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바라밀은 이름이 반야바라밀이지
반야바라밀이라고 할 반야바라밀은 없다./
이게 동어 반복이고
어떻게 들으면 좀 지루할 수는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해놓는 얘기입니다.
그 어떤 것도 붙들지 말라고
그 어떤 것도 붙들지 않는 게 여법수지니까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니까
“이거 좋은 거야” 하고 또 붙을까 봐서.
이런 걱정 안 되겠습니까?
저는 걱정됩니다. 엄청나게 걱정돼요.
왜냐하면 저도 그렇게 체험하고 지내왔으니까.
체험 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체험하고도 어떤 법이라고 하는 거에
저도 모르게 매여 있는 시간들이 있었고
자기도 모르게 어떤...
이런 거 있잖아요.
제가 여러 차례 말씀드렸을 겁니다.
“사물 사물이 이 진실을 다 드러내고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사물 사물이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게 사실로 느껴져 버렸거든.
사실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법이 다 우주 삼라만상에 드러내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 이런 식으로.
거짓말입니다.
법이라고 할 게 있어야 우주 삼라만상이 드러내는 거지.
법이라고 할 게 없는데
무슨 우주 삼라만상이, 말하고, 무정물이 설법을 하고
거짓말이에요, 전부.
근데 이 거짓말은 어떤 거짓말이냐 하면
중생의 병을 치료하는 거짓말이에요.
그 병 좀 치료해 보려고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거짓말도 하고
어떤 때는 참 죄 많이 짓고 있어요.
법화경에는 그런 말까지 나오잖아요.
“우는 어린아이한테 누런 나뭇잎 주면서 돈이라고
가서 사탕 사 먹으라고 한다”고.
저는 그 말을 제가 이걸 체험하기 전에 들을 때는
“저게 뭐야 저게”
속이는 거잖아, 쉽게 말하면.
속는 어린아이도 참 안쓰럽지만
어른이 돼서 애한테 겨우 나뭇잎 손에 쥐어주고
“사탕 사 먹어”
저게 어른으로 살 짓인가?
이런 생각이 있었다니까, 진짜로.
그게 불교일 줄 제가 꿈에나 알았겠습니까?
그때 알았으면 불교 공부 안 했을지도 몰라.
그게 불교인 줄을 제가 꿈에나 생각해 봤겠냐고.
근데 뭐가 뭔지 몰라서
그냥 그런 의문이 들어도
나는 이거 이거 이거 이거 여기 통하고 싶고, 여기 체험하고 싶고, 이거 해결하고 싶으니까
이해는 안 돼. 그런 표현이 이해는 안 됐어요, 정말로.
더 이해가 안 되는 게 왜 그랬냐면
만약에 그 사탕 사 먹을 재미로 울음을 그쳤다고 쳐.
그러면 그 아이는 그 나뭇잎, 손에 쥐고 가게로 갈 거 아니에요.
요즘으로 치면은 집 앞에 있는 마트나 편의점 갈 거 아닙니까?
CU 이런 데 갈 거 아니야.
그래서 그거 내밀고
“사탕 주세요.”
더 큰 병을 주는 거잖아.
그 어린아이한테.
저는 이런 생각까지 들기 때문에
“그게 불교야” 이랬으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게 불교다 하고 공부 포기할 뻔했으니까, 큰일 날 뻔했죠.
네, 그게 불교입니다.
그렇게 해서 울음을 그치게 하는 그게 불교예요.
그게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제가 지금 그러고 있는 거예요.
왜 그러냐?
법이라고 얻을 법은 없어요.
우리가 알 법은 없어.
우리가 이걸 알고 찾을 법은 없다니까.
근데 이 얻을 법도 없고, 법이라고 할 것도 없는데
그냥 “온 우주 삼라만상이
이 법을 다 드러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무정물의 설법을 들을 줄 알아야 된다.”
이런 얘기를 제가 이렇게 낯이 두껍게 떠들고 있잖아요.
안 맞잖아요.
법이라고 할 게 없다면서 우주 삼라만상이 이 법을 다 드러내고 있다.
이게 맞습니까?
이게 앞뒤가 맞아요, 이게?
근데 이 거짓말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비록 저게 거짓말인데
중생의 병을 치료하는 데는 그냥 유일한 약이구나.
저 약을 통하지 않고서는 중생의 병이 치료가 안 돼.
그러니까 낯이 두껍게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이 약을 통하지 않고서는 중생의 병이 치료가 안 된다니까요.
이 거짓말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 뒤집어져 있는데 바로 서서 이 세상을 살 수가 없어.
이 거짓말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러니까 이 거짓말이 뭐냐?
조사의 관문이에요.
깨달음의 관문이야.
이 문을 반드시 통과하셔야 되는 거야.
그러니까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거든.
내가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거거든.
법은 법이 아니기 때문에 법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법이라는 게 있어서 제가 법이라고 하면은
이게 잘못된 거예요.
근데 제가 법이라고 하고, 깨달음이라고 하고, 도라고 하고,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데
저한테는 반야바라밀도 없고, 법도 없고, 도도 없어
아니기 때문에 법이니, 도니, 부처니, 이런 말을 제가 할 수 있는 거거든.
저한테는 공이 없기 때문에
공이라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예요.
공이라고 할 물건이 없어.
뭐 그런 상태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 공
무슨 ‘깨달음’ 이런 거 없어요.
‘부처’ 이런 거 없다니까.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에게는 말할 법/
법이라고 할 게 없는데
무슨 말할 법, 행할 법, 기억할 법, 진일법, 이런 게 있겠습니까?
법 자체가 없는데.
그런 거하고 똑같다니까.
뭐라고 할 게 없는데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라고 하는 거하고 똑같아.
뭐라고 할 게 아무것도 없는데
옳은 겁니까? 그른 겁니까?
그걸 어떻게 판별해 냅니까?
뭐라고 할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거 자동차도 없는데
앞으로 갈 겁니까? 후진할 겁니까?
물어보는 거하고 똑같아.
이런 말하면은 생각에 따라서 올라오는 구절이 하나 있는데
대가가 그렇게 얘기한 적 있어요.
길 가다가 죽은 뱀 만나거든
바닥 없는, 뭐 그릇이라고 그랬습니까?
바닥 없는 그릇에 담아서 오너라
이런 말을 했는데
이 말하다 보면 꼭 이 구절이 생각나.
“길 가다가 죽은 뱀을 만나거든
때리지 말고
바닥없는 그릇에 담아오너라” 이랬는데
차도 없는데
고속도로를 달리고
뭐 국도를 달리고
고속도로로 갈 겁니까? 국도로 갈 겁니까? 하는 거하고 똑같아요.
그게 나오면 고속도로 가는 게 더 빨라요.
국도로 가면 신호도 많이 걸리고, 차도 없는데
차도 없는데 그냥 거기 온갖 말들만 그냥 넘쳐나는.
그러니까 제가 말했잖아요.
제선이든 제악이든 뭐라고 할 게 아무것도 없는데
선을 많이, 공덕을 많이 쌓아라, 공을 들여라
그런 쓸데없는 얘기
뭐라고 할 게 없는데
어떻게 하는 게 이 법을 위하는 거다.
법이라고 할 게 있어야
어떻게 하는 게 법을 위하고, 법을 위하지 않고를 얘기할 수가 있지.
/여래에게는 말할 법이 있느냐?
수부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는 말씀하실 법이 없습니다.”/
말씀할 법이 없는 게 아니라
법 자체가 없어요.
말할 법은 없고, 행할 법만 있냐?
그런 게 없다니까.
그러니까 공이라는 말로 이걸 또 표현을 해보는 거예요.
공이라는 말로.
이 공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적멸이라는 말이거든
다른 말로 하면.
이거는 뭐라고 할 게 없어
그냥 말이 안 돼
말이 안 된다는...
답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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