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지혜별숲] 영혼의 숙명은 창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낭독72회]

Buddhastudy 2024. 2. 7. 19:56

 

 

오늘 함께할 책은 에드거 케이시의 [신과 함께]입니다.

 

지난 영상에서는 육체의 숙명에 대한 부분을 읽어 보았구요.

오늘 읽어드릴 내용은 영혼의 숙명부분입니다.

 

모든 창조물이 그러하듯이 영혼의 숙명

영혼이 나온 원천인 신의 품, 창조주의 품으로 돌아가

창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우리가 신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개인적인 감정을 초월하여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난다는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읽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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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원래 상태는 영혼이다.

모든 영혼은 태초에 창조주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이 최초의 창조는 영적인 것이었다.

물질세계에서 영혼의 성장은

우리가 여러 가지 의식의 영역에서 경험한 것을 모아,

날실과 씨실로 짜서 만든 옷과 같다.

 

지상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작업복이나 죄수복, 결혼식 예복 등 여러 가지 옷을 입는다.

그리고 의지에 따라 방향이 정해진 마음에 의해

품위 있고 숭고한 것, 혹은 이기적이고 자신을 천박하게 만드는 것을

영혼 속에 만들어 나간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영혼 속에 만들어 온 것이

우리에게 명예로운 지위에 오를 기회를 주기도 하고

불명예스러운 상황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명예스러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의지의 힘으로써

그것을 명예로운 지위에 오르는 디딤돌로 만들 수가 있다.

이러한 것들도 역시 영혼에 각인된다.

 

우리의 의지는 극히 신성한 힘이다.

이 의지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모든 영혼은 창조력의 자손, 신의 자손이며

의지라는 특권을 지금까지 어떻게 사용해 왔는가에 대한 결과이다.

 

생명은 그 본질에 있어서 영적인 힘이며,

영원히 지속되는 것임을 이해하자.

 

생명의 자락은 이 지상에서 그런 것처럼

물질계에 나타나기도 하고

그 외의 여러 가지 의식세계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떠한 세계에 생명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마음만이 온갖 세계를 통해서 작용하고 창조하는 보편적인 힘이다.

 

신으로 숭배하는 창조력속에서

자신이라는 고유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는 것도

이 마음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영혼은 신에 속한다.

영혼은 신 안에서 시작되며, 신 안에서만 그 끝이 있다.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자신이 전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전체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의 영혼은 창조력의 일부로서 존재할 수 있으며

아버지의 일에 동참하는 동반자로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생명의 숨결을 부여받았다.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창조력을 부여받은 불멸의 존재이자

이 창조력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신과 하나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영혼의 숙명은

모든 창조물이 그러하듯이 창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영혼이 영적, 정신적, 육체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을 실체라고 부른다.

영혼은 제아무리 멀리 방황한다 할지라도

스올(죽은 사람들이 가는 처소)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새벽 날개를 쳐서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를지라도

결국에는 영혼이 나온 원천인 신의 품, 창조주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어떻게 영혼이 죽을 수 있단 말인가?

대체 어떻게 신이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신이 자신을 파괴할 수 있단 말인가?

영혼은 차례차례로 육체를 바꿀지도 모른다.

여러 의식 세계의 경험을 추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혼은 자신이 왔던 원천으로 돌아갈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영혼의 기원이란 무엇일까?

영원의 시작이란 무엇일까?

영원이란 영원함에서 영원함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새벽별이 함께 노래할 때우리는 거기에 있었다.

모든 하늘이 거두어지고 언젠가 시간이 존재하지 않게 될 때,

보라, 우리는 거기에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태초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신의 아들이며,

우리의 숙명은 신을 섬기는 왕이자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영혼의 몸은 창조주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모습이며

영에 있어서 창조력의 동료이다.

그 놀라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것은 신이 그랬던 것처럼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우리의 육체는 영혼이 일시적으로 사는 집에 불과하다.

 

신에게서 잠시 빌린 영혼의 능력은

육체 경험 속에서 활용할 기회를 얻는다.

 

우리가 신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신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깊은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 능력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가로 나타난다.

 

지상에서 여러 번 머무는 동안 영혼은

의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혼란, 소동, 다툼으로 향하는 경험을 가져다줄 수도 있고

인생의 목적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경험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헐뜯고 모함하는 말이나 불친절한 말이

자신에게 던져진다 해도

자기 내면의 평정심을 유지하고

그들을 혼내주어야겠다는 개인적인 감정을 초월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신과의 조화를 이해한 것이다.

 

우리는 영혼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이치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육체를 취하는 것이다.

 

영혼을 성장시킬 기회는

우리 이웃과의 관계 속에 나타난다.

어떠한 시대이든 우리가 지상에 온 목적은

배워야 할 것을 배우고

자신의 영혼을 표현할 기회를 새로이 얻기 위함에 있다.

법칙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그 지식을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으로 옮길 때

그것은 우리 인생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우리를 통해서 창조의 에너지가 풍요롭게 작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몸을 수로로 만들자.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창조주 안에서 자신 고유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영혼의 운명을 만들어 내는 것은

지식도 아니고 이해도 아니다.

우리 앞에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것이

영혼의 운명을 만드는 것이다.

 

신은 법칙을 정해서

우리의 영혼을 시간과 공간의 바다에서

떠다니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에 있어서 최대의 성장은

영웅적인 행위나 부나 명성, 높은 지위에 있지 않다.

 

오히려 영혼의 성장은

한 걸음 한 걸음, 교훈에 교훈을 더하듯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길 위에서 보이는 친절이나 사랑, 인내에 의해서 찾아오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 성장이 우리의 영혼으로 하여금

지상에서 살아가는 목적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이해하게 해준다.

 

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행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이 되지 않는 한

우리의 계획은 언젠가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는 사실을 납득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활동이 일부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활동은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거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선을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 지식은 악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혼은 반드시 자신과 또다시 대면할 것이고,

그리고 지상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변명해야만 된다.

 

육체적으로 행한 일은 육체가 만나고,

정신적으로 행한 일은 정신이 만나고,

영적으로 행한 일은 영이 만난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씀대로이다.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 온 것에서 자기 자신을 만난다.

그러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여

선을 행하기로 하자.

우리의 인생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러한 상황이나 경험은 저절로 찾아온다.

 

우리에게 준비만 되어 있다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할 때와 장소는

저절로 찾아온다.

이것이 법칙이자, 그것이 신의 사랑이다.

 

고맙습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채널 [지혜별숲] 이었습니다.

오늘도 고요하시고 평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