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현대선90] 정견의 꽃, 깨어남 / 피올라 현대선 14강 "지금여기 이것" 2회

Buddhastudy 2025. 4. 15. 20:02

 

깨어남의 본질과 방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깨어남의 본질

    • 깨어남은 생명 활동 그 자체를 보는 것입니다 [00:30].
    • 세상의 경험과 기억이라는 지혜를 가지고 원래의 생명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02:47].
    • 우주 자체가 하나의 생명이며, 기독교에서도 생명을 진리라고 합니다 [03:30].
  • 깨어나기 위한 방법: 정견
    • 정견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정화하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04:22].
      • 누가: 마음 공부는 '나'가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이전에 있는 살아있는 '이것'이 하는 것입니다 [04:42], [09:48].
      • 무엇을: 대상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봅니다. 자기 자신은 대상화할 수 없습니다 [09:59].
      • 어떻게: 생각 없이 그저 보면 됩니다 [12:22].
    • 자기 슬픔, 외로움, 생각을 보는 앎이 있으며, 이 앎은 감정을 대상화하여 감정으로부터 분리됩니다 [07:04].
    • 대상화되는 것은 진짜 '나'가 아니며, 대상화되지 않는 것이 진짜 '나'입니다 [07:14].
    • 생각을 자기 동일시하는 것이 중생이며, 정견을 통해 생각을 보되 생각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07:35].
    • '보고 아는 이것'이 대상을 볼 때 대상이 아닌 자리가 명백해지며, 이것이 정견의 목적이자 깨어남의 길입니다 [12:48].
  • 결론
    • 정견을 통해 '오직 모를 뿐'인 이것의 실체가 되고, 이것과 하나 됨으로써 깨어날 수 있습니다 [11:40].
    • 이것이 확고하고 분명해져 흔들림이 없을 때 깨달았다고 합니다 [11:52].

 

 

--

우리가 만약에 북극에 갔어.

북극에 가니까 온통 얼음 천지, 눈 천지, 물 천지야.

북극에 가서 만약에 HO를 찾겠다고 하면은 HO 아닌 게 있나요?

없죠.

 

북극에서 HO를 찾는 사람은, 뭘 보면 되냐면

다 물이구나

이것만 보면 돼.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번 일생에서도 여러분이 깨어난다는 것은

, 이거 다 생명 활동이구나.”

이것만 보면 되는 거야.

깨어남의 이치는 아주 간단해요.

이걸 정견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보는 게 아니고 뭘 보냐면

자꾸 그 생명의식 활동이 만든 정보의 내용물이 떨어지는 거예요.

-저 웬수 같은 놈

-이거 사기 아니야? 속임수다. 이거는 배신이다.

-이게 되겠냐? 안 되겠냐?

이런 걸 자꾸 따지고 있는데

따지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따질 거 따져야지.

 

근데 문제는 그게 남기는 후유증에 시달리는 거예요.

그냥 그렇게 판단하고 행위하고 딱 끝나고 잊어버리면 끝나는데

못 잊어.

우째 네가 나한테 이런 짓을

내지는 기타 등등, 남는 게 얼마나 많아.

그러니까 이런 게 쌓이면 어떻게 되죠?

그게 헬조선이지.

 

여러분이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

왜 이렇게 좌파 우파 이렇게

전 세계에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싸우잖아요.

아주 진짜 갈등의 끝판왕 같아.

상대방을 다 그냥 어떻게 해버려야 되는

세상에 상생조화협력은 어디 가고, 어쩌다 이 나라가 이렇게 됐냐?

 

왜 그랬을까요?

다 이것 때문이에요.

자기 마음공부를 안 하기 때문이야.

 

다 자기 기억과 경험의 내용물에 오염돼서 그러는 거예요, 다들.

실상을 못 보고 허상 속에서 헤매고 있는 거예요.

 

어린애들이 왜 중학교 2학년 되면 무서운 중2가 돼요?

다 마찬가지야 걔들도

우리나라 교육도 그렇고 어른들도 그렇고 전부 다

이런 정신병자들이 돼 가는 이유가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 거예요.

마음공부를 안 하기 때문이지.

 

제가 이렇게 서두를 이렇게 길게 얘기한 것은

깨어남의 본질은

우리의 제1원인은

원래의 생명 그 자체로, 그것이 원래 우리였기 때문에 그것을 회복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냥 회복하는 게 아니라

그럼 다시 뭐 갓난아기처럼 되는 게 아니죠.

그게 아니라

세상의 경험과 기억이라는 지혜를 가지고 회복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생명]은 무시무종의 창조의 원천이에요.

여러분은 생명이라는 거를

현대과학은 굉장히 좁게 한정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단백질의 결합체인 몸을 가지고

생명의 먹이 활동을 통해서

자기 개체의 생명을 유지 보존하는 걸 생명이라고 이렇게 부르거든요.

 

그런데 그거는 현대과학이 그렇게 분류한 하나의 관점에 불과한 거고

사실은 우리가 더 큰 관점으로 보면

우주 자체가 하나의 생명이에요.

왜냐하면 살아 움직이고 있잖아.

 

, 그래서 예수도

나는 진리의 길이요, 생명이다뭐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기독교에서도

결국 생명을 진리라고 하고 있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사실은.

 

그러면 우리가 이런 깨어남의 본질이 뭔지는 아셨죠?

그렇다면 우리가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정견해야 된다고 하는 걸 배웠잖아요.

 

그러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정견하느냐?

이제 반드시 여러분들은 그걸 물어보죠.

왜냐하면 우리는 또 6하원칙에 의해서 또 교육을 받았으니까.

누가 무엇을 어떻게.

 

 

--누가

자 그럼 보통 누가 하면은

내가 한다고 생각하죠.

내 공부 내가 하지 누가 해?” 이렇게 되잖아요.

 

근데 이 공부만은 그게 아니에요.

이 마음공부만은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왜냐하면 나라는 게

여러분이 하루 일상속에서 살 때

내가 나라는 생각 안 할 때도 많아요.

그래도 나는 잘 있어.

 

잠잘 때도 잘 있고, 멍때릴 때도 잘 있고,

무슨 넋 놓고 TV보거나 스포츠 중계 볼 때도 잘 있어요.

나라는 생각하는 게 사실 하루에 다 합해도 1시간도 안 돼요.

그럼, 그 나머지 시간은 여러분 뭐야?

살아있는 그냥 뭐가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여기에 이제 중요한 게 있어요.

그 살아 있는 뭐가 있는데 그게 뭔지를

여러분들이 구체적으로, 생각에 의지하지 않고

직관을 해서, 통찰해서 이거에 깨어나야 되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이 일단 이 생명의 본질로 더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이미 저절로 생각 없이

그런 생명의 살아있음의 현상이 이미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이렇게 생각 없이도 잘 있잖아.

여러분이 숨 쉬어요? 아니면 알지 못할 힘이 숨을 쉬게 해줘요?

아침 먹은 거 자기가 소화시키는 분 손 들어봐.

저절로 살려지고 있어요.

그 힘이 뭔데, 그 힘이 떠나면 바로 송장 되느냐고.

 

그런데 요 힘이 여러분 안에서 자기를 드러낼 때가 많아요.

근데 여러분이 그걸 캐치를 못하는 거야.

자기 생각에 빠져서.

 

, 예를 들면

여러분이 화가 났을 때

물론 화에 빠져버려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도 있지만

화가 났지만, 화가 났다는 걸 스스로 알 때가 있잖아.

내가 화가 났다는 걸 알면서

그 화에서 벗어 나오는 게 조금 서서히 시간이 걸릴 뿐이지 알고는 있잖아.

 

또 슬플 때 자기가 슬프다는 걸 알아요.

외로울 때 외롭다는 걸 알아요.

 

그러면 외롭다는 걸 아는 그 앎은 외로워?

걔는 안 외롭지

슬프다는 걸 아는 그 앎은 슬퍼?

걔는 안 슬퍼요.

걔가 자기 감정을 대상으로 보고 있는 거야.

 

그러면 여러분은 이걸 알 수 있어.

대상화되는 것은 진짜 내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

대상화되지 않는 것이 진짜 나야.

 

그러면 슬픔, 외로움, 자기 생각, 다 대상화 돼요? 안 돼요?

근데 대상화 되는 걸 자기라고 붙들고 있으니까

그걸 중생이라고 하는 거예요.

자기 생각에 빠져서 그걸 못 벗어나.

대부분의 중생이.

생각을 자기 동일시하는 거야.

그래서 정견하라는 거예요.

 

그럼 누가 정견하냐?

지금 말씀드린 여러분 안에는 자기 슬픔, 외로움, 생각을 보고

이거 생각이지아는 [][]이 있다니까

그 자리가 지금 제 얘기도 들으면서

생각을 거기서 막 굴리면서

이 생각이 맞아 그래

자기 생각을 자기가 또 정리해서

그 생각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뒤에 그 [보고, 아는 놈]이 있어요.

그놈은 슬프지도 않고, 화나지도 않고, 흥분하지도 않아요.

끝까지 그냥 아주 차분하고 냉정하게

마치 피안에서 쳐다보는 거야.

강 건너 불 보듯이 그냥 보고 있어.

다 기록할 뿐이야.

 

여러분이 도둑질을 해도

이것은 도둑질을 하고 있다라는 걸 다 보고 기록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 안 그랬어요?

슬쩍 했지?

그거 다 알고 있잖아.

누가 알고 있어?

자기가 알고 있잖아.

 

저는 어렸을 때 하도 갖고 싶은 게 있어서

한번 슬쩍 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그것 때문에 나중에 너무 괴롭더라고.

그래서 나중에 결국은 그 문방구 가서 그 돈을 줬다니까.

그랬더니 문방구 주인이 이거 왜 주냐?” 그래서

사실은 제가 지난달에...”

, 그랬더니 사장님이 어쨌든

아이 착하다고 하면서 하나 더 주더라고.

 

옛날부터 그런 말이 있는 거예요.

명경대라고 해서

여러분이 죽어서 저승에 가면 영라대왕 앞에서

자기 전생이 거울 앞에 쫙 나타난다.

 

그게요, 거울이 그런 게 있는 게 아니고

여러분 마음이 거울이에요.

자기가 다 하는데.

 

자 그러면 이게 보는 거예요.

누가 본다고?

얘가 보는 거예요.

여러분이 보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라는 건 생각이에요.

근데 이 생각 이전에 있는 이것이 보고 있다고

이 살아있는 것이.

 

 

--무엇을

 

그럼 뭘 보느냐?

대상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걸 봐요.

여러분이 대상화할 수 없는 건 딱 하나밖에 없어.

뭘까?

자기 자신은 대상할 수 없어요.

여러분이 몸이라는 건 대상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내가 아닌 거야.

 

내 마음

내가 화났다, 즐겁다, 기쁘다, 맛있다, 맛없다

생각 마음으로 들리는 온갖 잡생각, 감정, 느낌

이런 것들은 다 대상화할 수 있어요.

근데 이 모든 걸 대상화하는 이거는 대상화할 수 없어.

그래서 오직 모를 뿐이런 소리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진짜 자기라고

대상화할 수 없는 이것.

 

그런데 이 대상화할 수 없는 것이 오직 모를 뿐이다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중생이 식스존을 워낙

그 안에 빠져 있으니까 뭐라고 그러냐면

, 그래. 오직 모를 뿐이지, 그게 정답이야.”

그리고 오직 모를 뿐만 외우고 다녀.

그래서 이게 답이죠?” 하고 그걸 또 꺼내는 거야.

이래서 영원히 못 벗어나는 거예요.

자기 생각 세계에서.

 

자꾸 안다병에 걸려 있는 거야.

나 그거 알지

그래서 알아서 어쩌겠다는 거야.

여러분이 아는 거 여러분이 다 해결했어?

안 되잖아요.

아는 거 가지고 아무 도움이 안 된다니까

깨나 해야지.

 

여러분이 가위 눌릴 때도

이게 꿈이라는 걸 알아요.

그런데 못 깨나잖아. 그러니까 가위 눌리잖아.

아는 거 가지고 안 된다니까.

 

그러니까 여기에서 이걸 깨나는 유일한 방법은 뭐냐 하면

정견을 통해서

오직 모를 뿐이라는 이것의 실체가 되는 거예요.

그게 원래 나였기 때문에

그거 하고 계합을 하는 거야.

하나가 되는 거예요.

 

이걸 [깨어남]이라고 하는 거고

이제 이것이 확고하고 분명해져서 흔들림이 없을 때

그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누가’ ‘무엇을이제 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가 뭐죠?

 

 

--어떻게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어떻게 하는 뭐냐?

그냥 생각 없이 보면 돼요.

보고 아는 이것.

당근명상 통해서 많이 해보셨잖아.

 

지금 시간 관계상 당근 명상을 또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궁금하신 분은 저 선배들한테 물어보세요.

 

그러니까 내 속에 있는, 보고 아는 이것이

대상화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보면

대상이 아닌 이 자리가 스스로 명백해진다.

이게 정견의 목적이에요.

그리고 깨어남의 길입니다.

아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