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는 언제나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것들을 나의 <적>이라고 판단합니다.
나와 분리시키죠.
‘나와 저 사람은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옳고 저 사람이 틀려.
나를 공격하는 건 저 사람이 잘못된 거야.’ 라고
거의 바로바로 판단을 내립니다.
그렇기 때문에요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그것이 나의 의견과 다른 의견이라면,
우리는 그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을,
내 의견을 포기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합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어떤 사람이 냈을 때
그것을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게 뭘까요?
그 사람의 의견을 틀렸다고 단정 짓는 겁니다.
그 사람의 의견이 나의 의견과 상충되요. 달라요.
예를 들어서
내가 “해는 동쪽에서 뜬다.”라고 말을 했는데,
상대방이 아니래요. “해는 서쪽에서 뜬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순간, 나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냈다는 것 자체를
에고는 <공격>이라고 판단을 하죠.
그래서 ‘아, 저 사람은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생각하는구나.’
라고 넘기는 게 아니라요.
‘저 사람은 틀렸어.’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 알고 있기로 해는 분명히 동쪽에서 뜹니다.
그리고 서쪽에서 지죠.
그래서 이렇게 너무 명백하게 팩트인 이야기를 어떤 사람이
‘아니야, 그건 사실이 아니야.’ 라고 말을 한다고 해도요.
‘아,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에서 끝이 나면 되죠.
그렇지만 우리는 그걸 나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토론을 하거나 의견을 주고받을 때,
나의 의견과 상충되는 의견이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기분이 상하죠. 감정적으로 변하죠. 토론이 아니라 싸움이 됩니다.
내가 나와 나의 생각을 분리하는 작업을
우리가 명상을 통해서 열심히 하죠?
다른 사람과 그 사람의 생각 또한 분리된 존재로 내가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저 사람이 가진 생각,
이렇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분리된 존재죠.
내가 가진 생각,
이 또한 우리가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살지만,
사실은 분리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에게 본인의 의견을 자꾸 강요해요.
그러면은 생각해 보세요, 에고의 입장에서.
어떤 사람이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합니다.
에고의 입장에서 그것은 타인이 나를 공격하는 거죠.
그래서 에고의 입장에서 공격을 당했을 때,
에고는 저 사람과 나를 분리해 버립니다.
분리해 버리면 얼마나 쉬워요.
‘저 사람이 틀렸고, 내가 옳아.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저 사람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몇날 며칠을 계속 생각하게 하죠.
우리가 큰 상처를 거듭해서 받을수록 더욱더 강한 에고가 생겨난다고 말씀드렸었죠?
에고의 입장에서 공격이라고 감지되는 어떤 것이 있을 때요.
어떤 사람이 나에게 반대되는 주장을 했을 때,
그것 또한 에고는 나에 대한 공격이라고, 상처라고 받아들이고
그 사람을 적대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럼으로써, 나는 나를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생존의 위협에서 나를 구하는 겁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요, 나는 공격을 당한 게 아니에요.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공격하려 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상처받기로 선택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공격이 될 수가 없습니다.
<상대방은 상대방의 말을 한 것뿐이에요.>
우리가 상처라고 느끼는 순간에 상대방을 포용하는 것은
에고 입장에선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왜냐면 에고는
우리를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그런 취지로
우리를 계속해서 가장 안전한 길로 이끌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 <나를 상처 준 사람을 밀어내는 작용>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자꾸 어떤 사람이 나를 말로써 상처 준다면,
자꾸 그 사람을 미워하려고 하죠.
그 사람을 미워하려고 하는 것은 내 마음의 작용이 아닙니다.
<내 머리의 작용>이에요.
저 사람을 미워해 버리면 내가 상처를 받지 않을 것처럼
에고가 나에게 유혹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이 나를 상처 준다고 해서,
그 사람을 밀어냄으로써 치유가 된 적이 있나요?
치유가 되지 않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상처를 받을 만한 그런 환경이 주어질 때마다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차려 보세요.
예를 들어서,
회사에서 누군가가 나를 업무적으로 공격을 한다면요.
그 순간, 에고가 반응합니다.
그 사람을 낮추어 보려고 하거나 혹은 그 사람을 미워하려고 하거나
계속해서 누군가와 나를 <분리>합니다.
분리하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최선의 선택인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를 하죠.
하지만 내 마음에서는요.
우리의 마음은요, 서로서로 포용하고자 합니다.
서로서로 다 이해하고, 안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내가 상처를 받을 거라고 말하는 건 <에고>입니다.
제가 올봄에
엄마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라는 영상을 올려 드렸었잖아요.
제가 그 방법으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용서하고,
나를 상처 준 사람들을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품어 보자,
하는 생각을 하고 오랜 시간을 보낸 결과,
꾸준한 명상과 더불어서요. 깨달음이 전해졌다고 생각을 해요.
“명상 중에 깨달음을 어떻게 얻나요?” “얼마나 걸리나요?”
“하루에 몇 분씩 해야 하나요?” 라고 계속 질문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명상을 꾸준히 함과 더불어서
<일상에서 나를 알아차리는 노력>도 굉장히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를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상처를 받기로 선택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걸 일단 인정하셔야 합니다.
‘말로는 엄청 많이 들었는데, 도대체 내가 왜
상처를 받기로 선택한다는 거냐. 난 이해가 안 된다.’라고 생각이 드시면요.
누군가 나에게 <공격>이라고 느껴지는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알아차려 보세요.
그건 바로 <에고의 목소리>입니다.
그래서 에고는
“저 사람 꺼져 버리라고 해. 저 사람이 틀렸어. 네가 맞는 거야.
저 사람만 없어지면 넌 상처받을 필요가 없어.”
이런 식으로 에고는 자꾸 분리하려는 이야기를 전해요.
그리고 내가 내면과 조금 가까워진 상태,
그러니까 에고가 조금 작아진 상태라면요.
누군가가 나를 공격하려고 했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의 불편함을 내가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작용이에요.
내 심장, 내 가슴을 통해 상대방을 바라보는 겁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겪었던 폭력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
전에는 심상화 명상을 통해서 그 장면으로 돌아가
그 당시에 그 힘듦을 겪고 있는 제 자신을 바라봤을 때,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바로 눈물이 쏟아져 나왔어요.
지금의 저보다는 어린, 그 나이의 제가 너무 불쌍했고, 가슴이 아팠고,
‘그때 왜 누구도 도와주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들과 온갖 연민과 동정, 이런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죠.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요.
가해자를 바라봤을 때, 그 가해자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 가해자가 얼마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으면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싶었을까.
혹은, 그 가해자가 얼마나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상태였으면
물리적으로 힘이 나보다 약한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내 힘을 과시하고 싶었을까.
이런 것들을 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제가 여러 번 반복해서 늘 말씀을 드리지만,
누군가가 저에게 해를 끼치고자 무언가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해도요.
저는 일단... 지금은 그래도 에고가 많이 작아져 있는 상태기 때문에요.
늘 말씀드리지만 <에고를 죽이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에고가 굉장히 작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누가 날 공격했을 때, 그 사람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면 이곳에서 나오는 소리보다 이곳에서 나오는 소리가 훨씬 크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자꾸자꾸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그걸 기록해 보는 것도 중요해요.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오늘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알아차렸나.>
회사에서 상사가
“너 업무 이렇게밖에 처리 못 해? 저능아야? 너는 어떻게 네 후임보다도 일을 못 해?”
이렇게 막말을 퍼부었다고 합시다.
에고는 이 상황에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저 사람이 병신 머저리야. 내가 맞아. 저 사람이 진짜 멍청해서 그러는 거야.”
이렇게 속으로 그 사람을 계속 비난하고 싶어 해요.
그리고 나와 분리하고 싶어 하죠.
그렇게 내 에너지는 점점 낮아지고, 나에게는 계속 비슷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생각을 전환해요. 마음으로 들여다봅니다.
‘저 사람의 <에고>가 나에게 막말을 하는구나.
아, 그래서 내 안에서도 나의 에고가 저 사람에게 막말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
<에고와 에고의 싸움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공격할 리가 없어요. 저 사람의 에고가 시끄럽게 떠듭니다.
왜냐면 <저 사람의 마음도 어지럽기 때문>이죠.
부하 직원이 일 처리를 조금 못해서 막말을 하고 있다면,
저 사람의 마음이 평온한 상태이겠습니까?
전혀 아니죠. 우리도 그걸 알고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나와 상충되는 의견
아니면 나를 상처 주는 말과 행동,
이런 것들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상대방의 에고가 나에게 피해를 끼치려고,
나의 에고는 또 그것을 상처로 만들려고 하고 있는 그 상황을
이렇게 한발 물러나서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세요.
드라마 보듯이, 영화 보듯이
저 사람과 저 사람이 있고,
저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하는데, 저 사람이 이거에 또 이렇게 상처를 받네.
두 개의 에고가 서로 싸우고 있구나.
이렇게 바라보는 거예요.
상대를 포용하는 것, 사랑하는 것보다 쉬운 게
분리시키고 미워하는 것이라는 거, 에고의 목소리입니다.
메모장에라도 적어 두고 시시때때로 들여다보세요.
사랑하고 포용하는 것보다
미워하고, 밀어내고, 분리하는 게 훨씬 쉽다는 것, 에고의 목소리입니다.
사실은 사랑하고 포용하는 게 우리 본성에 훨씬 더 가깝고,
우리가 원래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서너 살짜리 아이들이 서로 밀치고, 앙! 깨물고 싸우다가도
5분 있으면 까먹고 같이 친구가 되는 그 상황,
그 상황이 우리의 본성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사랑과 가까운 존재들이지, 분리와 가까운 존재들이 아니에요.>
분리가 필요한 것은
우리가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물리적인 분리를 통해서 동물적으로
이 세상에 생존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에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존의 위협을 겪는 상황이 아니라면
에고가 나의 판단 체계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내가 예의주시하는 것,
조금만 연습하시면
에고가 스스로 작아져서 더 이상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에너지는 점점 좋아져서
나를 괴롭히려고 하는 사람들조차
내 주변을 하나, 둘 떠나가게 되죠.
빛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어둠이 찾아오지 못한다는 말
예전에도 해 드렸죠?
그거 늘 기억하시구요.
내가 빛으로 차올라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면
어둠이 오면, 그 어둠 또한 나로 인해 밝아지게 됩니다.
오늘도 명상하는 것 잊지 마시구요.
이너 피스(Inner peace: 내면의 평화, 마음의 평화) 찾으시길 바랍니다.
평온하세요.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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