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에 막내도련님이 있는데 좀 장애가 있습니다. 나이가 한 마흔 여덟 이러는데 아직 장가를 못 가고 어머니하고 두 분이 사십니다. 그런데 늘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는데 다 내 인연으로 내가 지은 그걸로 왔구나 생각하고 잘하려고 무척 노력은 하는데도 이렇게 좀 꼭 어긋난 생각을 하고 어찌 보면 열이 팍 오릅니다. 끝없이 잘해야지 내하고 이제 얽혀있다 생각해서 이제 내게 아무 그게 없어야지 다 안 만나겠구나.
그런 생각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보기만 보면 자꾸 이렇게 부회를 채운다 해야 할까 그래서 좀 틀린 짓도 잘하고 도덕적으로 맞지 않는 행동도 하고 그래서 막 열이 나고 좀 있으면 잘해줘야지 내가 업이 다하려면 인연이 다하려면 한도 없이 정말 잘해줘야지 생각해야지 저 사람을 위해서 내가 잘못했습니다. 이런 기도도 해볼까 생각하는데 아까 스님 말씀 따나 부처님 향해서 3000배 절을 하자 이런 거는 가능한데 그쪽을 향해서는 하는 거는 그게 좀 안되고.
그런데 한두 달 전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편찮으셔서 입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입원을 하고 있는 중에 한 달 후에 또 제가 눈이 아파서 눈 수술을 했습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자꾸 이런 일이 닥치는가 생각을 해가지고 제 나름대로 뭔가를 정토를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해서 금강경을 하루에 한 3시간씩 읽습니다. 그런데 제게 더 적당하고 꼭 맞는 기도문을 주시면.
* * *
돈 안 들고 빨리 치료되는 도깨비방망이를 하나 달라 이 말씀이오? 3년 기도 할래요? 5일만 기도해도 낫는 처방을 내려줄 테니까 그거 할래요? 네. 그러면 저기 5일만 시간을 내가지고 5일만 시간을 내서 문경에 깨달음의 장이라는 수련이 있거든요. 보살님 같은 경우는 거기 한 번 다녀오세요. 아무 생각하지 말고. 갔다 오셨어? 오셨는데 아직도 병이 안 나았어? 그런데 왜 깨달음장까지 갔다 와가지고 자꾸 부아가 난다 그런 소리를 해요?
깊이 좀 더 통찰이 안 되신 거 같네. 그가 나를 화내게 하느냐? 내가 그의 행동을 보고 화를 내느냐? 이게 깊이 좀 통찰이 돼야 될까요? 화를 내지 말아야 되겠다. 이렇게 참아서는 안 됩니다. 보살님 말씀 들어보면 뭐든지 참고, 억누르고, 결심하고 이러잖아 그죠? 잘해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참아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결심하는 거는 수행이 아니에요. 참는 것도 수행이 아니고. 결심하는 것도 수행이 아니에요.
일어나야지. 잘해야지. 참아야지. 이런 건 공부가 아니에요. 그게 공부일 바에야 벌써 다 공부 다 됐게? 하나님, 부처님, 이렇게, 이렇게 해 주세요 한다고 될 바에야 벌써 다 됐고, 내가 이래야지 저래야지 하고 결심한다고 될 바에야 이 세상일이 다 됐을 거 아니오. 그죠? 아이들이 공부 잘해야지 결심한다고 공부 잘해질 바에야 다 됐지 뭐 안 되겠어요. 그러니까 참 지금은 참고 결심하자는 지금 말을 들으면 보살님은 내가 참아야지, 또는 잘해줘야지. 이거란 말이오.
왜 화가 날까?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데, 그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는데 왜 내가 화가 날까? 그냥 그럴 뿐인데. 이렇게 늘 화가 날 때마다 그걸 다시 살펴봐야 된다. 왜 화가 나지? 그래. 그러는데 왜 화가 나지? 그가 드러눕는데, 그가 고함을 치는데, 그가 화가 나는데, 화를 내는데, 왜 내가 화가 날까? 뭐 때문에 내가 화가 날까? 이렇게 늘 깊이 관찰을 해야 된단 말이오. 그러면 그 문제는 금방 해결 될 수 있는 문제죠.
그가 신체불구인데, 아 신체가 불구니까 불편할거 아니오. 신체가 불구니까 남한테 뭘 느끼겠어요? 열등의식을 느낄 거 아니오. 신체가 불구니까 피해의식이 있을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어때요? 과격하게 행동도 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도 하고 그러죠. 그럼 그 사람의 심정을 한 번 이해해 봐요. 그 사람의 심정을, 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 화를 낼 때도 “아이고 얼마나 답답하면 화를 낼까? 얼마나 불편하면 저래 짜증을 낼까?” 이렇게 마음을 돌이켜 보면 저절로 해결이 되죠.
그런데 보살님은 저 사람의 행동이 나쁘다. 저 사람은 잘못됐다. 이런 걸 전제하고 있단 말이오. 그걸 전제하고 있으면 있으면서 어떻게 하느냐? 내가 전생에 무슨 인연을 돼서 저 사람을 만났을까? 아이고 그래도 참으면 다음 생에는 안 만나겠지. 이런 생각 속에는 다 뭐가 들어있어요?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이게 전제가 돼 있잖아요. 그 사람이 나쁘다 하는 것이 바로 이미 잘못됐다 이 말이오. 그의 행동이나 그의 사람이 잘못됐다는 게 이미 전제 돼 있단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안만 날려고 그래. 그래도 만날 이유가 뭐냐니까 전생에 내가 뭔가 잘못을 해서 이런 죄를 받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그래서 내가 참고, 그래서 내가 잘하려고 그러고. 이럴 때는 그 사람이 문제가 있다는 게 이미 단정이 되어 있다 이 말이오. 그런데 우리의 깊은 통찰은 그가 잘못됐다는 생각 이것이 병이다 이거야. 그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이것이 병이다 이거요. 그는 문제가 없어. 그는 잘못이 없어. 그는 그렇게 생겼고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할 뿐이오.
그거를 보고 내가 내 이해관계나 내 편리에 내가 사로잡혀가지고 상대를 문제 삼는 거란 말이오. 문제를 삼아놓고는 참는다고, 빈다고, 운다고, 결심한다고 해결이 안 된다. 문제가 없는 줄을 알아야 돼. 내가 보기에 문제가 있지 그 사람 편엔 문제가 없어. 그 사람 편에는 자기 형편 속에서 나름대로 반응을 하는 거요. 몸이 불편하니까 짜증을 내는 거고. 지 나름대로 양에 안차니까 화를 내는 거고. 그러니까 그 처지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이거야.
보살님이 얼마나 이 지금 말씀 속에, 무의식 속에 잠겨있는 데서 그것이 사고가 잘못돼 있느냐? 내가 이 세상에 참고 견디고 잘해주면 다음 생에 이 사람 이제 안 만나겠지. 업장 소멸되면 저 사람 안 만나겠지. 이 말속에는 저 인간은 두 번도 보기가 싫다. 이게 전제가 돼 있잖아. 저 인간 나쁜 인간이다. 난 저 사람 보기 싫다. 저거 안 보려면 내가 애를 좀 이 생에 쓰면 다음 생엔 안 볼 거니까. 여기에는 벌써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이 가득 차 있다 이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건 아무리 결심을 해도 해결이 될 수가 없죠.
이 불교를 잘못해서 전생타령을 참 많이 공부합니다. 두 부부가 같이 사는데. 둘이 성격이 다르고, 견해가 다르고, 취미가 다르잖아. 그죠? 그러니까 각자 자기 걸 고집하면 다투게 됩니까? 안됩니까? 다투게 되죠. 자기 식대로 하려면 다투게 된다 이거야. 그러면 갈등이 생기고 괴롭죠. 괴로우니까 그 사람이 밉죠. 그러니까 내가 어쩌다가 저런 인간을 만났나 생각이 드니까. 어때요? 결국은 전생에 내가 죄를 많이 지어 저런 인간 만났나 보다. 이렇게 나온단 말이오.
그런데 여러분들이 상대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아~ 저 분은 취향이 저렇구나.’ ‘저 분은 생각이 저렇구나.’ ‘저 분은 견해가 저렇구나.’ 다만 그의 입장에서 그렇구나. 이거요.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자. 이거야.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구나. 나는 이렇게 보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보구나, 난 견해가 이런데 저 사람은 견해가 저렇구나. 나는 취향이 이런데 저 사람은 취향이 저렇구나. 상대를 이렇게 다른 것. 다르다는 그 사실을 그대로 아는 게 뭐다? 상대를 인정하는 것, 인정하는 게 바로 상대를 존중하는 거요. 그럼 훌륭하다 그게 존중하는 게 아니오.
그 사람 그렇게 행동하고, 그 사람 그렇게 생각하고, 그 사람 그렇게 말하고, 그 사람 취미는 그렇구나.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곧 그를 존경하는 거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해야 된다. 나는 이거 사고 싶다. 그런데 남편은 안 된다. 내 하는 걸 못하게 한다는 게 아니라. 견해가 다를 뿐이다. 견해가 그냥 다를 뿐이다. 내가 문경 수련장에 가겠다니까 남편이 못 가게 한다. 내 하는 일을 방해한다. 이게 아니란 말이오. 나는 갔으면 좋겠다는 것은 나의 요구고, 남편은 안 갔으면 좋겠다는 것은 남편의 요구란 말이오. 둘의 요구와 둘의 생각이 서로 다를 뿐이란 말이오. 나는 옳고 남편이 그른 게 아니란 말이오. 나는 가는데 못 가게 한다 이 말은 나는 옳고 나는 틀렸다는 거요.
지금 달라. 다른 뿐이오, 그냥. 인정을 해라 이거요. 가겠다는 내 마음이 있고, 안 갔으면 좋겠다는 남편마음이 있다. 가겠다는 내 결심이 있고, 못 가겠다는 남편의 결심이 있다. 서로 다르다 이 말이오. 다르면 어떻게 하겠어요. 어떻게 하든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화가 안나. 가지 마라 그래도 “오~! 나하고 생각이 틀리구나.”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 상대편에게 다 맞출 수도 없고, 상대편 얘기를 내가 다 들을 수도 없잖아. 다른 걸 인정하고 가라 이거야. 가고 싶거든.
다르니까 상대의 요구도 내가 받아들여보자 하면 집에 있으란 말이오. 그러니까 다른 거를 인정을 안 한다 이거야. 이미 내가 가려는데 못 가게 했다 이 말은 나는 옳고 나는 틀렸다. 이렇게 되는 거요. 그래서 그 다른 걸 입증을 해서 수용하면 어떠냐? 갈등이 사라지죠. 갈등이 사라지니 관계가 좋아지지. 관계가 좋아지니까 행복해지지. 그러니 어떤 생각이 든다? 아이고 내가 전생에 무슨 복을 지어서 저런 남자를 만났나? 이렇게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지금이 좋으면 전생에 내가 복 지었나 싶고, 지금이 나쁘면 전생에 내가 죄 지었나 싶고. 그것마저도 다 어디로부터 빚어지는 거다? 지금으로부터 빚어지는 거요. 그러니까 지금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사람을 만나게 되고, 다음 생에 내가 다시는 저런 사람을 안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 이런 생각 자체가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다. 이게 전제가 돼 있다. 이 말이오. 그건 다른 말로 하면 내 생각하고 안 맞기 때문에. 내 생각하고 안맞다고 나쁘다고 하거나 상대를 미워한다. 그러니까 나하고 다를 뿐이다.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그 도덕이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바뀐다 이거야.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니까 문제가 있다는 그 생각이 잘못됐다 이거야. 그 생각을 놔 놓고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절대로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 노력만 하고 애만 쓰지 아무런 해결이 안 된다. 문제가 없는 줄을 알아야 된다. 문제가 없다는 말이 뭐다? 원시교리를 말하면 제법무아요. 금강경으로 말하면 뭐요?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요. 반야심경 논리로 말하면 뭐요? 오온이 개공이오. 이런 거 아니오.
오온개공, 제법무아 그거 외우면 뭐해요? 현실에서 그것이 적용이 돼야지. 그는 12시에 올 뿐이고, 그는 술을 먹었을 뿐이지. 그거 나쁘다 늦었다 하는 건 누구 생각이다? 내 생각이다. 내 생각임을 알아차려서 내 생각일 뿐이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건 잘못됐다 틀렸다 이런 얘기가 아니오. 내 생각이다 이거야. 상대편은 달리 생각한다 이 거요. 생각이 다르다. 그럼 누구 생각이 옳고 누구 생각이 그른 게 아니라 생각이 다르다. 그걸 인정해라. 사람이 어떻게 생각이 똑같애. 다 틀리지.
그런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생각을 기준에 놓고 상대를 틀렸다 그러고. 자기 견해를 기준에 놓고 상대를 틀렸다 그러고. 자기를 기준으로 놓고 상대보고 빠르다 늦다 그래요.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상대보고 크다 적다 그런다. 이게 다 자기가 중심이다. 거기로부터 만병이 생긴단 말이오. 그게 아상이오. 그러니까 그걸 버려라. 아상을 버려라는 거요. 병은 나에게 있다 이거야. 내 견해를 고집한다 이거야. 내가 옳다는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게 생긴 병이다. 그러니까 가장 빠른 기도문은 뭐요? 내 병이다. 이걸 자각하는 게 제일 빠른 기도문이오.
이게 내가 아상에 사로잡혀 지금 있다.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내가 내 생각에 빠졌구나. 내가 내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구나. 내가 내 잣대로 세상을 재구나. 내가 바보 같았구나. 그럼 그냥 그런 사람이고 그런 행동하고 그랬을 뿐인데. 산에 가면 큰 나무도 있고, 적은 나무도 있고, 굵은 나무도 있고, 가는 나무도 있고,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돌멩이도 있듯이. 이 세상 사람은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이렇게 생긴 사람도 있고, 저렇게 생긴 사람도 있고, 이런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저런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내 생각을 기준으로 해서 니는 이래라. 니는 저래라. 이건 옳다. 그르다 하니까 이렇게 병이 생긴다.
오늘부터 기도를 하려면 엎드려서 절을 해야지. ‘아이고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제가 바보 같았습니다. 제가 옳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옳다는 이게 잘못됐다 이 말이오. 어리석음을 뉘우쳐 참회해야 된다. 달이 동산에 뜨는 거 보고 “아 오늘 밤은 달마저도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 시는 이렇게 읊죠. 얼마나 그럴 듯 합니까? 달이 그 사람을 슬프게 했어요? 자기가 달을 보고 슬퍼했어요? 이거 물으면 다 알아. 아이고 자기가 달을 보고 슬퍼했죠. 이래. 그러면 남편이 술 먹고 “야 이년아 그랬다.” 그래서 내가 화가 났다. 남편이 나를 화나게 했냐? 내가 남편 말을 듣고 화를 냈냐? 남편이 나를 화나게 했죠. 백이면 백 다 이러지.
그런 남편의 행동을 보고 누가 화가 났다? 내가 화가 났다. 그 사람이 나를 화내게 한 게 아니라 내가 화가 났다. 엄마가 죽어서 슬프다. 엄마가 내 슬프게 하려고 죽었나? 엄마가 죽는걸 보고 누가 슬프다? 내가 슬프다. 왜 내가 슬플까? 나는 만나고 싶은데 다시는 못 만날 거 같은 생각 때문에 내가 슬픈거요. 엄마가 나를 슬프게 한 게 아니에요. 다 자기 욕심이오. 내가 만나고 싶으면 니 죽지 마라. 이래요. 내가 보기 싫은 인간을 뭐라 그런다? 살아 있는데도 빨리 죽어버려라 이런다.
김일성이가 보기 싫으니까 죽었다면 만세 불러. 엄마는 내가 보고 싶을 때 봐야 되니까 니는 죽지마라. 죽은 사람한테 니는 죽지 마라. 운다는 건 그런 뜻이에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우는 건 내가 별로 동경을 않는다. 그건 누구 때문에 운다? 엄마가 죽어서 우는 게 아니라. 지 인생 생각하고 그냥 우는 거요. 미쳐가지고. 죽은 사람보고 내 보고 싶다고, 내 보고 싶을 때, “니 있어라.” “니 죽지 마라. 왜 죽었노?” 이래요. 이 다 자기 기준에서 생기는 거다.
그 사람 무슨 죄가 있다고 신체장애가 된 것만 해도 억울한데. 거기다가 그 사람 나쁜 인간이라고 적어놓고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 니같은 인간 만났나? 다음 생에 내가 절하면 니 같은 인간 다시는 안 만나야 되겠다. 이건 그 사람에 대한 저주요. 그런 못된 심보를 쓰면 복을 받을 일이 없지. 그래서 우리가 이 법이 공한 줄을 공부하는 거 아니오. 기도를 그렇게 하시면 안 되고 내가 좀 세게 얘기를 했는데.
기도는 ‘그 사람한테 내가 잘못했다.’ 그런 기도를 하면 안 돼. 내가 뭐 잘못했는데 그런 기도를 하겠어? 잘못했다는 이유가 뭐냐? 내가 잘못 생각했다 이거야. 그냥 그는 그런 사람인데 내가 그 사람을 나쁘다고 잘못 생각했다. 그러고 그 사람을 미워했으니 그것도 또한 내가 잘못했다. 멀쩡한 사람보고 내가 미워했으니 내가 미쳤잖아. 그러니 그런 내가 잘못됐다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뉘우쳐 참회하라는 거요. 이 어리석음을, 이 무지를, 내가 뉘우쳐 참회한다. 그래야만 금방 해결 되죠.
금강경 그렇게 읽으면 안 돼요. 금강경을 읽으면서 아~ 제법은 공하구나. 내가 미워했는데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라. 금강경을 읽으면 좋아진다. 이게 아니라. 금강경을 읽으면 좋아지는 내용이 뭐냐가 중요한 거요. 금강경을 읽으니까 아~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구나 하는 순간에 어때요? 아~ 미워할게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미워하구나. 이렇게 깨치려고 그래 금강경을 읽으면 일체 병이 다 낫는 거 아니오. 일체고가 다 사라지는 이유는 금강경을 읽는다는 것은 이치를 깨쳐버리기 때문에 그렇다 이거요. 이치를 깨치기 때문에.
그런데 보살님이 지금 그 시동생 하나만 갖고 얘기를 하면, 내가 제대로 본거요. 그럼 스님 법문 듣고 보니 내가 잘못 본거요? 저 사람은 나쁘다 하는 게 잘 본 거요? 잘못 본거요? 그러니까 잘 본거요? 잘못 본거요? 아니 보살이 그 시동생이 문제가 있다고 본거는 잘 본거요? 잘못 본거요? 아니 그렇게 변명을 하지 마라. 아직도 아상이 덜 끊어져가지고. 잘 본거요? 잘못 본거요? 저 인간이 뭐 저런 게 있나? 이거는 제대로 본거요? 잘못 본거요? 그러니까 눈깔이가 삐었죠. 눈깔이 병이 나야 싸지. 아시겠어요?
그래 눈병이 왜 오느냐? 이래 온다 이 말이오. 무슨 인연으로 나한테 눈병이 올까? 눈깔이가 잘못 삐어가지고 잘못 보니까 눈깔이 좀 고쳐야 될 거 아니겠어요? 그죠? 그래서 수술의 인연이 따르는 거요. 여러분들 이래 생각하면 스님이 갖다 붙인다. 이럴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잘 보는 건 눈이고 못 보는 건 눈깔이오. 말을 제대로 하는 건 입이고 잘못하는 건 주둥아리고.
또 하나는 이 몸에 병이 나면 보살님같이 눈이 이렇게 잘못되면 아 눈에 병이 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요. 그럼 내가 보살님처럼 만약에 내 몸을 두고 생각했으면 나는 아마 전생에 못된 짓만 했다는 결론밖에 안 돼요. 눈이 안 보이죠 침침해서. 귀에는 또 물이 자꾸 생겨가지고 잘 안 들리죠. 이 빨은 또 삐딱삐딱하게 생긴데다가 자꾸 구멍은 커서 밥 먹으면 반은 끼거든요? 반은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어제도 밥 먹었는데도 그저께 잠을 못 자니 소화가 안 되가지고 눈이 감기고 그러지. 밑은 빠져 있지. 뭐 몸에 병이 한 두 개가 아니오.
그런데 스님 언제 몸이 어쩌고 이런 소리 안 하잖아요. 그런 거를 이유를 대기 때문에 몸이 나쁘다고 이유를 대니까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몸을 받았나? 이렇게 되고. 이 사람이 미우니까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런 인간 만났나? 자꾸 이렇게 되는 거요. 책임 전가다 이거요. 책임전가. 전부 남한테 “니탓이오” 이거요. 그러니까 보살님은 “내 탓이오” 이렇게 돌려야 돼. 그런데 내 탓이오 하면 이게 또 어떠냐? 이런 인간 만난 것도 내가 전생에 죄 지었다. 이렇게 이해하면 안 된다. 잘못 봤다. 이 사람 아무 문제가 없어. 이 사람은 이렇게 생긴 대로 노는 거요. 아시겠어요?
이 사람 이렇게 생긴 대로 놔두고, 이 보살 이렇게 생긴 대로 놀고, 나는 이렇게 생긴 대로 놀고. 그냥 다리가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놀고, 나는 밑이 빠지면 빠진 대로 놀고, 눈이 안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놀고, 이렇게 다 나이가 들면 눈이 안 보이는 게 정상이고. 또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은 이렇게 질문해. “저는 어릴 때 내 주위에 사람 죽는 걸 못 봤는데, 요새 사람 자꾸 죽습니다.” 왜 그래요? 이래.
전생에 죄가 많아 그렇다. 이럴까? 그게 무슨 이유일까? 왜 자꾸 사람이 많이 죽을까? 나이가 들었다. 이 뜻이에요. 아시겠어요? 어릴 때 어머니가 젊은데, 죽을 이가 뭐가 있어. 나이가 50, 60 되니까 어머니가 80, 90되니까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는 거고, 어릴 때는 자기 가족만 인연을 맺으니까 자기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죽을 일이 적지만은. 세상에 오래 사니까 인연이 넓어지잖아, 그죠?
그러니까 나는 사람이 자꾸 늘어나는 거요. 하등 이상한 게 아니에요. 이제 또 세월이 더 흘러 가 봐라. 죽는 사람 자꾸 더 느는 거요. 그런데 그런 걸 가지고 이렇게 이유. 그건 당연하다 이거야. 당연한 하나의 현상이다. 가을이 되면 낙엽 떨어지는 거나 똑같은 거다. 왜 스님, 낙엽은 가을에 떨어집니까? 이래 묻는 거와 똑같아. 왜 가을에 꽃이 안 피고 봄에 꽃이 핍니까? 이런 얘기하고 같은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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