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떤 뭘 하고 싶다. 잘하고 싶다하는 건 욕심이 아니에요. 그건 두 가지가 섞여요. 하나가 욕심이고 하나가 원인데, 우리가 욕심은 버려라고 하고 원은 크게 세워라. 이런 말 들어봤죠. 그러면 욕심과 원의 차이는 뭐냐? 그것이 안 되었을 때 괴로우면 욕심이오. 안되었을 때 “어, 이러면 안 되네. 저래볼까?” 하고 다시 도전하면 그거는 원이에요. 자기가 지금 얘기 들어보면 자긴 좀 욕심에 가까운 거 같네. 그러니까 오늘 내가 발표를 했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그런데 발표의 평가가 안 좋았어. 그래서 기분 나쁘면 그건 욕심이오.
발표에 대한 평가가 안 좋은 거를 들으면서 “아, 내가 이렇게 발표하니까 평가가 나쁘게 나오네. 그럼 다음엔 저렇게 한번 해봐야지.” 이런 생각이 들면 이건 욕심이 아니라 원이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욕심을 내고 있으니까 그렇다. 욕심은 버려라는 거요. 아무 도움이 안 돼. 제가 이번에 미국 가서 신학대학에서 즉문즉설을 했어요. 그런데 사람이 질문을 하는데, 그렇게 묻는 너는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묻냐? 이렇게 조금 따졌어요. 아시겠어요? 아까 저기 물을 때 내가 조금 추궁을 하잖아. 그죠?
그러니 이게 굉장히 부작용이 났어요. 왜냐하면 이게 다 유명한 사람인데 내가 좀 따졌더니. 그러니까 그 사람 마음 안받아줬다고. 그런데 내가 뒤에 가서 감싸 안아주면서 내 경험을 얘기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더니 그건 또 평가가 또 엄청 나요. 그 평가는 뭐냐? 저 분은 깨달은 사람이다. 이렇게 까지 평가가 나올 정도로 좋아졌어요. 그런데 실제로 내가 볼 때는 전자가 훨씬 더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거요. 전자는 개인에게 도움이 되는 거고, 후자는 듣는 보통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얘기요. 그거는 감동은 있지만, 어떤 전환은 안 일어나요.
예를 들면 내가 불쌍한 아이들을 돕고 있는데, 그런데 얘들이 말을 안 들어서 내 힘드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을 말 좀 잘 들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물었을 때, 예를 들면 내가 그 아이들을 위해서 돕니? 너를 위해서 돕니? 그러면 그 사람은 아이들을 위해서 돕는다 그래. 진짜냐? 네가 너를 위해서 사는 거 아니야? 이런 식으로 좀 추궁을 했더니 기분이 억수로 나빠진 거요. 그런데 그 사람만 나쁜 게 아니라 듣는 사람까지 나빠졌어. 그러면 자기 내면에 우리가 어떤 남을 돕는다는 거는, 돌이켜보면 그건 사실은 자기를 위하는 길이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런데 그걸 자기가 알아야 내가 남을 도와주는데도 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도 내가 웃을 수가 있는 거요. 왜냐하면 저 사람을 위해서 하지 않고 누구를 위해서 했으니까. 나를 위해서 한 거니까. 이렇게 까지 가줘야 우리가 어떤 좋은 일일 기쁘게 하지. 만약에 이게 안 되면 좋은 일 하고 비난 받으면 사람이 배신감을 느끼고 화가 나고 이렇게 된단 말이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좋은 의도를 해도 결과가 좋은 거 아니고, 나쁜 의도로 했다고 결과가 나쁜 것도 아니에요. 그럴 때 그걸 딱 들으면서 물론 사람이라는 거는 좋게 해줬는데도 나쁜 평가가 나면 기분이 약간 나쁠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평가됨으로 해서 내가 앞으로 서양에서 또는 이런 사람을 상대로 할 때는 어떤 방식으로 해야 되겠느냐?
한국에선 어느 정도 신뢰가 있으니까 좀 기분 나쁘다 해도 괜찮지만, 그건 처음 했는데 그렇게 접근하면 안 좋잖아. 그죠? 그러면 먼저 이렇게 이해를 좀 하는 방향에서 신뢰를 얻은 뒤에 그 다음부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도 된단 말이오. 그러면 방식이 달라져야 돼. 이렇게 그걸 기분나빠하기보다는 아, 그러니까 다음에 할 때는 이렇게 해봐야 되겠다. 또 하면 또 평가가 나쁘게 나오면, 어, 그러니까 요건 요렇게 해봐야 되겠다. 이렇게 하면 계속 평가가 나빠지는 가운데도 자기는 발전하나? 안하나? 발전하게 되는데, 좋은 평가가 나오면 다음에 뭘 개선할 게 없어지잖아.
그러면 발전은 안 되지. 기분만 좋을 뿐이지. 그러니까 원이라는 것은 이렇게 평가가 나쁘게 나왔을 때 그것을 개선의 계기로 삼으면 그건 그 사람의 가진 원이고, 욕심을 내면 좋은 평가가 나쁜 평가가 나오면 기분 나쁘고 괴로워지고 좋은 평가가 나면 좋아지고,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발전은 없어. 그러니까 자기는 자기 실력도 안 되는데 자꾸 좋은 평가만 지금 바라잖아. 자기 실지로 실력 있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자기 실력 없다는 걸 자기가 알고 시작해야 되고, 자기가 뭘 모른다는 거부터 시작해야 된단 말이야.
그래서 자기 모르는 주제에 뭘 거창한 걸 발표할 자기 능력도 안 되는데,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아는 수준에서 솔직하게 평가하고 그 평가를 받아서 다음에 개선해서 또 조금 해보고, 또 평가가 나오면 개선해서하고, 개선하다보면 어느덧 자기는 뭐한다? 조금 더 이렇게 잘하는 사람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거지. 안된다고 상심하라는 거 아니라 자기가 원래 안 되는 수준이잖아. 자꾸 자기가 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니까네 안 되는 게 문제지, 자긴 처음부터 안 되는 수준인데, 뭘 자기가 되려고 그래?
그러니까 사람이 10가지 나쁜 평가를 하면 20가지 안한 것만 해도 다행이다. 10가지 밖에 지적 안 받아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다음에 8가지 받으면 지난번에 2가지는 그래도 나쁜 점수 덜 받았잖아. 그지? 그러니까 플러스를 받으려고 하지 말고, 지금은 마이너스를 받을 생각을 하고, 마이너스 개수가 줄어드는데 자기의 발전이 있다. 이렇게 봐야지 플러스로 갈 거를 너무 생각하지 마라는 거지. 지금 대학원에 들어간 지가 지금 2개월 밖에 안 되었는데, 자기가 뭘 연구해서 발표하겠어.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임해라.
그러나 인간은 내가 이렇게 듣고도 불구하고 너나나나 다 그래도 좀 좋은 평가가 받고 싶은 인간의 본성은 있나? 없나? 있으니까 그게 늘 나쁜 평가 나오면 조금 순간적으로 마음이 움츠려 들기는 하지만, 그러나 “오, 이러면 나만 손해지. 나쁜 평가가 나쁜 평가가 아니라 그것이 내가 개선할 중요한 기회다.” 이렇게 돌이켜야지. 돌이켜서 또 하고, 돌이켜서 또 하고. 그렇게 하면 괜찮을 거 같은데.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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