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있는가
보통 신이 정말 있을까? 신이시여 하면서
나와는 분리된 위치에 있는 어떠한 존재를 떠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외부에서 찾고 있는 신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나와는 분리된 채로 느껴지는 어떤 높은 것(존재)
영혼, 천사, 수호신 등등
어딘가에 있으면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그런 것
상상으로 그릴 수 있는 어떤 것
표현 가능한 모든 신적인 존재는
모두 내 마음이 만들어 낸 홀로그램 세계에 속한 허상
외부의 것은 모두 영화관 스크린 위에 비춰 나타나 있는 것으로
스크린 위에는 빛 말고는 아무것도 없듯이
우리가 외부에서 찾고 있는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의 시선이 외부 세계로 나가 있을수록
나와 신을 분리해서 바라보게 되기 때문에
이런 경우 절대 신을 깨우칠 수 없다.
신을 나와 분리해서 외부에서 찾는 행위는 나에 대한 무지
신이 외부 어딘가에 있다 믿는 상태는 망상
*신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 자체가 바로 인간 껍데기이기 이전에 이 모든 현실을 창조한 ‘신’이자 ‘참나’
이 현실의 모든 것이 다 여러분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외부에서 찾게 되는 이름이 붙어 있는 신 역시도 여러분의 창조물
즉, 여러분이 어떤 외부의 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절대 아니라
여러분 자체가 외부의 신(허상)을 창조했습니다.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여러분의 의식 안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편의 꿈(환상, 허상)과 같은 것
내가 이 인간 껍데기라고 믿고 있으면, 이를 절대 깨우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인간 껍데기가 아닙니다.
이 인간 껍데기는 여러분의 마음이 창조해 낸 것으로 스크린 위에 나타난 허상
여러분 모두 자체가 신이나 참나(진짜의 나)
참나는 여러분 내부에 있고 외부에 있은 적이 없으며
여러분과 결코 분리된 적이 없습니다.
단지 그것을 자각하느냐 자각하지 못하느냐의 차이
단지 내가 껍데기(에고) 자리에 있느냐 참나 자리에 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참나를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
참나(신)를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원래부터 여러분 모두의 안에는 근원 의식과 사랑이 가득하지만
잠시 껍데기를 통해 체험을 하는 동안
두려움(욕심과 집착된 마음) 덩어리가 내 안의 근원의 빛과 사랑을 가리게 됩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여러분은 모두 신 그 자체로서 이 현실의 모든 것을 창조했고
모든 창조물을 사랑으로 투명하게 보는 눈을 가졌는데
현실 체험을 위해 껍데기(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
내가 현실을 창조했다는 것을 망각하고
그 눈에 이물질이 끼기 시작
이 이물질은 내가 몸이라는 망상에서 생겨난 집착(욕심)과 두려움입니다.
이물질이 묻어 있는 채로 세상을 보게 되니
세상의 것들을 더 이상 완전하게 보지 못하게 됩니다.
눈에 더러운 것이 묻어 있는 만큼 세상을 더럽게 보게 되는 것
그러니 삶에는 잘못된 것이 많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살면서 고통(괴로움)을 체험하고는
그제야 늪을 나오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외부에서 방법을 찾습니다.
“왜 이렇게 세상에는 더려운(잘못된) 것들이 많아?” 하고 자꾸 외부를 청소하죠.
하지만 외부를 아무리 바로잡아 봤자
세상엔 더러운 것들이 여전히 그대로 있습니다.
결국 원인이 외부가 아니라
내 내부(마음)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근원으로서의 자각
애초에 낸 눈에 이물질이 끼어 있었기 때문에
세상이 괴로운 것으로 가득하다고 착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그래서 이때부터 우리는 눈에 끼어 있는 이물질
즉, 우리의 마음(두려움, 욕심, 집착)을 닦아내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내 앞을 가리고 있던 이물질이 걷히기 시작하고
원래부터 내 안에 있던 근원 의식과 사랑이 드러나게 됩니다.
또한 눈이 깨끗해지니 세상을 투명하게 자각하게 됩니다.
원래부터 세상의 모든 것이
잘못된 상태가 없이 완전하고, 사랑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그리고 나서야 외부에서 찾고 있었던 그 신이라는 것이
바로 지금 여기 내 안에 있으며
원래부터 언제나 같은 그 자리에 있어 왔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
신의 현실에 대한 이해
그럼 그 신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껍데기는 가짜의 나(인간 에고), 신이란 것은 본래의 나(참나)입니다.
신이란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는
*현실이 나타나려면
이 현실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관찰하는 것
2. 관찰되는 것
3. 관찰
이 세 가지가 모두 있어야 하고
이는 모두 동시에 나타나는 하나
관찰되는 것
이 현실에 나타난(속한) 모든 것은 관찰되는 것
이 인간 껍데기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 우리가 인식하거나 느낄 수 있는 모든 것
이 지구, 영혼, 외부의 이름 달린 신(존재)
물질계, 꿈 세계, 고차원, 차원계에 속한 모든 것
우주 만물은 다 허상으로 관찰되는 것
2. 관찰하는 것
그것을 관찰하는 것인 관찰자가 여러분 안에 있죠.
3. 관찰
관찰이 이루어져야 ‘관찰하는 것’과 ‘관찰되는 것’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관찰자(관찰하는 것)가 관찰되는 것을 관찰해야만
이 현실(우주 만물)이란 것이 나타나고 인식 작용이 일어나죠.
이 세 가지는 세트로 하나로서 이는 전체의식으로부터 동시에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모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으로 실재하지 않습니다(모두 환상)
이 현실은 거울 속 세상 같은 것인데
거울 속을 들여다보면 진짜 같이 보이지만 실재하지 않죠.
참나> 전체의식> 관찰자(관찰하는 것)과 현실(관찰되는 것)이 나타남
이를 쉽게 예를 들어,
참나를 영화관으로 비유해보겠습니다.
참고로 이 영화관은 텅 비어 있고 천장, 바닥, 벽 등의 공간이 없고, 시간의 흐름이 없다.
참나 -> 영화관
전체의식 -> 전기
의식(의식의 빛) -> 영사기
관찰자 -> 관람객
현실 -> 스크린 위 영화 장면
영화관에 전기가 들어오면 영사기가 돌아가고, 관람객이 들어오는 동시에 영화 상영
전기가 꺼지면 영사기가 돌지 않기에, 아무 영화도 상영되지 않고 관람석도 빕니다.
하지만 영화가 상영되든 되지 않든 영화관은 언제나 지금 여기 있죠.
지금 내가 있다 만이 실제하는 것
*참나란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나는 참나다’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무것도 아니기에 언어로는 ‘어떤 것’이라고 표현될 수 없는 것인데
그나마 언어로 비슷하게 표현을 해보자면
여러분 자체이자 모든 것의 근원인 그 신, 참나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상태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없는 것
텅 비어 있지만 비어 있다고 할 수 없는 것
아무 공간이 없는 것
영원하지만 시간의 흐름이 전혀 없는 것
지각하는 것도 지각되는 것도 없는 것
아무것도 느낄 수도 느껴지는 것도 없는 것
인식할 수도 인식되는 것도 없는 것
여기엔 오직 ‘내가 있다’는 자각만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있다’는 자각을 하는 그 자리가 신이자 참나/
참나를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온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시간도 공간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이 텅 빈 자체가 본래의 여러분
본래의 여러분은 몸이 없고 오감도 없습니다.
눈, 코, 입(혀), 귀, 손(몸)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있고
아무것도 느낄 수도 없는 상태로 있습니다.
내가 있다는 자각만 일어날 뿐,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존재
내가 어떤 것인지를 전혀 인식할 수 없고 아무 체험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본래의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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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체험이 일어나는 과정
그렇다면 우리는 어쩌다 인간 껍데기를 입고 있을까요?
체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나눠서 설명해보겠습니다.
나눠서 설명하지만 이 모든 것은 동시에 일어나게 됩니다.
*의식 작용
첫 번째, 내가 있다는 자각만이 있습니다.
이 자각이 있음과 동시에 의식이 생겨납니다.
이를 다시 영화관으로 예를 들면
텅 빈 영화관이 있는데, 영화관이 있다는 자각만이 있다가
영화관에 전기(전체의식)가 짠하고 들어와 영사기(의식)가 작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전기가 들어오든 전기가 나가든 상관없이 영화관은 언제나 있듯이
단 하나의 사실은 ‘내가 있다’는 것
‘내가 있다(참나)’만 실재할 뿐, 그 외의 것들은 실재하지 않습니다.(모두 환상)
*인식 작용
두 번째, 의식이 나타나자 나를 인식하고 싶어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나는 무엇이다’라는 인식(환상)을 일으키고 싶어 했고
나를 인식하려면 ‘내가 아닌 것’이 생겨나야 했습니다.
‘내가 있다’라는 자각만 있을 뿐, ‘나는 이것이다’라는 인식이 없었기에
내가 나를 ‘어떤 것’이라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허상의 ‘다른 어떤 것’을 나타나게 해야 했던 것
왜냐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어떤 것’이라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비교시킬 수 있는 다른 상대적인 상태가 있어야만
우리는 이것을 어떻다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낮음’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높음’이 있어야 하고
‘많음’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적음’이 있어야 하고
‘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아래’가 있어야 하듯이
‘위’라는 것이 없으면 ‘아래’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
즉, 나를 나로서 인식하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것이 나타나야 했습니다.
여기서 ‘내가 아닌 것’이란 이 몸 껍데기(에고)를 포함한 이 현실(우주 만물)
이렇게 바로
관찰되는 것 = 내가 아닌 것= 실제하지 않는 허상의 세계인
이 현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적인 인식이 이루어지려면
‘관찰되는 것’이 나타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관찰하는 ‘관찰자’가 역시 동시에 나타나야 했습니다.
왜냐면, 만약 영화는 상영되는데 관람자가 없다면,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모릅니다.
또는 관람자는 있는데 영화 상영이 없다면,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모릅니다.
또는 관람자도 있고 영화도 상영되는데 관람자가 영화를 관찰하지 않고 잔다면
즉, 관찰이 없다면, 역시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모릅니다.
이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없다면 인식 작용이 일어날 수 없는 것
그렇기에, 나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야만 합니다.
참나 안에 의식이 켜지고
관찰하는 것이 관찰되는 것을 관찰하게 되어야 만
나를 인식하게 됩니다.
*체험 작용
그리고 인식이 일어나려면 체험이 있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시각적인 체험을 해야 앞에 뭐가 있다고 인식할 수 있는 것처럼
여러분이 눈이 없다면, 앞에 뭐가 있다고 인식할 수 없겠죠.
즉, 나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나를 체험해야 했고
‘진짜의 나(참나=신)’를 체험..
내가 아닌 ‘가짜의 나(에고)’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했다.
그렇게 내가 아닌 것인 ‘가짜의 세계(현실) 만들어지고
그 ’가짜의 세계(현실)‘를 통해 ’진짜의 나‘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인
오감을 가진 이 인간 껍데기(에고)로서의 체험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현실)체험 과정 정리(다음 과정은 모두 동시에 일어남)
1. 의식작용: 아무것도 아닌 참나 안에 의식이 켜짐
2. 인식작용: 관찰자가 관찰되는 것을 관찰해 나를 인식(나는 무엇이라는 현상)
3. 체험작용: 진짜의 나(참나)를 인식하고자 가짜의 나(에고)로서의 체험이 이루어짐
--체험과 인식이라는 꿈
이 체험이라는 것을 좀 더 알아보자면
의식이 막 켜진 초기에는 체험이 아주 단순했습니다.
나를 인식하고자 하니, 내가 아닌 것으로서의 시각적 체험이 이루어졌죠.
최초의 에고는 보는 것 정도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만들어낸 초기의 에고는
몸통, 머리 등 아무것도 없고 눈(시각)만 딸랑 하나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영사기가 돌아가긴 하는데, 필름 내용이 없으니
스크린에 빛 말고는 아무 장면도 없는 것과 같죠.
그래서 나를 나로서(환상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더 내게 되면서
마음이란 필름을 채워갑니다.
필름(마음)이 채우짐과 동시에 스크린에 ’관찰되는 것‘이 점점 나타나게 되죠.
마음을 통해 스큰린에 장면(현실)이 나타나고
그제야 ’내가 이렇구나‘ 하고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나는 무엇이라는 환상)
마음 필름의 역할은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 세상에 거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러분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죠.
거울이 있으니 내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시각적인 체험으로만 나를 인식했지만
인식이 또렷하진 않았습니다.
체험이 단순할수록 고차원, 체험이 복잡할수록 다양할수록 저차원인데
물질계는 가장 하위 차원(다양한 체험이 가능)
저차원 입장에서 고차원에서의 체험을 표현하자면
고차원에서는 시각 정도만의 체험만이 있습니다.
체험이 단순하니 나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정확하지 않다.
/참나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내가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초기에는 체험이 일어나긴 해도
근원에 가깝다 보니, 나에 대한 인식도 또렷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거구나‘가 아닌 내가 뭘까
결국 나를 점점 더 정확하게 인식하고 싶어 하는 (환상을 보고 싶은)마음이 생긴다.
나를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더 다양한 체험이 필요했습니다.
그저, 보는 것(시각)에 그치지 않고
체험을 생생하게 가능케 하는 도구가 필요했던 것
예를 들어, 여러분이 참나 입장에서처럼 ’바다‘라는 것을 전혀 모른다고 해봅시다.
우리가 바다를 보는 체험만 할 수 있을 땐, 바다는 그저 멈춘 장면으로 있습니다.
그냥 뿌연 사진 달랑 한 장을 보는 듯
그러면 당연히 바다를 ’이것이 바다‘라고 인식하기가 어렵겠죠.
바다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바다를 바다라고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바다라는 것에 들어가 느껴봐야 했기 때문에 ’공간‘이 나타나고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볼 수 있으려면 움직임이 이루어져야 했기에
시간이 나타납니다.
물이 만져지지 않는다면(체험이 없다면) 그걸 바다(물)라고 인식할 수 있을까요?
물고기 입장에서의 바닷속이란 우리가 공기 속에 있는 느낌과 다를 바가 없죠.
’이것이 물‘이고 ’이것이 바다‘라고 인식(환상)하기 위해서
물을 직접 느껴보고 만져보고 더 많은 체험을 가능케 하는
촉각, 청각, 미각, 후각 등의 기능이 나타나야 했죠.
무슨 말인지 헷갈리시면
여러분이 입이 없다면, 코가 없다면, 귀가 없다면, 손이 없다면, 눈도 없다면
결국 어떤 체험을 할 수 있는지 상상해보세요.
’나는 무엇이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무엇이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 체험도 없기에 아무 인식도 할 수 없다.
감각적 체험이 이루어지자 ’이게 바다‘라는 인식(환상) 작용이 일어납니다.
결국 거울(허상) 속 세상(현실)의 체험을 통해
나,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이런 것이 나구나(환상)
내 안에 바다가 있구나(환상)라고 나를 인식하게 되는 것
처음에는 단순했던 체험들이 점점 구체화되면서 차원이 낮아집니다.
다운 차원을 하면서 공간 시간이 나타나게 되고
결국 하위 차원에 ’체험의 끝판왕‘인 오감 기능을 가진 인간 껍데기를 나타나게 합니다.
인간 껍데기는 오감 기능이 있기에 나에 대한 체험을 정확히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창조 기능인 생각 감정 자가발전기를 가졌기 때문에
체험을 끊기지 않고 계속할 수 있게 하는 도구로 완벽
잊지 마셔야 할 것이 여러분은 몸이 아닙니다.
그 몸 껍데기는 단지 나의 인식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을 뿐
그렇게 결국 내가 나를 또렷하게 인식하고자 (나는 무엇이라는 환상)
무한한 의식 에너지라는 자료로
허상의 세상을 통해 나가 나로서의 표현을 더 다양하고 진하게 펼쳐 놓게 됩니다.
세상에 이것저것이 다양하게 표현될수록 그리고 그것을 오감적으로 체험할수록
나에 대해 정확히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이 허상의 세계(현실)는 상대계로서
진짜의 나와는 가장 반대되는 상태를 체험할수록
나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게 된다.
인간 껍데기는 우리의 근원과는 가장 반대되는 상태
더욱 극과 극으로 분리되어 있을수록 나에 대한 체험과 인식(환상, 꿈)을 더 정확하게
아주 뜨거운 것이 있으려면 아주 차가운 것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세분화되고 다양화된 개체로서의 체험을 통해
완전한 하나로서의 체험을 더 정확하게 하게 합니다.
그렇게 이 인류가 이 세상이 더 다양하게 진화해 온 것
즉, 인간은 근원으로부터 가장 멀리 분리되어 있기에
/인간 껍데기를 입고 있는 동안 근원(참나, 신) 체험을 가장 정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인간 껍데기를 입고 있어야만
내 안에 이 모든 것이자 하나인 우주가 있구나!
이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식(환상) 작용이구나 하고 알 수 있게 되는 것
인간 껍데기가 없다면, 오감 기능이 없기 때문에
나를 체험하기 어렵고, 나(신)에 대한 인식도 흐지부지합니다.
인간의 삶을 체험 중일 때 내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것
삶의 모든 고통은 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지만, 이는 곧 나에 대한 앎으로 이끈다.
내가 몸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 근원의 자리로 돌아가게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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