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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經 | 체험 후에도 거쳐가야 하는길 - "모든 생각과 분별에서 벗어나는 것이 부처이다" | 월인선원

Buddhastudy 2024. 6. 6. 19:33

 

 

/그 사람은 가장 희유한 사람일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사람에게는 나라는 생각, 사람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목숨이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다 이랬는데

이 네 가지의 생각이 쉽게 말하면

대표적으로 중생심이다 이 말이죠.

분별심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보살은 그런 분별에서 벗어난 걸 보살이라고 하고, 부처라고 하니까

당연한 얘기인데, 너무 당연한 얘기입니다.

자기가 이걸 딱 통하고 보면 그런 게 없다니까.

근데 이제 버릇은 있죠, 버릇은.

 

워낙 이 몸뚱아리와 어떤 어떤 생각 느낀 감정을 나라고 여기면서 살았기 때문에

또는 나라고 여긴다 하는 순간, 벌써 다른 사람이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아상이라고 하는 것은 나라는 생각이고

인상이라고 했을 때는 이 인은 나 말고 상대입니다, 상대.

다른 사람이라는 말이에요.

쉽게 쉽게 표현하면 그런 겁니다.

 

내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당연히 있어요.

내가 있으면 세상이 있는 거고

주관이 있으면 객관이 당연히 있는 거죠.

주관이 있는데 어떻게 객관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전히 그렇게 분별하던 이 힘은, 이 습은 남아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여기에 이렇게 통했다 하더라도

내 생각, 내 느낌, 내 뜻 이런 게 있어요.

그러면 당연히 세상도 있고, 다른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 생각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생각을 듣고, 옳고 그르고를 또 분별도 하고

거기에 화도 나고 뭐 이런 마음도 당연히 있겠지, 처음에는.

여기에 통했다 하더라도.

 

한 며칠은 없어요, 여기에 통하면

한 며칠은 이 세상이 그냥 천국입니다.

천국 그냥 부처의 세상이에요.

모든 게 다 그냥 수용이 되고, 용서가 되고, 미움도 없고, 원망도 없어요.

며칠은 그래요, 며칠은.

 

근데 우리 분별이 만만치 않거든.

우리가 평생 해왔던 이 분별이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 있지 않아요.

며칠 숨어 있다가 곧장 나타납니다.

이제 일상생활 하나하나에서 나타나죠.

그래서 여전히 이 분별의 힘이 더 강해요, 이 법의 힘보다.

 

우리가 여기 안 통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견성을 안 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분명히 이 견성을 하기는 했어.

여기에 통하긴 통했어.

근데 이 분별의 힘이 워낙 강하니까

분별을 이렇게 뒤덮어 버리는 거지.

 

근데 차츰차츰 공부해 나가시다 보면

공부한다는 건 별거 없어요.

그냥 법문에 관심을 가지고

그냥 듣고, 법회에 참여하시고, 뭐 이런 거예요.

 

그러다 보면 이 분별의 힘보다 이 법의 힘이

점점 이렇게 커가요.

이 법의 힘이 커가는 만큼 분별의 힘은 줄어듭니다.

그건 자기도 모르게 진행이 되는 거예요, 그거는.

자기도 모르게.

그냥 자기가 알고 그렇게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렇게 가야 된다고 해서

법의 힘이 커지지는 않아요.

오히려 내가 그렇게 가야지하는 이 생각이 분별이기 때문에

오히려 분별을 키우고 있는 거예요, 그런 생각은 .

 

그냥 말 없이 생각 없이

그냥 본문에 귀 기울이고, 법에 참여하고 이러다 보면

그냥 저절로 저절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법의 힘이 조금씩 커지고

커지는 만큼 분별의 힘은 작아져요.

 

그렇게 공부가 진행이 됩니다.

이렇게 쭉 보면은

다 그렇게 경험을 하고, 누구나 다.

우리가 평생 분별을 해왔기 때문에 그건 어쩔 수 없어요.

누구나 다 거쳐야 되는 길입니다.

 

그런 면으로 보면

우리가 이거를 깨닫고, 이 공부를 하는 과정이

사실은 만만치 않은 과정이에요.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우리가 깨닫기 전에는

이것만 깨달으면은 그냥 모든 일이 순탄할 거라고

이렇게 생각하실 수는 있지만

오히려 제가 볼 때는

깨닫기 전보다도

여기에 깨닫고 난 뒤에 공부가 더 훨씬 어렵습니다.

더 많은 걸 겪어요.

 

깨닫기 전에는

그냥 여기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돼.

그냥 내가 하나 알아야 되겠는데이거밖에 없잖아요.

이거 하나 안 통해서 답답한 거밖에 없어.

 

그러니까 오히려 단순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통하기 전에는 단순할 수가 있어요.

물론 안 단순할 때도 많이 있죠.

왜 안 깨달아지지? 내가 뭐가 부족하지?”
이런 생각으로 가면 안 단순하죠, 복잡하죠.

 

근데 오히려 단순하잖아요.

뭐 다른 거 없잖아.

여기 통화하기 전에는

그냥 여기 한 번 통화하는 거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그러니까.

다른 길이 없다이렇게 가르치니까

그 말 믿고

여기 통하는 때까지

그냥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법문 듣고

그냥 또 그러고 있는 수밖에 없어요.

 

근데 체험하고 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체험하고 난 뒤에 뭐 그런 면으로 보면

만만치 않다고 할 수도 있지만은

또 어찌 보면은 겪을 걸 겪는 겁니다.

 

그동안 익숙해져 있고, 습이 된 이 분별 망상이

준동하는 거를 뭐 어찌 하겠습니까? 그거를.

거기에 관여한다고 해서 없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준동할 만큼 준동해야 돼요.

더 이상 준동할 힘이 사라져버려야 되거든.

 

그러니까 또 이렇게 얘기해 보면

그것도 그렇게 복잡한 것도 아니에요.

근데 거기에 자꾸 우리가 끌려다니고

끌려다녀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느라고

좀 어려움을 겪으니까 그러지

실제로는 끌려다니지만 않으면

단순하죠, 복잡할 것도 없죠.

 

근데 어쨌든 이 실상이라고 하는 거는

뭐라고 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

뭐라고 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이런 생각도 없고, 이런 느낌도 없어요.

 

이걸 억지로 표현해야 되니까

-한 물건도 없다

-고요하고 텅 비고 깨끗하다

이렇게 얘기는 하지만은

그건 억지로 표현하는 거고

뭐 이런 생각도 없고, 이런 느낌도 없습니다.

그냥 이럴 뿐이라니까, 그냥 이럴 뿐.

그냥 이거예요.

 

/왜 그럴까요?

모든 생각을 전부 떠나는 것을 일러

모든 부처님이라고 일컫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참 한번 보세요, 이 금강경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잖아요.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생각, 모든 분별에서 벗어나는 것을 부처다

이렇게 딱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모든 분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뭘 하라이런 말은 안 합니다.

그냥 모든 분별에서 벗어나는 게 부처다이 이야기만 하지.

 

물론 이 부처라는 말도 가짜 이름이죠.

모든 분별에서 벗어났는데

거기에 무슨 부처가 있고 중생이 있고, 깨달음이 있고, 어리석음이 있겠습니까?

 

근데 가르침은 정확하잖아요.

모든 분별에서 벗어나는 것이 부처다.’

 

반야심경 표현대로 하면

원리전도 몽상 구경열반이다.

이 말이잖아.

뒤집힌 꿈 같은 생각으로부터 멀리 벗어나는 것이 구경열반이다.

이 말이잖아.

 

그거 말고는 없어요.

모든 분별로부터 벗어나버렸기 때문에

벗어난 이거는 우리가 얘기할 수가 없지.

분별에서 벗어나고 생각에서 벗어나 버렸는데

이걸 뭐라고 얘기할 수가 있습니까?

 

얘기한다 그러면 생각이 돼버리는 건데.

말이 돼버리는 건데.

 

그러니까 사실은 이거는

모습이 없다이 말도 안 맞는 말이에요.

왜냐하면 모습이 없다 그러면

모습이 없다는 걸 우리가 알게 되는 거잖아.

그런 앎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말로 하면 다 안 맞아요.

아무리 법을 그럴듯하게 표현을 해놓고

여법한 말이다 하더라도 맞질 않아요.

어떤 말도 맞지 않아

해탈 열반이다, 뭐 이런 말도 맞지도 않아요.

 

그냥 이럴 뿐이라니까

그냥 이거일 뿐이에요, 이거일 뿐.

이거는 이거라고 제가 억지로 또 이렇게

이거일 뿐이럴 뿐이지

그냥 이거예요. 다른 게 아니야.

그냥 이거일 뿐이라니까 다른 일이 아니에요. 그냥 이거지.

 

아니 여기다가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고

생각을 붙일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뭐다할 필요가 없고

어떻게할 필요가 없다니까.

 

말이 붙으면 전부 조작이 되고 유위가 돼요.

생각이 붙으면, 전부 조작이 되고 유위가 돼.

무위법이 아니야, 그렇게 되면.

 

그러니까 이거는

말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불가사이하고, 비밀스럽고, 현묘하고

이런 수없이 많은 말을 하는데

이런 말의 공통점이 뭐냐 하면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이 말이에요.

 

생각이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우리의 앎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이 말이에요.

 

그런 곳이 있다는 말이 아니야.

생각이 미치는 곳이 있고,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다 그러면

두 세계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