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함께 살던 분이,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면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고, 누가 옆에서 위로 한다고 해도 위로가 잘 되지 않을 겁니다. 우리 저 분을 위해서 다 같이 합장하세요. 자 ‘왕생극락하십시오’ 이렇게 3번 해 봅니다. ‘왕생극락하옵소서’ ‘왕생극락하옵소서’ ‘왕생극락하옵소서’ 네. 제가 두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부다담마. 부처님의 지혜의 말씀, 소위 우리가 말하는 깨달음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말씀을 드리고 싶구요. 두 번째는 불교의 신앙, 즉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돌아가신 분, 그 분이 부모든, 남편이나 아내든, 자식이든, 우리가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슬픔에 잠겨 있다는 것. 이것 또한 번뇌입니다. 이유를 대면 어떻게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안 슬플 수가 있느냐? 남편이 돌아가셨는데 안 슬플 수가 있느냐? 자식이 돌아갔는데 어떻게 밥이 목구멍에 넘어 가느냐? 이렇게 슬플 수 밖에 없는 여러 이유, 핑계를 우리가 댑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우리마음이 짓는 바요.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걸 보면 저렇게 한다고 무슨 이익이 있느냐? 이렇게 생각 되어지지만은 본인은 괴롭다 이거야.
무엇인가에 사로잡혀있을 때는 이것은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이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고, 화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만은, 거기서 한 생각 벗어나면 아무 일도 아니에요. 지구가 생긴 이래로, 생명이 생긴 이래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겠습니까? 저 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많은 나뭇잎이 떨어지고 새로 나고, 떨어지고 새로 나듯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했겠냐 이거요. 큰 원리에서 보면 저 바다에서 파도가 생기고 사라지고, 생기고 사라지고, 생기고 사라지고.
그 파도 하나하나에 집착하면 늘 났다고 좋아하고, 소멸했다고 슬퍼하지만은, 바다 전체를 보면 어때요? 파도는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고, 다만 뭘 할 뿐이다? 출렁거릴 뿐이에요. 나뭇잎이 떨어지고, 움이 트고, 떨어지고 움이 트는 걸, 그 하나하나 나뭇잎에 집착하게 되면, 가을이라 슬프고 봄이라 기쁘고 하지만은, 그 나무 전체를 볼 때는 그냥 하나의 생명 작용에 불과하다. 오늘 우리가 개별 생명 하나하나를 보면, 나고 죽음에 기쁨과 슬픔이 있지만은, 큰 생명의 바다에서 보면, 저 물결이 출렁거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집착을 놓아라 하는 거요.
두 번째는 우리가 사람이 죽으면 불교적으로는 어디 간다고 그래요? 좋은 세상에 태어난다. 어디? 극락세계에 태어난다. 이것을 극락 왕생한다 그래요. 그래서 왕생극락 하십시오. 또는 왕생 극락 하옵소서. 이렇게 말한단 말이오. 그러면 극락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보다 좋은 곳이오. 나쁜 곳이오? 나쁜 곳이오? 좋은 곳이지. 그러면 좋은 곳에 가는 일은 좋은 일이오. 나쁜 일이오? 그런데 좋은 곳에 간다고 믿으면서 왜 좋은 곳에 가는데 슬퍼합니까? 슬퍼한다 이 말은 안 갔으면 좋겠다 이 말 아니오. 그럼 좋은 곳에 가지 마라 이 얘기요. 좋은 곳에 가지 마라. 그것도 모순이지.
또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사고로 돌아 가셨든, 심장마비로 돌아 가셨든, 병으로 돌아 가셨든, 어쨌든 현실은 지금 돌아 가셨어요. 안 돌아 가셨어요? 돌아가셨지. 그럼 돌아가신 사람을 계속 생각하면서 울면. 첫째, 내가 기뻐요 슬퍼요? 슬프지. 행복해요 불행해요? 불행하지. 첫째 나한테 안 좋아요. 그럼 두 번째 나한테는 안 좋지만은 돌아가신 그 분께는 도움이 될까 이 말이오. 자~ 내가 슬퍼한다 괴로워한다 하는 말은 그 분 가지마란 얘기에요. 그럼 이미 몸을 떠났는데 가지마 라고 자꾸 잡으면 뭐가 되요? 無主孤魂무주고혼이 되겠죠.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고.
그러면 내 슬픔이 돌아가신 남편을 無主孤魂무주고혼으로 만드는 거요. 내 슬픔이 돌아가신 부모를 無主孤魂무주고혼으로 만든다 이 말이오. 잘 하는 짓이오 못하는 짓이오? 못하는 짓이오. 그래서 이것은 화를 자초한다. 나에게도 나쁜 것이오. 그분에게도 나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할까? 몰라서 그렇다. 왜 이렇게 할까? 집착 때문에 그렇다.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끊으면 건강에 좋은데도, 그걸 끊지 못하는 것은, 담배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 습관에 중독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것 어리석음이다. 그러니 제일 좋은 방법은 뭐요? 어떤 이유로 돌아 가셨든, 돌아가셨으면 어떻게 해야 된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렇게.
약간 좀 매몰차 보여요? 이것이 그분에게 최고로 좋은, 돌아가신 분에 대한 나의 최고의 예의에요. 어떻게 하는 게? 안녕히 가십시오. 어디로? 극락세계로. 그렇게 인사하셔야 되.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어떻게 해야 된다? 잘 해야 되.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야 된다? 안녕히 가십시오. 웃으면서. 웃으면서 ‘안녕히 가십시오.’ 육조 혜능대사께서 돌아가실 때 많은 제자들이 울었어요. 그러니까 혜능대사께서 뭐라 하셨냐? 너희들이 내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구나. 그러니 너희들이 울지. 너희들이 만약에 내가 가는 곳을 안다면 울지 않을 거다. 그런 말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는 갈 줄을 몰랐죠? 간 뒤에는 어디로 간 줄을 모르니까 살아 있을 때는 갈등하고, 돌아가신 뒤에는 또 슬퍼하고.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요.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어리석게 살아서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돌아가신 지금이라도 지혜로워져서, 이 슬픔을 오래 간직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윤회를 한다고 한다면, 적어도 49일 안에는 윤회를 해야 되겠죠. 그런데 저리 자꾸 울면 49재가 끝나도 천도가 될까 안될까? 안되겠지. 스님이 보내는 힘보다 울며불며 잡는 힘이 더 세요. 그러니 재물을 많이 바치고, 어떻게 천도제를 지내는 것보다 제일 좋은 천도제는 어떻게 하는 거라고? ‘안녕히 가십시오.’ 이것이 가장 좋은 천도제다.
그러면 그분이 돌아가셔서 만약에 내려다 본다고 가정을 한 번 해 본다면, 내가 아이들 데리고 또는 남은 가족들과 꿋꿋이 사는 게 좋아 보이겠어요. 안 그러면 늘 울면서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게 더 좋아 보이겠어요? 그러니 그 분을 위해서도 내가 웃으며 사는 게 좋다. 나를 위해서도 그 분을 위해서도. 이렇게 법문을 들으면 조금 정신이 드는데. 또 그 사람 생각만 하면 또 눈물이 나요. 그런데 이거는 어쩔 수 없어요. 왜냐하면 무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정신을 차려야 된다.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짓을 마치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피우고 싶은 것처럼 일어나는 거요. 그러나 그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 분을 생각하면 일년에 한번씩 제사도 지내고, 무덤이 있다면 무덤가에도 가고, 그것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뭐 하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이 얘기에요. 우리도 부처님 돌아가셨지만 부처님 늘 생각합니까 안 합니까? 하죠. 우리가 부처님 늘 생각하지만 부처님 생각하며 슬퍼합니까? 안 합니다. 얘기의 요점은 슬퍼하지 마라. 이런 얘기요. 자~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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