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 잘 지내셨어요? 네. 오늘은 오온에 대해서 몇 주간 공부를 했는데요, 오온에 대해서는 마지막으로 설명하는 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물질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드렸고요, 물질이 색온이고, 또 마음에 대해서도 말씀을 좀 드렸고, 마음에 대한 것이 있었고, 그 다음에 다섯 가지 장애요소, 어리석음. 이런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또 그 반대. 오염원과 장애요소와 어리석음을 극복하는 방법으로서 알아차림, 지혜, 이런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게 행온에 해당합니다. 어리석음이나 다섯 가지 장애요소, 알아차림, 지혜, 자비. 이런 것들은 어떤 선행을 하느냐? 불 선행을 하느냐하고 관계가 있기 때문에 행온의 범주에 들어가고요,
마음에 대해서 알아본 거는 식온이라고 하는 거, 그게 들어가고. 오늘 하려고 하는 주제가 수와 상입니다. 느낌과 인식. 이 두 가지를 이야기하면 기본적으로 오온이라는 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됐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먼저 수온과 상온. 수온이라고 하는 것은 느낌이죠. 느낌. 우리가 사람을 처음 만나면 저 사람은 느낌이 좋다. 저 사람은 느낌이 안 좋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죠? 그런 느낌이 여기서 말하는 수온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복하게 생각한다. 또는 괴롭다. 고통스럽다, 라고 이야기하는 이런 것들에 본질이 뭐냐 하면 어떤 느낌이 일어나는가 하고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그런 행복하게 느끼는 느낌이 일어나는, 행복한 느낌이 일어나는 거라고 할 수 있고, 괴로움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는 거고, 평온하다고 하는 것은 평온한 느낌이 일어나는 거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게죠?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가장 실질적으로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게 바로 뭐냐? 느낌의 변화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 느낌에 대한 이해는 굉장히 중요하고요. 또 이 느낌을 통해서 예를 들면 느낌에는 행복한 느낌이 있을 수 있고, 괴로운 느낌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죠? 행복한 거에 대해서는 보통 집착이 일어나고요, 또 괴로운 느낌에 대해서는 싫어하는 마음, 성냄이 일어나고, 보편적인 반응 방식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느낌에 대해서 이해를 하는 것은 불교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고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오온 중에서도 특별히 느낌은 따로 빼서 설명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이 느낌이라는 거에 대한 이해를 조금만 더 해 보면요, 이 느낌이란 거에 특징은 말 그대로 대상에 대해서 맛을 보고 느끼는 거를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느낀다는 건 뭐를 느낀다는 걸 의미하냐 하면,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 이 대상이 나에게 행복하게 다가오는지, 또는 괴롭게 다가오는지. 아니면 괴롭지도 않고, 그냥 뭐 쉽게 말해서 무덤덤하죠. 좋지도 않고 실지도 않은 무덤덤한.
여러분도 대학이나 다닐 때 보면 미팅 나가잖아요. 그죠? 미팅 나가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들어오면 아주 마음이 행복한 느낌이 일어날 거고, 그 원하는 대상이 나타났을 때는 보통 행복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일반적으로. 그런데 원치 않는 어떤 대상이 나타나면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겠죠. 그죠?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대상을 경험하는 건데. 이게 나타나는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집니다. 보통 불교에서 두카라고 하는 거 있잖아요, 괴로움. 괴로운 느낌이 있고, 또 하나는 즐거운 느낌이 있고, 또 하나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있고. 일반적으로 말하면 무덤덤한 느낌. 이렇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세부적으로 나누면 행복한 느낌도 두 가지 형태가 있다는 거죠. 어떤게 있겠어요? 몸을 통해서 느끼는 행복한 느낌이 있을 수 있고, 또 정신적으로 느끼는 행복한 느낌이 있을 수 있겠죠? 그죠? 그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고. 괴로운 것도 몸을 통해서 느끼는 괴로운 것과 정신적인 괴로움, 이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칼에 찔렸을 때 오는 거는 몸에 날카로운게 부딪혔을 때, 이 몸을 통해서 일어나는 고통이잖아요, 그죠? 이런 것은 좀 엄밀하게 이야기를 하면, 신식을 통해서, 몸을 통해서 몸을 조건으로 해서 아는 그런 마음. 그걸 신식이라 그러잖아요, 그죠?
몸을 통해서 일어나는 고통이 있는가 하면. 어디에 찔리고 나서, 이 찔린 것 자체는 몸을 통해서 오는 고통인데, 이거에 대해서 ‘아~ 아프다.’ ‘이런 고통이 너무 싫다.’ ‘왜 나한테 이런 고통이 오느냐?’ 이렇게 정신적으로 자꾸 생각을 하면서 오는 고통이 있겠죠? 그죠? 그런 것은 정신적은 불만족, 또는 정신적인 괴로움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좋은 것도 마찬가지로 그 반대로 이해를 하시면 되요.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그냥 그렇게 너무 세세하게 나누지는 않고요. 그냥 괴로운 느낌, 또 즐거운 느낌, 그리고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 이렇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눕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듯이 보통 즐거운 느낌이 일어나는 거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집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요. 보통은 그렇게 진행이 되고, 괴로운 느낌에 대해서는 성냄,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평온한 느낌에 대해서는 보통 어리석음이 많이 작용 할 수 있습니다. 이 평온한 느낌은 다시 말하면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 느낌은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어리석음이 작용하기가 쉬워요. 그래서 살아가면서 행복을 느낀다. 불행을 느낀다 하는 것은 이런 느낌의 변화지, 실질적으로 어떤 행복이나 괴로움이라고 하는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부처님께서 알려주고자 하는 겁니다.
보통 보면 뭐가 행복이다. 뭐가 행복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예를 들어서 돈이나 권력 이런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돈이나 권력이라고하는 그 대상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행복한 느낌이 일어난 거지, 그 자체가 어떤 행복에 특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 마음에서 우리가 보통 행복하다고 느끼고 불행하다고 느끼고 이런 것을. 행복이나 불행한 것이 무슨 실체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것에 대해서 굉장히 휘둘리게 됩니다. 좋은 것에 대해선 너무 그거를 즐기려고 하고, 계속 지속시키려고 하는 이런 마음이 일어나고, 괴로운 일이 벌어지면 거기에 대해서 안달복달하고, 못 견뎌서 괴로워하고 이렇게 하는데.
이런 것이 하나의 느낌이라고 하는 하나의 현상이 어떤 조건에서 왔다가 가고, 왔다가 가고하는 그런 거라고 이해를 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그런 거를 대처하는 마음이 훨씬 달라지겠죠. 그죠?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본질들을 좀 현혹되기 쉬운 것들을 좀 더 정확하게 보게 만들어서 그런 현상들에 끄달리지 않도록, 그 현상들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그런 목적에 의해서 이런 느낌이라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복하다. 괴롭다, 하고 느끼는 것이 사실은 이런 느낌이 일어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거에요. 행복한 느낌이나 즐거운 느낌이라는 오온으로 이야기하면 수죠. 그죠? 수온이라 하는 것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지. 그것이 어떤 실체가 있고, 자아가 있고, 그런 것이 아니다 이거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명확하게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오온 중에서 느낌, 수온이라고 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 느낌이라는 것을 가지고, 조금 더 앞에서 말씀드렸던, 왜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고라고 하느냐? 사성제 첫 번째가 고성제잖아요. 그죠? 왜 고성제라고 하냐? 보통 불교 초보자들한테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고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아이 무슨 소리냐? 나는 지금 우리 집안도 화목하고 엄청 행복하다. 내가 지금 충분히 행복을 누리고 있는데 어떻게 고라고 이야기를 하느냐?’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고, 두카라는 의미는 그런 괴로움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거는 느낌을 가지고 좀 설명을 드려보면, 우리가 보통 괴롭다고 하는 것은, 지금 말씀드렸듯이 뭐를 의미하는 거겠어요? 느낌으로 이해를 하면? 내가 뭔가 괴롭다고 느끼는 것은 본질적인 법의 입장에서 보면은 어떤 의미로 해석을 할 수 있겠어요?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는 거거든요. 수온이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는 건데, 이 괴로운 느낌이 일어날 때는 우리는 대부분 이거에 대해서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괴로운 느낌이 일어날 때는 ‘아~ 괴롭다’ ‘힘들다’ 이런 것들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이런 거는 그 자체로 고잖아요. 예를 들면 성나는거 이것도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거든요. 화라는 것은 항상 괴로운 느낌을 동반해서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화가 일어날 때는 그 자체가 괴로움이에요. 본인도 일단 괴롭잖아요. 화날 때 내마음도 답답해지고, 속에서 불이 일어나고 이런 것들이 자기 스스로가 괴로움을 느끼는 거죠. 그래서 이거는 이런 형태의 고를 고고라고 그럽니다. 이 자체가 고라 이거죠. 그 일어나는 그 자체가 고고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괴로움은 바로 이 고고를 이야기 하는 거죠. 괴로움 그 자체를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괴로운 느낌만 있는 게 아니라 또 행복할 때도 있잖아요. 그죠?
그런데 이 행복한 느낌은, 여러분들이 예를 들면, 아까 가족들이 아주 화목하게 사는 것, 또 술을 마시면서 오는 즐거움도 있을 수 있고, 노래를 부르면서 오는 즐거움, 영화를 보면서 오는 즐거움, 이런 여러 가지 감각적인 쾌락을 통해서 오는 즐거움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즐거움들은 그것을 누리는 그 순간은 즐거움인데, 이것은 그 느낌이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현상이기 때문에, 조건 지어진 현상,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일어났다가 머무는게 아니라 사라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일어났다가 사라지면 내가 이걸 막 붙들려고 하는데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엄청난 고통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자식에 대한 애착이 있는데, 이 자식이 큰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면 그로 일어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돈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데, 돈을 가지고 있을 때는 행복이지만, 이 돈이 사라졌을 때, 또 자기가 애착하는 그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거에 비례해서 고통도 커지죠. 그래서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 행복이라고 하는 것도 이 현상에 형성된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 그랬잖아요. 부처님께서. 일단 내가 현재 행복이라는 느낌, 행복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 의해서 사라지게 돼 있기 때문에, 이 자체가 현재는 행복하다 할지라도 이것은 괴로움의 씨앗이라는 거죠. 이 자체가.
그래서 이거는 만약에 그 행복이 무너졌을 때는 우리에게 아주 큰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 그래서 이거는 壞苦괴고라고 그럽니다. (무너질 괴)자를 써서. 그래서 행복한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현재는 행복이라고 느끼지만, 이것이 사라졌을 때 우리 마음에 큰 고통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건 괴고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대하는 것이 행복한 느낌, 그리고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은 형성되었잖아요. 어떤 조건에 의해서 모든 것이 일어난다고 보기 때문에, 조건에 의해서 형성된 것들은 그 형성된 것들이 어떻게 되요? 일단 이 세상이 형성되어서 조건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들은 영원한가요? 영원하지 않죠? 그럼 이것은 사라지게 돼 있잖아요. 그죠?
그러면 형성된 것은 그 자체로 영원하지 않고, 이것이 본질적으로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 있기 때문에, 이 자체를 행복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이것은 형성되었기 때문에 오는 고통이라고 해서 行苦행고라 그럽니다. 형성되었다. 어떤 조건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만들어진 것은 사라지게 돼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런게 기본적인 느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고요. 그러면 돌이켜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여러분들 중에 괴로운 느낌이 좋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없죠? 그죠? 괴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잘 없습니다. 누구나 괴로움이 일어나면 그것으로부터 피하려고 합니다. 도망가려고 하고 피하려고 하는데.
그런데 행복한 느낌이 오는 것은 누구나 행복한 느낌을 원하는 거죠, 행복을 원한다는 것은 이 행복한 느낌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건데. 이 행복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불교에선 이 괴로운 느낌은 항상 성냄과 함께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 성냄이 일어난다는 것은 곧 괴로움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이 자체는 누구나 싫어해요. 화가 일어나면 화를 버리고 싶어 한단 말이에요. 누구나. 그 자체가 괴롭기 때문에. 이 화를 남을 패서라도 이 화를 극복하고 싶어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방법은 바른 방법은 아니죠. 그죠? 그런데 누구나 다 행복한 느낌을 원하는데, 이 행복한 느낌이 일어나는 방식이 첫째는 뭐겠어요? 제일 익숙한 거, 여러분들이 평소에 많이 하는게 바로 감각적 욕망입니다. 행복이 일어나는 형태가.
그러니까 여러분들 남편이 집에 들어올 때, 갑자기 명품 백을 하나 사다주면 행복한 느낌이 무럭무럭 자라나죠? 그죠? 그런 것은 어떤 대상을 통해서 일어나는 감각적 욕망에 해당, 감각적 욕망을 통한 행복입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으면 입이 쭉~ 미소가 아주 귀 끝까지 걸리게 되겠죠. 그런 거라든가, 그리고 영화를 보는 것, 우리가 사랑하는 이성과 만나서 데이트를 하고. 이런 것도 다 감각적 욕망의 범주에 들어가는데, 그런데 불교에서 바라보는 건. 이것도 이 자체가 행복이 아닌 것은 아니에요. 그 순간은 행복이라 이거죠. 그런데 문제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여기에 대해서 집착하는게 문제거든요. 감각적 욕망이라는 것은 집착이 항상 동반이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런 행복도 단순히 그냥 어떤 조건에서 왔다가 가는 거라고 이해를 하면은 이것이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에게 고통을 주진 않아요.
그런데 행복이 왔을 때, 이것을 꼭 붙들고, 이것이 절대 사라지면 안된다고 붙들고 있으려고 하면, 붙든다고 안사라지면 문제가 해결이 되는데, 그런데 붙든다고 해도 이 법은 속성상 형성된 것은 사라지게 돼 있습니다. 사라지면 그로부터 오는 고통이 크게 되겠죠. 그죠? 그래서 감각적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진짜 행복이 아니라고 그랬어요. 이것은 행복은 행복이지만 순간적으로는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데, 이것이 집착과 항상 함께하기 때문에, 또는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로인해서 오는 여러 가지, 이것이 사라지면 엄청난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 이거죠.
그래서 이 감각적 욕망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행복이라고 할 수는 없고, 잠깐 행복하고 오래 괴롭다고 그랬거든요. 부처님께서. 감각적 욕망이라는 것은. 그래서 이것은 이런 식의 행복을 추구하면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이거는 우리가 추구해서 진정한 행복을 주는 거라면 우리가 추구를 해야 되는데. 사실은 이 감각적 욕망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건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여러분을 잠시 취하게 만드는 거지, 이것이 진정으로 여러분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면 부처님께서. 그러면 이 감각적 욕망을 통해서 얻는 행복 외에도 행복이 없다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데 난감하겠죠. 그죠?
그렇지만 부처님께서는 이 감각적 욕망을 벗어나므로서 오는 행복이 있다 그랬거든요. 이거는 전혀 다른 어떤 형태, 오히려 감각적 욕망을 버리면 우리가 뭐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날 거 같고, 이걸 버리고 나면 내가 못살거 같고 이런데. 막상 이 감각적 욕망을 버리면 그로부터 오는 아주 고요하고 아주 평화로운 행복이 있다는 거에요. 이거는 감각적 욕망은 우리마음을 들뜨게 하고, 항상 불안하게 하는데. 이 감각적 욕망을 벗어나므로서 오는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고요하게 해주고, 평화롭게 하는 그런 형태의 행복이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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