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남의 본질과 방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깨어남의 본질
- 깨어나기 위한 방법: 정견
- 결론
--
우리가 만약에 북극에 갔어.
북극에 가니까 온통 얼음 천지, 눈 천지, 물 천지야.
북극에 가서 만약에 H₂O를 찾겠다고 하면은 H₂O 아닌 게 있나요?
없죠.
북극에서 H₂O를 찾는 사람은, 뭘 보면 되냐면
“다 물이구나”
이것만 보면 돼.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번 일생에서도 여러분이 깨어난다는 것은
“아, 이거 다 생명 활동이구나.”
이것만 보면 되는 거야.
깨어남의 이치는 아주 간단해요.
이걸 정견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보는 게 아니고 뭘 보냐면
자꾸 그 생명의식 활동이 만든 정보의 내용물이 떨어지는 거예요.
-저 웬수 같은 놈
-이거 사기 아니야? 속임수다. 이거는 배신이다.
-이게 되겠냐? 안 되겠냐?
이런 걸 자꾸 따지고 있는데
따지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따질 거 따져야지.
근데 문제는 그게 남기는 후유증에 시달리는 거예요.
그냥 그렇게 판단하고 행위하고 딱 끝나고 잊어버리면 끝나는데
못 잊어.
“우째 네가 나한테 이런 짓을”
내지는 기타 등등, 남는 게 얼마나 많아.
그러니까 이런 게 쌓이면 어떻게 되죠?
그게 헬조선이지.
여러분이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
왜 이렇게 좌파 우파 이렇게
전 세계에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싸우잖아요.
아주 진짜 갈등의 끝판왕 같아.
상대방을 다 그냥 어떻게 해버려야 되는
세상에 상생조화협력은 어디 가고, 어쩌다 이 나라가 이렇게 됐냐?
왜 그랬을까요?
다 이것 때문이에요.
자기 마음공부를 안 하기 때문이야.
다 자기 기억과 경험의 내용물에 오염돼서 그러는 거예요, 다들.
실상을 못 보고 허상 속에서 헤매고 있는 거예요.
어린애들이 왜 중학교 2학년 되면 무서운 중2가 돼요?
다 마찬가지야 걔들도
우리나라 교육도 그렇고 어른들도 그렇고 전부 다
이런 정신병자들이 돼 가는 이유가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 거예요.
마음공부를 안 하기 때문이지.
제가 이렇게 서두를 이렇게 길게 얘기한 것은
깨어남의 본질은
우리의 제1원인은
원래의 생명 그 자체로, 그것이 원래 우리였기 때문에 그것을 회복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냥 회복하는 게 아니라
그럼 다시 뭐 갓난아기처럼 되는 게 아니죠.
그게 아니라
이 세상의 경험과 기억이라는 지혜를 가지고 회복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이 [생명]은 무시무종의 창조의 원천이에요.
여러분은 생명이라는 거를
현대과학은 굉장히 좁게 한정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단백질의 결합체인 몸을 가지고
생명의 먹이 활동을 통해서
자기 개체의 생명을 유지 보존하는 걸 생명이라고 이렇게 부르거든요.
그런데 그거는 현대과학이 그렇게 분류한 하나의 관점에 불과한 거고
사실은 우리가 더 큰 관점으로 보면
우주 자체가 하나의 생명이에요.
왜냐하면 살아 움직이고 있잖아.
자, 그래서 예수도
“나는 진리의 길이요, 생명이다” 뭐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기독교에서도
결국 생명을 진리라고 하고 있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사실은.
그러면 우리가 이런 깨어남의 본질이 뭔지는 아셨죠?
그렇다면 우리가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정견해야 된다고 하는 걸 배웠잖아요.
그러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정견하느냐?
이제 반드시 여러분들은 그걸 물어보죠.
왜냐하면 우리는 또 6하원칙에 의해서 또 교육을 받았으니까.
누가 무엇을 어떻게.
--누가
자 그럼 보통 누가 하면은
내가 한다고 생각하죠.
“내 공부 내가 하지 누가 해?” 이렇게 되잖아요.
근데 이 공부만은 그게 아니에요.
이 마음공부만은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왜냐하면 나라는 게
여러분이 하루 일상속에서 살 때
내가 나라는 생각 안 할 때도 많아요.
그래도 나는 잘 있어.
잠잘 때도 잘 있고, 멍때릴 때도 잘 있고,
무슨 넋 놓고 TV보거나 스포츠 중계 볼 때도 잘 있어요.
나라는 생각하는 게 사실 하루에 다 합해도 1시간도 안 돼요.
그럼, 그 나머지 시간은 여러분 뭐야?
살아있는 그냥 뭐가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여기에 이제 중요한 게 있어요.
그 살아 있는 뭐가 있는데 그게 뭔지를
여러분들이 구체적으로, 생각에 의지하지 않고
직관을 해서, 통찰해서 이거에 깨어나야 되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이 일단 이 생명의 본질로 더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이미 저절로 생각 없이
그런 생명의 살아있음의 현상이 이미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이렇게 생각 없이도 잘 있잖아.
여러분이 숨 쉬어요? 아니면 알지 못할 힘이 숨을 쉬게 해줘요?
아침 먹은 거 자기가 소화시키는 분 손 들어봐.
저절로 살려지고 있어요.
그 힘이 뭔데, 그 힘이 떠나면 바로 송장 되느냐고.
그런데 요 힘이 여러분 안에서 자기를 드러낼 때가 많아요.
근데 여러분이 그걸 캐치를 못하는 거야.
자기 생각에 빠져서.
자, 예를 들면
여러분이 화가 났을 때
물론 화에 빠져버려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도 있지만
화가 났지만, 화가 났다는 걸 스스로 알 때가 있잖아.
내가 화가 났다는 걸 알면서
그 화에서 벗어 나오는 게 조금 서서히 시간이 걸릴 뿐이지 알고는 있잖아.
또 슬플 때 자기가 슬프다는 걸 알아요.
외로울 때 외롭다는 걸 알아요.
그러면 외롭다는 걸 아는 그 앎은 외로워?
걔는 안 외롭지
슬프다는 걸 아는 그 앎은 슬퍼?
걔는 안 슬퍼요.
걔가 자기 감정을 대상으로 보고 있는 거야.
그러면 여러분은 이걸 알 수 있어.
대상화되는 것은 진짜 내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
대상화되지 않는 것이 진짜 나야.
그러면 슬픔, 외로움, 자기 생각, 다 대상화 돼요? 안 돼요?
근데 대상화 되는 걸 자기라고 붙들고 있으니까
그걸 중생이라고 하는 거예요.
자기 생각에 빠져서 그걸 못 벗어나.
대부분의 중생이.
생각을 자기 동일시하는 거야.
그래서 정견하라는 거예요.
그럼 누가 정견하냐?
지금 말씀드린 여러분 안에는 자기 슬픔, 외로움, 생각을 보고
“이거 생각이지” 아는 [봄]과 [앎]이 있다니까
그 자리가 지금 제 얘기도 들으면서
생각을 거기서 막 굴리면서
“이 생각이 맞아 그래”
자기 생각을 자기가 또 정리해서
그 생각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뒤에 그 [보고, 아는 놈]이 있어요.
그놈은 슬프지도 않고, 화나지도 않고, 흥분하지도 않아요.
끝까지 그냥 아주 차분하고 냉정하게
마치 피안에서 쳐다보는 거야.
강 건너 불 보듯이 그냥 보고 있어.
다 기록할 뿐이야.
여러분이 도둑질을 해도
“이것은 도둑질을 하고 있다”라는 걸 다 보고 기록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 안 그랬어요?
슬쩍 했지?
그거 다 알고 있잖아.
누가 알고 있어?
자기가 알고 있잖아.
저는 어렸을 때 하도 갖고 싶은 게 있어서
한번 슬쩍 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그것 때문에 나중에 너무 괴롭더라고.
그래서 나중에 결국은 그 문방구 가서 그 돈을 줬다니까.
그랬더니 문방구 주인이 “이거 왜 주냐?” 그래서
“사실은 제가 지난달에...”
아, 그랬더니 사장님이 어쨌든
“아이 착하다”고 하면서 하나 더 주더라고.
옛날부터 그런 말이 있는 거예요.
명경대라고 해서
여러분이 죽어서 저승에 가면 영라대왕 앞에서
자기 전생이 거울 앞에 쫙 나타난다.
그게요, 거울이 그런 게 있는 게 아니고
여러분 마음이 거울이에요.
자기가 다 하는데.
자 그러면 이게 보는 거예요.
누가 본다고?
얘가 보는 거예요.
여러분이 보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라는 건 생각이에요.
근데 이 생각 이전에 있는 이것이 보고 있다고
이 살아있는 것이.
--무엇을
그럼 뭘 보느냐?
대상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걸 봐요.
여러분이 대상화할 수 없는 건 딱 하나밖에 없어.
뭘까?
자기 자신은 대상할 수 없어요.
여러분이 몸이라는 건 대상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내가 아닌 거야.
내 마음
내가 화났다, 즐겁다, 기쁘다, 맛있다, 맛없다
생각 마음으로 들리는 온갖 잡생각, 감정, 느낌
이런 것들은 다 대상화할 수 있어요.
근데 이 모든 걸 대상화하는 이거는 대상화할 수 없어.
그래서 “오직 모를 뿐” 이런 소리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진짜 자기라고
대상화할 수 없는 이것.
그런데 이 대상화할 수 없는 것이 “오직 모를 뿐이다”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중생이 식스존을 워낙
그 안에 빠져 있으니까 뭐라고 그러냐면
“아, 그래. 오직 모를 뿐이지, 그게 정답이야.”
그리고 오직 모를 뿐만 외우고 다녀.
그래서 “이게 답이죠?” 하고 그걸 또 꺼내는 거야.
이래서 영원히 못 벗어나는 거예요.
자기 생각 세계에서.
자꾸 안다병에 걸려 있는 거야.
“나 그거 알지”
그래서 알아서 어쩌겠다는 거야.
여러분이 아는 거 여러분이 다 해결했어?
안 되잖아요.
아는 거 가지고 아무 도움이 안 된다니까
깨나 해야지.
여러분이 가위 눌릴 때도
이게 꿈이라는 걸 알아요.
그런데 못 깨나잖아. 그러니까 가위 눌리잖아.
아는 거 가지고 안 된다니까.
그러니까 여기에서 이걸 깨나는 유일한 방법은 뭐냐 하면
정견을 통해서
이 ‘오직 모를 뿐’이라는 이것의 실체가 되는 거예요.
그게 원래 나였기 때문에
그거 하고 계합을 하는 거야.
하나가 되는 거예요.
이걸 [깨어남]이라고 하는 거고
이제 이것이 확고하고 분명해져서 흔들림이 없을 때
그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누가’ ‘무엇을’ 이제 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가 뭐죠?
--어떻게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어떻게 하는 뭐냐?
그냥 생각 없이 보면 돼요.
보고 아는 이것.
당근명상 통해서 많이 해보셨잖아.
지금 시간 관계상 당근 명상을 또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궁금하신 분은 저 선배들한테 물어보세요.
그러니까 내 속에 있는, 보고 아는 이것이
대상화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보면
대상이 아닌 이 자리가 스스로 명백해진다.
이게 정견의 목적이에요.
그리고 깨어남의 길입니다.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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