그것은 시간이 필요해요. 다시 말하면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더 말하면 실패가 아직도 더 많아야 된다. 이런 얘기요. 넘어지고 넘어지고 넘어지는 것은 바른길에 섰을 때는 넘어지는 것이 바로 타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안 되는 과정이 바로 되는 과정이다. 이럴 때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왜 저 사람은 되는데 나는 안 될까?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저 사람 되는 건 저 사람의 문제고, 이건 내가 안 되는 건 내 문제요. 길을 바르게 섰는데 안 된다. 그러면 계속 할 뿐이에요.
100번해서 안되면 110번하고, 130번해서 안되면 131번째 하면 됩니다. 이럴 때 우리가 욕심을 버려야 하죠. ‘왜 나는 안 되나?’ 하는 것도 욕심이에요. 조금해보고 그냥 되기를.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벌려고 안 그러고, 복권사서 돈 벌려고 하는 것처럼, 수행도 그냥 단박에, 화끈하게 한번 해 보려고 하는 거에요. 그런 건 옳지가 않습니다. 길을 바르게 섰을 때는 그냥 되고 안 되고에 집착하지 말고, 안되면 또 하고, 안되면 또 하고, 안되면 또 하고, 아 또 놓쳤구나. 아 또 놓쳤구나. 또 나를 고집했구나. 또 나에 집착 했구나. 또 나라는 것에 사로잡혔구나. 이렇게 넘어지면 탁 놓고 일어나고. 넘어지면 탁 놓고 일어나고. 이렇게 계속해 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말 하면 조금 오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수행은 실패의 연속입니다. 수행은 성공의 연속이 아니고, 수행은 실패의 연속이에요. 원효대사가 해골바가지 물마시고 토했잖아. 그죠? 해골바가지 물마시고 토했다는 건 성공이오? 실패요? 실패잖아. 불구부정인데 토하기는 뭐 하러 토하노? 그지? 불구부정이잖아.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으면 안토해야지, 왜 토하나? 토했다는 것은 실패했다는 거요. 그런데 그 실패를 통해서 자기를 깨친 거요. 불구부정은 머리에서 이론적으로 알았던 거고. 그러나 현실은 실패. 현실은 안 된다는 거요. 그 안 되는 과정을 몸으로 체험을 한 거란 말이오.
번뇌가 즉 보리고, 중생이 곧 부처라는 걸 다 이론적으로 그 뒤에 다 알았는데, 대안대사가 천민촌에 술집에 끌고 갔을 때, 이런데 중이 오면 안 된다 하고 가버렸잖아요. 그럴 때 대안대사가 하는 말이 ‘여기 마땅히 구제해야 할 중생을 두고 어디 가서 중생을 구제한단 말인고.’ 그것도 실패잖아요. 분별심을 안내야 되는데 냈단 말이오. 그러니까 실패한 거를 자각하는 거요. 그런데 이 병의 큰 문제는 실패를 안하려는게 문제요. 첫 번째 제일 하급중생은 실패해놓고도 실패를 인정 안하는 거고. 두 번째는 실패를 해놓고 실패를 합리화 하는 거요. 그걸 어해 다하노? 그럴 수도 있지. 잘못해놓고 잘못 안했다고 우기는 거고. 두 번째는 잘못한 거를 합리화하는 거고. 세 번째는 잘못 안하려고 애쓰는 거요.
네 번째 단계에 가야 잘못을 수용하는 거요. 실패를 수용해 내야 되.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요. 그래서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라 그래.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 돼. 잘못하므로 해서 내가 발전하는 거요. 돌부리에 채어 넘어져야 거기에 돌부리가 있다는 걸 발견한다니까, 마당에 돌부리가 있어서 수많은 사람이 다칠 수가 있는데, 그 돌부리를 내가 채서 넘어지지 않을 때는 마당에 돌부리가 없는 줄 안단 말이오. 그 돌부리에 채어 넘어지므로 해서 비록 무릎은 깼지만은 ‘아~ 여기 돌부리가 있구나. 아~ 이걸 놔 놨으면 수많은 아이들이 여기에 넘어질 뻔했구나.’ 내가 넘어지므로 해서 돌부리를 발견했고, 돌부리를 캐냄으로 해서 수많은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찾았기 때문에 그 돌부리에 채서 넘어진 것은 실패가 아니란 말이오.
그것이 도리어 자기에게 좋은 점이다. 공부는 요 단계까지는 가야 되는데. 요 단계까지 가야 인생사가 다 수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잘하고 잘못하는 것에서 뛰어 넘을 수가 있어요. 잘하든 잘못하든 상관없다가 아니라, 잘하면 잘하는 데로, 잘못하면 잘못하는 데로 더 큰걸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내가 화를 안 나는 상태가 됐으면 그건 그거대로 좋고, 화가 났다면 화가 났기 때문에 공부가 안 된게 아니라, 화가 나므로 해서 ‘아~ 내가 요 정도에서는 경계에 끄달리구나.’ ‘아~ 이 정도에서는 내가 사로잡히구나.’ 자기를 점검하고 자기를 알아차리는 자기 공부가 부족하다라는걸 아는 계기가 되잖아.
이런 실패가 없으면 교만에 빠지기가 쉬워요. 수행도. 자기는 뭐든지 다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거야. 그러니까 꾸준히 해나가는게 필요하다. 욕심을 내면 안 된다. 삶에서 다치는 일은 그게 실패든 성공이든 그냥 삶이에요. 그냥 받아들이세요. 그런 것들이 모여서 삶이 되는 거지. 성공하는 것만 내 삶이고 실패한건 지워버리려고 하면 안 돼요. 그 실패를 통해서 지금 이 여러분들은 사실은 지금 이런 삶이 존재 하는 거요. 무지가 있어야 깨달음이 있는 거 아니오. ‘아~ 내가 어리석었구나.’ 그게 깨달음 아니오. 그래서 번뇌 즉 보리 라고 하는 거요.
어리석은게 어리석은 줄 모르는게 중생이고, 어리석은걸 합리화 하는게 중생이에요. 어리석음에 절망하는 것도 중생이오. 어리석음을 어리석음인줄 알고 거기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수행자다. 세상이 다 내 뜻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여러분들이 이라크전쟁 때문에 속상하다. 그러면 그것은 세상을 내 뜻대로 되고자 하기 원하는 거요. 똑같은 거요. 저 남자가 내 맘대로 안 되는 거나. 미국 놈이 내 맘대로 안 되는 거나. 이라크전이 내 맘대로 안 되는 거나, 이라크사람들이 내가 바라는 것만큼 안 해주는 거나, 이런 걸 속상해 한다면 결국은 세상이 다 자기 뜻대로 돼야 된다는 거요. 이 세상은 내 뜻대로 안됩니다.
문제는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교훈을 얻고 어떻게 삶을 살아야 되느냐하는 길을 찾는 거요. 여러분들이 이것이 이라크전이 성공으로, 만약에 여러분이 생각하는 성공. 이라크 주민들이 악착같이 싸워서 미국 놈이 곤욕을 치루는 걸 보면, 여러분들은 배우는게 없을 거요. 만세만 불렀지. 그러나 이렇게 됨으로 해서, 우리가 생각할 바가 굉장히 많아졌어요. 과연 정의가 뭔지. 과연 이럴 때 어떻게 대응을 해야 되는지. 이게 우리 현실로 다가올 때는 과연 어떻게 해야 될지.
우리가 오판한 것이, 우리가 뭔가 잘못 생각한 것을, 우리가 막연히 바라면서 그리 되지 않겠나 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걸. 내가 어떤 사물에 대해서 객관성을 상실하고, 어쩌면 명분에 너무 지나치게, 내 생각에 빠져서 사물을 개관적으로 보는 눈을 잃었구나 하는 거를 이 기회를 통해서 오히려 자기 발견을 해야 되는데, 이게 좌절할 계기가 되는게 아니고. 그래서 우리가 다음에 우리 문제가 다가올 때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되겠느냐? 힘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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