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있는 그대로’라고 하는 앞에, 주어가 빠졌다는 거예요.
뭐냐 하면
‘진리가 있는 그대로’지
‘내가 보고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내가 보니까 ‘있는 그대로 이렇다’
그게 아니고요.
진리가 있는 그대로를
내가 진리가 돼야 보이지
내가 중생의 눈을 가지고 있는데 진리가 있는 그대로 보이겠어요?
안 보여요.
그래서 내가 진리를 대상으로 확인하는 게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는.
그렇게 착각들을 많이 하는데
여기 이게 진리라고 치고
내가 이걸 대상으로 확인하는 게 아니고요.
/나를 포함한 이 세상 전부가
진리 안에 일어난 현상이라는 걸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라는 것도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지금 여러분이 댁에서 TV 연속곡을 보거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실 때
자기를 다 잊어버리잖아요.
그리고 오로지 마음이 화면에 꽂혀 있잖아요.
영화를 볼 때도 그렇고, 재밌는 드라마 볼 때
여러분이 자기를 자각하고 있어요?
다 저기 들어가 있지.
이렇게 나라고 하는 거는 내가 인식할 때만 있지
내가 인식하지 않을 때 나는 그냥 의식이에요. 의식.
안 그렇습니까?
의식이고 좀 더 치밀하게 보면
앎 그 자체예요.
그래서 이 진리라고 하는 게
내가 맨날 동그라미를 그리는데
여러분이 아침이 되면
이렇게 의식이 딱 돌아와서
지금도 그 의식 돌아온 그게
여기까지 와서 지금 여기도 있잖아요.
그걸 동그라미라고 하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잘 봐요.
이거의 특성이 봄+ 앎+ 나머지 어떤 그 뭔지 모르는 것
이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걸 법신이라고 하는데
이게 법신, 내지 진리인데
이게 이제 다른 말로 말하면 ‘생명’ 뭐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그럼 이 생명이라는 말을
자기가 알고 이해했다고 그래서 이거 알 수 있어요?
안 되죠?
그러니까 생각으로 아무리 알아봐야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이 봄이나 앎도
자기가 말로, 생각으로만 이해하고
이걸 다 알았다고 해서 그게 아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들이 이거 보고 있죠?
지금 이걸 자기가 체험해야 돼.
이거 자기가 보고 있죠?
제가 손 드는 걸, 그죠?
그리고 여기에 생각이 있어요? 그냥 보고 아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생각 이전자리]야
이거 보고 그냥 알죠?
근데 여기에 보면 봄과 앎이
그대로 둘이 반반씩 섞여 있어요.
동전의 앞뒷면처럼. 그죠?
근데 이게 뭔지는 몰라
이걸 보고 아는 놈의 실체가 없어.
뭔가 있는데
이게 3차원적 존재가 아니거든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3차원을 있게 하는 존재지
3차원 속에 있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3차원 속에서 아무리 찾아봐야 없지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2차원 종이가 있으려면
3차원 이 공간이 있어야 돼요. 그죠?
2차원 안에서 아무리 3차원 찾아봐야 있겠어요?
없죠.
지금 이 3차원이 있으려면
이거를 있게 하는 4차원이 있어야 돼.
근데 그래서 모르는 거예요.
이 안에서, 종이 안에서
3차원을 찾으려면 모를 수밖에 없는 거야.
왜?
없으니까.
근데 잘 보면 이거 자체가 이미 3차원이거든.
이거 두께도 있잖아.
이쪽 면을 볼 때만 2차원이지
이게 전체로 보면 3차원 아니에요, 그죠?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3차원이다” 이렇게 착각하고 있지만
이거 자체가 이미 4차원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이 3차원 공간이 변하는 거예요, 자꾸.
4차원 안에서.
머무르지 않는 거예요.
비유를 이렇게 설명을 한 거예요.
“그럼 4차원이 또 어딨나?” 하고
무슨 현미경 들여다보고 이러지 말아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봄이나 앎이
여기, 요 글씨 이렇게 보셨죠?
또 이쪽 끝에 가면은 이런 거 있죠?
여러분의 봄이나 앎이
어떤 위치가 있어요? 크기가 있어요?
그냥 무한이야, 그죠?
그리고 더 재미난 게
여러분이 예컨대 거기에 집중하잖아.
예를 들어
저기에 정말 내가 좋아하거나 무슨 탐나는 물건이
저 한 100미터 밖에 있다고 합시다.
그럼, 여러분의 마음이 온통 거기 가 있고, 뺏기잖아요.
우리도 길 가다 보면 유명한 영화배우 지나간다면 다 넋을 잃고 바라보잖아.
그때 어디 갔어?
자기 의식이 거기 가 있어. 그죠?
이게 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양자도약이에요.
의식이 순간적으로 도약해서, 그쪽에 가 있는 거야.
그러니까 마음이 굉장히 초과학적 존재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앎과 봄에는 크기가 없어요.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거는 부증불감, 불구부정
깨끗하고 더러운 것도 아니죠. 그렇죠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도 아니죠.
이게 늙어요. 아니면 뭐 그런 것도 아니죠.
그러니까 진리지.
근데 이게 놀라운 것이
이것이 CCTV 기능이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자기도 모르게
어느 날 보면 무슨 갑자기 그 비슷한 상황이 되면
옛날에 겪었던 어떤 사건이 주마등처럼 쫙 펼쳐집니다.
자기가 튼 것도 아닌데, 그죠?
그 CCTV 기능은 어디 있다 나온 거예요?
여기서 나온 거예요.
이 앎에서.
다 알고 있어요.
여러분이 이 세상 살면서 기록된 모든 거 다 알고 있어.
이게 [양심의 눈]이기도 해요.
여러분 나쁜 짓 하려고 그러면
얘가 다 보고 있어.
그래서 우리 마스터 과정 공부하시는 분들, 여기 몇 분 와 계신데
어떤 분은 이 자리가 ‘확연하다, 알겠다’ 하시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아직도 모르겠다’는 분도 계세요.
그런데 두 분의 공통점이 뭐냐?
똑같은 게
‘나는 모르겠다’라는 거를 아는 거야. 그분은,
모르겠다는 분은
자기가 모르겠다는 거를
그 생각을 자기가 보고 알고 있어.
알겠다는 분은
자기가 알겠다는 생각을 보고 알고 있어.
알겠다는 분은 자기 체험을 보고 아는 거야.
모르겠다는 분도
자기가 알지 못한다는 체험을 보고 아는 거야.
둘이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자기가 만든 생각과 느낌의 내용물에 떨어져서
난 모르겠다고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떨어지지 말라고 했잖아요, 내용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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