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거를 들었다 내렸어요.
제가 뭐 했죠?
‘손을 들었다 놨다.’
이게 바로 [정보]를 [읽고, 답]하시는 방식이에요.
우리 사회에 제가 이랬는데 춤췄다고 하면
저분이 이상한 분인데
저분은 정상적으로 스토리 내용을
손을 들었다 놨다 하고
이게 우리 사회에 보편화된 정보 처리 방식이에요.
그렇죠?
그런데 이렇게 우리 [깨달음 공부]를 하는 사람은
손을 들었다 놨다
그러면 그게 [자기 분별에 갇힌]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정보 이전]을 보기 시작해야 되기 때문에.
정보를 분별 처리하는 거는
정보로 우리 사회의 개념과 단어로 해석하는 것을
[분별]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그걸 끝내야 돼요.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 [본질]을 봐야 된다고요.
그럼 이거의 본질이 뭐냐?
여러분이 여기서 [생명]을 봐야 되는 거예요.
[생명의 움직임]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성령]을 봐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봐야 된다고,
그러면 마주 앉은 사람이
예를 들어
와이프가 나한테 잔소리를 하고 바가지를 긁고 있다.
여기서 중생은
“이 웬수 같은 마누라 또 오늘도 바가지 긁는구나”
하고 [분별]을 하면, 정보 처리를 하면 어떻게 되느냐?
중생이 되는 거예요.
근데 부처 내지 깨어난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살아있는 [하나님의 활동]을 보는 거예요.
그러면 마누라가 무슨 말을 쏟아내는
그 말에 떨어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되죠?
자기가 먼저 가서 안아주고, 등을 두들겨주고,
“내가 잘못했소, 듣고 보니 과연 맞는 말이네”
이걸 먼저 할 수 있게 돼요.
왜냐하면 내가 니 말에 떨어져 가지고 감정적으로
“너 너는 잘났어? 어쩌고
너는 어제 어떻게 했는데”
뭐 이런 거에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이 모든 정보가 일어나는 [근원]을 보고 있는 거예요.
[생명]을 보고 있다고요?
이거를 여러분이 [생각]으로 지금 [이해]했잖아
근데 깨어난다는 것은 생각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고
나는 여러분을 이렇게 꼭꼭 닫힌 얼음구덩이에서 끌어내기 위해서
일단은 지금 얼음을 부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거고
사실은 이게 [수증기]가 돼야 돼요.
수증기가 되면 어떻게 되냐면
이 자체가 자기한테 [체험]이 돼서
매 순간이 [경이로운 생명의 움직임]이 돼야 돼요.
그렇게 모든 분별이 [뚝 끊어지는 경지]까지 되기가
이게 그렇게 간단히 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거를 체험하고 나서도 [보림]을 해라.
자꾸 해서 자기 분별력을 [약화]시켜야 돼요.
그러니까 깨달음 여러분이 이제 [십우도]라는 그림도 있지만
결국 그걸 간단히 말하면
분별 속에 푹 빠져 있다가 완전히 이 [보름달을 체험]해야 돼요.
이 모든 분별 정보들의 본질을 보기 시작해서
정견을 통해서 자꾸 보다 보면 [구름]들이 떨어져 나가잖아요.
그래갖고 완전히 이 [보름달]을 뜨게 해야 돼.
그다음에 거기서 끝나면 안 돼.
그럼 이건 공에 떨어진 거야.
그래서 이 두 가지가 [같이] 떠 있는 게
지금 이 하늘이잖아.
구름도 있고 달도 떠 있고, 그죠?
이게 그대로 다 있는 이 것으로 돌아오는데
과거에 “하늘에 구름 떠 있네”
이렇게 분별에 떨어진 세상이 더 이상 아닌 거예요.
[달]도 아름답지만, [구름]도 아름다운 거야.
그래서 영어 속담에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라는 속담이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모든 먹구름에도 그 끄트머리에는 아름답게 빛나는 은색, 그 경계가 있다.”
햇빛이나 달래에 비치면
그 구름의 그 경계가 아주, 황혼 때도 그렇고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잖아요.
마치 그와 같아요.
/그래서 삶의 모든 것이 너무나 아름답고 경이롭고 찬란해지는 거야./
그게 [천국]이에요. 그게 [극락]이고.
[살아서] 그렇게 돼야
[죽어서]도 그런 차원에 있을 수 있지.
살아서 번뇌망상 칠 것도 없고 미운 놈 다 밉고
예쁜 놈만 예쁘고
이러면서 기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천국 가겠어요?
그거는 사이클이 안 맞아서 안 돼요.
서울대 갈 실력이 안 되는 사람은
어차피 못 들어가요.
그래서 예수님도
날마다 나보고 주여지야 한다고 천국 가는 게 아니고
니가 진짜 천국 갈 만한 인간이 돼야 천국 간다라는 말을
성경에도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중생을 구제하는 법이라는 게
결국 [나라는 중생을 구제]하는 법이
결국 내가 빠져 있는 정보의 세계
[정보를 계속 분]별하고 있잖아요.
이 세계에서 이 분별을 내가 놔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더 본질적인 걸 보는 거라고요.
[분별을 놓으면] 돼요.
내가 뭘 또 더 보려고 그럴 필요는 없어요.
지금 내가 말한 건 다 비유기 때문에
분별을 놓으면 저절로 [진리는 드러나게] 돼 있어요.
근데 이 분별은 무엇에 의지해서 일어나냐면
이 모든 정보는 [육식정보]에 의해서 일어나요.
[안이비설신의] 그죠
보이는 것, 들리는 것, 그다음에 냄새, 그다음에 맛보는 것,
그다음에 피부 느껴지는 것, 그다음에 생각하는 것에 의해서
모든 정보들은 일어나고 있어요.
6가지로
그러니까 이 [6가지의 본질]이 여러분이 뭔지를 보시면
이게 다 이거하고 아무 차이가 없다니까
지금 이게 여러분이 벌써 보고, 듣고, 느끼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자기가 사는 방식이
얼마나 [정보에 대한 분별] 속에 깊이 빠져 있었는가를 [자각]하고
거기서 [깨어나기 시작]해야 돼요.
이것을 [정견]이라고 합니다.
이게 [중생제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부처님이 그 외도하고 부처하고 다른 점은
딱 하나
/육신통 중에 누진통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있다/라는 얘기를 하셨는데
/누진통이 뭐냐 하면
결국 자기 몸과 마음이 일으킨 분별 정보에 끌려가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진이 되지.
다른 건 앞에 거는, 오신통은 다 되더라도
결국 그거에 끌려가면
그게 [사도]에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반야심경이든 금강경이든
[오온개공]을 자꾸 얘기하잖아요.
오온개공, 게 뭐냐 하면
[오온]이 바로 [정보]거든요.
오온이 뭐냐 하면 [색수상행식]이거든
색수상형식이 뭐냐?
색은 몸, 수는 느낌, 상은 생각
그다음에 행은 의지, 의도, 생각으로 만드는 어떤 그 스토리
그다음에 식은 분별
자기가 분별하는 거예요.
좋다 나쁘다, 이거다 저거다.
그러니까 결국 그것이 오온이거든.
그러니까 오온을 가지고 그 힘을 자꾸
그걸 따라가지 않으면, 그것이 본래 비어 있음을 보면
여러분이 본래 [오온이 비어 있다는 거]는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의 증명이에요.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어요. 살아오시면서
그 가짓수, 몇 번 생각했는지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얼마나 많이 느꼈어요?
얼마나 많이 봤어요?
얼마나 많이 냄새 맡았어요?
근데 여태까지 남아있는 거 있냐고
없죠.
그러니까 다 [공]하잖아.
헛깨비처럼 마치 안개처럼 사라지잖아요.
근데 그걸 왜 자꾸 실재한다고 착각하느냐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걸 공하다고 여러분들이 그 힘을 약화시키면
‘공하다라는 건 없다’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착각하시면 안 돼.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공할 뿐]이다/ 이거예요.
허깨비처럼 있잖아.
/그래서 그걸 공하다고 보면은
자꾸 그렇게 해나가다 보면
이 본래의 바탕자리에 있는 자기의 생명, 이 자리가
점점 환하게 드러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자리 하나가 분명해지는 때가 와요.
제가 이걸 들었어요.
손을 흔들었어요.
지금 가만히 손을 내렸어요.
여러분은 이거 들었을 때하고, 이거하고, 내렸을 때가
다르다고 생각하세요? 같다고 생각하세요?
응? 다르다고 생각해요?
같다고 생각해요?
아까 정반합을 말했는데 아직도 또 빠져 있어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에요./
자꾸 자기가 이건가 저건가 하니까
분별 망상에 빠져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같다 하면 같게 되고
다르다 하면 다르게 되는 것뿐이에요.
여러분이 그 [분별의 주체자]잖아.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래서 불교는 무유정법, 정해진 진리가 없다라는 거예요.
근데 자꾸 무슨 진리를 찾느라고
지금 뭐 어딘가에 있는 듯해
[자기가 진리]예요.
그런데 어디 따로 있는지 알고 자꾸 착각하고 있어.
내가 여러분에게 다시 말씀드려보면
지금 여기 여러분이 아침에 눈 뜨니까
지금 이런 게 있어요.
이런 게 있다라는 건
지금 이렇게 허공도 느껴지고, 이렇게 사람들도 있고,
세상에 쫙 나타나는 이게 있다고 그렇죠
아침에 눈 뜨니까.
지금도 있잖아.
여기까지 올 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잖아. 그렇죠
이 안에서 이런 짓이 일어났고
이런 짓이 일어났고
이런 것이 사라졌어요.
그래도 이건 그대로 있잖아.
근데 여러분은
이거에 떨어지고, 이거에 떨어지기 때문에
이게 있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그러는 거예요.
이게 있잖아.
모든 게 일어나는 이게 있잖아.
지금 손 내려도 있네.
그렇죠
이게 뭐예요?
지금 제가 말한 이게 있다는 이게 뭐예요?
감이 오십니까?
예? 본래의 나라고요?
그거 뭐 공부 다 되셔서 오셨네요.
여기 오실 필요도 없는.
머리로만 알고 체험이 안 됐다고요?
으흠, 그럼 잘 오셨어요.
이제 체험 하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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