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라는 게 뭐냐?
결국 우리는 자기가 이렇게 몇십 년을 살고 죽는 상대적인 생명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거는 여러분이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
실제로는 여러분은 영원한 우주의 생명이에요.
전기에 생사가 없어요.
불에도 생사 없고, 물에도 생사가 없듯이
여러분의 생명은 우주에 생사가 없는
기본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근데 그걸 지금은 믿지 못하죠.
그건 자기가 깨달아서 체험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스스로 알게 돼요.
“아, 이게 영원한 거구나”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게 뭐냐 하면
태초에 영원한 절대적 생명이
나라고 하는 상대적 생명 현상 속에서
눈을 뜨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상대적이고 유한한 이 개체
아무개라는 현상이
그 절대적인 생명 안에서
완전히 거듭나는 거죠.
이게 기독교나 불교나
사실 똑같이 추구하는 건데
사람들이 말과 생각에 빠져서
서로 다르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깨달은 사람은
우리는 보통 “저 사람은 깨달았으니까 항상 깨어 있겠다”
이렇게 착각을 하실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그 사람이 깨어 있다라는 건 여러분의 분별이고
실제 속 상태는 어떠냐 하면
이 세계, 본래 세계 자체가 원래 깨어 있는 거예요.
원래 깨어 있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냥 사는 거예요.
원래 다 깨어 있는데 뭘.
내가, 무엇에 대해서, 어떻게 깨어 있겠다,
이런 게 다 사라지는 거예요.
전체 세계가 그냥 깨어 있어요.
여러분들 다 깨어 있어요.
내 눈에는 다 깨어 있는데
혼자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참 답답할 노릇이지.
지가 깨어 있는데 아니라고 하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그럼 그냥 그대로 사세요”
이 수밖에 없죠.
그럼 깨어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문제가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중생을 구제해야 되는 거죠.
깨어나려면 중생 구제를 해야 된다.
이게 중생이니까, 그렇죠?
그런데 제가 여기서 하나 드리고 싶은 말씀이 뭐냐 하면
여러분들이 여태까지 살면서
이 세상에 살아오시면서
변하지 않은 게 있었냐? 라는 걸 한번 묻고 싶어요.
변하지 않은 게 있습니까?
진리라면 변하지 않아야 될 거 아니에요
진리가 막 변하면 그건 진리가 아니지.
근데 변하지 않은 진리가, 변하지 않은 게 있냐고요.
그러면 그걸 진리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안다’ 하는 분 한번 손 들어보세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거예요.
여러분의 몸이나
여러분의 만나는 사람들이나
내 몸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
그리고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전부 다 어떻게 됐어요?
변했어요.
하나도 머물러 있지 않아요.
모든 게 변해가는데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어요.
적어도 우리 일생동안.
그게 뭐냐 하면
이렇게 보고, 이렇게 듣고, 이렇게 느낀다는 거예요.
사고로 장님이 돼도
자기가 안 보인다는 것을 보고 있어요.
여러분 눈 감아보세요.
눈 감으면
자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있어요.
안 보이는 게 아니에요.
안 보인다는 것을 보고 있는 거예요.
귀먹어리가 돼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듣고 있어요.
그거를 더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이거 하나가 살아있는 거예요.
그거를 다른 말로 말하면
생명, 법신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뭐 에너지 이런 거는
그다음에 부수적인 그거에 포함된 일부분이고.
근데 이 생명에는 반드시 의식이 수반돼요.
의식 없는 생명이라는 건 없어요. 그죠?
그런데 현대과학은 아직 의식이 뭔지를 규명을 못해요.
그냥 불가사의한 존재가 있는 거예요.
근데 어쨌든 이렇게 변하지 않는 뭔가가 우리한테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새벽별을 보고
이거를 깨닫는 석가모니도 나오고
그리고 광야에서 40일간 헤매다가
뭔가 하나님을 만나고 와서
“나를 보는 자를, 하나님을 봤다.
내 안에 하나님 계시고 하나님 안에 내가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예수도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그런 체험을 다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생각으로 자꾸 그걸 분별하기 때문에
“그런 걸 어떻게 감히 나 따위가 할 수 있나”
이런 분별 망상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런 분별 망상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가장 첫 번째 봐야 되는 게 뭐냐 하면
모든 것이
우리가 살아온 우리의 삶 속에 모든 것들이
다 [정보]라는 사실을 봐야 돼요.
모든 게 정보입니다.
이게 내 몸이라는 것도 정보예요.
생각 정보, 감각 정보
‘네가 내 친구다’라는 것도 정보예요.
‘아무개가 예쁘다’, ‘아무개는 밉다’라는 것도 정보예요.
‘내 몸이 지금 상태가 어떻다’라는 것도 정보입니다.
‘하늘은 파랗고 땅은 꺼멓다’도 정보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지금 정보 속에서
감각 정보, 생각 정보, 감정 정보 속에서 갇혀 사는 거예요.
그래서 매트릭스 안에 있는
사실은 깨어나지 못한 식물인간들이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삶의 진면목을 모르니까.
그러니까 모든 게 정보라는 사실에 눈떠야 돼요.
이게 중생 구제하는 첫 번째 핵심 길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모든 정보는 저장될 수 있어요.
그러나 대부분 내가 그거를 자꾸 리마인드 안 하면 사라집니다.
기억 속에 사라져요.
여러분이 어렸을 때
잘 보세요.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이 실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이 만약 죽었다
5년 10년 지나면 그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나 있어요.
정보로서 돌아가신 아버지 엄마
정보로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예요.
심지어 아침마다 여러분이 거울을 보시면
자기 얼굴
그것도 정보예요.
그게 자기라고 생각하죠.
정보를 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진짜 자기는 뭐냐?
[그 얼굴을 보는 그것]이에요.
왜?
그건 아직 계속 살아있잖아.
30년 전에는 새파란 얼굴을 보고 나라고 했고
지금은 쭈글쭈글해진 얼굴을 보고 나라고 하고 있는 거예요.
뭐가 난데?
[보고 있는 자가 나]인데
보이는 대상을 가지고 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모든 것이 정보인데
정보 속에서 정보를 자꾸 움켜잡고
헛짓을 하고 있는 이거를 [중생]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영원히 가질 수 없는
허깨비 같은 정보를
실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의지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돈]을 한번 봅시다.
돈이 사실 숫자에 불과하잖아.
여러분 통장에 봐. 거기에 얼마 있다
투자에 불과하잖아.
매일같이 카드 써봐.
돈이 팍팍 나가요. 그렇죠
숫자가 줄어들고 있어.
월급이 들어오면 숫자가 채워져.
그거 정보 아니에요?
이거 우리 다 같이 약속한
사회적 어떤 유통 수단으로서의 정보일 뿐이야.
우리는 이렇게 정보 속에서 살고 있는데
지금부터 서로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내가 보는 정보라고 생각을 해보세요.
심지어 내 가족도 내가 보는 그 사람이야.
/나는 그 사람 속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냥 내가 보는 너야/
안 그래요?
다 정보인 거예요.
이거에 깨어나야 돼요.
이게 바로 자기 분별에서 깨나는 거예요.
이게 중생 구제예요.
중생 구제가 별개 아니야.
그럼 정보의 본질이 뭐냐?
여러분, 정보의 본질이 뭐예요?
컴퓨터 안에 수많은
여기 코딩할 줄 아시는 분들은 알 거야.
수많은 코딩을 해서 어떤 프로그램을 짜고
무슨 이거 파란 색깔로 할까요? 빨간 색깔로 할까요? 살색으로 합시다.
뭐 이렇게 해서 색깔 채워놓고 하는 이 모든 것이
정보를 활용하는 건데
그 바탕에 뭐가 있냐?
[전기]가 있죠.
전기 가지고 정보화 활동을 하잖아요.
우리 컴퓨터 안에서는
모든 정보화 활동은 전기로 하는 거예요. 그죠?
전기 신호 가지고
전기로 뭐를 이렇게 꾸미고 이렇게 정보를 조작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머릿속에서 마음속에 수많은 정보를 돌리고
지금도 예를 들어 눈 뜬 채로
오늘 아침에 내가 먹은 거를 이미지를 한번 눈앞에 꺼내봐요.
올라오죠.
현실하고 겹쳐서 보이지만
일단 흐릿하게 올라오죠.
이거 전기로 했나?
이게 바로 생명이 의식 활동을 해서 올라온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바로 생체전기예요.
생명전기.
그걸 생명력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지만
어쨌든 이것도 일종의 생명이 가진 생체전기야
기라고 하든
어쨌든 말을 자꾸 붙이지 마세요.
그러면 말에 떨어집니다.
/말은 이 생각과 저 생각 사이의 틈을 표현할 수가 없어요.
자꾸 그래서 구름과 구름 사이로 뛰어다니지
하늘을 못 봐요.
말에 떨어지면./
모든 정보 따라다니지 말고
정보의 본질을 보면
그게 바로 생명 활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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