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현대선89] '나란 현상'의 제1원인 / 피올라 현대선 14강 "지금여기 이것" 1회

Buddhastudy 2025. 4. 14. 20:12

 

 

  • 깨어남의 본질: 깨어남, 즉 깨달음은 자기(나)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01:17].
    • 나란 현상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현상입니다 [01:43].
    • 생명이 있기에 나란 현상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03:01].
    • 깨어남은 생명 그 자체로 깨어나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04:34].
  • 식스존(Six Zone): 인간이 자라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생각, 감정, 감각, 느낌, 관계 등을 의미하며, 이는 실제가 아닌 꿈과 같습니다 [02:18].
    • 감각에서 감정이 생기고, 감정에서 생각이 생겨납니다 [05:26].
    • 생각, 감정, 느낌에 빠져 본래의 자각을 잃게 됩니다 [06:38].
  • 깨어남의 과정: 식스존을 이해하고, 환영임을 감지하며, 궁극적으로 그 자리에 깨어나는 것입니다 [09:07].
    • 12연기를 통해 봐도 생각이 모습과 이름(명색)에 의지함을 알 수 있습니다 [09:40].
    • 뇌는 생존을 위해 발달했지만, 마음의 평화나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13:19].
    • 기억과 경험은 정보일 뿐이며, 이를 실제라고 믿는 것이 전도몽상의 본질입니다 [14:49].
  • 생명으로 거듭남: 생명의 자리에 깨어나 100% 순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15:27].
    • 자신의 인생은 자신만이 감독, 배우, 관객 역할을 합니다 [16:44].
    • 인생이라는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그것이 꿈임을 알아야 합니다 [17:26].
    • 꿈에서 깨어나려면 꿈임을 자각해야 하듯이, 현실에서 깨어나려면 현실이 꿈과 같음을 알아야 합니다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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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46일 명상강좌

지금 여기 이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려고 그러는데

이번 8기에서 그 대면강좌를 통해서

여러분이 이 자리를 처음 하시고 깨어나셨어요.

 

그래서 근데 아직도 약간

왜 어디든지 항상 이렇게 약간 막차 타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위해서 오늘 최종 정리도 할 겸

이 공부에 대해서 이렇게 좀 막연하다고 할까, 어떻게 어프로치를 해야 되나

이런 분들의 기본 컨셉을 좀

뭐든지 이렇게 기본이 중요하잖아요.

기본을 잘 잡아야

그다음에 그 토대 위에 튼튼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기본을 오늘 잘 잡는 그러한 시간이 되겠습니다.

 

, 그러면 깨어남의 본질이 뭐냐?

깨어난다는 거, 깨닫는다는 거.

 

그게 이제 결국 뭐냐 하면은

여기 자기가 없다는 분 없잖아요, 다 자기는 있잖아요.

아무리 무아니 뭐니 해도

무아로서 내가 있다라는 그런 거는 다 아시잖아.

무아이기 때문에 여기에 나도 없다

이런 사람은 없잖아.

 

그렇다면 이 나란 현상이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보니까

그냥 내가 이렇게 나란 현상이 있는 거야.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어딨어?

어느 날 보니까 내가 있는 거야.

이것도 여러분 아시다시피 생각이 시작되고 난 다음에 일이지

여러분이 갓난아기 때는 내가 있는지 없는지 자가 어떻게 알어.

 

그러니까 나란 현상이 지금 여기 있는데, 갓난아기때부터 여기 있어요.

그런데 내가 그걸 알기 시작한 게 식스존이에요.

식스존이라는 게 뭐냐 하면

우리 인간이 공통적으로 이렇게 자라나오면서

생겨난 생각, 감정, 감각 느낌

그다음에 그걸 통해서 이렇게 다른 사람하고의 관계를 느끼면서

, 나는 저 사람의 상대로 이렇게 독립된 개체구나하는

이런 생각 감정

이 세상은 나와 따로 떨어져 있고

나는 세상과 분리돼서 이렇게 태어났다가 살다가 죽는다

이제 이런 것들이 다 식스존이에요.

왜냐하면 이게 실제가 아니거든, 꿈이거든.

 

너무나 여러분들은 믿어지지 않을 거예요.

, 그럴 수가 있나?”

근데 그거를 여러분이 깨달아보면 알아요.

 

이렇게 나란 현상이 그러면 제1원인은 뭐냐?

생명 아니겠어요?

나란 현상은 생명이 있으니까 생겨났지

생명도 없는데 나란 현상이 생겨날 수는 없잖아요.

 

불교든 기독교든 진리는 하나라서

이거를 완전히 100% 순도의 생명 그 자체, 그 자리로 회복하는 거예요.

원래 그거였으니까.

그 회복하는데

옛날로 치자면 정자 난자 시절에는

그때는 여러분이 생각이 없었잖아.

그러니까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존재인지를 자각할 수가 없었잖아.

 

근데 지금은 오온이라고 하는

생각, 감정, 느낌 이런 거 가지고 자기를 자각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은 다시 말하면

신이 자기를 자각하는

진리가 자기를 자각하는 계기가 되는 거예요.

깨어난다는 것은.

 

그러니까 생명이라는 말을 개념으로 알고서 이해해 봐야

그건 아무 소용없어요.

그거는 그 개념 속에 잠자고 있는 거예요.

말에 그냥 그 속에 들어가서 또 생각 굴리고 있는 거예요.

 

깨어난다는 것은 뭐냐 하면

그런 건 다 환영이고

실상, 생명 그 자체로 깨어나서 살기 시작하는 거.

 

이게 큰 차이가 있어요.

아는 게 아니고 되는 거다

이런 말을 제가 계속 하잖아요.

 

그러면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그림을 자주 그리잖아요, 우리 식스존에서부터.

 

갓난아기가 태어났다라는 것은

아기는 스스로 자각을 못하겠지만

이런 생명의식, 순수한 생명의식 상태로 딱 있는 거예요.

근데 애가 태어나서 100일이 지나고 돌이 되고

그렇게 되면 뭐가 생기죠?

[감각]이 생겨요.

그래서 이 감각에서 불쾌하다, 즐겁다하면서 뭐가 생기죠?

[감정]이 생겨요.

감각을 자극하면서 감정이 생긴다고요. ‘좋다 나쁘다

그러면서 거기서 뭐가 생기냐면 [생각]이 생겨요.

근데 생각으로 보면 이제 거기서 뭐가 생기냐 하면

[관계], 휴먼존이 생겨요.

뭐냐 하면 자기 엄마나 아빠나 자주 와서 자기를 돌봐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자기도 친숙감, 내지는 익숙하니까

그리고 가끔 이상한, 처음 보는 듯한 사람이 오면

애가 울거나 약간 거부하는 이런 게 있잖아요.

 

그다음에 이런 거에서

엄마가 애를 데리고 좀 크면 마당에도 나가고, 안고 시장에도 가고 하면

어떻게 되냐면

세상에 우리 방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더니

이렇게 세상이 넓은 거야

[시공간감]이 생기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한마디로

생각, 감정, 느낌이에요,

감각이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러면서 얘가 요것 속에 홀라당 빠져서

애시당초 이것도 자각을 못했으니까

이거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얘는 아예 이거는 자각도 못하고 있어서

이것만이 이렇게 남게 돼요.

 

근데 사실 이게 지금 있어요? 없어요?

원래 지금도 있어요? 없어요?

있죠.

근데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도 지금 이게 너무 강해져서

이 빨간 선을 여러분이 대부분 모르는 거예요.

자기한테 있다는 걸 몰라.

왜냐하면 얘들이 너무 설치거든.

그래서 얘들의 노예가 됐어요.

 

그래서 불교가 이렇게 사찰 같은 데 가 보면

사천왕 같은, 야차 같은 사람이 창 들고

밑에 마귀나 항마를 받는다는 항마도 같은 거 있으면

발로 밟고 있잖아요.

그 항마가 뭐냐 하면 이거예요.

자기 오온 활동을 자기가 딱 질서를 잡는다는 거예요.

 

이게 집으로 치자면

주인 마님이 잠깐 주무시거나 어디로 출타했어.

그래서 하인들이 설치는 거야, 주인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하인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이런 집을 뭐라고 하냐면

도깨비집이라고 그러죠.

그러니까 깨어나지 못하면 사실 다 귀신들인 거예요.

귀신이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귀신이야.

 

그런데 이 귀신이 깨닫고 나서 이것들을 딱 휘어잡으면

그러면 해븐존에서 배운 무지개 몸의 질서를 회복하는 거예요.

 

해븐존 안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말하자면

사람이 그 자기의 존재 방식이 있는데

자기의 가장 궁극적인 생명자리 법신자리가

자기의 화신이나 보신자리에 대해서

명령 계통을 딱 바로 잡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를 기독교에서 [거듭난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깨어남의 본질]입니다.

 

우리 마음학교에서는 왜 식스존, 해븐존, 마스터라는

이 세 가지 과정을 만들었는지 아시겠죠?

 

우선 이거를 알아야 돼

자기가 뭐 어디에 빠져 있는지.

그다음에 헤븐존에서는

이런 것들이 전부 다 환영이고 허깨비고

실제로 이것들을 있게 만드는 실체가 있어요.

그거를 해븐존에서 감을 잡는 거예요.

, 그게 정말 그렇구나

그럼 마스터에 와서는 그걸 확실히 그 자리에 깨어나는 거죠.

 

이거를 12연기적으로 봐도

그 부처님이 발견하신 12연기를 봐도

무명- -- -색 이렇게 나가잖아요.

그런데 명색이 뭐예요?

모습과 이름이거든.

모습과 이름은 뭐에 의지해 있어요?

생각에 의지해 있거든.

생각 없이 모습과 이름이 있나?

없죠.

 

그러면 벌써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는

갓난아기가 생각이 아직 뭐 할 수 없는 상태는

얘한테 명색이 없는 거야.

어디까지만 있죠?

무명- -식까지만 있는 거야.

식은 있지.

왜냐하면 애도 아니까

생각 없이 즉각 아는 게 있잖아요.

이거 먹을 거다라든지

아니면 먹을 게 아니다라든지 이런 건 알잖아.

 

그러면 이런 기능이 우리한테 생겼느냐 하면

인간의 진화의 역사를 보면

인간의 뇌는

여러분 아시다시피 생명이 있는 것이 다 뇌가 있지는 않아요.

지렁이 같은 건 뇌가 없어, 멍게도 없어, 해삼도 없어요.

한번 나중에 생물분류도 조감해 보세요.

의외로 뇌가 없는 생물이 많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뇌가 자기라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야.

이 생물학 공부하신, 여기 포인터님도 있지만

실제로 사람 몸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이 뭔지 아세요?

생물한테 가장 중요한 기관?

 

우리는 뇌라고 생각하잖아요.

모든 생물한테 공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이에요.

입이 없으면 먹을 수가 없잖아요.

먹을 수가 없으면 바로 죽어요.

뇌가 아니라고. 첫 번째가 입이야.

두 번째가 항문이에요.

먹었으면 배설해야 될 거 아니야.

 

모든 미생물조차도 이 두 가지가 기본이에요.

먹었으면 싼다.

이게 유기체

우리 현대과학이 생명이라고 규정하는 것의 정의에는

유기체로서의 순환 기능은

자기 생명 유지에 대한 외부의 영양소를 받아서

그걸 소화해서

자기 몸을 살려 나가는 기본 기능을 갖춰야 되는 거예요.

아메바라든지, 이런 것부터 짚신벌레, 이런 거 다 마찬가지거든.

 

그다음에 세 번째는 심장이나, 혈관계, 순환계가 더 중요해요.

뇌는 한 네 번째, 다섯 번째밖에 안 돼요.

뇌 없어도 사는 생물이 많아요.

 

근데 뇌가 왜 생겼느냐 하면

이 몸뚱어리가

뇌가 재빠르게 판단하고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을 가지고

그 판단하는 능력으로 몸을 보호하지 않으면

인류는 이미 멸종했어요.

벌판에 벌거벗고 앉아 있는데

호랑이가 딱 보면

아 이렇게 맛있는 게, 저기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으면 저건 뭐야?

그냥 바로 뷔페 아니에요, 뷔페.

 

그래서 뇌가 발달한 거예요, 생존을 위해서.

근데 뇌는 몸뚱어리의 생존을 위해서 발달했지

여러분의 마음의 평화나 이런 건 관심이 없어요.

그럴 거 아니야.

뇌는 과거의 기억을 자꾸 기억해서

지금 위험하다, 조심해라, 저 놈 나쁜 놈이다, 경계해라

이런 것만 해주지.

뇌가 언제

마음의 평화, 사랑이런 거 내가 가르쳐주는 거 봤어?

그런 건 안 가르쳐 줍니다.

 

그러니까 결국 여러분이 우리 피올라에서 배운 것처럼

관념 연속성이라든가

또는 생각과 감정 기억에 의해서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는데

그럴듯한 있는 듯하고, 없는 듯한 그걸 가지고

있다고 자꾸 만드니까

그래서 헛깨비를 있다고 자꾸 믿어야

우리는 몸을 가지고 살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있음의 병이 생긴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없는 거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그저 정보에 불과한 걸 가지고

자꾸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되냐?

갓난아기 때는 세상이 그렇게 경이롭고 천국이었는데

지금은 지옥이 됐어요.

지루해지고, 귄태스럽고, 왜 사나?

여러분 어른 돼서

도대체 왜 사나?” 하는 거 한 번도 고민 안 해 본 분 있어?

다 해.

이렇게 살기 힘든 세상 왜 사나?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기억과 경험에 갇혀버렸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기억과 경험의 본질이 뭐야?

정보잖아요, 정보.

 

정보라고 하는 것은

사실 그게 실재하는 거예요?

아니면 누군가에게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어떤 관념적인 거예요.

허상이잖아.

근데 우리는 이 정보가 너무 소중해진 거야.

왜냐하면 정보 가지고 돈 벌잖아.

정보 가지고 먹고 살고.

그러다 보니까 헛깨비가 실상이 된 거야.

이게 전도몽상의 본질이에요.

 

그래서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생명이 법신이다, 생명으로서 거듭난다, 생명의 자리에 계합한다, 이런 것을

생각으로만 알면

이것은 살아있는 것을

다시 죽은 기억과 정보 속에다 집어넣는 꼴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런 것을 마구니라고 그러고, 해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공부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진짜 이 자리로 딱 거듭나서 확 열려서

이 자리가 100% 순도의 생명자리 그 자체로, 거듭나야 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태어나기 전에 비해서 여러분은 어떤 변화가 생기냐면

육식 활동을 다 경험한 그 부처가 되는 거예요.

태어나기 전엔 그게 없었잖아.

이론상으로 지금 하는 얘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태어난 거엔 중대한 이런 의미가 있는 거예요.

윤회는 죄가 많아서 태어났다이렇게만 생각하실 게 아니라

이런 삶에는 그런 숨겨진 신비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지금 다 자기가

아무개 일생하고 자기가 살아오고 있잖아요.

자기 인생을 살아오고 있는데

그 인생의 감독과 배우와 관객이 딱 한 사람밖에 없어.

바로 자기뿐이야.

아무도 여러분의 그 영화에 참견도 안 해.

 

이렇게 만들어, 저렇게 만들어감독 역할을 안 해줘요.

자기가 하는 거예요.

역할도 누가 해?

자기가 하는 거예요.

관객도 자기 혼자야.

아닌가요? 맞죠?

 

그래서 여러분이 이런 아무개 일생이라는 이 꿈에서

빨리 깨어나야 되는 거야.

왜냐하면 이게 환영이거든.

우리는 이 환영을 통해서 오히려 지혜를 얻는 거예요.

까르마를 통해서 지혜를 얻고

이거를 날려버리는 게 목표인데

까르마 속에 주저앉아 있는 거야.

그러니까 지혜는 커녕, 고통만 생기는 거죠.

 

근데 꿈에서 우리가 깨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돼?

여러분 만약에 악몽을 꾸고 있어.

귀신이 쫓아와, 또는 괴물이 쫓아와

그때 어떡할 거냐고.

반드시 도망가죠?

도망가면 해결이 돼요? 꿈속에서는 어때요?

해결이 안 되잖아.

 

그래서 이런 악몽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유일한 게 뭐냐 하면

이게 꿈이다[정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현실도 만약에 꿈 같은 거라고 그러면

우리가 현실에서 깨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이것도 꿈이라는 걸 정견하는 수밖에 없지.

그래서 부처님이 팔정도의 첫 번째, 정견 공부를 그렇게 강조하시는 게

깨어나려면 정견밖에 없다.

이게 꿈이기 때문에.

 

여러분 이걸 꿈이라고 하니까 믿지 않으시겠지만

꿈속에서도 여러분은

그걸 꿈이라고 생각 안 했어요.

현실이라고 믿었어요, 리얼했지.

마찬가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