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즉문즉설] 제153회 나와 다른 상대를 많이 버거워 합니다.

Buddhastudy 2012. 11. 24. 04:19
출처 YouTube
 

현실적으로는 이걸 해결을 하려면 이게 108배 하기 힘든 사람은 한 3,000배를 한번 해버리면 108배 하는 게 굉장히 쉬워요. 그런 것처럼 제일 성격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 저 인간하곤 정말 옆에 그냥 한방에 있기도 싫다. 하는 이런 인간. 지금까지 만난 인간 중에, 회사 같으면 제일 싫은 인간하고 억지로라도 데이트를 며칠 해봐. 데이트란 건 꼭 이성적 교재라는 게 아니라, “~ 술 한 잔 하러 갑시다.” “식사합시다.” 식사도 하고. 그러면서 그 사람을 찬찬히 봐요.

 

저 사람이 뭐가 문제라서 내가 이렇게 거부반응을 일으킬까? 눈도 두 개고. 코도 하나고, 입도 하나고, 나하고 똑같은데 피부빛깔도 비슷하고, 뭐 때문에 그럴까? 한국말 하고. 영어 하는 것도 아니고, 일본말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제일 거부반응이 가는 사람을 하나를 선택해가지고 며칠을 자주 만나서. 이거는 그 사람이 만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라, 내 공부차원에서 만나보는 거요. 만나 이렇게 해보는 거요.

 

그렇게 해서 마음에서 거부반응이 오지만은 그걸 경험을 자꾸 해보면 그 사람도 알고 보니 사람이네. 그것도 다 지 나름대로 착한 사람이네. 생각이 좀 다르다 하더라도 그도 인간이네. 그렇게 될 거 아니오. 그래 되면 소소한 건 그냥 없어져 버려. 제일 큰 걸 가지고 한번 시도를 해보는 이런 방법이 있고, 이제 그냥 보통 하려고 그러면 수행적 관점은 그렇게 불편할 때 불편하면 안 된다든지, 불편한 걸 숨긴다든지, 불편한 걸 드러낸다든지.

 

이미 불편함이 일어나버린 걸 갖고 어떻게 처리할 거냐를 갖고 늘 우리는 고민을 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괴로움이 되지. 이럴까? 저럴까? 이럴까? 저럴까? 그러니까 그냥 ~ 저 사람의 저런 말에 내가 불편해하는구나.’ ‘저 사람의 저런 행동에 내가 불편해하는구나.’ 즉 그거는 어디서 일어나? 내 마음에서 일어나잖아. 내 까르마에서 일어나잖아. 딴 사람들은 괜찮은데 나만 불편해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 업식. 내 업식은 저런 것에는 거부반응을 일으키구나. 저런 것에는 거부반응을 일으키구나, 저런 색깔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구나. 저런 맛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구나. 음식도 애래 보면 어떤 사람은 돼지고기 맛있다는데 돼지고기 입에 안 대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닭고기 맛있다는데 닭고기 입에 안 대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고기 좋다는데 고기 입에 안 대는 사람도 있고, 다 다르단 말이오.

 

나는 저런 것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구나. ~ 이게 내 현재의 업식이구나. 자기 업식을 자꾸 볼 뿐이에요. 이걸 고친다든지 이걸 나쁘다든지 드러낸다든지 숨긴다든지. 이런 생각 하지 말고. ~ 내 업식이 이런 거네. 아는 재미. ~ 저 사람 만났더니 이렇게 반응하네. 아는 재미로 그냥 다만 그것을 이렇구나 하고 알기만 하지 그걸 고치려면 지금 피곤하단 말이야. 숨기려 해도 피곤하고, 드러내려고 해도 피곤하고, 감추려고 해도 피곤하고, 일어나지 마라 그래도 피곤하단 말이야.

 

일어난 거를 일어나는 대로 그냥 알기만 한다. ~ 이러네. 나한테 이런 업식이 있구나. 용어를 까르마라 그래요. 나한테 이런 까르마가 있구나. 나는 이런 데는 거부반응 까르마가 있구나. ~ 내업식은 이런 거구나. 이렇게 다만 그것이 일어남을 알아 치리고, 알아차리고, 그냥 알아차릴 뿐이다. 그건 어려운 거 아니잖아요. 파도가 일어나면 일어난다고 알아차릴 뿐이지 파도를 없애라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알아차리면 자연적 그 반응이 있지마는 반응이 내 감정을 이렇게 휩쓸지는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