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본질이 스케줄을 짜 놓고 생활하는데, 이 스케줄을 흩트리는 자꾸 중간에 딴 사람의 요청이 들어와서 스트레스 받는다. 이게 질문의 요지에요? 안 받으면 되잖아. 왜 쉽지 않는데? 안 받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말이오? 그럼 받으면 되잖아. 글쎄 본인이 알아들어서 ‘네’ 라고 해서 알아들었는지. 지금 못 알아듣고 ‘네’ 라고 했는지. 해결이 됐어요?^^ 저는 옛날에 이런 몸이 일에 너무 지쳐서 사람들이 쉬어야 된다 한 달에 하루를 쉬든 일주일에 하루씩 쉬어야 된다. 이렇게 얘기해서 저도 일요일 날 못 쉬니까 월요일 날 쉰다. 이렇게 한 번 정해봤어요.
그러니까 그게 안 지켜집디다. 어떤 문제에서 안 지켜지느냐? 내가 월요일 날 쉬기로 한 날 그 날, 어른이 보자 그래요. 그러면 그 날 내가 강의가 있을 때는 어떻겠어요? 누가 보자 그래도 “아이고, 제가 법회가 있어가지고 안됩니다.” 이렇게 거절이 되는데 그날 비워놓고 “내 쉬는 날이라 안 됩니다.” 이렇게 말 할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가게 되고. 그날 초상이 났다. 그럼 보통 강의가 있을 때는 누가 초상났다 해도 안가도 아무 심리적 부담이 안 되잖아요. 갈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아~ 정말 절친한 친구 부모가 돌아가셨거나 가까운 신도가 돌아가셨는데 그날 쉰다고 안 가 볼 수는 없잖아. 그지? 그러니까 가야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쉰다고 정해 놔 봐야. 다시 말하면 우리 내부 스케줄을 비워 놓으면 어느 게 들어온다? 바깥의 스케줄이 들어와요. 몇 번 시도를 해 봤는데 항상 들어온다 하는 걸 내가 알게 됐어요. 해보니까. 그래서 이 문제는 가볍게 해결을 해 버렸어요. 그러니까 휴일을 없애버리는 거로. 그럼 들어오는 데로 채우는 거요. 뭐든지 먼저 들어오면 먼저 차버리면 먼저 차버리면 누가 들어와도 이건 어쩔 수가 없어요. 고민이 안 돼요. 비워 놓으면 고민이 되거든요.
“야~ 이거 쉬기로 했는데 가야되나? 말아야 되나? 아이고, 오랜만에 보자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고민이 되는데 그래도 뭐 시간이 안 나는 걸 어떻게 해요. 그럼 시간이 안 나서 못가면 안 미안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내가 놀면서 안 가면 그게 마음에 걸리는데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 미안하다고 인사는 하지만 속은 별로 안 미안해요. 속으로는. 그러니까 스트레스는 안 받죠. 인사로는 어른이니까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어쩔 수 없어서” 이러지만. 속으론 어쩔 수 없는데 어떻게?
그래서 그런 고민할 필요가 없다. 들어오는 대로 그냥 받으세요. 들어오는 대로 받아서 한 번 살아보세요. 살아서 이게 몸이 지치거나 죽을병에 걸리거나 문제가 되면 그때 가서 또 조정을 해도 되니까. 뭐 젊은 나이에 그거 스케줄 좀 정해 놓은 거에 뒤에 다른 것 좀 들어온다고 스트레스 받고 그래요. 밤샘해서 하지. 저는 지금 누가 나한테 약속을 했을 때 내가 스케줄이 잡혔기 때문에 거절하지 거의 거절 안 합니다. 런데 내가 대신 이렇게 말하죠. 12시라도 괜찮습니까? 이렇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2시라도 괜찮으냐? 오늘 봐야 된다 그러면 2시라도 괜찮습니까? 그러면 되요. 그런데 그럼 대부분 본인이 안하겠다고 그러죠. 본인이. 아침 7시라도 괜찮으냐? 아침 5시라도 괜찮냐? 난 안자고 갈 용의가 있으니까. 그런데 본인들이 다 싫다고 그러죠. 본인들이 자기 원하는 시간을 요구하니까 그건 뭐 잡혀서 안 된다. 그래서 스케줄이 좀 빡빡하죠. 주야가 없는 스케줄이 되어 있는데. 그러니까 스트레스 정신적으로 스트레서 받고 휴식을 갖는 것 보다는. 이렇게 아예 오픈 해 버리고.
저는 스케줄 제가 안 짭니다. 짜주는 대로 그래 다니면 대신 스트레스 안 고 그냥 차에서 타고 자고. 이게 잠이라는 건 꼭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야 된다. 이것도 다 관념인 거 같애요. 요즘은 저는 잠이 도대체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고 이런 건 없어졌어요. 절대 지켜지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새벽 4시에 잘 때도 있고. 5시에 잘 때도 있고. 낮에 잘 때도 있고. 밤에 잘 때도 있고. 해외를 왔다 갔다 하니까 어차피 여긴 낮에 자는 거 어렵다 하지만 미국으로 계산하면 밤이고.
여기 뭐 밤 새는 거 어렵다 하지만 미국으로 계산하면 한 낮이고. 그래서 이 시차가 아무 문제가 안 돼요. 어차피 이게다 관념이에요. 여기 지금 뭐 저녁에 어쩌구 하지만 미국은 지금 새벽이잖아요. 그죠? 지구는 둥그니까. 그렇게 해서 놔버리는 게 제가 볼 때 제 경험으로 제일 나은 거 같아요. 기본은 짜야 되요. 기본은 짜 놓고 살지만 그러나 유동성은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삶이 내 생각대로 세상이 안 살아지잖아요. 세상의 요구가 늘 있으니까.
내 능력이 100이다. 그런데 바깥에서 80정도의 요구만 하면 한20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좋겠죠. 그죠? 건강도 유지하고. 그러면 절대로 능력은 안 키워집니다. 내 능력이 100인데 150이 주어졌다. 그러면 그 150을 해내려면 어때요? 엄청난 집중력을 가져야 되고, 잠을 줄이든지 집중력을 높이든지 누구 도움을 얻든지 해야 된단 말이오. 그러면 누구 도움을 얻으면 관리력이 생기죠. 내 것만 쓰는 게 아니라 남의 것까지 쓸 수 있는, 그것도 재능이거든요. 안 그러면 자기 능력이 커져서 일을 빨리 처리하는 힘이 생기든지.
안 그러면 자기 잠을 줄이거나 딴 걸 줄여서 효율적으로 삶을 효율적으로 하든지. 이렇게 해서 그런 것을 턱이 받치는 일을 해야 여러분이 능력이 커져요. 그런데 늙어서 그러면 약간 과욕이라 그래요. 왜냐하면 늙으면 능력이 더 이상 안 커지거든요. 그런데 젊을 때는 그런 좀 과한 것을 늘 겪어서 뛰어넘어야 능력이 커지지 않을까. 그런데 너무 안전 빵으로 사는 거 같아. 탁 울타리 쳐 놓고 “손대지 마.” 이렇게 사는데. 그러면 넓힐 수가 없지 않을까. 그걸 감당하려면 자기 능력 밖의 일을 감당을 하려고 한번 마음을 내면, 뭔가 해결이 돼야 될 거 아니오. 그걸 감당하려면.
그럴 때 어쨌든 능력이 커지고, 밤샘해가면서 애를 써가면서 하면 주위 사람이 보고 감동을 해서 도와주는 사람이 생기든지, 뭔가 그 능력이.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능력이 커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여러분은 늘 자기 깜냥의 문제만 갖고 요렇게 하니까. 늘 제 힘으로만 살아야 되잖아. 그래서 젊은 사람이 너무 현실 안주적인 건 제가 볼 때는 넓힐 수가 없는 거 같애. 욕심하곤 다릅니다. 이런 걸 원이라 그래. 원을 세워야 역량이 력이 생긴다. 원력이 생긴단 말이오. 도전을 해야.
그래서 일 조금 많이 주거나 하루 밤샘하면 “죽는다.” 그러고 항의를 하고 이래요. 그래서 우리가 용맹 정진할 때 일주일씩 밤샘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며칠 굶어도 보고, 잠도 안 자도 보고, 눈을 감겨 처박혀 가면서도 하고. 이런 걸해야 되는데 요즘 사람들 그런 거 안 하려고 그래. 우리는 어릴 때 고등학생 때도 참선한다고 앉혀 놓거나, 이렇게 법문 듣다가 졸았다 그러면 불이 날 정도로 두들겨 맞기 때문에, 그렇게 맞아가면서도 어쨌든 그러니까 긴장 해가면서 공부하죠.
그럼 이게 학습효과가 나요 사실. 벼락치기 공부해도 다 효과 나잖아요. 사람이라는 건 약간의 이런 과제, 한계, “아~ 저 스님한테는 안했다간 죽는다.” 이러면. 머리 빨리빨리 돌아간다니까. 이 안돌아가는 머리도. 안 맞으려고 이러다 보면 머리가 탁 돌아가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그런 어떤 한계에 부딪혀서 조급하게 “이거 안하면 안 된다.” 이런 게 있어야 확 능력이 느는데, 여러분은 다 안전빵으로만 사니까. 물리가 안 터지는 거요. 물리.
이게 그냥 그렇게 집중하다보면 모르는 게 저절로 알아지고, 안 배웠는데도 알아지고 이런 게 생겨야 이게 능력이 생기는 건데. 딱 아는 거 고것만 갖고 되잖아요. 그게 과부하를 가지고 도전하는 게 없기 때문에 그래.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이해도 잘 안 될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사실 데리고 다니면서 젊은 애들 어린 학생들은 훈련 제대로 생기려면 데리고 저 히말라야 같은데 가서 버려버리고. 아시겠어요? 버려버리고.
한3~4일 산 속에서 헤매다가 살아나오도록 이런 훈련을 시켜야 되요. 그래야 이게 긴장이 되지. 아무리 옆에서 말로 해도 부모가 옆에 있는 데선 긴장이 안 되거든요. 산에 갔다 버려버려야 긴장이 되지. “야 이거 정말 죽겠구나.” 그러면 동물적 본능이 살아나서 다 움직이게 돼. 그런 도전을 여러분들은 안 하잖아. 그러니까 명상을 한다든지, 용맹정진. 절을 한다든지 이것도 다 도전 아니오. 그죠? 일부러 만든 도전이란 말이오. 그런 걸 해 봐야 되요.
그런데 여러분들 겁나잖아. “아이고 명상 다리 아프다. 난 안 할래.” 이런 수준이란 말이오. 딱 그럴 때 “까짓 거 그거 한다고 다리 부러지겠나?” “스님 다리 부러진 사람 있어요? 절하다가?” “없다.” 그러면 명상하다 죽은 사람 있어요? “없다” 그러면. “해 봤자 무슨 일이 생기겠나.” 이렇게 딱 도전을 해봐야 되는데. 도전을 안 할라 그래. 왜 웃어요? 공짜로 먹을라 그래. 뭐든지.
옆에서 구경하면 다 기적이라 그러죠. 그 일에 관여 안하고 내막을 모르는 사람은 기적이라 그러고. 내막을 알면 이 세상에 기적은 없습니다. 다 털만큼한 것도 다 노력이 기울어져서 생긴 일이 이 세상에 일어나지. 그냥 일어나는 법은 없습니다. 기적 같은 거 그런 거 절대로 바라지 마세요. 없어요. 그런 거는. 모르니까 기적이 있는 거요. 모르니까. 어~ 저절로 되는 기분이 드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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