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251회 새벽귀가에 대한 잔소리, 사생활 침해라는 아이

Buddhastudy 2013. 1. 20. 04:58

출처 YouTube

 

애는 보살펴 주는 것도 필요하지마는 통제력을 갖고 있어야 되거든요. 제어력을 갖고 있어야 되는 데 이미 제어력이 없어졌죠. 겁을 안내고. 지금 만약에 엄마가 화를 내고 야단을 친다 해서 애가 겁을 낼 이도 없고. 엄마도 그렇게 강하게 죽기 살기로, 까짓것 너 죽고 나 죽자.’ 할 정도로 세게 밀어붙일 힘도 없고. 그러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일이오. 통제력을 가져야 되는 데 통제력이 없다는 거요.

 

그러니까 그것은 내 살기에 급급해서 내버려 뒀다고 새삼스레 나서가지고 달래도 잘 안 되고 야단쳐도 잘 안 되는데, 지금 얘기 들어 보면 지금 한마디로 말하면, 애가 이미 엄마를 만만하게 본다는 거거든. 그런 얘기를 한다는 거 자체는. 지금 야단친다고 될 일은 아니오. 그러니까 애를 제대로 교육을 하거나 두 가지 길이오. 일단 시도하는 데까지 해보고, 그다음에 18살이 넘으면 그거 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쫓아내 버리는 수밖에 없어요. 지 알아서 살도록. 냉정해야 됩니다. 교육을 시키려면.

 

늘 부모가 자식을 망치는 이유가 냉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고 집착으로 키우기 때문에 망치거든요. 그래서 자기 인생에 책임을 져야 된다는 거. 자기가 그렇게 엄마 혼자 있는데 돈을 그렇게 써서 감당을 못하면 그 의식이 없다는 거 아니오. 그렇게 자식을 키워서 되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볼 때는 첫째 해 볼 수 있는 것은 병원에 치료를 받아보고 상담사, 전문가 상담사에게 맡겨서 거기 전적으로 맡기면 안 되고 일단 초기 도움을 얻는 것. 하나 있고.

 

그다음에 애를 데리고 돈을 좀 들이더라도 가서 고생을 함께 고생하는 것. 그렇게 해서 이 중독성으로부터 좀 벗어나게 하는 것. 그리고 그 함께 고생하는 중에 엄마가 자기 보호자고 엄마가 강하다 하는 인식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줘야 되는데. 그 처방은 본인이 감내할 수가 있느냐? 본인이 그런 오지에 가서 인도 같은 열악한 조건에 가서 배낭여행을 할 만큼 본인이 견뎌내겠느냐? 이게 문제지. 견뎌낼 수 있다면 애 데리고 여행하는 것도 좋죠.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계획 잡아가지고. 이렇게 하면서 뭔가 치료를 해야지. 지금 이렇게 계속 끌려다니면 문제아가 되죠. 문제아가 되면 집의 돈 훔치고 남의 돈 훔치고. 그다음에 저그끼리 모여서 합숙하고. 조금 있으면. 그다음에 남자한테 상처받고 이렇게 갈 길이 뻔하죠. 그런 것을 엄마가 첫째 이런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내가 이겨내야 되잖아요. 아이 때문에 내 인생을 버리면 안 되잖아. 첫째는 내 기도를 먼저 하세요. 내 기도를 먼저 하는 게 중요하고.

 

두 번째는 아이에 대해서 뭔가 내가 희생을 치를 각오해야 된다. 그것도 안 된다면 보호시설에 위탁하는 수밖에 없어요. 내가 감당을 못하니까. 대부분 이런 경우에 냉정해서 사회보호시설에 위탁하든지. 병원의 도움을 얻든지. 안 그러면 내가 까짓것 부모로서 내 자식 내가 책임져야지 해서 목숨 걸고 애하고 사생결단을 해서 내가 책임지든지. 뭔가 결정을 내 줘야 돼.

 

그런데 부모의 문제점이 뭐냐 하면, 늘 양다리 걸쳐서 이렇게 좀 갔다가 저렇게 좀 갔다가. 딴데 맡기려면 엄마의 정으로서 애를 버리는 거 아닌가 싶고, 내가 껴안기에는 내가 너무 힘들고, 병원에 의탁하기에는 또 그런다고 되나? 주위 사람 얘기 들어보면 병원에 가서 안 된다고 그러고 우왕좌왕 우왕좌왕하다가 주로 망치게 되죠. 첫째는 내가 해볼 수 있는 것은 내가 정말 남편에게 참회기도를 하면서 정말 간절하게 참회기도를 하고. 아이의 저런 것도 다 어떻게 하든 수용할.

 

그러니까 마음의, 미우면서도 겉으로만 겁을 내서 다스리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정말 집착이 끊어지고 길거리의 말썽 피우는 불쌍한 아이 집에 데려다 키우는 그런 마음이라야 되거든요. 만약에 길거리에서 문제아 고등학생 중생인 애를 내가 하나 보살피지도 못하고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애를 데려다 키웠다고 생각해 봐요. 그 말은 뭐냐 하면 보살피는 마음은 그건 보살 마음이거든? 그다음에 거기에는 냉정함이 있지 거기에는 절대 부모 같은 집착은 없단 말이오. 그런 마음이 딱 들면 고칠 수가 있어요. 그럼 아이도 고마운 마음이 들죠.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 이거는 끝이 없습니다. 그러고 이걸 갖다가 어디 가서 자꾸 남한테 위탁해서 적당하게 빠져 도망갈 생각 하면 안 돼요. 자기 자식인데 누가 맡아줘요? 자기가 책임을 져야지. 그러니까 우선 이런저런 생각하지 말고 기도부터 하세요. 기도부터 하면서 이것이 다 내 인연이고 내 과보고 어떤 과보도 받겠다. 이런 기도를 한 100일쯤 해가면서 그 아이를 보는 내 마음이 흔들림이 없는지. 이걸 먼저 점검해. 나만 흔들림이 없으면 언제든지 고쳐집니다.

 

그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가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흔들림이 없는, 그냥 불쌍한 마음이 들 정도로. 그러면 아이가 심리적 안정감을 찾죠. 그런데 엄마가 늘 그 경계에 끄달리죠. 불쌍했다가 미웠다가 불쌍했다가 미웠다가. 이렇게 끄달리기 때문에 해결되기가 좀 어렵다. 그러면 지금 본인이 이 시간에 결심이 굳어져야 돼. 이 아이를 내가 정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 몸을 버려도 좋겠다. 하는 그런 딱 각오가 서야 되고. 남이 108배 하면 난 천 배를 해야 되고. 이런 각오가 딱 서버려야 돼. 다른 사람 쳐다보고 저 사람은 저런데 나는 왜 인생이 이러냐? 이런 생각 하면 안 됩니다.

 

첫째 결혼을 하든 안 하든 하기 전에 자기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서 좀 중심을 잡아야 됩니다. 두 번째 결혼하면 혼자 살던 게 둘이 살잖아. 그지? 기본적으로 맞춰야 돼요. 그런데 맞출 생각 없고 상대편을 자기한테 맞추는 걸 기준으로 해서 결혼을 한단 말이오. 그런데 서로 이게 둘이서 네가 나한테 맞춰라.” 이렇게 잡아당기는 게 이게 ** 죽을 때까지 간단 말이오. 그런데 자식이 태어나면 자식입장에서 볼 때는 한 몸이 두 쪼가리 나는 거 하고 같단 말이오.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게 갈라져 있으니까. 분열이 생깁니다.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도 있느냐?” 하는데, 내 운다고 무슨 일이 생겨? 죽은 사람이 살아오겠어? 죽은 사람이 돈을 갖다 주겠어? 그러니까 아이한테 당당히 해야 된다. 이 말이오. 딱 아빠하고 엄마 둘이 있으면 역할 분담되지만, 혼자면 아빠 엄마 역할 다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죠? 아빠 역할은 별거요? 가장 역할 하는 거 아니오. 남자가 뭐 할 일 있나? 돈이나 벌어오는 일이지. 야단치는 일. 그런 역할도 하고 엄마가 보살피는 역할도 딱 하고. 이렇게 일인이역을 하면 된단 말이오. 혼자 있으면.

 

그런데 우리는 살 때는 서로 싸우고 헤어졌으면 하고, 죽고 나면 외로워하고 그리워하고 울고 그런단 말이오. 같이 살 때는 그냥 서로 맞춰가며 살고 죽으면 안 맞춰도 되잖아. 그런데 죽으면 뭐가 아쉬운데? 돈 때문에 아쉽지. 아쉬울 게 뭐가 있어요? 안 맞춰도 되잖아. 나 혼자 당당하게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되잖아. 늘 이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우리가 이생을 살잖아요. 그래서 지금 참 들으면, 내가 들어도 답답한 얘기요. 그죠? 그러나 지금이라도 길은 있단 말이오. 길이 뭐냐?

 

이제 길을 찾으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돼. 죽을 각오는 또 안 한단 말이오. 나를 탁 버려버리는 그런 각오가 있어야 돼. 그래야 살릴 수가 있어. 나 죽고 자식 살린다. 이런 생각이 있어야 되는데. 아직도 그래도 매일 밥 먹어야 되니까. 밥을 어떻게 먹을까? 뭐는 어떻게 할까? 뭐는 어떻게 할까? 이런 잔걱정이 많단 말이오. 애는 말썽 피울 때만 걱정이고 말썽 안 피우면 잊어버리고. 그러니까 뭔가 아이를 위한 결단을 내려서 아이하고 대화를 먼저 좀 충분히 하는 게 필요해요. “이렇게 되면 네 인생이 어떻게 되느냐?” 이렇게 해서 첫째는 이해를 해야 돼.

 

이해해도 애가 안 돼요. 왜 안 될까? 이미 습관화돼 있기 때문에. 까르마가 돼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첫째 아이하고 삶의 길에 대한 먼저 대화를 통한 이해가 필요하고 이해를 하면 애가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안 돼요. 그래도. 그래도 이해를 하고 안 되는 거는 연습이란 말이오. 계속 같이 해보면 된단 말이오. 그런데 이해를 못 하면 연습이 안 돼. 이해를 못 한 건 연습도 안 돼요. 그건 강제로 하기 때문에 저항이 된다는 거요.

 

그래서 중학교 2학년이면 대화가 안 되나? 대화가 안 돼요? 중학교 2학년이면. 그러면 인생에 대해서 충분히 한 번 얘기를 해보는 게 좋아. 네가 이렇게 살고 이렇게 살고. 엄마의 잘못도 있지만, 엄마가 도저히 감당을 못하겠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네가 이래이래 살면 이래이래 될 가능성이 높고, 이러면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고. 엄마는 더 이상 이렇게는 할 수가 없고. 너를 보살펴야 할 엄마 역할도 있지만, 엄마로서도 한 인생을 살아가야 되는데. 감당을 도저히 못 하겠다. 이렇게 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

 

좀 도와 달라. 이렇게 얘기를 쫘아악~ 다 해서 첫째 서로 합의를 해야 돼. 그런데 합의를 할 때 지킬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 말이오. 그러나 이게 먼저 합의를 한다.’는 거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발적이 된다는 걸 말해. 이렇게 하고 난 뒤에는 그렇게 안 되는 아이를 내가 지켜보고 왜 약속해놓고 안 지키느냐?”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 그래놓고 그 길로 열 번, 스무 번, 백번 넘어지면 넘어지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또 계속 가야 되요.

 

그때 이제 필요하면 이게 중독성인데 그만둔다고 해 놓고 그만 못 두는 습관성이다. 그럼 자기가 그만두기 싫어서 그만두는 게 아니고. 자기도 모르게 업이 그렇단 말이오. 그러면 격리시켜줘야지. 격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곳으로 위치변경을 해 줘야 된단 말이오. 그래서 맹자 엄마 키우는 얘기 들어봤잖아. 시장에 가서 애가 하니까. 시장통에 살면서 장사하지 마라.” 그렇게 안 하잖아. 애를 데리고 서당 옆으로 이사를 가버리잖아. 지금 말하는 건 내 얘기가 그런 얘기요. 그 안에 있으면서 얘기해봐야 안 되니까.

 

그럼 이사를 가는 수밖에 없단 말이오. 이사 간다는 게 거기서부터 격리요. 거기서 떨어뜨려 놓는 수밖에 없다. 이 말이오. 그렇게 해서 어떤 이미 이게 과보. 이거를 갖다가 사주팔자도 아니고 하늘의 징벌도 아니고, 나의 어리석음이에요. 여기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돼. 이미 지어버린 그 인연의 과보는 내가 책임지고 받고, 그러고 앞으론 이런 어리석은 인생을 살지 않겠다. 이런 결심이 필요한 거요. 그런데 우리는 지나간 건 받기 싫고 앞으론 똑같은 행동은 되풀이하고. 이러니까 인생이 끝이 안나.

 

누가 대신해줘? 자기가 지어놓은 인연의 과보를 누가 갚아줄 건데? 누가? 다 제 것도 못해서 남한테 도와달라는데, 누가 있어서 제 거 말고 남의 것까지 해주겠어. 그래서 자기 인생에 책임을 좀 져야 되는데, 이 책임을 그냥 적당하게 해서 돈 조금 줘서 무당한테 책임 떼 넘기려 그러고, 교회 다니면서 하느님한테 보시 좀 내고 가서 떠넘기려고 그러고, 절에 다니면서 좀 부처님한테 떠넘기려 그러고,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떠넘기려고 그러고. 그 무책임성이란 말이오. 자기가 선택한 거 아니오?

 

결혼? 부부 관계. 자기가 선택한 거 아니야? 선택했으면 책임을 져야 될 거 아니야. 책임의식이 없잖아. 자식을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 될 거 아니오. 누가 책임져 줄 건데. 자기 자식인데. 장애인 낳았다면 그냥 어디 갔다 버릴 생각하고.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이런 생각하고. 인생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다. 사업했으면 사업하는 거 누구 세속 일 아닙니까. 부처님 사업해서 돈 벌었다는 얘기 들어봤어요?

 

그런데 사업 안 된다고 부처님한테 가서 사업 잘되게 해 달라고. 그건 논리가 맞나? 안 맞잖아. 그러니까 같이 살든 혼자 살든. 자기가 책임을 져야 되는데 부처님은 자기 인생 책임 자기가 져라는 거요. 가르침이. 알았습니까? 자꾸 책임 회피하지 말고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을 져라. 그런데 우리가 나빠서 책임을 안 질려 그러는 게 아니라. 어리석어서 일을 저질러 놓고는 감당을 못해서 지금 도망가려고 그런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거요.

 

그 어리석음을 깨우치면 두 가지 결론이 나. 하나는 ~ 이건 내가 졌구나. 내가 책임져야 되겠구나.” 하는 게 하나고. 도망갈 생각을 안 한다는 거고. 두 번째는 앞으로는 이런 어리석은 짓은 안 해야 되겠다. 뭣 때문에 조그마한 어리석은 짓을 해서 과보는 크게 이렇게 받고 살 이유가 뭐가 있나? 바보같이. 그래서 좀 더 현명해지자는 거요. 그게 지혜롭다는 거요. 그래서 두 가지요. 하나는 지은 인연을 알아서 과보를 기꺼이 받는 태도.

 

어차피 받아야 될 걸 자꾸 도망 다니니까 괴롭잖아. 달게 받겠다 하는 태도. 어떤 일도 여러분들이 기꺼이 내일로 하겠다.’ 그러면 똑같은 일인데도 훨씬 쉬워집니다. 내 일 아니라고 도망 다니는데 어쩔 수 없이 그걸 껴안으면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러니까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고. 두 번째 이런 어리석은 짓은 다시는 내가 안 해야 되겠다. 이런 결심. 이게 필요합니다. 특히 여러분들이 나는 결혼까지는 괜찮아요. 성인들이 서로 약속을 좀 안 지켜도 성인들이 양쪽 다 책임이 있으니까. 그죠? 그런데 자녀. 이거는 문제에요.

 

이건 책임을 전가할 때가 없어. 애가 낳아 달라 해서 낳은 게 아니잖아. 낳아 달라 해서 낳았으면 너도 책임이 있지 않느냐?” 이랬는데. 애는 낳아 달라 안 했는데 저그 좋아서 낳아놓고. 어떻게 키워달라고 애가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대로 본받아 컸단 말이오. 그런데 내 삶에 어긋나기 때문에 애가 이렇게 됐는데. 그럼 이 애는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되나? 이 애는? 그러니까 그 책임은 전적으로 부모가 져야 되는 거요. 왜냐하면, 아이는 자기가 선택한 게 아니기 때문에.

 

사춘기부터는 자기가 한 번 선택해 보려고 시도를 하는 거요. 그런데 그걸 또 부모가 막아. 못하게. 그러면 죽을 때까지 책임지는 거요. 그래서 이미 애를 낳았거든 스무 살까지는 책임을 져야 되요. 그러고 다시는 이런 남의 인생 책임지는 일 안 하겠다.’ 하면 스무 살 이후로는 정을 팍 끊어버려야 돼. 알았습니까? 그러니까 이걸 미리 알았으면 이런 인연을 안 짓는데 몰라서 지었잖아. 그죠? 지었으면 책임을 져야 되나? 져야 돼. 도망 다니지 마라니까.

 

책임을 지고. ~ 정말 이런 책임지기 싫거든, 요번 거는 책임을 지고, 스무 살 넘어서는 확 끊어버려. 정말 뒤도 돌아보지 마. 그래서 이미 아이를 낳았거든 잘됐든 잘못됐든 감싸 안고 스무 살까지는 보살펴주고, 그 이후에는 딱 정을 끊어주는 게 좋다. 자식을 위해서 유산을 남기겠다. 자식을 대학 공부시켜 주겠다. 자식을 위해서 결혼을 시켜주겠다. 이런 생각하지 마라. 요기까지 내 책임이다. 자기야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그런데 자기가 책임을. 그런 연습기간이 사춘기에요. 그러니까 거기부터 정을 살살살살 끊어가야 돼.

 

그래서 내가 딱 끊을 때 나도 할 말이 있지. 사춘기 때 계속 간섭해놓고 갑자기 탁 끊으면 어때요? 저항한단 말이오. 자기 하고 싶은 거를 하도록 두는 게 좋아요. 그래야 나도 뭐 할 동안? 도망갈 길이 있잖아. 그지? “네가 공부 안 했잖아. 엄마 얘기 안 했잖아. 이러면 너 책임져야 된다. 그랬지? 네가 했지? 그런데 왜 나보고 그러냐? 너 공부 안 하면 대학 못 가면 엄마도 잘됐다. ? 안 그래도 돈 없어가지고 학비대기 어려운데, 그래. 공부하지 마라. 잘됐다. 아이고, 그래. 연애한다고? 미리미리 해서 알아서 가거라.”

 

자기 하는 거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가 있다는 거요. 책임을. 그 좋은 일 아니오? 그런데 그걸 왜 자꾸 막아가지고 엄마가 책임을 아빠가 책임을 껴안으려고 그래. 그렇게 해서 딱 끊어야 인생이 된다. 그러면 나만 잘살기 위해서 그러냐? 천만에. 이래야 자식이 잘된다. 이 말이오. 나도 잘되고 자식도 잘되고. 그러면 요 때 못 끊으면 또 그다음 단계 가면 가능성이 없어. 죽을 때까지. 기회가 없어요.

 

스무 살 때까지는 무조건 책임을 져야 되요. 도망갈 생각하지 마. 책임을 져야 되요. 저지른 일이니까. 이게 정말 아니다 싶거든 지금부터 사춘기 때 딱~ 핑겟거리를 자꾸 만들어. 그래서 항상 사춘기부터는 자기가 자립을 해 나가니까 얘기 할 수가 있어요. 아까도 얘기했는데. “이렇게 되면 이렇게 되고. 그러면 엄마는 여기까지 해주겠다는데 네가 이렇게 했으니까 네가 책임져야 된다. 공부 안 하면 대학 못 가면 네 책임이다. 엄마는 하든 말든. 그건 관계없다.” 자기 일이 되도록 자꾸 해야 돼.

 

너의 일이야. 너가 선택한 거야.” 이렇게. 계속 책임의식을 심어 줘야 돼. 그렇게 해서 자립이 되도록 하는 거요. 본인이 강제로라도 자립을 시켜야 되는데 본인이 자립하겠다고 설치잖아. 그죠? “이러자 저러자.” 자기 의견이 있다. 이 말이오. 중학교 들어가면 그게 차이요. 자기가 뭔가 도전하고 자기 의견을 내고 저항하고 하니까 그걸 기분 나쁘게도 하지 말고. 책임을 반분할 좋은 기회요. 애가 그래 주니까 이게 나도 살지. 안 그래 주면 어떻게 하겠어요? 계속 고분고분하면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되는데.

 

그게 자연의 원리에 속한다. 자연의 원리. 새 새끼를 보세요. 어미가 처음에는 물어다가 입에 넣어주고, 시간이 경과되면 물고 와서 앞에 앉아있고, 시간이 경과되면 더 멀리 떨어져 있고, 그래서 배고픈 놈이 답답한 놈이 우물 판다는 식으로 기어 나와 받아먹고. 처음에는 평등하게 주다가 나중에는 노력한 만큼 줘요. 그러니까 먹는 놈은 계속 먹고 못 먹는 놈은 못 먹고. 그러면 성장 속도가 달라져 마치 형제처럼. 똑같이 한날에 태어났는데 크기가 쪼로록 달라집니다.

 

그래서 한꺼번에 안 날아가고 한 마리 날아가고, 두 마리 날아가고, 세 마리 날아가고. 네 마리 날아가고.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다 날아가면 새가 새끼 책임 나중에 집디까? 안 집디까? 안 지지. 왜 그렇게 훈련을 시켜 날려 보냈기 때문에 세상에 살 수 있도록 해 줬기 때문에 책임 안 져도 되는 거요. 여러분들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서 살 수 있도록 훈련을 안 시켰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책임을 져야 되는 거요. 어쩔 수 없어. 이것도 인연과보니까. 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