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현대선88] 삶자체가 대단한 기적이다 / 피올라 현대선 13강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7회

Buddhastudy 2025. 4. 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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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하나님의 나라)을 제대로 보고

허상(세상)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의 마음을 철저히 관찰하여 평안을 찾고

매 순간을 최대한으로 즐기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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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할 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뭐냐 하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 있어요?

하나님의 나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들 가운데 있다고 그랬어요.

근데 또 하늘나라는 네 마음속에 있다고 그랬어요.

이거 잘 구별해야 돼.

 

하나님의 나라하고 하늘나라가 약간 다른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는 among you, 너희들 가운데 있다.

그런데 하늘나라는 네 마음속에 있다, in your mind.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나라는 실상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하늘나라는 그 실상을 누리고 사는 여러분들의 세계를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밖에 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죠?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among you인 거야.

among you라니까

또 나하고 너 사이에, 그 거리

이거 생각하면 또 3차원에 빠진 것이고

among you라는 건 뭘 말하냐면

모든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이 진리를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 깨닫는다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우냐?

어려운 거 아니에요.

여러분이 그 사실은 실상과 허상이 둘이

바다의 파도와 물처럼 이렇게 서로 딱 붙어 있어요.

바다와 파도는 분리할 수 있나? 없나?

없죠.

 

그러니까 항상 하나로서 같이 움직이고 있는데

문제는 우리가 파도만 보고 있다는 거야.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저기 그림이 있잖아요.

저 그림은 2차원이지만 3차원을 여러분한테 선사해요.

여러분은 저 그림을 보면서

잘 봐요.

저 그림의 액자 캔버스에 집중해서 보면 저건 2차원으로 보여.

그런데 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 3차원이 돼.

그럼 2차원이 맞는 거야? 본래 3차원이 맞는 거야?

 

이거는 육조 혜능이

깃발이 흔들리는데

-바람이 불어서 움직인 거야?

-깃발이 스스로 움직인 거야?

이 질문하고 비슷한 거야.

 

실제로는 뭐야? 육조혜능이 뭐라고 말했죠?

네 마음이 움직인 것뿐이다그랬죠.

그것도 사실 정확한 답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어쨌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일종의 그 방편인데.

 

여러분들 지금 저게 그러면 2차원이냐? 3차원이냐?

여러분이 보는 대로 나타나는 거예요.

여기 입체에 있다는 여러분은 캔버스를 안 보고 있어.

여러분이 나를 볼 때

이 내 옆에 있는 이 허공과 나를 분리해서 보기 때문에

이게 입체감으로 보이는 거예요.

 

근데 만약에 여러분이 나를

이 옆에 있는 칠판이나, 이 허공이나, 이거랑 똑같이 보기 시작하면

눈앞이 2차원이 돼.

 

여러분이 깨어나면 깨어날수록 세상이 3차원성을 상실해.

2차원적으로 보인다고.

 

그런데 재미난 것은

2차원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3차원에 빠지지도 않고

이게 중도야.

내가 보고 싶으면 3차원으로 보고

이렇게 보고 싶으면 2차원으로 봐.

이걸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하는 거예요.

 

반야심경, 아주 쉬운 얘기를 하는 거야.

네가 이렇게 보면 색즉시공이고

저렇게 보면 공즉시색인데

이 둘이 같이 있으면 중도야

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렇게 봐도 되고, 저렇게 봐도 되는 요놈이 지금 나타났지?

이게 의식이야, 생명 활동이라고요.

뭐가 어려워?

그거 보면 깨달은 건데.

자꾸 지가 분별하니까 어려운 거지.

 

뭔가 살아 있잖아요, 지금.

여러분이 내 손가락을 보는 게 아니에요.

이 전체적으로 이 손과 이 손 옆의 공기와

이 모든 거를 다 포함한 걸

평면으로 봐봐. 2차원으로

뭔가 살아서 움직이잖아.

손이 아니라니까.

그 지금 손 내렸다고 없어졌나? 그냥 살아 있나?

그냥 살아있죠.

그게 뭘까?

그게 바로 여러분 자신이거든.

이게 실상이에요.

이 실상 세계가, 하늘나라예요.

 

이 실상을 보는 것은 이제

내가 아무리 이런 얘기를 해도

여러분이 깨달을 준비가

정말 물이 100도부터 끓는다 그러면, 989도까지 오면

톡 건드리면 그때부터 끓어.

근데 여러분들이 이렇게 말해주고, 이렇게 힌트를 줘도

못 깨닫는다는 건 뭘 말하냐면

아직 비등점이 멀었다는 거야.

아직 70, 60, 이 수준에 있다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그렇지, “가열차게, 지랄을 하라우.”

이 얘기예요. 그냥.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아니 일상생활에 정말 이 피 튀기는 경쟁 속에서

밥벌이도 해야 되고

애들 애들도 키워야 되고

노후 준비도 해야 되고

건강을 위해서 또 운동도 해야 되고

할 게 얼마나 많아 안 그래요

아무것도 할 거 없는 모양 손 들어봐

숨만 쉬면 된다는 분?

없어요. 다 바빠.

 

근데 예수님이 그 이런 분들을 위해서 아주 좋은 비유를 내셨어.

그때 당시에 동전의 이름은 데나리온인가 뭐 그랬나 봐.

어떤 주인이 예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세 하인한테

똑같이 데나리온을 줬는데

나중에 주인이 돌아올 때 돌려달라고 했더니

-하나는 땅에 묻어서 보관하고 있고

-하나는 그걸 굴려서 무슨 3데나리온인지, 5데나리온을 벌어서

그거를 주인한테 돌려드렸고

-그다음에 또 하나는....

뭐 어쨌든 그런 비유가 있어요.

이거 성경에 있는 얘기입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주인이 와서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그렇게 불린 그 종한테는 칭찬하고

번 돈을 후에 상으로 주면서 칭찬을 하셨고

-그다음에 제일 비난하고 혼낸 하인은 땅의 묻은 하인이에요.

그리고 그 준 데나리온까지 빼앗고 집에서 내쫓아버렸다

이렇게까지 성경에서 얘기합니다.

너 같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냥 파묻어 두면 되지.’

이렇게 요령 부리는 애는, 내 집에 있을 필요가 없다. 나가라.”

그래서 내쫓아 버렸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비유냐 하면

여러분이 자기 이 삶이라는 게 여러분이 한번 잘 생각해 봐요.

이게 얼마나 놀랍고 경이로운 기적 같은 기회예요.

 

그럼 여기서 한번, 정말 인생을 한번 100% 모든 걸 태워서

최선을 다해서 즐겨보고, 누려보고, 체험해 보고, 노력을 다 해 봐야 되지 않겠어요?

근데 그걸 왜 땅에다 파묻고서

잘 보관해야지하고 있어?

 

여러분의 역량이나 여러분의 숨겨진 잠재적 재능은

다 어디로 간 거야?

땅에다 잘 파묻었어요?

 

근데 대부분 그렇게 살기 때문에

그래서 삶이 이토록 지루하고, 권태스럽고, 아무 일이 없는 거야.

아무 변화가 없어.

 

어렸을 때는 눈만 뜨면

세상이 경이롭고, 정말 신선하고, 나가면 놀일밖에 없는 거야.

어떡하면 놀까?

즐거움밖에 없어.

 

유희삼매, 무쟁삼매

어린애들이 아침부터 나가서 싸우던가

아니면 서로 어울려서 잘 놀잖아.

내가 저 대장할게 너 꼬봉해하면

싫어 내가 대장할게 네가 꼬봉해 하고서 싸우는 애도 있어.

그건 나이가 좀 많아져야 그런다고.

 

무쟁삼매, 유희삼매, 수용삼매

수용산매는 뭐냐?

내가 저 밥해 줄 테니까 너는 받아먹으면서 맛있다고 해.”

그 흙으로 밥 퍼줘서 주면

흙을 입에다 넣는 시늉하고 또 맛있다 하고

그거 어른이 보면 얼마나 뭐 같지도 않은 짓이지만

애들 입장에서는

네가 요구한 대로 다 수용해 주잖아.

그리고 같이 기뻐해.

 

여러분이 이 진리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깨닫고

얼마나 말 잘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요.

자기 삶에서 이 세 가지가 되면 깨달은 사람이야.

누구하고도 싸우지 않아. 마음속으로라도.

 

인생이 맨날 노는 것 같아.

아침마다 태어나면 놀 것밖에 없어.

설거지도 노는 거고

동사무소 가서 뭐 하는 것도 노는 거고

회사 나와서 일하는 것도 노는 거야.

 

그리고 누가 억울한 일, 누가 무슨 이상한 말 하는 것도

다 그냥 거기다 대고 저항하고 거부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그냥 다 수용을 해.

여러분이 그렇게 되면 이미 깨달은 사람이에요.

 

그게 왜 안 되는 줄 알아요?

내가 있어서 안 돼.

마음속에 이 에고가 있어서 안 된다고요.

 

그러니까 삶을 그렇게 한번 바꿔서 살아봐요.

그게 내가 잊어버렸는데

공중을 나는 새들을 보라.

벌판에 핀 백합을 보라.

누가 길쌈 해 주는 것도 아니지만 저렇게 잘 입고, 잘 사는데

하물며 인간인 너희들이 하나님께서 어찌 내버려 두시겠느냐

염려하지 마라

이런 성경 구절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왜 이렇게 걱정 많이 해?

그 말이

걱정하지 말고 그냥 확 믿고 내어 맡겨봐라

이런 식으로 보통 사람은 해석을 하는데

그건 타고날 때부터 천재 아니면 그렇게 안 돼요.

 

그건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냐면

여러분의 오온 분별이

여러분을 쥐고 흔드는 꼴을

그런 존재 방식으로 사는 걸 이제는 끝내겠다라고 각성한 사람들한테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렇게 실컷 살아봤는데 부귀영화 누리셨습니까?

그런 식으로 살아봤더니 부귀영화가 있었어? 없었죠?

그럼 이제 좀 바꿔볼 때가 되지 않았느냐.

네 오온이 그렇게 너를 괴롭혔는데

너 잘 돼야 돼.

그러려면 이거 걱정 근심해야 돼.”

걱정 의심하면 잘 되는 거야?

 

자기 오온이 하는 그 짓을

이렇게 철저하게 보게 되면 어떻게 되냐면

그 힘이 약화되죠.

그 힘이 약화되면 서서히 여러분은 정말 평안해지기 시작해요.

 

저 같은 사람도 지금 걱정거리가 없겠어요?

회사가 매출이 줄어들지

무슨 투자한 거는 지금 완전히 허공으로 날아갈지 안 날아갈지

아리송한 상황이지.

저도 걱정 근심거리가 많아요. 따지자면

아들이 둘인데 장가 보내야 되는데

지금 그거 뭐 어떻게 해 주겠다고 투자한 게

지금 허공으로 날아갈 판이에요.

 

걱정거리는 많은데

우리 마누라가 맨날 저보고 하는 소리가

저렇게 천하태평이냐?

당신 정신 갖고 사는 사람이냐?

자기는 매일같이 교회 가서 기도하는데

 

근데 저는 그런 생각이 안 든다는 게 아니고

그런 생각이 들어요.

걱정되네. 어떻게 하나...”

 

그런데 그게 내 의식의 힘이

전체가 100이라면

그중에 이게 차지하는 힘이 10도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한마디로 호수의 잔물결에 불과한 거야.

호숫물은 그냥 의연하게 있어. 평안하게.

 

호수가 잔잔하면

호숫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대로 사진처럼 다 비춥니다.

그리고 잔잔한 물결은 오히려

그 상들을 더 아름답게 반짝반짝하게 해줘요.

 

...

 

이때 그걸 해인삼매라고 그래

해인삼매가 별개 아니야

바다가 도장 찍었다라는 말이

여러분의 의식에

세상 모든 일, 모든 대상,

전부 다 그대로 들어와서 생생하게 사진이 찍혀 있는데

이걸 비추는 이 물 같은 이 본성은

태평양 같이 장대한 바다라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 비추는데

다만 잔잔한 물결로 이것들을 아름답게, 경이롭게, 느끼게 해줄 뿐이다.

그게 해인삼매예요.

너 뭐 빛이 반짝반짝 한다

그래서 내가 혹시 걱정돼서 하는 말이에요.

 

자 그럼 여러분이 그렇게 되시려면

여러분이 공부해서 될까?

아니면 한 대 뺨을 맞아야 될까?

맞아야 된다니까, 뺨 맞으러 오세요.

 

그렇다고 또 저 무슨 피올라에서는

선생님이 뺨을 때린대요.

이렇게 해석하시면 안 되고

이건 비유죠.

비유를 또 허상을 또 실상이라고 생각하면 참 곤란합니다.

 

그래서 이 토마스 머튼도

아이고 이제 끝날 시간이 됐네.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신성한 토마스 머튼이

아까 내가 말했죠.

루이빌이라는 곳에서 아리조나주인가에 있어요.

이분이 그 이름 모를 허름한 카페에서

하나님 보고 나서

자기는 신성한 영역을 보았다이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신성한 영역, 하나님의 세계를 봤다.

 

그러면 신성한 영역이라는 걸 이 사람은 어떻게 봤을까?

예를 들면

그 평범한 감나무 뒤에 하나님이

나 여기 있지하고 갑자기 나타났나?

아니죠.

 

여러분이 그거 보는 게 아무것도 아니야.

이게 바로 부처님이 연꽃을 이렇게 들어 보이시는 게

이게 바로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거라고.

?

생명이 움직이는 거니까.

 

여러분이 자기가 낳은 자식이나, 조카나, 갓난 애가

아장아장 걷거나, 미소 짓거나

막 기어다니다가 이제 막 일어나서 한두 발 걸을 때

그때 여러분의 보는 그 눈이

얼마나 경이롭고

이거를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고 놀라움 속에서 봐요.

그때 뭘 보는 거야? 여러분은?

그 애 눈을 보는 거야? 다리를 보는 거야? 팔을 보는 거야?

뭘 보는 거예요?

생명의 움직임을 보는 거 아니야.

그 시선을 왜 지금은 잃어버렸냐고.

 

*!

지금 이 소리조차 그거 아니야?

*!

그거 아니에요? 아니야?

 

이걸 왜 못 보냐 하면

여러분은 자기 잠재 업습에 깊이 빠져 있어, 중독돼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이 탁한 물에서 벗어나오질 못하는 거야.

 

그럼, 언제 이 잠재 업습을 다 닦는데요? 언제 이걸 정화시키죠?

아 그럴 필요 없어요.

어떻게 하면 되느냐?

잠재 업습의 본성이 뭐냐?

아뢰야식 팔식은 환영이거든. 본래 공한 거야.

공한 걸 보고만 있으면 돼. 거리만 두면 돼.

 

그걸 뭐로 보죠?

여러분의 앎이 있잖아, 앎이.

그게 딱 보는 순간 그것은 내가 아니고 어떻게 돼?

나로부터 분리된 대상이 된다고.

그럼 이미 정화됐네.

 

그래서 앎이 여러분의 의식을 완전히 다 채워버리면

그때는 여러분이 앎과 알려지는 것이라는 자기 분별해서 해탈해요.

지금 그것도 해탈 못하는 이유가

또 앎을 붙들고 있는 거야.

미세한 생각과 느낌으로.

 

얼마나 잘 붙드는지

내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슨 접착제들이야, 접착제.

그러니까 그런 자기를 정견하셔야 된다는 말이에요.

 

할 말은 많으나 마지막으로

그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실상을 보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의 하나님은 벌써 성령으로 와 계세요.

성령이 오소서하고 기도하는데

나 참 답답해 죽겠더라고.

오기는 어디 와, 이미 와 계신데.

자기가 가려놓고 오라고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니, 이게 무슨 주술 신앙이야?

 

예수의 마음과 정신으로

내가 이렇게 살고 이렇게 한다고 해야지.

왜 또 그 이름을 갖다가 또 팔아.

예수님 이름은 잘 팔아요.

 

그게 여러분 잘 생각해 봐.

내가 누가 아는데 말이지

걔가 저기 무슨 장관, 차관이고 그런데, 너 혼내줄 거야

이 소리하고 뭐가 달라, 안 그래요?

왜 이름으로 기도해?

그 마음으로 기도하면 안 돼?

그 정신으로 하면 안 돼.

 

그러니까 전부 그냥 이용할 궁리만 하고 있지

깨날 궁리를 안 해요.

 

자 어쨌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법을 어떻게 하는지 이제 아셨죠?

세상을 만나셔야 돼요.

허상 세계 속에서 헤매시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