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아주 지엄한 사랑을 보여준 거예요.
재수가 없다, 황당하다, 어이 없다, 이해 안 간다가 아니라
본성이 나에게 배려해주고 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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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대로 일이 잘되면, 상관이 없는데
내 뜻대로 잘 안되면 짜증이 나죠.
그렇게 참고 살다가 이해 안 가는 그런 현상이나 황당한 사건이나 이런 거에 노출이 되면
굉장히 혼란스럽고 당혹스럽습니다.
어제 올린 동영상에 대해서 깊게 얘기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깊게 심화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늘 스트레스를 받고 늘 두려움을 갖고 살고
경직된 마음을 갖게 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한 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자, 요 사진을 한번 보세요.
이 사진은 사과를 가운데 두고 A라는 사람과 사과에 가까운 사람을 A라고 얘기할게요.
사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B라고 얘기하겠습니다.
A라는 사람 측면에서 봤을 때의 사과와
B라는 사람 측면에서 봤을 때의 사과 느낌은 어떻습니까?
각자 각자가 인식하는 것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의 상황은 뭐냐하면
‘사과가 한쪽 사람에게 치우쳐져 있다’라는 현상입니다.
그냥 현상으로만 봐야만 하는 겁니다.
거기에 우리의 주관이 개입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과를 딱 보면 B라는 사람은 그렇게 인식이 들 수도 있겠죠.
“이 사과가 A에게 치우쳐져 있으니까 내가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들 거 같아.
내가 좀 더 뺏어와야겠어“라고 하는 그런 이기적인 마음이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왜 이게 공평하게 반반씩 나뉘어야지, 한쪽으로 그렇게 치우쳐 있고
이거 어드벤티지 아니냐.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을 다들 싫어하는 거 아니냐라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이 인식의 오류가 사람마다 다 다양하고 때로는 심각하게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때에 따라선 그렇게 들 수도 있겠죠.
사과 모양이 왜 저 모양이냐, 왜 저렇게 깎았냐?
사과를 예쁘게 깎아야지 왜 껍질은 안 깎냐?
내가 하찮은 사람이냐?
왜 사과 접시가 네모나냐, 둥그런 접시에 줘야지
사과를 가운데 정렬을 해야지, 왜 한 쪽으로 몰아놨어? 마음이 이상한 거 아니야?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인식을 하게 되고
인식이 들게 되면 그게 곧 마음으로서 스스로가 그렇게 믿게 됩니다.
이 믿게 되면 어떻게 되죠?
인식이 들고 믿게 되면 그거에 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행동하게 된다는 것은 과거에 그런 믿음과 기억정보에 의해서
나의 이런 행위 하는 거, 이런 행동하는 거, 그런 생각이 들게끔 하는게
정당화되고, 이게 맞다라는 믿음으로써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걸 해버려요.
행위로서 해버리면 이게 좋든 나쁘든 카르마로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그러그러한 연이 딱 만났을 때 과로서 받게 됩니다.
이게 원리입니다.
한마디로 있는 현상이라든가 물체에 대해서는 다 있는 그대로 봐야 하는 게 맞습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뿐입니다.
산이 높다고 해서 내가 두려워할 게 아니고,
나의 과거에 산에 대한 안 좋은 기억과 안 좋은 믿음이 있어서 그 산을 동경하고 무서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물, 그러면 어떤 사람은 물에 대한 좋은 기억도 있지만,
어떤 기억정보에 의하면
물 그러면 물에 의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
물만 보면 괴로워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건 그냥 물일 뿐입니다.
그런데 각자 각자 개개인의 그런 경험이나 기억에 의해서 그 물을 판단하게 되는 거죠.
이런 일들이, 그런 마음들이 계속 누적되어서 보여지게 되다 보면
현실이 나타나게 되고 이해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면 당황하게 되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나“라고 불행한 마음을 먹게 됩니다.
이해가 안 가신다면 반복해서 거듭 들으십시오.
이 정도 되면 인식의 패턴 얘기를 해야 할 시점입니다.
굉장히 내용이 심오하죠.
어찌 보면 이게 인식의 거의 다예요,
거의 뭐 해부를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러다 보면 에고의 차원까지 들어가게 되는데
들어가서 규명을 해야만 알 수 있거든요.
각자 각자의 고유한 패턴이 있습니다.
인식의 패턴.
그냥 있는 것에 불과한 거고, 나타난 것에 불과한 건데
거기에 나의 주관적인 인식과 그런 생각하는 패턴이 형상화됩니다.
이런 것들에 의해서 계속 움직이는.
왜냐하면 그렇게 패턴화시키고 그렇게 습관적으로 반복적으로 인식하는 게
한마디로 체화되었다고 그래야 하나?
그런 식으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 사람의 믿음 체계가 되는 거죠.
그런데 이 믿음 체계를 하게끔 하는 주체는 누구냐?
그거는 바로 내면의 에고입니다.
에고의 인식에 의해서, 과거의 그런 기억 정보에 의해서 어떠어떠한 사건들이 일어나거나 그러면 그 기억정보에 의해서 에고가 나타나거든요.
에너지체입니다.
에너지 덩어리가.
인식하려고 하는데 어떤 못 받아들이는 거예요, 한 마디로.
너무 괴로우니까 이것을 덮고 싶고, 피하고 싶고 이런 마음이 강해져서
이것들이 에너지화 되고, 그런 믿음체계를 형성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이 에고의 그런 믿음체계, 일정한 패턴, 행동양식을 유발하는 이런 것들은 그렇게 얘기하죠.
관념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우리 인식의 관념입니다.
그래서 산은 산입니다.
물은 물일뿐이고
자동차는 자동차일 뿐입니다.
우리 나비명상을 보면 뒷부분에 소품으로 쓰여져 있는 명품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간혹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거를 보고 또 마음이 올라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거는 각자 각자가 느끼는 판단입니다.
에고가 일으키는 생각입니다.
그 생각에 의해서
“어? 마음공부 한다는 사람이, 명상한다는 사람이 왜 도포 자락 안 하고
도대체 왜 저러고 다녀? 저 사람 공부가 안되었구먼”
스스로 판단하는 대비시키는 비교하는 개개인의 관념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인식의 오류로 인해서 어떠한 특정한 행동을 하게 되면
아까 말씀드렸죠?
카르마와 연관이 됩니다.
계속 누적이 되다 보면.
그렇습니다.
고타마 붓다도 우유 먹고 도움을 받아서 성불하신 분입니다.
풀만 먹고 살 수 없어요, 에너지가 있어야만 합니다.
특히나 마음공부, 마음수련 이런 명상은 정신적인 고도의 집중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때에 따라선 단백질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힘이 있어야만 이거도 있거든요.
인식의 오류를 깬다라는 거 자체가 굉장히 힘든 작업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속에 있는 세세한 그런 오류를 다 잡아내려면
많은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그냥 그것일 뿐입니다.
이거로 우리가 피피엘을 하든 명품을 쓰든
도인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그거를 보고 각자 각자가 올라오는 개개인의 마음을 보라는 뜻에서 노출을 하는 거지
그 깊은 의미를 아셨으면 합니다.
이것들은 다 에고의 인식의 오류입니다.
그 에고, 무의식에 가라앉아있는 그 마음을 들춰내서 기억 정보를 캐내서
하나하나 일일이 다 현미경으로 뜯어보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작업이 선행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것들이 다 제거가 되었을 때에는
산을 산으로 볼 수 있고, 물을 물로써 인정하게 됩니다.
존재 자체로 그냥 인정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설사 나에게 불행한 일이 오더라도
그 상황은 불행한 일이 나한테 온 상황입니다.
거기에 “재수가 없다, 일진이 안 좋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 봐, 저놈이 나쁜 놈이야.”
환경 탓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판단하시면 안 됩니다.
그런 판단하는 마음을 없애게 하려고 그 일이 시그널로서 나에게 오는 겁니다.
이런 습관적인 인식, 습관적인 생각, 습관적으로 어떤 현상을 보고 판단하는 그것,
그것을 무의식에 내 내면으로 들어가서 나타나지 않는 거거든요.
이런 일들은 이런 현상이 나타날 때만 조금씩 조금씩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현상들이 딱 일어났을 때,
바로 내 마음으로 돌이켜서 내 내면을 돌아보는 기회에요.
한마디로 고통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그걸 내가 당해 있는 입장에서
“어떻게 내음을 봐”라고 하겠지만
이것은 본성이 주는 시그널입니다.
엄밀히 얘기하면 선물이에요, 나에 대한 선물.
왜냐하면 그 일을 통해서 내 마음 자락으로 들어갈 수 있거든요.
여태까지 늘 표면으로 나오지도 않았다가 이제 조금 나오는데
그 조금 나온 거를 갖고서 우리가 캐내야 합니다.
어떻게 캐낸다고요?
에고의 입장에서
그 에너지 덩어리가 왜 생겼는지
그 기억정보가 왜 생겼는지
내가 왜 그렇게 인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명상에서 찾아내셔야만 합니다.
못 찾겠다고 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찾아내서 규명해야만 그 일이 줄어들고, 나중에는 생기지 않게 됩니다.
그것을 알려주려고 본성이 우주가 우리에게 아주 지엄한 사랑을 보여준 겁니다.
재수가 없다, 황당하다, 어이없다, 이해 안 간다가 아니라
“본성이 나에게 배려해주고 있구나”라고.
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수행에 굉장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해가 안 가신다면 반복해서 거듭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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