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

지식줌) “행복의 국가“ 부탄에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한 이유

Buddhastudy 2025. 3. 26. 19:08

 

 

오늘은 행복의 나라라고 불리는 부탄으로 가볼까요?

어떤 통계에선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이면서

또 동시에 다른 통계에선

한국보다 불행한 국가로 나오기도 합니다.

 

북한이 독특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매우 고립되고 독자적인 형태로

국가를 운영해 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런 고립의 뿌리는 지리적인 부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인구 78만 명인 부탄은

히말라야 산맥의 동쪽 인도와 중국의 티베트 고원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또 네팔, 방글라데시도 금방에 있긴 하지만

인도에 둘러싸여 있어 국경을 직접 맞닿고 있지는 않습니다.

 

부탄의 지리는 크게 3개로 나눌 수 있는데

-가장 북쪽은 히말라야 지역으로

해발 7,570m의 부탄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세계에서 아무도 오르지 못한 산 중 가장 높은 산인 강카르 푼섬산이 있는

매우 높은 히말라야의 고지대입니다.

-그리고 중앙 고지대는 북부 히말라야만큼 높진 않지만

고립된 계곡과 광대한 숲이 피했고

수도인 팀푸도 중앙 고지대의 서부 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남단은 다소 습한 열대평야 지역이 있고

부탄 농지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 있지만

워낙 크기가 작다 보니

부탄 전체 토지의 단 2%만이 경작 가능한 땅이라 볼 있죠.

 

보시는 것처럼 국토의 대부분은

고도가 높은 산지로

평균 해발 고도도 2,000m에 달하는 만큼

지리부터 매우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런 지리는 경제에도 영향을 주는데

높은 산맥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은

도로나 철도 같은 기반시설을 건설하기 매우 어렵게 만듭니다.

기술적으로도 힘들 텐데 비용은 어마어마하겠죠?

 

부탄의 주요 도로는 이와 같은 형태로 이어져 있기는 한데

한국에서도 산간 지역에 가면

길이 직선이 아니라

산의 구조를 따라 꼬불꼬불하게 길이 나 있는 경우 많잖아요.

히말라야를 끼고 있는 부탄의 도로가

이동이나 물류 교류에 그리 효율적인 형태가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하실 수 있을 겁니다.

 

또 아주 특별하다고 볼 만한 천연자원도 없고

설사 있다 해도 길이 이렇게 험한데

주변 국가들과의 물품 교역을 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또 보통 저개발 국가들은 낮은 임금을 활용하여

외국 기업의 제조업 공장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그러려면 원재료나 완성된 제품들의 이동이 필요한데

효율적으로 이용 가능한 도로도, 철도도, 바다도 없는 부탄의 입장에선

이것도 어려운 것이죠.

뭐 트럭으로 물품을 옮길 수는 있겠지만

험한 산길을 오고 가는 교통비가 더 들지 않을까요?

 

게다가 이미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나 동남아 국가들까지

이미 주변에 세계의 제조업 공장의 역할을 하는 국가들이 많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부탄의 주요 산업은 무엇일까요?

많은 저개발 국가들이 그렇듯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농업과 임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데

그 외의 산업을 이해하기 위해선

부탄의 수출 통계를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부탄 수출의 90% 정도

즉 거의 대부분의 수출이 인도를 통해 이루어지기에

대인도 주요 수출품들을 살펴보죠.

보시면 가장 위에 전기가 있고

다음으론 합금, , 카다몬, 석재류 등이 있습니다.

뭐 산이 많으니 광업은 당연한 것이고

또 히말라야에서 나오는 향신료인 카다몬이 나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게 전기라니, 조금 놀랍지 않으신가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지리에 있는데요.

히말라야의 높은 산지에서 녹은 눈들은

가파른 산과 계곡의 흐름을 타고 아래로 흐르게 되는데

이는 수력 발전에 매우 좋은 조건이죠.

그래서 이미 부탄에 5개의 수력 발전소가 있고

또 추가적인 발전소도 짓고 있습니다.

 

근데 이 작은 나라에 돈이 많지는 않겠죠?

그래서 이 발전소를 짓는 돈은

관계가 우호적인 인도에게 빌렸는데

인도는 GDP 세계 5위의 국가이자, 세계 인구 1위인 국가입니다.

전력 수요가 어마어마하겠죠?

그렇다 보니 부탄에 수력 발전소를 지어

저렴한 가격에 전력을 얻고자 하는 인도와의 이해관계도 맞는 것입니다.

자국의 전력을 공급하고 남은 대부분의 전력을

돈을 빌린 이웃 나라 인도에게 수출하는 것이죠.

 

부탄의 부채 비율을 보시면

GDP의 약 130% 정도로

국가 규모에 비해 상당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사실 이 돈의 대부분은 수력 발전소 건설에 사용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미래 산업을 위한

현명한 투자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또 다른 발전 가능성이 높은 산업이 있는데 바로 관광업입니다.

근데 사실 부탄은 가고 싶어도 쉽게 갈 수 있지 않습니다.

부탄 정부를 통해 승인된 여행사를 통해서만

예약을 하여 입국할 수 있으며

관광객의 수도 제한을 하고 있죠.

부탄의 전통적인 문화를 지키기도 하고

또 과잉 관광으로 인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서일 건데요.

그런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옆나라 네팔인데

지나치게 많은 히말라야 등반객들을 받아들여

등반 코스의 상당 부분이 오염되었죠.

 

또 지속 가능한 개발 수수료란 명목으로

부탄 방문 외국인은 체류 1일당 100달러의 금액을 내야 하는데요.

202310만 명의 관광객을 받아들이며

외국인 체류비로 2,60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이는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도 사상 최고치였습니다.

그리고 2024년엔 관광객 수를 30만 명까지

거의 3배 수준으로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탄에서도 관광공사를 민영화하고

민간 부문의 투자와 활동을 촉진하며

외국의 문을 점점 더 개방을 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부탄의 1인당 GDP3,500달러인데

여행객 1명이 일주일간 부탄에 머물며 체류비에 숙식비를 쓰면

부탄인 한 명의 몇 달 치 월급, 혹은 1년 치 월급을 쓰게 되는데요.

이런 관광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는 도시 사람들은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이죠.

 

이런 부분들을 포함하여

인구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시골의 농업 종사자들과 도시 사람들의 빈부 격차가

점점 벌어지게 되다 보니

국민 전체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한의 방향성과 맞지 않고

또 여러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에

부탄이 천천히 조절하며

나라를 개방하고 있지 않은가 싶네요.

 

이에 더해 뿌리 깊은 불교문화까지 더해져

경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

부탄만의 기준과 방법으로 행해지는 것들이 많은데요.

예를 들면

부탄 영토의 최소 69%는 숲으로 남아 있도록 헌법에 규정하고 있고

이 때문에 부탄은 전 세계에서 탄소 배출량보다 생산량이 많은

유일한 국가이기도 합니다.

 

또 부탄의 모든 고기는 수입이 되고

부탄 내의 동물들은 소비를 위해 도살되지 않죠.

또 차보다 사람을 우선시하기에 신호등이 없는 유일한 국가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독특한 것은

국가의 성장과 평가의 기준을 경제가 아니라

국민들의 행복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국민총행복 지수는

2008년엔 아예 부탄 헌법에 들어가 정부의 공식적인 목표가 됩니다.

 

자신들이 만든 지표로 행복을 측정하다 보니

부탄은 늘 높은 행복 지수를 기록했고

이 때문에 행복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죠.

또 왕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심도 높고 부패 수준도 한국보다 낮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열악한 환경적 조건 속에서도

자신들이 나름대로 추구하는 방향으로의 발전을

잘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다 보니 막연하게 부탄은 행복의 나라로 생각되며

긍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반대로 어두운 부분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이 부분을 알기 위해선 역사적 부분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실 부탄의 땅은 과거엔 주변 지역들까지 조금 더 넓었었습니다.

1700년대 중반엔 현재 부탄의 남쪽에 있는 쿠치베하르 공국도

부탄이 사실 사실상 지배를 하고 있었죠?

이에 쿠치베아르 공국은

인도 쪽에서부터 세력을 넓혀오는 영국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영국은 1772년 부탄을 침공하여

부탄을 쿠치베하르에서 몰아내게 됩니다.

이후엔 영국과의 전쟁 등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되고

결국 1865년 양국 간 신출라 조약이 체결되며

부탄은 사실상 영국의 속국이 되고 줄어든 형태로 영토가 확정되었죠.

 

신출라 조약 후, 나라가 휘청거리다 보니

국가 내부적으로도 혼란스러워

1870~ 80년대엔 여러 지역별 세력들 간 경쟁이 있게 되는데

그중 우겐 왕축이 두각을 나타내고

여러 내전에서 승리하고 반란을 진압하며 1885년 부탄을 통합하게 되죠.

 

그리고 당시 남쪽인 영국이, 북쪽엔 티베트가 있었는데

여기서 우겐 왕축은 영국을 택하게 됩니다.

우겐 왕축은 영국의 험준한 티베트 원정길을 지원하여

1904티베트- 영국 협약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주었고

이 공으로 영국으로부터 작위를 수여받고

1907년엔 부탄의 새로운 지도자로 인정받게 되죠.

 

그런데 우겐 왕축은 여러 지역 세력 중 1명이었고

지도자가 될 당시 그 정통성을

내부 세력이 아닌 외세인 영국을 등에 업고 왕이 되었기에

왕으로서의 정통성이 그리 강하진 않았겠죠?

그래서 우겐 왕촉 시기엔

불교의 영적 지도자들과 관계를 긴밀히 하고, 불교 사원들을 건설하는 등

종교를 강화하며 정통성을 확보해 갔죠.

 

이후 왕은 세습되었고

두 번째 왕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고립 정책을 유지하고

중앙 집권화를 강화했는데

1952지그메 도르지 왕축이 왕이 되며

기존 노선과는 달라지게 됩니다.

 

이전과는 달리 부탄을 외부세계에 조금씩 개방하고

현대화와 민주화를 위한 변화를 가져가기 시작 했습니다.

또 세계적으로 불었던 공산화의 바람이 부탄에 불지 않도록

시민들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긴 한데

그 의도가 어찌 되었든

당시만 해도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던 토지를 재분배하고

또 당시 부탄에 여전히 남아 있던 귀족들의 농장에서 일하던 노예들을

소작인으로 바꾸었죠.

또 인도의 지원을 받아

도로나 전력 등 여러 사회 기반 시설을 건설하는 등의 변화가 있게 되는데

이때 건설 노동자로, 네팔인들의 상당수가 부탄으로 이주를 해 오게 됩니다.

 

부탄은 크게 4개 종족으로 구분되는데요.

가장 많이 차지하는 응갈로 인들은

9세기경 티베트에서 부탄으로 넘어와

티베트 문화와 불교를 도입한 민족이죠.

 

그다음으로 많은 게 바로 이 네팔 출신의 로샴파 족으로

이 시기에 많은 네팔인들이 이주해 왔고

1958년에 법이 개정되며 이들은 시민권까지 얻게 되어

로샴파 인들의 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건설 노동뿐만 아니라 공무원이 되거나 다른 산업들에도 종사할 수 있게 되었죠.

 

지금도 20% 정도의 부탄인이

로샴파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종교, 문화, 언어의 차이가 있더라도 큰 갈등 없이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1972지그메 싱게 왕축17세의 젊은 나이로

부탄의 네 번째 왕이 되는데

이 왕은 아까 말씀드린 국민총행복의 개념을 만든 왕인데요.

이 행복의 나라라는 타이틀을 얻은 시기에

부탄에 또 다른 어두운 면이 생기게 됩니다.

 

4대 왕은 국민총행복이라는 대전환점을 만들면서

그와 동시에 부탄인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펼치게 되는데요.

부탄인들의 의상 규정이나 통일된 언어 사용 등

획일화된 규정들이 생겨났죠.

 

아마도 그 전대 왕인 시기에 있었던

여러 가지 개혁을 통한 급진적 변화들과

빠르게 증가한 네팔인들이

공무원, 정부 고위직, 또 산업에서의 주요 역할을 하게 되는 비율이 높아져 가던 상황은 종교나 전통성이 왕권의 기반인 통치자의 입장에선

좋은 부분은 아니라 볼 수 있겠죠?

그렇다 보니 종교와 전통성을 더 강화하며

하나 된 부탄을 만드는 게 왕권 유지 입장에서는

괜찮은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하나 된 부탄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들은

네팔인, 즉 로샴파인들의 입장에선 좋은 변화는 아니었죠.

이제 부탄인처럼 옷을 입어야 하고

네파어로 된 책이 사라지고

학교에서도 더 이상 네팔어를 배울 수 없게 되는 것이니까요.

 

또 부탄은 로샴파족들이 부탄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1958년 이전 연도에 토지세 영수증을 제출하라고 합니다.

과거의 영수증을 모두 다 들고 있지도 않고

또 제출하더라도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면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니

갑자기 상당수의 로샴파족들이

부탄의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렇다 보니 로샴파족들은

이런 변화에 대해 저항하는 시위나 정당 활동을 하게 되는데요.

부탄은 또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탄압을 하게 되고

때론 무력을 사용하여 로샴파족들을 체포하기도 했죠.

또 이렇게 처벌받은 경력이 생기게 되면

부탄 시민으로 인정을 받기는 더 어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로샴파족들에 대한 탄압으로 인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10만 명 이상의 로샴파족들이 부탄에서 추방을 당했고

네팔 동부에 만들어진 난민촌으로 가게 됩니다.

 

1990년에 부탄 인구가 55만 명인데

중심 민족과 다른 종교, 언어를 가진

전체 인구 20%를 차지하는 특정 민족을 추방했다는 것은

사실상의 민족 청소라 불러도 과언은 아니지 않을까요?

 

그렇게 갑자기 집, 직업, 삶의 터전, 친구, 가족을 잃고

난민 신세가 되어 버린 10만 명 이상의 로샴파인들은

민족의 고향인 네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힘든 삶을 이어가게 되는데요.

 

당시 네팔도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원래도 내부 상황이 불안했는데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네팔 공산당과 네팔 왕국 간 내전이 있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 네팔도 인도주의적 지원은 하였지만

이들을 공식적인 시민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죠.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노력을 했지만

결국 이들은 지금까지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결국 10만 명 이상의 난민 중 90% 이상이

미국, 유럽, 캐나다, 호주 등 세계 곳곳으로 퍼져 이주하게 되었고

지금도 다시 부탄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은

기존에 7개에서 2개로 줄어든 난민 거주 지역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난민 지역의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

노인 인구의 비율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하네요.

 

그리고 부탄의 행복의 또 다른 이면이라고 한다면

부탄 자체적으로 만든 국민총행복 지수에선

부탄이 세계 1위이지만

유엔에서 조사하는 세계행복지수에선 95위를 기록하며

한국보다 낮은 수치를 보이죠.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기준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긴 하지만

일반적 기준에선

결코 부탄을 행복의 나라라고 부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탄의 외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무리를 해볼 텐데요.

우선 앞서 많은 부분에서 인도와 협력해 온 것처럼

인도와는 전통적으로 관계가 매우 좋았습니다.

둘 다 영국의 영향력 하에 있기는 하였지만

두 국가가 각각 독립할 당시

거의 최초로 독립을 인정한 국가이기도 하였고

또 인도 입장에서도 인도와 중국 땅 사이에 부탄이 있어

부탄이 전략적인 완충국 역할을 해주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죠.

 

반면 중국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 왔는데요.

바로 이 티베트를 중국이 합병하는 과정을 보며

부탄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보니

경계심이 강할 수밖에 없긴했죠.

 

그래도 워낙 강대국이니

인도와 중국 사이에 균형감 있는 외교 노선을 타려고 하나

전통적으론 친인도- 반중국노선 쪽이 더 강하다고 볼 있습니다.

 

다만 최근 들어 일대일로로 대표되는 중국의 외교적 확장이 강해지고

세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는데

언제까지 반중만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최근엔 중국과 대화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실제로 작년엔 양국이 국경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만나기도 하는 등

이전보다 관계를 진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부탄 입장에선 양국 사이에

실리적 태도로 잘 대처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요.

중국- 인도- 부탄 3국이 함께 얽힌

국경 분쟁도 관심 있게 지켜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팔과의 관계는 앞서 난민 사건도 있었던 것처럼 냉랭하고요.

그리고 아래쪽 방글라데시와의 관계도 좋은 편인데요.

1971년에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최초로 인정한 국가가 부탄이기도 하고

또 서로 근접하기에 무역을 활발히 해왔으며

최근에 방글라데시는 인도와 함께

부탄의 수력 발전에 대한 투자를 하고 있기도 하죠.

 

또 부탄에서도 방글라데시가 매우 중요한 게

부탄은 바다가 없다 보니

해상 무역로가 필요한데

이 문제를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항구를 통해 해결하고 있죠.

 

 

, 이렇게 오늘은 부탄의 다양하고 복잡다단한 모습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강대국들 사이에 낀 소국의 입장에선

굉장히 현명하고, 독자적인 형태로

국가를 잘 운영해 나간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 과정에서

다수의 국민들을 난민으로 만드는 어두운 면도 있었죠.

 

또 다른 면으로 보면

행복은 주관적인 것인데

국민들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면서

행복의 나라라는 과대평가된 마케팅적 포장지를 씌워

오히려 자유경제 시스템의 도입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경제 발전을 막는 것은 아닐까요?

 

정답은 없겠지만

여러분들의 생각도 댓글로 남겨주시면 좋을 것 같고

아무튼 오늘 영상을 통해

부탄의 다양한 모습들이

여러분들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긴 시간 시청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